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글 목록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요약] Stalley, R. F. (1998), "Plato's Doctrine of Freedom"

Stalley, R. F. (1998), "Plato's Doctrine of Freedom",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도덕과 정치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에서 자유 개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가>편에서 정의가 이득이 된다는 점이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정의로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점은 자유에 대한 현대적 논의와 유사하다. <법률>편에서 자유로운 도시는 권리로서의 자유(liberty)와 권위주의의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입법가는 강제가 아닌 설득에 의존해서, 사람들이 자진해서 법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 기저에 있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외력이나, 제멋대로인 욕구가 아니라 이성의 명령을 자진해서 따를 때 자유롭다는 것이다.

 

주석가들은 <법률>편에 묘사된 도시가 자유주의 전통의 학자들이 중시하는 종류의 자유가 있을 여지를 거의 남겨 놓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게다가 플라톤은 정확히 자유와 다양성 때문에 민주주의를 비판한다(<국가>557b-558c). 그는 이상 국가에서 이성의 힘이 약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좋음을 위해서 이성의 힘이 강한 사람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590c-d). 그러나 이것들을 근거로 플라톤이 자유라는 개념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현대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류의 자유는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플라톤의 도덕과 정치에 대한 관념에서 자유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편에 대해 다루는 부분 생략. 154쪽부터 다시]

 

<국가> 편에서 묘사된 종류의 자유는 오직 철학자들만 이룰 수 있었고, 따라서 이상적인 도시에서도 이런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런데 <법률>편에 묘사된 이상적인 도시는 <국가>편과 매우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철인왕의 통치를 제안하는 대신, 법의 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학적 변화는 플라톤의 인식론에서 강조점이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는 더이상 지식과 참된 믿음을 예리하게 구분하지 않는다(623c, 653a). 따라서 정치 체제는 철인왕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주로 법률과 교육 체계, 나이 많고 현명한 시민들의 경험에 내재된 이성에 의존한다.

두 구절이 이런 제안 기저의 자유에 대한 이해에 특히 관련이 깊다. 첫째는 693d-701e, 플라톤은 만약 도시가 자유와 우정을 지혜와 함께 누리려면, 군주정과 민주정의 요소들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단순히 자유와 지배(order)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기가 쉽지만, 이런 해석은 잘못일 수 있다. 플라톤은 페르시아 전쟁 당시의 아테네인들이 '법의 노예들'이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통치자와 연장자의 노예들이었다고도 기꺼이 말했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플라톤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우리에게만큼이나 역설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플라톤이 모든 시민들이 법적인 권위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플라톤이 상정하는 시민들은] 한편으로는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는 종류의 자유(liberty)를 피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구만을 채우는 폭군의 자의적인 지배를 피해야 했다. 이상적인 상황은 그들이 자진해서 엄격한 법률이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게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719e-723d, 플라톤은 법 앞에 설득적인 전문 혹은 서곡이 붙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 의사 비유를 통해 요점을 설명한다. 노예 의사는 의학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기술만 익혀서 환자를 돌보며, 한 환자에서 다른 환자로 빠르게 옮겨가며 설명하지 않고 지시만 내린다. 반면 자유인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을 때까지 지시를 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의사는 환자를 치료 전에 설득하는데, 이는 환자들이 지금 논의하는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용어법에서, 욕구에 지배된 악인은 자유롭지 않지만 여전히 그의 상태에는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플라톤은 악인이 자유롭지 않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비난이나 처벌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마치 플라톤이 시민들을 합리적 논증을 통해 설득하고 법의 권위를 시민들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잘못이다. 전문에 의해 설득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주는 처벌에 의해 법에 따르도록 강제될 수 있고, 어떤 경우든 <법률>편에서 나타나는 전문들은 뚜렷한 합리적 설득이 아니다. 무신론에 대한 법의 전문을 제외하고, 전문들은 우리가 보기에 편견이나 미신적인 것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전체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은 순응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치 체제와 법에 내재된 것과 충돌하는 의견을 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은 플라톤의 설득에 대한 개념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티마이오스>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플라톤은 세계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질서한 것에서 질서와 조화의 상태를 만드는 이성의 결과물이다(47e-48a). 그러나 이성의 작욫ㅇ 대상은 그것 자체로는 이성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보다, 이성은 목수가 목재의 자연적 특성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 대상들의 자연적인 성향들을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설득이 우리 영혼을 질서 있게 만들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최소한 처음에는 비이성적인 요소에 작용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설득은?] 이성에서 온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어도, 이성에 호소한다는 의미에서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설득하는 사람의 이성을 이용해 설득을 한다는 것이지, 설득되는 대상의 이성을 이용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 듯.]

이것의 결론은 <법률>편의 정치철학이 자유주의 전통의 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류의 자유들에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시민들은 매우 다른 삶의 방식을 채택할 수 없고, 도시가 기반을 둔 원칙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법률>편의 시민들이 자유롭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첫째는 그들이 착취와 자의적인 권력 행사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들이 강제가 아닌 설득에 의해 통치되기 때문에 법을 자진해서 따른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자유는 <국가>편의 철학자들의 도덕적 자유와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모두 단일한 사고 패턴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들 기저에는 이성과 필연성 혹은 그에 대응되는 설득과 강제의 구분이 있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사람은 이성에 부응할 때(respond to reason) 그리고 비합리적 필연성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때 자유롭다. 후자는 두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 내재적으로 우리는 제멋대로의(unruly, 무질서한?) passions와 욕구에 의해, 외재적으로 무질서한 도시의 비합리적 실행에 의해 constrained될 수 있다. 오직 <국가>편의 이상적 도시에 살고 있는 철학자들만이 온전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편의 이상 국가에 대한, 그리고 이상적으로 정의로운 철학자에 대한 묘사를 따르고자 해야 한다. 이는 자유가 전부 혹은 전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 삶을 자진해서 이성에 지배에 더 맡길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는 모두 제약 없는 선택이나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 능력이 아니라,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역량에 기반을 둔다. 시민들은 도시를 통치하는 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법에 자진해서 복종할수록 자유롭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기저의 reasons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자유는 우리가 정치적 자유라고 인식하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자유를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식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에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것은 플라톤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그렇게 명백히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테네와 같이 자유(liberty)에 자부심을 가진 도시들에서도 사상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대부분의 그리스인에게 중요한 것은 참주나 외세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가 아닌 자유 도시에서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 사는 것이었다. 따라서 근본적인 것은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지배와 강제에 의해 부과되는 지배 사이의 구분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