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kins, R. (2012), "What Perky Did Not Show", Analysis.
1. Introduction
Perky의 실험
피험자에게 스크린의 한 지점을 보게 한
뒤, 지정된 대상(잎, 책, 바나나, 토마토 등)을 [마음속으로] 시각화하게 한다. 그리고
피험자 몰래 그 스크린에 그 대상의 이미지를 띄운다. 그 이미지는 피험자가 간신히 지각할 수 있는 정도로
희미하게 한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마음속으로 시각화한 것을 보고하도록 했는데, 그것은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Segal의 재현 실험
Perky의 실험과 대부분 비슷했지만, 스크린에 띄운 이미지는 피험자가 지각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다. 이
경우에도 피험자가 자신이 시각화했다고 보고한 것은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철학계에서 이 실험은 심상(시각화)과 지각을 현상적 측면에서 구별할 수 없거나, 최소한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됐다.
그러나 Segal이
옳다면, 이 실험은 그러한 유사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Segal의 실험에서 띄워진 이미지는 지각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기 때문에, 지각적
경험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험자들은 심상과 지각의 현상적 경험을 착각한 것이 아니다.
기존 해석: <상상의 현상성>과 <지각
경험의 현상성>의 현상성을 혼동
저자(Hopkins)의
해석: <지각 경험의 현상성>은 이 실험에 존재하지
않았음. 피험자들은 <상상의 현상성>과 <non-committal pictorial awareness>를
혼동한 것임.
왜 철학자들은 저자와 같이 해석하지 않았는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있다.
·
Segal의 실험을 몰랐다.
- Segal의 실험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 Segal의 실험과 상관없이,
어쨌든 Perky의 실험은 상상과 지각을 착각할 가능성은 보여줬다.
저자: 만약 Perky의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이미지를 지각했다고 해도, 이 실험은
그들이 상상과 지각을 착각했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자극에 대한
피험자의 의식은 지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험자의 의식에 대한 기존 해석
실제 의식: 자극을 봄(지각)
착각: 지정된
대상을 상상함(심상)
여기서 자극은 무엇인가? 지정된 대상 그 자체는 아니다. 피험자들에게 토마토, 책, 바나나 같은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극은 그런 대상들에 대한 “그림”이었다.
즉, 피험자들이
의식적으로 aware한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에 대한 의식은 분명 [일부분] 지각적이다. 그런데
그림을 볼 때, 지각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관여한다. 즉, 그 물감 자국(mark)뿐만 아니라, 그 물감 자국이 묘사하는 대상을 어떤 의미에서 시각적으로 aware한다. 그러한 awareness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지각과는 다르다.
e.g., 우리가 모나리자를 볼 때 단순히 캔버스
위의 물감 자국을 볼 뿐만 아니라, 그 물감 자국이 묘사하는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 시각적으로 aware한다.
- 많은 그림의 경우, 묘사된 대상에 대한 awareness는 그 대상에 대한 지각 경험과 그리 유사하지 않다.
- 그림에 대한 의식이 <물감 자국에 대한 참된(veridical) 지각>과, <묘사된 대상에 대한 참이 아닌 지각>을 결합한다면, 그림에 대한 의식은 비정합적이다[참인 지각과 거짓인 참이
아닌 지각이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인 듯]. 그러나 그림 경험은 비정합적이지 않다. 그림 경험은 우리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완전히 정합적으로 표상한다.
<대상을 묘사하는 물감 자국들의 집합>으로서. [그림 경험은 정합적이므로 묘사된 대상에 대한 awareness는
지각이 아니라는 뜻인 듯.]
즉, 대상을
시각적으로 aware하지만, 대상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how things really are) aware하지는 않는다. e.g., 모나리자를
볼 때 그림에서 묘사된 사람이 실제로 거기에 있는 것으로 aware하지는 않는다.
지각적 의식과 다르게, 이 awareness는 그 대상의 실재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는다(non-committal). 이런 점에서, 그림에 대한 의식은 상상하기(심상을 갖기)와 유사하다.
지각: committal
시각화(상상): non-committal
그림 속 대상에 대한 awareness: non-committal
그렇다면
Perky 실험에서 피험자의 심적 상태는 다음과 같다.
실제 의식: 자극에 대한 지각 + non-committal pictorial
awareness
착각: 대상에
대한 심상
피험자가 혼동한 것은 두 가지 형태의 non-committal visual awareness이다.
<그림 속 대상에 대한 awareness>, <대상에 대한 시각화(상상)>
2. Some
clarifications and comments
(1) 저자는 그림에 대한 의식이 심상을 포함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림에 대한 의식이 심상을 포함한다면,
Perky의 피험자들이 자신이 대상에 대한 심상을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옳았을 것이다.
그림에 묘사된 대상에 대한 awareness는 심상에 대한 것이 아니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non-committal 방식으로 대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할 때, 그것들은 매우 비슷하고, 지각적
awareness와 크게 다르다.
(2) 저자는 그림 의식이 지각적이라는 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림 의식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지각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을 그림을 구성하는 물감 자국을 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순수하게 지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3) Perky와
Segal이 이용한 이미지들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대략적이었다. 제시된 색칠된 도형들(e.g., 토마토를 나타내는 붉은 원)은 다른 그림 의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e.g., 붉은 원은 피험자들이 태양을 상상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non-committal
awareness를 형성할 자유가 증가할수록, 심상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실험에 쓴 그림이 실제와 덜 닮을수록, 그것은 심상과 유사해진다.
(4) 저자의 설명은 실험자들이 기술한 모든 사례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Segal의 사례 중 일부에서, 그림
의식이 관여하지 않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홉 개의 갈색 점들이 원을 이루게 배열된 패턴을 보여주면서
피험자들에게 길거리를 상상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피험자들이 상상한 것(구덩이가 있는 길거리)는 이 피험자들이 이미지에서 길거리를 봤기 때문은
아니다. 그 이미지는 피험자들의 비교적 풍부한 내용의 상상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thin).
그러나 여기에 저자의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Perky에게도 문제이다. 보는 것과 심상을 착각했다는
것. 갈색 점들이 원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를 보는 것과, 구덩이가
있는 길거리에 대한 심상을 착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Segal은 자극에서 피험자의 심적 상태를 결정한
특징들이 형태, 색깔, 그리고 아마도 질감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은, 제시된 것이 지정된 대상에 대한 그림일 때에도, 그 자극의 그림적 본성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시한다. 중요한
것은 자극이 대상과 형태와 색깔에서 일치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그림에 대한 의식을 촉발한다는 것이 아니다.
(6) 심상과 지각의 구별 불가능성에 대해 실험을
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피험자들은 대상의 그림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에 노출되어야 한다. Perky와 Segal의 실험은
기껏해야, 그림에 있는 대상을 보는 것에 관여하는
non-committal visual awareness가 그 대상에 대한 심상과 착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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