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르댕, 『환경윤리』 5장 자연계에 대한 책임: 인간 중심적 윤리학에서 탈인간 중심적 윤리학으로
1. 서론
대부분 서양 철학의 전통에 따르면 오로지 인간만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환경적 결정을 내릴 때 윤리적인 사람은 그 결정이 인간에게 끼칠 영향만 고려하면 된다. 자연계와 관련된 간접적인 책임을 가질 뿐, 자연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갖지는 않는다.
→ 탈 인간 중심적 윤리: 철학적 관점의 근본적 전환. 자연계에 대한 직접적 윤리적 책임, 즉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에 의존하지 않는 책임을 갖는다는 주장.
2. 서양 전통에서의 도덕적 지위
-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인간만이 지성(영혼)을 소유하기에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 칸트: 자연에 대한 우리 의무는 간접적이다. 즉, 자연에 대한 의무는 다른 인간에 대한 의무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롭고 이성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만이 도덕적 존재다.
- 데카르트: 도덕적 지위의 기준은 의식. 동물은 배제.
- 기독교 전통(의 한 가지 해석): 인간은 모든 창조물 중에서도 특권적 지위를 차지한다.
- 벤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동물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동물 배제에 대한 두 가지 비판 전략이 있다.
- 합리성이 도덕적 지위의 기준으로 적절하지 않다.
- 합리성은 도덕적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어떤 동물들은 그러한 기준을 만족시킨다.
3. 초기의 환경윤리학
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전통은 인간의 자연 지배가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부추겼지만, 반대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응용되는 철학 이론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패스모어
- 서양 전통이 자연을 도덕적 고려에서 배제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윤리적으로 적절한 자연과의 관계를 위한 씨앗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e.g., 오염 문제: "이웃을 독살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원리 적용
- 패스모어는 세계에 대한 더 "감수성 있는" 태도를 요구한다. 심미적 가치가 중요. 감수성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세계를 보살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 패스모어의 윤리학은 여전히 인간중심적이다. 자연계 자체는 어떤 가치도 갖지 않고, 인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
블랙스턴
- 인간의 "살기 좋은 환경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기본 권리는 안전하고 위생적이며 살기 좋은 환경 없이는 실현할 수 없다. 변화하는 환경적 조건들은 우리 전통적인 자유와 권리, 특히 재산권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 비판 1: 살기 좋은 환경에 대한 권리라는 것은 생명, 자유, 재산 등에 대한 더 근본적인 권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 비판 2: 권리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권리는 소극적 의무만을 포함하지 적극적 의무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ㄴ 가능한 대응: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무만 포함
4. 도덕적 지위
윤리학의 확장
- 인간중심적 확장: 미래 세대를 포함시키거나 인간의 새로운 권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도덕적 지위 확장. 아직 여전히 인간만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 탈인간중심적 확장: 인간 이외의 것들에까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
모든 철학자들이 우리가 책임을 갖는 이유가 모두 권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책임을 논의할 때는 도덕적 지위와 도덕적 고려 가능성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도덕적 요구를 할 권리를 갖는가? 그것들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가? 누가 그리고 무엇이 도덕적 중요성을 지니는가? 어떤 근거로 우리는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는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인가?
파인버그
- 도덕적 지위의 분명한 사례에서 시작해, 그것에서 우리 직관을 잘 설명해주는 기준을 끌어내고, 이것을 더 문제가 되는 사례에 적용.
- 일반적으로 권리 요구자는 일정 능력이 있는 성인 인간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을 학대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동물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증진되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에 대해 의무를 갖는다. 어떤 것이 권리를 갖는다고 이야기하려면, 그것은 이해관계를 가져야 하거나, 권리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그 자신의 선이나 목적을 가져야 한다. 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그것을 위해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다.
- 어떤 것이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의욕적 삶"을 갖는 것들이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 최소한 고등동물들은 이해관계를 갖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권리를 갖는다.
- 종의 개별 구성원에게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지만, 종이 권리를 갖는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 우리 의무는 그에 합당한 인지 능력을 소유한 개별적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5. 나무는 지위를 갖는가?
스톤
- 법률적 권리를 숲, 대양, 강, 등 환경 내의 다른 자연적 대상들, 그리고 전체로서의 자연 환경까지 확장해야 한다.
- (법적) 권리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해 나가는 것다. 권리는 그 권리의 침해에 대해 어느 정도 평가할 채비가 있는 공적 권위를 가진 조직체에 의해 승인될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도덕 발전의 역사는 사회적 본능과 동정의 대상을 계속 확장하는 것이었다.
- 권위 있는 조직에 의한 승인만으로는 권리를 일반에까지 확인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세 가지 부가적인 기준이 만족되어야 한다.
(1) 그것이 스스로의 요청에 따라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것에 대한 법적 구제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법정은 그것에 대한 권리 침해를 고려해야 한다.
(3) 그러한 구제는 그것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
자연물
(1) 자연물의 이해관계를 대리하기 위해 후견인이나 보호자 혹은 피신탁인을 지명할 수 있다.
(2) 우리는 자연물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자연물의 권리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
(3) 자연물을 손상시킨 당사자에게 자연물을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킬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난점들
- 우리가 자연물의 이해관계에 동의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e.g., 멕시코 만을 즉시 물고기로 채워야 한다 vs. 자연적으로 채워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 누가 후견인이 되어야 하는가? e.g., 야생지협회 vs. 어업종사자
6. 피터 싱어와 동물해방운동
기존 입장은 우리가 동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갖는다는 점에 대해 인간 중심적 근거를 든다. 그런데 동물 자체를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직접적 의무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물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가? 동물은 도덕적으로 고려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가?
싱어: 동물을 도덕적 고려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종차별이다.
- 모든 이해 관계는 똑같이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덕적 지위를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이면 어떤 존재든 "하나로 계산되지 그 이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 그렇다면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가? -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것. 고통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유정성)은 이해관계를 갖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 유정성이 있는 존재만이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유정성이 있는 존재만이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모든 유정성이 있는 존재들을 동등한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대우해야 한다.
- 정신 능력과 감정적, 정서적 능력에 따라 이해범위의 크기가 달라지고,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지위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고통의 양이 도덕적 자격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공리주의적, 권리 개념에 주목하지 않음)
- (특히 종들 간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인간 편의를 위해 동물의 격심한 고통을 야기하는 경우로 한정하더라도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리건:
- 어떤 동물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권리는 우리의 강한 도덕적 책무를 수반한다.
- 동물에 대한 잘못된 행위는 고통과 괴로움 때문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동물의 본래적 윤리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그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쁘다.
- 사람들이 송아지 고기를 못 먹으면 고통을 겪고, 송아지를 아주 좋은 환경에서 키워 고통 없이 죽인다고 해도, 송아지 고기를 먹는 것은 잘못이다. (비교: 스위프트의 소설 <겸손한 제안>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좋은 환경에서 키운 인간 아기를 먹는 것은, 고통에 비해 기쁨이 크더라도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할 것이다.)
- 동물은 도구적 가치가 아닌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는 (칸트의 주장과 달리) 자율적 행위를 할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다.
- 도덕적 행위자뿐만 아니라 도덕적 수동자(무능력자, 미숙한 사람 등)에게도 도덕적 지위가 있다. 도덕적 수동자는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다.
- 왜 도덕적 행위자뿐만 아니라 도덕적 수동자도 고유의 가치를 지니는가? 그들의 삶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을, 그리고 단순히 의식적이라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 믿음과 욕망, 지각과 기억, ... 미래에 대한 감각, ... 감정과 함께 정서적 생활, 선호와 복지,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행위할 능력, ... 심리물리적인 정체성, ... 개인적 복지 등을 갖는다는 것이다."
8. 동물 복지의 윤리적 함의
싱어와 리건의 견해가 지니는 윤리적 함의는 다양한 문제에 걸쳐 있다.
- 상업적인 동물 사육을 그만두어야 한다.
- 스포츠로서의 수렵이나 덫사냥도 부당하다.
- 동물 실험도 문제가 있다.
- 종은 도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종은 삶의 주체가 아니고(리건), 고통을 겪지 않는다(싱어).
9. 비판
싱어에 대한 비판
- 모든 고통을 고려하기는 매우 어렵다. 동등한 고려가 반드시 동등한 대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해관계와 고통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어떤 철학자는 기본적 이해관계와 지엽적 이해관계 구분)
- 개체주의에 따른 문제: 싱어의 입장에서는 수십억 마리 닭 중 한 마리 vs. 마지막 무척추동물 중 전자가 더 강한 도덕적 권리를 갖게 된다.
리건에 대한 비판
- 도덕적 고려 가능성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 "1년 혹은 그 이상 된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포유동물들"
- 개체주의에 따른 문제: 전체론적인 환경적, 생태적 사고와 맞지 않다. (리건의 반박: 그건 환경 파시즘이다)
싱어, 리건에 대한 공통적 비판
- 싱어와 리건은 가능한 한 야생동물을 내버려 둬야 한다고 보는데, (1) 이미 우리는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너무 많이 파괴했고 (2) 환경에 완전히 불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특정 개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생태 공동체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e.g., 지나치게 많은 사슴 개체수)
- 싱어와 리건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적일 수 있다. 인간을 도덕적 지위를 갖는 존재의 전형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준을 찾은 다음, 그 기준을 다른 존재에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과 유사한 동물만이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 -> 굿패스터: 살아 있다는 조건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의적이다. 유정성도 생존을 위한 특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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