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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6일 일요일

[요약] Brogaard, B. (2018), “In Defense of Hearing Meanings”

Brogaard, B. (2018), “In Defense of Hearing Meanings”, Synthese. 


1. Introduction

추론주의: 우리는 발화를 듣고 배경 정보 + 통사 지식 +의미론 지식을 이용해 그 의미를 (아마 무의식적으로) 추론한다.

지각주의: 우리는 발화의 음성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청각적으로 지각한다.

 

지각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발화를 들을 때 그 경험은, 파기자(defeaters)가 없는 조건 하에서, 말해진 것에 대한 우리 믿음을 일정 정도 정당화한다. 따라서, 파기자가 없을 때, 우리는 발화를 듣는 것에만 기반해서도, 무엇이 말해졌는지(의미)를 알게 될 수 있다.

파기자: 기존 믿음의 likelihood를 낮추는 personal-level의 믿음.

- Rebutters: 기존 믿음 자체를 공격

- Undercutters: 기존 믿음과 그 증거 사이의 관계를 공격

 

추론주의의 문제점:

- 우리가 발화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흐른다.

- 의미 그 자체가 미결정적이라는 더 급진적인 관점으로 갈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언어 습득에 대한 추론주의 관점에서 발생한다. 추론주의는 통사론 및 의미론에 대한 옳은 믿음 집합을 습득하는 것이 언어 습득이라고 보는데, 그것만으로는 발화를 이해하기 충분하지 않다. 통사론 및 의미론에 대한 믿음들도 정당화되어야 한다(Davidson 1973의 원초적 해석자 사고 실험 기저에 놓인 아이디어).

어떤 발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데이빗슨은 우리가 단지 발화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넘어 의미에 대한 확정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각주의에서 이런 문제가 없다. 의미가 지각된다면, 의미에 대한 우리 경험이 의미에 대한 우리 믿음을 (최소한 파기자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문제는 지각주의가 설득력 있는지이다. 앞으로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지각주의에 대한 두 가지 비판 논증에 대한 재반론

- 동음이의어 논증: 동음이의어들을 발음할 때, 의미가 달라도 똑같이 들린다.

- 맥락 민감성 논증

 

(2) 지각주의에 대한 저자의 옹호

- 언어 학습은 일종의 지각 학습(perceptual learning)이다.

- 언어 이해는 하향(top-down) 요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지각이다. 언어 이해에 대한 하향 요인들은 말해진 것의 appearances[주체에게 이러저러하게 나타남]이 즉각적 정당화자로서의 역할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반면, appearances가 인지적으로 침투된다면, 즉각적 정당화자로서의 역할이 약화된다.

 

2. The Argument from Homophones

알고 있는 언어와 그렇지 않은 언어를 들을 때의 청각 경험은 매우 다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지각주의: 의미를 지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추론주의: 각 언어 특유의 음운론적 속성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기인한다(O'Callaghan 2011).

 

추론주의자 O’Callaghan의 동음이의어 논증: 우리가 동음이의어 발화를 들을 때, 청각 경험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의미의 차이가 청각 경험의 차이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e.g., pole (막대기), pole (), poll (투표)

- 저자의 반론: 단어의 의미에는 사전적 의미(lexical meaning)과 발화 의미(utterance meaning)가 있다.
한 단어는 여러 가지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e.g., ’chair’: 의자, 조직의 장, 지위 등.
발화 의미는 단어의 특정 사용에서의 의미이다.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할 때 사전적 의미들에 의식적으로 접근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한 건 단어의 특정 사용의 발화 의미이다. 사전적 의미는 다양한 발화 의미를 이론화한 일종의 이론적 구성물일 뿐이다.
‘pole’‘poll’의 소리가 동일하더라도, 그저 이 단어들을 발음하는 것은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여러 다른 사전적 의미와 관련 있는 소리를 발음한 것일 뿐이다.

- O’Callaghan의 재반론: 우리가 단어의 특정 사용들에 주목해도 청각 경험의 차이가 없다.
e.g.,

"Earnest used the pole to vault over the high bar“

"Bubb won the greatest number of votes in our latest poll

두 문장 속에서도 'pole''poll' 청각 경험에 차이가 없다.

- 저자: 차이가 있다. 똑같은 소리가 외국어에 나타난다면(e.g., 덴마크어 "Giv dukken till Poll", 그 청각 경험은 다를 것이다. 우리는 그 경우 의미를 경험하는 인상이 없을 것이다.

 

O'Callaghan: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그 언어 특유의 음운론적 속성들을 탐지하는 것에 익숙해지며, 그럼으로써 소리가 어떻게 경험되는지가 변한다.

- 저자: 세 가지 문제가 있다.

- 서로 다른 동음이의어를 포함한 서로 다른 맥락 내 발화에 사이에 즉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설명할 수 없다.

- 두 서로 다른 언어들이 의미는 다르지만 정확하게 같은 소리를 가질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언어의 발화에 대한 청각 경험을 바꾼다.

- 발화 의미를 들을 수 있느냐의 논쟁은 글을 읽을 때 의미를 읽을 수 있느냐로 옮겨간다. 모르는 문자로 쓰여진 글을 볼 때와 아는 문자로 쓰여진 아는 언어의 글을 볼 때 현상적 차이가 있다.

 

 

 

3. The Argument from Context Senstivity

Stanley 2005: 맥락 민감성과 자연어의 애매성이 사실상 모든 문장에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한 언어학적으로 가이드된 추론을 해야 한다.

e.g., "그 경찰이 그 강도를 체포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 뒷 문장의 는 경찰도 될 수 있고 강도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강도라고 해석한다. [대개 강도가 마스크를 쓴다는 배경 정보를 통해 추론하기 때문이다.]

 

Pettit 2010: 발화의 맥락 민감성은 발화 이해가 포더의 의미에서 모듈적(정보적으로 밀봉)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맥락 민감성 때문에 발화의 처리가 인지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발화 이해는 모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 하향식 과정와 인지적 침투를 구분해야 한다. (5절에서 더 자세히 다룸)

인지적 침투(Pylyshyn 1999): 의미론적으로 정합적인 단계를 거쳐서, 인지적 상태가 저차 상태의 appearances를 변화시키는 것.

우리는 발화자가 의도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지각적으로 aware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배경 정보가 하향식 과정을 통해서 의미의 appearance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언어 이해가 하향식 과정의 결과로서 배경 정보에 의존한다는 점은, 언어 이해가 지각된다는 점과 양립 가능하다(Brogaard and Gatzia 2015). 그러므로 Stanley의 주장은 지각주의에 큰 문제가 안 된다. 주된 문제는 의미의 appearances의 정당화 역할에 있다.

 

 

 

 

4. The Justificatory Qualities of Experience and the Notion of a Defeater

시각적 seemings(appearances)가 시각적 experiences인지, 아니면 둘이 다른지에 대해 논쟁이 있다.

 

현상적 독단론: 최소한 몇몇 지각적 appearances는 믿음에 대한 즉각적인 정당화를 준다는 입장. 그러나 모든 appearances가 그런 것은 아니다.

e.g.,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강아지.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07pixel, 세로 701pixel

 

만약 나에게 가려진 것 뒤에 있는 것이 강아지의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고(appears to) 해도, 그리고 내가 그것을 믿게 된다고 해도, appearance는 그 자체로는 내 믿음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강아지와 꼬리에 대한 배경 가정과 결합함으로써 정당화를 줄 수 있을 뿐이다.

 

 

즉각적 정당화를 주기 위해 어떤 특성을 appearances가 가져야 하는가?

Chudnoff: presentational phenomenology를 가진 appearances만 즉각적 정당화를 할 수 있다. <p><p에 대한 진리확정자에 대한 awareness> 둘 다를 포함하는 정확성 조건(accuracy conditions)를 가질 때만 seemingspresentational character를 가진다.

- 위의 사진에서, 안 가려진 부분에 대한 경험의 내용: <강아지가 앉아있다 & 강아지가 앉아있다는 명제에 대한 진리확정자를 내가 aware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가려진 부분의 내용: <이 부분은 강아지의 일부분이다 & 나는 이 부분은 강아지의 일부분이라는 명제에 대한 진리확정자를 aware하지 못한다>

 

Chudnoff의 주장은 말해진 것에 대한 경험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있다.

- 낮은 수준의 착시들과 같은 방식으로, 청각적 illusion은 증거에 민감하지 않다.

e.g., 동물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듯한 유튜브 비디오들. 이 청각 경험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더라도 계속 그렇게 들린다. , 파기자에 저항성이 있다.

e.g., Food Tongue: 음식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문법도 영어와 다른 언어. 여전히 영어 단어의 나열처럼 들린다. Yogurt! Plantain wasabi! [Hello! And Welcome!]

- 이것은 Muller-Lyer 착시가 착시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여전히 착시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Pylyshyn 1999가 지적하듯, 합리적 영향에 대해 단절되어 있는 것은 지각 경험(혹은 appearance) 그 자체의 표식이다.

- 이 유형의 appearance는 즉각적 정당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말해진 것에 대한 appearancepresentational phenoenology를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해진 것은 p이다>의 진리확정자는 즉각적이지도, geuninely하지도, 지각 가능하지도 않은 엔터티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e.g., 문법과 조합성에 대한 지식, 언어적 관습, 화자에 대한 배경 정보.
, 발화자가 p를 말했다는 청각적 appearance<말해진 것은 p이다>에 대한 진리확정자를 aware하게 하지 않고, 따라서 말해진 것에 대한 청각적 appearancespresentational phenomenology를 갖지 않는다.

한 가지 대안적 제안은 즉각적 정당화자 역할을 하는 appearances는 증거에 저항력이 있다는 것이다.

 

 

 

 

5. Perceptual Learning and Top-down Influences

Stanley는 배경 정보랑 결합해야 한다,

- 앞에서 Pettit에게 영감을 받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 다른 문제는, 새로 배운 언어에서 음운을 능숙하게 탐지하고 그것을 의미와 연결시키는 데 필요한 학습이 일종의 지각 학습이라는 것이다.

- 맥락적 배경 정보는, 말해진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청각 appearances와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배경 정보는 perceptual learning을 통해 직접적으로 appearacnes에 영향을 준다. 그러는 한 가지 방식은 perceptual learning을 통해서이다. perceptual learning은 우리에게 대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영향을 준다.

e.g., 체스 전문가 vs. 초보자: 초보자는 개별 말의 위치를 기억하는데, 전문가는 배열을 덩어리로 묶어서 기억한다. (Chase and Simon 1973 a, b; Gobet and Simon 1996, 2000).

언어 학습도 비슷하게, 초보자들은 의식적으로 문법 규칙들을 적용하려고 하지만, 능숙해지면 자동적으로 되고 주의 요구량도 줄어든다.

- 뇌가 단어들을 랜덤 문장열로 인지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덩어리들로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과정이 된다.

e.g., 대학생들 상대로, 150개의 nonsense 단어의 의미를 배우게 했을 때, 뇌가 그것들을 처음에는 질서 없는 기호로 인식했다. -> 나중에는 알고 있는 단어들의 시각적 표상을 저장하는 부위에 각 단어에 하나씩 뉴런 회로를 할당했다. (각 글자는 매번 다르게 쓰이기 때문에 (폰트가 다른 등의 이유로) neural circuit을 각각의 토큰에 대해 할당하지 않고, 한정된 수의 특징에 할당한다.)

 

배경 정보가 직접적으로 appearances에 영향을 주는 방식의 다른 예는 하향식 처리이다. 화자가 무엇을 전하고자 할지에 대한 배경 정보는 시각적 혹은 청각적 입력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로서 나온 시각적 혹은 청각적 appearances에 영향을 준다. e.g.,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뉴스 헤드라인

이 경우,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에도, 많은 경우에 높은 수준의 처리에 있는 우리 기대가 자동적으로 낮은 수준 처리에 영향을 줌으로써, 의도된 의미의 appearance를 만든다.

배경 정보가 appearance를 가이드한다는 다른 증거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읽거나 듣는 정보를 완전히 처리하지 않는다.

e.g.,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의 국경에서 있었던 비행기 사고 후에, 당국은 생존자들을 어디에 매장할 지 결정해야 했다.

언뜻 읽기에는 이상한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꼼꼼히 읽으면 생존자를 묻는 게 이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평균적인 대학생들은 1분당 255단어를 읽을 수 있는데, 그들이 모든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불가능한 속도이다. "부분적이지만 충분히 좋은" 접근을 통해 이해한다. 우리는 읽거나 듣고 나머지를 하향식 처리로 채워 넣는다.

 

이런 점에서 언어 이해는 시각 경험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시각 경험은 가려진 물체에 대한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발화에 의해 presented된 모든 의미있는 정보를 듣지 않는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에서 대상과 의미는 하향식 처리로 채워진다.

 

의미에 대한 지각적 appearances에서 하향식 처리가 광범위하다는 점은 현상적 독단론에 문제가 된다?

&질 사례: 질은 잭이 화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화가 나지 않은 잭이 화난 것처럼 보인다.

 

Brogaard 2013b에서 저자는 진정한 현상적 seemings만이 즉각적 정당화자 역할을 할 수 있고, 인식적 seemings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만약 문제가 되는 seeming이 인식적이지 않고 현상적이라면, 그것은 파기자가 있을 때도 계속될 것이다.

e.g., 만약 질에게 잭이 화났다는 사인이 없다는 점을 알려주면, 잭이 화난 것처럼은 더이상 질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 잭이 화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식적 seeming

 

청각 경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e.g., 당신이 항상 내부세미나의 발표 내용에 대해 불평한다는 점을 내가 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내부세미나 끝나고 와인 파티 때 당신이 발표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불평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발표 내용에 대해 만족한다는 점을 알려주면, 더 이상 그렇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지적으로 침투되는 지각적 appearances는 즉각적 정당화자 역할을 할 수 없다.

의미의 진정한 현상적 appearances는 즉각적 정당화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들이 하향식 처리를 통해 배경 정보에 의존하더라도. 그런 하향식 처리가 보통 인지적 침투가 아니므로, 그것은 발화 의미의 appearances가 즉각적 정당화를 할 수 있다는 관점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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