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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일 일요일

[요약] 플라톤, <법률> 1권

1권 첫부분에서 세 사람은 크레타와 스파르타의 법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클레이니아스는 공동 식사, 체력 단련, 무장 등에 관한 법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라고 하는 것도 이름 뿐이고, 모든 나라가 모든 나라를 상대로 한 상시 전쟁 상태에 있다고 본다.

아테네인은 클레이니아스의 주장이 훌륭한 나라를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기도록 조직되어 다스려지는 나라로 규정한 것이라고 말하고, 클레이니아스도 이에 동의한다. 그리고 클레이니아스는 상시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은 나라 대 나라뿐만 아니라 마을 대 마을, 가정 대 가정, 개인 대 개인, 자기 자신 대 자신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저 자신을 이기는 것이 모든 승리 중 최고지만, 자기 자신에게 지는 것은 최악이라고 말한다. "이것들이 실은 우리 각자 안에 우리 자신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에게 이기는 일이 최고고 지는 일이 최악이라는 점이, 우리 안에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한 전쟁이 있다는 근거라고 하는 것인지? 반대로 자신을 상대로 한 전쟁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승패를 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626e].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 마을, 나라도 한 쪽은 자기 자신보다 강하지만 다른 쪽은 자기 자신보다 약하다고 말하며, 나라의 경우 더 나은 사람들이 한결 못한 사람들을 이기고 있으면 그 나라는 자기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테네인은 좋은 쪽과 나쁜 쪽 두 편으로 나뉜 집단에서 판관이 있다면, 다음 셋 중 어떤 판관이 더 나을지를 묻는다.

1. 나쁜 쪽은 처치하고, 더 선량한 쪽이 자기들끼리 다스리도록 지시하는 판관

2. 나쁜 쪽이 더 선량한 쪽에게 자진해서 다스림을 받도록 지시하는 판관

3. 화해시킨 다음 법률을 제공해 이후 계속 친구들이도록 해주는 판관

클레이니아스는 3번 판관이 가장 낫다는 점을 인정한다. 아테네인에 따르면 3번 판관의 법률은 전쟁에 주목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화합하도록 하는 이는 대외적인 전쟁이 아니라 내란에 주목하고서 하는 것이다. 내란은 모두가 제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아테네인은 이번에는

1. 한쪽은 파멸하나 한쪽은 승리하여 내란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

2. 서로의 화해로 인해 우애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호하겠는가지 묻는다. 모두가 2번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니까 입법자도 마찬가지로 2번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입법자는 최선의 것을 위해서 일체의 법규들을 정할 것이다. 최선의 것은 전쟁도 내란도 아니고, 서로 간의 평화와 우의(philosophrosyne-)이다. 게다가 한 나라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은 최선의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입법가는, 전쟁을 위해 평화와 관련된 것을 입법하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전쟁과 관련된 것을 입법할 것이다.

클레이니아스는 아테네인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어쨌든 크레타와 스파르타의 법률들은 전쟁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아테네인은 입법자는 가장 중요한 훌륭함에 제일 주목하고 법률을 정할 것인데, 용기는 고귀하기는 하지만 가치들 간의 서열에서는 네 번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크레타와 스파르타의 입법자들은 훌륭함의 한 부분에 불과한 용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훌륭함에 주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테네인은 좋은 것들의 서열을 이야기한다. 좋은 것에도 두 부류가 있어서 한 부류는 세속적인 것들이고 다른 부류는 신적인 것들이다. 세속적인 것은 신적인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신적인 것을 갖게 되면 세속적인 것도 갖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둘 다 잃게 된다.

세속적인 좋은 것의 서열은 건강>준수함(kallos)>신체적 운동에서의 힘참>부 순이다. 한편 신적인 좋은 것의 서열은 지혜(사려 분별)> 지성을 동반한 절도 있는 혼의 상태(hexis는 몸가짐, 마음가짐, 습성, (굳어진) 상태 등을 뜻한다)>올바름(정의)>용기 순이다. 그리고 신적인 좋은 것들은 모두 세속적인 좋은 것들 앞에 놓인다. 입법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각종 사안에 대해 법률을 제정한다.

이제 아테네인은 용기와 관련된 관행들을 살펴보고, 그 뒤로 다른 훌륭함()에 대해 검토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전체적인 훌륭함을 다루고 나면, 지금까지 다루었던 것들이 그것에 주목함 것임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테네인은 용기가 두 가지 측면, 즉 고통을 상대로 하는 싸움의 측면과 쾌락에 대한 싸움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테네인은 크레나 스파르타의 법률에, 사람들을 고통에 직면하게 하고 그를 극복하면서 용기를 기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쾌락으로 이끌고 가서 그것을 이겨내면서 용기를 기르게 하는 것이 있는지 묻는다. 메길로스와 클레이니아스 모두 그런 것이 많지 않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테네인은 용기의 두번째 측면도 첫번째 측면과 마찬가지로 훈련시켰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길로스는 어느 정도 수긍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스파르타의 입법자가 쾌락들을 피하도록 지시한 것은 옳은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쾌락과 히브리스, 어리석음과 마주치게 하는 계기를 스파르타 법률이 몰아내어,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자를 볼 수 없게 한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테네인은 연회를 몰아낸 것이 옳은지는 더 따져보아야 한다고 답한다. 아테네인에 다르면 어떤 집단이 통솔자의 지배를 받지 않거나 형편없는 통솔자의 지배를 받는 것만 보고 그 집단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대로 된 통솔자가 집단을 보고 그에 대해 칭찬이나 비난을 해야 한다. 연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연회가 모든 면에서 제대로 진행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연회에 대한 기존 비판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연회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제대로 진행되는 연회가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논의해보아야 한다.

이에 클레이니아스는 음주에 대한 관례가 옳게 진행될 경우, 개인이나 나라에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아테네인은 술 마시는 일이 옳게 진행만 된다면 교육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술 취함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는 시가의 옳음에 대해 다뤄야 하고, 시가에 대한 논의는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논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교육이란 무엇이며 무슨 힘을 지니고 있는지 의미 규정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아테네인은 어떤 일이든 거기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릴 때부터 계속 수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올바르게 다스릴 줄도, 올바르게 다스림 받을 줄도 아는 완벽한 시민으로 되는 것을 아이가 욕구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헤아림이 이끄는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나라에서는 그것이 법률이다. 그런 원칙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한테서 가르침을 받아서 이를 법으로 정하고서 대내적인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 술에 취하는 것이 교육과 관련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술을 마시면 쾌락, 고통, 분노, 욕정이 더 강렬해진다. 다른 한편 감각, 기억, 의견, 분별은 약해진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몰염치하고 쾌락에 약해지게 된다. 따라서 입법자는 사람들이 술에 취함으로써 이런 상태에 놓이게 해보고, 이에 저항하도록 단련시켜야 한다. 다행히 술은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가 사라지므로, 술 취하는 일은 큰 해로움 없이 이런 것들을 시험하고 단련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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