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hababu, N. (2016), "Imagination and Belief", in The Routledge Handbook of Philosophy of Imagination.
믿음과 상상은 둘 다 대상들을 특정 방식으로 표상하는 심적 상태이다. 따라서 상상의 본성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은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초점을 맞추는 상상은 명제적 상상(propositional imagination)으로, 특정 사태가 발생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암이 흐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으로, <용암>을 상상하는 것과 대비된다. 믿음은 명제 태도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상상이 믿음과 상상을 통합하는 이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roperties of Belief That Imagination Lacks
SEP "Belief" 항목에 따르면, 다음 세 가지 속성은 표준적인 기능주의 관점에서 믿음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1) 믿음들은 그것들의 내용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에 따라 다른 믿음을 만들거나 제거한다.
(2) 지각적 상태는 우리가 지각하는 대로 대상을 믿는 경향을 만든다.
(3) 무엇이 욕구 충족 가능성을 높일지에 대한 믿음은 욕구와 상호작용하여 행위의 동기를 부여한다.
위의 세 가지 속성은 일반적으로 상상의 기능적 속성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1) 상상과 믿음 사이의 관계는, 믿음-믿음 혹은 상상-상상 사이의 논리적 관계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 p를 상상하면서 p를 믿지 않을 수 있다. [믿음과 상상이 같다면 믿음-믿음 관계와 믿음-상상 관계가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믿음이 상상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지만, 믿음들의 논리적 귀결을 믿는 것 혹은 상상들의 논리적 귀결을 상상하는 것만큼 신속하게 믿음과 상상의 혼합물에서 결론을 도출하지는 않는다.
(2) 상상은 믿음에 비해 감각적 경험에서 훨씬 쉽게 벗어날 수 있다. 감각 경험과 다른 것을 믿기 위해서는 경험을 의심할 이유가 필요하고 인지적 부담이 있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각과 다른 것을 상상한다.
(3)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으로 상상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e.g., 스파이더맨이 되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거미줄을 쏘려고 하지는 않는다.
게임북을 할 때나 소꿉놀이를 할 때 상상이 행위를 유발하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믿음과 상상의 역할은 다르다.
- Properties of Imagnination That Belief Lacks
(1) 믿음과 달리, 실제와 다른 상상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다. 상상을 항상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하면 의도적으로 할 수 있다. 반면 실제와 다른 믿음을 의도적으로 갖기는 힘들다. 감각적 경험과, 다른 믿음이 우리가 특정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경향을 만든다.
(2) 현상성이 믿음에 비해 상상에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Kind: 상상은 분명 현상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상상 속의 현상적 느낌은 상상에 본질적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상상을 하든 현상적 측면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Kind는 Perky 실험을 언급한다. 피험자에게 빈 스크린을 보게 하고, 스크린에 특정 물체를 상상하라고 한다. 이때 피험자 모르게 그 물체에 대한 희미한 상을 띄우고, 그 상을 점점 뚜렷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피험자들은 스크린에 실제 상이 떠올랐다고 말하지 않고, 물체의 크기나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피험자들은 자기가 본 상이 실제 상인지 자기 상상 속의 상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Nanay에 따르면 이 실험은 상상과 지각이 현상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이 실험은 대상에 대한 상상과 관련 있지 사태에 대한 상상(명제적 상상)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명제적 상상도 현상성과의 관련성에서는 유사하다.
이런 종류의 예들은 상상이 매우 풍부한 현상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점만 보여주지, 현상성이 본질적이라는 점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현상적으로 풍부한 상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얼굴과 장소에 대한 상상은, 실제로 그 얼굴과 장소를 보는 일과 매우 유사한 뇌 부위를 활성화한다.
믿음은 그런 강한 감각적 현상성을 갖지 않는다. 만약 갖는다면 감각 증거가 우리 믿음을 쉽게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믿음은 그 믿음을 지지하는 감각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 e.g., 테이블 위에 핸드폰이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빈 테이블을 볼 때 핸드폰이 있는 것처럼 보지는 않는다.
믿음과 상상은 인과의 주요 방향에서 다르다. 믿음은 주로 경험에 의해 야기되고, 상상은 주로 경험을 야기한다.
그래도 믿음과 상상 사이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둘 다 사태를 표상한다. 그리고 둘 다 욕구와 상호작용하여 즐거움을 야기한다. 어떤 것을 강하게 욕구한다면, 그것이 발생할 것 같을 때나 그것을 생생하게 상상할 때 즐거워진다.
- Nichols and Stich on Pretense
Nichols와 Stich는 가장하기(pretense)를 할 때 상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은 상상적 심적 표상이 믿음을 저장하는 심적 구획과는 구분된 "상상 박스"에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상상에 별도의 구획을 상정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심적 상태 유형(믿음, 욕구 등)마다 메타포적인 심적 박스를 상정한다. <나는 스파이더맨이다>라는 내용을 믿음 박스에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맏는 것이고, 상상 박스에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고, 욕구 박스에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욕구하는 것이다. 상상의 내용과 믿음의 내용이 다를 수 있는 것은 두 박스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박스에 모순되는 표상들이 들어있으면 오래 가지 않는다.
상상된 시나리오에 대한 우리 표상은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여 빠르고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Nichols와 Stich는 상상 박스의 내용을 바꾸는 "업데이터를" 상정한다. 이 점은 새로운 증거가 우리 믿음을 빠르게 바꾸는 것처럼, make-believe 게임에서 어떻게 새로운 사건들이 상상된 것을 바꾸는 지 설명한다. 또한 가장하기에서 많은 새로운 것들이 도입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Script Elaborator"가 시나리오의 세부사항을 채운다고 상정한다.
Nichols는 믿음과 상상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설명한다. 차이점은 감정적 효과이다. 세계가 파괴될 거라는 상상은 두려움을 주지 않지만, 믿음은 두려움을 준다. 그 차이는 정도차가 아니라 종차이다.
Nichols는 이 차이가 상상과 욕구가 감정을 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커다란 유연성과 관련 있다고 제안한다.
믿음과 상상이 다른 유형의 심적 상태라는 견해는 표준적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Langland-Hassan은 가장하기를 설명하기 위해 믿음과 구분되는 심적 상태, 즉 명제적 상상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가장하기를 하는 사람은 그런 놀이에서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믿음과 그렇게 행위하겠다는 욕구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Langland-Hassan의 관점은 흔히 상상에 의거해 설명되는 다른 활동들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하기는 행위에 대한 믿음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공상, 픽션 읽기 등은 행위보다는 현상적으로 풍부한 표상과 관련되어 있다.
- Schellenberg on Imaginative Immersion and the Belief-imagination Continuum Thesis
Schellenberg는 믿음과 상상이 연속체를 이루고 있으며, 믿음과 상상의 몇몇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중간적인 상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Schellenberg는 상상적 몰입(imaginative immersion)의 사례를 이용한다. 상상적 몰입은 행위와 믿음 형성에 영향을 주는 생생한 상상적 표상을 포함한다. 전형적인 사례는 가장(make believe) 놀이를 하면서, 상상된 대상이 된 것처럼 행위하는 아이들이다. 이러한 표상은 욕구와 상호작용하여 행위의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믿음과 유사하며, 아이들이 진정으로 믿는다기보다는 상상된 시나리오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상상과 유사하다. 다른 예로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 라이브 RPG(실제로 캐릭터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게임) 참가자 등을 들 수 있다. Schellenberg는 상상적 몰입은 상상과 믿음의 기능이 연속체일 때만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상상적 몰입은 상상의 내용과, 믿음의 동기부여 효과를 가지는 단일한 심적 상태를 포함한다. 요점은 상상적 몰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상상에서 일부는 믿음 같은 상태로 매끄럽게(seamlessly) 변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Liao and Doggett은 상상적 몰입에 믿음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는 Schellenberg의 관점에서 설득력 없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한 어머니가 딸과 가장하기 놀이를 하는 상황을 예로 든다. 어머니는 경찰인 척하다가, 점점 경찰 역할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 어머니는 자신이 경찰 흉내를 내고 있다는 발생적 믿음에서, 자신이 경찰이라는 완전한 상상적 몰입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상상적 몰입을 할 때, 자신이 가장하기 놀이를 하고 있다는 의식적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Liao and Doggett에 따르면, 어머니가 자신이 놀이에서 경찰인 척 하는 어머니라고 상상하거나, 자신이 경찰이라고 믿는 순간은 없음을 지적한다. 만약 상상적 몰입이 "나는 경찰이다"라는 내용을 가진, 연속체 중간의 심적 상태를 포함한다면, 어머니는 믿음 상태 쪽에 가까이 있는 정도로 이것을 상상하기보다 믿어야 한다. Liao and Doggett에 따르면 그 어머니는 자신이 경찰이라는 내용을 가진 부분적인 믿음 상태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것이 어느 정도로 믿음과 유사하든 그것은 비합리적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설득력 없는 행위를 예측한다. 자신이 경찰서에서 월급을 안 받았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담당 부서에 전화하는 등.
Kind와 같이 상상을 믿음과 유사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지각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는 상상과 믿음 같은 상태들 사이의 매끄러운 전환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상상이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포함한다면, 매끄러운 전환은 경험이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의거해서 설명될 수 있다. 모든 믿음은 "가장하기 놀이 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을 수 있다. 따라서 어머니의 경험은 "가장하기 놀이 안에서 딸이 강도다", "가장하기 놀이 안에서 딸을 잡는 것은 강도를 잡는 것이다" 등의 믿음을 만든다. 상상과 믿음이 상상적 몰입에서 매끄럽게 전환되는 것처럼, 감각과 믿음이 서로 다른 심적 상태이면서도 둘 사이의 전환은 현상적으로 매끄럽다.
- Egan on Delusions
Egan은 망상을 포함하는 정신질환에 근거해 믿음과 상상 사이의 중간 상태가 있다고 주장한다.
Capgras 망상증: 아는 사람들이 겉모습만 같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망상을 하는 질환
Egan은 Capgras 망상증 환자가 단지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을뿐만 아니라, 믿음과는 달리 일반적인 감각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계속 망상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 환자들의 더 넓은 믿음 체계와 행동은, 일반적인 믿음만큼 넓지 않다. [상상과 유사한 요소]
한편으로 Egan은 이 망상에는 믿음 같은 효과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환자들이 아는 사람들이 죽었다거나,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 바뀌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등.
이처럼 상상과 유사한 요소와 믿음과 유사한 요소가 모두 있기 때문에, Egan은 망상이 믿음과 상상의 중간적인 심적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망상이 그저 상상 혹은 믿음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간적 심적 상태를 상정하지 않는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Capgras 망상증은 감정 손상(emotional impairment)가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다는 망상적 믿음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Capgras 망상증은 안면인식불능증(prosopagnosia)과 반대다. 안면인식불능증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못 알아보지만, 친밀한 감정은 느끼는 것이다.
Capgras 망상증과 안면인식불능증을 비교해보면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두 가지 경로가 관여함을 알 수 있고, 믿음과 상상 사이의 중간적 심적 상태를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The Norm-application Theory
몇몇 철학자들은 p에 대한 상상이 p에 대한 믿음과 유사한데, 믿음에는 p에 대한 표상에 참 규범(norm of truth)를 덧붙이지만 상상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만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는 직관적으로 자연스러운데, 사람들은 참인 것을 믿어야하지만, 일반적으로 참인 것을 상상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 규범을 믿음에 적용하지만, 상상적 표상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단, p를 믿음이 p가 참이라고 믿음을 포함한다는 점을 통해 구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p를 상상함도 p가 참이라고 상상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대신, 규범 적용 이론가들은 p라는 표상에 참 규범을 적용하는 추가적인 심적 상태를 갖는 것이 p를 믿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런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심적 상태는 p를 상상하기이거나, p를 가정하기 같은 상태일 것이다.
무슨 상태가 참 규범을 적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론마다 다르다.
- 표상이 참일 것을 의도함
- "참 규범을 수용함"이라는 특별한 심적 상태
어쨌든 모든 참 적용 이론가들은 한 표상에 참 규범을 적용하는 것이 그 표상을 믿음으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참 규범을 수용하는 것을 그만둔다고 해서, 우리 믿음이 모두 상상하기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론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인식적 규범에 대한 실용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여서 참 규범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믿음이 모두 상상으로 바뀐다고 보는 것은 이상하다. 또한, 상상에 참 규범을 적용해도 믿음으로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내가 누군가가 나를 실제로 사랑할 때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상상한다는 상상 규범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것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내 상상을 믿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또한, 그 사람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환상을 가진다고 해보자. 이 경우 나는 참 규범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규범 적용 이론에 따르면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믿는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내 환상은 참 규범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믿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 참 규범을 수용한다는 점은 내게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데, 심지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환상을 가져도 그렇다.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면, 죄책감을 느끼게 될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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