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형이상학의 본성에 대해 철학자들 사이에 의견불일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이무엇인지에 대해 두 가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 제1원인, 특히 신 혹은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가 무엇인지 규명하려는 시도
- 존재로서의 존재(being qua being)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학문
하지만 그들은 이 두 규정 모두 같은 분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17~18세기 합리론자들은 형이상학의 범위를 확장했다.
- 신의 존재와 본성 외에도,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구분, 영혼의 불멸성, 자유의지 등을 다룬다.
경험론자들과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합리주의자들이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찾고자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칸트도 정당한 형이상학적 지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형이상학의 목적은 세계에 대한 우리 사고에서 작동하는 가장 근본적 구조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개념 도식(conceptual scheme) 혹은 개념틀(conceptional framework)를 묘사하는 것이다.
- 우리는 세계의 구조 그 자체에 접근할 수 없으며, 그 세계에 대한 우리 생각의 구조를 기술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저자의 비판: 세계 그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세계에 대한 우리 생각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형이상학을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 간주한다. 즉, 대상들이 속하는 가장 일반적인 종들(kinds) 혹은 범주들(categories)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러한 범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지 설명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본성: 몇 가지 역사적 고찰
형이상학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상이한 방식들이 있다.
- 기술적인 방식: 형이상학자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형이상학을 규정한다.
- 규범적인 방식: 형이상학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형이상학을 규정한다.
두 규정 방식은 형이상학의 주제와 방법론에 대해 서로 아주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형이상학의 본성에 대한 의견 불일치의 원인
- 2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
- 형이상학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형이상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모호한 점들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분야를 제1철학(first philosophy) 혹은 신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 방식으로 설명한다.
- 제1원인, 특히 신이 무엇인지 규정하고자 하는 분과 학문: 제1원인에 대한 앎으로서, 다른 분야들과는 전혀 다른 주제를 탐구한다. 핵심은 신 혹은 부동의 원동자이다. 이론적 분과로서, 진리 자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수학은 양을, 물리학은 물리적 실체들을 주제로 삼는 반면, 형이상학은 비물질적 실체를 주제로 삼는다. 형이상학은 다른 분야와 달리, 주제가 되는 것이 그냥 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즉, 비물질적 실체가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자연 세계 밖에 부동의 원동자가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기획이 형이상학의 한 부분이다.
-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을 찾는 보편적 학문: 존재로서의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분야들과 전혀 다른 주제를 탐구하는 것은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구분되는 점은, 이러한 대상들을 존재자(beings)라는 관점에서, 혹은 존재하는 것으로서 고찰한다. 따라서, 단지 존재의 개념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성(unity), 동일성/정체성(identity), 차이(difference), 유사성(similarity) 등의 개념도 이해하고자 한다. 핵심적인 것은 범주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범주는 대상들이 속하는 가장 높은 혹은 일반적인 종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자들이 하는 일은 이러한 가장 높은 종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각 범주에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서로 다른 범주를 묶는 관계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형이상학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구조에 대한 지도를 제공한다.
두 규정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이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라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 제1원인에 대한 학문은 대상들의 근본적인 특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정한다. 그리고 존재가 바로 그 근본적인 것이므로, 제1원인에 대한 학문은 존재를 존재로서 탐구하는 학문이다.
- 다른 한편, 그는 모든 것을 존재로서 탐구하는 학문은 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볼 것이다.
중세의 철학자들도 이런 이중적 이해가 단일 분과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실재의 범주적 구조를 기술하는 동시에 신이라는 실체의 존재와 본성을 확립하려는 목적.
17~18세기 합리론자들은 형이상학의 범위를 확장했다. 변화하는대상들에 대한 탐구,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간극에 대한 설명,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규명 등을 자연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구분, 정신과 물질 사이의 관계, 자유의지의 본성과 범위 등.
합리론자들의 규정은 서로 연관 없는 주제들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
따라서 합리론자들은 형이상학의 경계에 대한 근거를 들고자 했다. 그들에 따르면, 형이상학의 단일한 주제는 존재이다. 형이상학은 존재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제시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각 관점에 대응되는 하위 분과들이 존재한다.
- 존재를 그냥 존재라는 관점에서 탐구할 수 있다(일반 형이상학). - 존재를 존재로서 탐구하는 분야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
- 존재를 세분화된 여러 관점에서도 탐구할 수 있다(특수 형이상학): 변화함이라는 관점에서 존재를 탐구(우주론), 합리적 존재자 안에서의 존재를 탐구(이성적 심리학), 신 안에 드러나는 것으로의 존재(자연신학, 제1원인을 탐구하는 분야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 등.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에 대해 논할 때 세계에 대한 선이론적/선철학적(prephilosophical) 이해를 저버리지 않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완전히 실재하거나 형이상학적으로 기본적인 엔터티들은 상식의 친숙한 대상들이다(e.g., 말 개체, 인간 개체 등). 그리고 신이나 부동의 원동자에 대해 설명할 때도 세계의 인과적 구조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설명과 우리 선철학적 믿음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반면 합리론자들의 형이상학은 세계에 대한 상식적 그림과는 멀어져 추상적이고 사색적인 체계가 되었다.
경험론자들의 비판: 어떤 것이 지식이려면 감각 경험에 근거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한 언명(assertion)은 순수하게 감각적 내용들에 의해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지적 내용 혹은 유의미함을 갖는다. 하지만 합리주의적 형이상학 체계는 경험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았다.
칸트의 비판 형이상학: 인간의 지식은 두 가지 것의 상호작용을 포함하고 있다.
- 인간 인지 기능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개념들
- 감각 경험의 가공되지 않은 자료들
감각 자료들은 선천적 개념들을 통해 구조화되고 조직화되어 지식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세계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
경험론자들과 다르게, 칸트는 감각 경험 자체만으로는 지식을 얻을 수 없고, 그 감각 경험을 조직화하는 선천적 인지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경험론자들과 같이, 칸트는 감각 경험을 넘어서는 물음에 대해 답할 수 없다고 보았다.
비판 형이상학은 우리가 세계를 표상할 때 작동하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들,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개념들을 사용할 때 무엇을 전제하는 지 밝히고자 한다.
현대에도 형이상학에 대해 칸트와 같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형이상학이 일종의 기술적(descriptive) 기획으로서 우리의 개념적 도식이나 개념틀이 무엇인지를 특징짓는 것이 목표이다.
이들이 칸트 이론의 세부사항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개념적 구조가 불변한다는 학자들도 있고,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관념론: 개념 틀이라는 아이디어를 선호하는 학자들 중 일부는, 관념론(idealism)이라는 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르면 개념 도식에 독립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념틀(들)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믿음이 참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개념 틀을 통한 이야기 속의 여러 요소가 서로 들어맞는 다는 것, 혹은 정합적이라는 것만 뜻할 뿐이다.
저자의 비판
- 인간이 구성하는 이야기들만 존재한다면,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 인간들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 만약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야기들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야기 밖의 인간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 만약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성될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혹은, 이야기가 구성되었다는 것 또한 또 다른 이야기이며, 그 또 다른 이야기가 구성되었다는 것도 또또 다른 이야기일 뿐이라는 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관념론은 아니더라도, 현대의 개념 도식론자(신칸트주의자)들의 설명에 대해 전통 형이상학자들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 개념 도식론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개념적 구조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경우에도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또 하나의 개념적 표상 활동일 뿐이다. 즉, 개념적 구조에 대해 알아내려고 해도 개념적 구조가 필요하므로, 개념적 구조 그 자체에 대해 알아낼 수 없다.
- 우리는 대상에 대해 말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대상을 지칭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우리 생각/말을 정신 독립적/언어 독립적 대상과 연결해주는 관계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개념은 우리가 대상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형이상학의 적합한 방법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 논쟁은 사유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더 넓은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주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범주 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에 대한 다른 개론서들은 합리론자들이 '특수 형이상학'이라고 부른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에서는 일반 형이상학에 대해서만 다룬다.
- 이유: 현대철학자들은 합리론 식의 분과 구분을 하지 않는다. "특수 형이상학"은 이제 형이상학 외의 철학 분과에서 다뤄진다. e.g., 자연 신학은 종교철학에 포함되었고, 정신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논의는 심리철학에 포함되었다, 자유의지 문제는 행위이론에서 주로 다룬다.
형이상학이 하는 일에 대한 한 가지 견해: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을 분류하고, 그것들을 가장 일반적인 종에 포섭하는 것이다. 한 대상이 어떤 종에 속하는지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e.g., "소크라테스는 어떤 종류의 대상인가?" - 인간 → 영장류 → 포유류 → 척추동물 → 동물 → .... 이런 과정을 거쳐, '엔터티' , '존재', 사물', '존재자' 등과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용어만 남는다면 그 대상이 속하는 범주에 도달한 것이다.
- 이 규정의 문제점 1: 이것은 단순 작업에 불과하다.
- 문제점 2: 왜 형이상학자들 사이에 의견불일치와 논쟁이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형이상학의 일이 위와 같다면, 두 형이상학자들 사이에서 의견불일치가 있을 때 단지 한 명이 틀린 것일 뿐이다.
- 문제점 3: 애초에 형이상학저들은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부터 의견을 달리한다. 즉, 존재의 목록, "존재론"(ontology)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한다.
범주에 대한 논쟁 1: 어떤 엔터티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
e.g., 사건(event)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어떤 철학자는 사건이라는 범주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철학자는 이에 반대한다.
e.g., 속성, 관계, 사건, 실체, 명제, 사태, 가능세계, ..., 가 존재하는가? 상식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엔터티들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vs. 이런 엔터티들 없이도 상식적 사실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
범주에 대한 논쟁 2: 한 범주에 속하는 엔터티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엔터티들로 분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
e.g., 물질적 대상이라는 엔터티가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철학자는 물질적 대상이 감각 성질의 집적체로 분석되어야 한다고, 즉 물질적 대상은 파생적인(derived) 엔터티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철학자는 물질적 대상이 존재론 내의 원초적인/기본적인(primitive or basic)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완전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제공하는 것은 (1) 대상들이 속하는 범주들에 대한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고, (2) 그러한 범주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들이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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