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troduction
흑백방 메리 사고실험은 현상적 지식과 관련해, 루이스의 두 전지적 신 사고실험은 지표적 지식과 관련해 유명한 사고실험이다. 두 사고실험 사이에 밀접한 유사점들이 있다.
- 두 사례 모두에서, 주체는 어떤 의미에서 "전지적이다"고 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메리는 방에서 나오면서 무엇인가를 더 배웠으며, 두 신은 무엇인가에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 메리가 새로 배운 & 신들이 결여한 종류의 지식에는 본질적으로 1인칭적인 요소가 있어 보인다. 그것들은 모두 1인칭 관점에서만 접근 가능한 지식으로 보인다.
▶ 루이스(David Lewis): 두 사고실험의 결론을 각각 다르게 설명해야 한다.
- 메리는 방에서 나오면서 지식이 아니라 어떤 능력들을 배웠다. (“능력 가설”)
- 두 신은 비명제적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 (“주관적 정보 가설“)
▷ 저자: 흑백방 메리 사례뿐만 아니라 두 신 사례에서도 능력 가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 내성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얻는 지식은 반드시 지표적 지식이다.
- 두 신의 독특한 인식적 상황은, 그들이 내성적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 그렇다면 신들이 특별한 종류의 정보를 결여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그렇게 말하는 것은 잉여적이다).
2. Learning from the Case of Mary
▶ 현상적 정보 가설(hypothesis of phenomenal information): 메리가 방에서 나오면서 배운 것은 물리적 정보로 환원 불가능한 종류의 정보인 현상적 정보이다.
- 방에 있을 때 메리는 물리적 가능성을 하나로 좁혔지만, 현상적 가능성들은 열려 있었다.
- 방에서 나오면서 메리는 현상적 가능성도 좁혔다.
▷ 현상적 정보 가설의 문제
1. 물리주의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2. 그런 독특한 종류의 정보를 가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현상적 정보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인데, 현상적 정보 가설 자체는 현상적 지식을 왜 그런 방식으로밖에 얻을 수 없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 능력 가설의 루이스 버전: 메리가 방에서 나오며 얻는 것은 같은 유형의 경험을 재인할(recognize)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시각화할 수 있는 능력들이다.
이런 능력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다.
메리가 배운 것은 어떤 종류의 정보도 아니다.
▷ 저자: 능력 가설은 매우 설득력 있으며, 특히 메리가 얻는 지식에 본질적으로 1인칭적 혹은 주관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적합하게 설명할 잠재력이 있다.
- 메리가 얻는 것은 의사소통 불가능하고, 메리의 관점에서만 접근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메리가 얻은 것이 정보가 아니라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 두 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3. The Hypothesis of Subjective Information
두 신(Castor, Pollux)은 가능성들을 하나의 세계로 좁힌다고 상정되었다. 하지만 각 신은 자신이 어떤 신인지 모른다. 결여된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 주관적 정보 가설: 객관적 정보로 환원 불가능한 주관적 정보가 존재한다. (현상적 → 주관적, 물리적 → 객관적)
- 두 종류의 정보는 독립적이다. 우리가 객관적 정보를 얻을 때는 객관적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고, 주관정 정보를 얻을 때는 주관적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주관적 정보는 주관적 사실에 대한 것이다.
- 신들은 객관적 정보들을 하나의 세계로 좁혔다. 하지만 주관적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Castor의 관점에서, 한 가능성은 그가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이라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은 그가 가장 추운 산에 있는 신이라는 것이다. Castor의 무지는 후자를 배제하지 못한 데 있다.
▷ 저자: 이 가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세계들을 구분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사실을 상정하면 그것들은 세계에 대한 완전한 기술에 포함되어야 하는 객관적 사실이 되어버린다,
▶ 주관적 정보 가설의 루이스 버전: 세계에 대한 완전한 기술은 가능한 세계들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자기귀속 가능한 속성들을 좁히는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피하고자 한다. 세계에 대한 사실이 완전히 좁혀지더라도, 여전히 가능한 속성들이 남아있다.
▷ 저자: 루이스 버전의 정보적 가설 역시 완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두 신의 행위자성에 대한 스톨네이커(Robert Stalnaker)의 아이디어를 참고해볼만 하다.
-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행위를, 그들 중 누가 그 행위를 하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로 행위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자각이 없는 두 신은 완전한 행위자성(agency)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Castor는 만나를 던지는 행위자이다. 따라서 그는 만나를 던지려는 결정을 하고, 그러한 의도를 형성한다. 그런데 루이스의 사고실험에서 Castor는 의도를 형성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도 그 점을 모른다. 그렇다면 Castor가 만나를 던지는 일은 그가 행위자성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스톨네이커는 이러한 점이 루이스의 사고실험을 비정합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 저자는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지만, 스톨네이커의 주장에 중요한 통찰이 있다고 본다. 저자는 신들이 겪는 종류의 무지가 그들의 행위자성의 결함에 기인한다는 것은 받아들인다.
▶ 행위자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주관적 정보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정보가 부족하면 우리가 행위를 위해 추론할 때 많은 문제가 생긴다. 두 신 사례도 그런 경우일 수 있다.
▷ 저자: 주관적 정보 가설의 동기는 두 신이 결여한 종류의 지식이 명제적 지식과 종적으로 다르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 논의[무슨 논의? 행위자성에 대한 논의?]는 두 종류의 지식이 우리 인지 경제에서 하는 역할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만약 이 점이 옳다면, 그것들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두 신이 결여한 것은 일반적인 명제적 지식과 급진적으로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 [4절 후반부에서 행위자성과 관련지어 다시 설명.]
4. The Ability Hypothesis
▷ 능력 가설: 두 신들이 결여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능력들이다. 이 능력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체나 마음 상태에 대해 알기 위해 사용하는 내성적 능력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무엇을 생각하고, 믿고, 바라고, 느끼는지 등), 신체 상태(배부른지, 다리를 꼬고 있는지 등)를 내 행동을 관찰하지 않고도 비매개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 상태나 신체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내 행동이나 말을 통해 추론해야 한다.
내성적 능력이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발휘되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현재 논의에 충분하다.
내성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습득되는 지식/믿음을 ’내성적 지식‘/’내성적 믿음‘이라고 부르자.
어떤 지식이 내성적 지식인지의 여부는 그것이 어떻게 얻어졌는지에 의해서만 정해지며, 그 지식이 어떤 종류인지와는 관련이 없다.
- 능력 가설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긍정적인 부분: 두 신은 내성적 능력들을 결여하고 있다. - 4절과 5절에서 옹호
- 부정적인 부분: 두 신이 결여한 것은 내성적 능력들뿐이다. - 6절에서 옹호
▷ 저자: 능력 가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연결 논제도 받아들일 만하다.
- 연결 논제: 일반적인 주체에게, 내성적 지식은 지표적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내성적 지식은 지표적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내성적 능력들을 발휘함으로써 얻는 지식은 '나'라는 표현으로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는 지식이다.
- 왜 연결 논제가 참인가? 뒤에서 답하겠지만, 일단 직관적으로 설득력있다고 간주하고 넘어가자. [뒤에서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 논문이 아니라 저자의 다른 논문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의 교훈”에 직접적인 설명이 나온다.]
▷ 저자: 능력 가설의 긍정적인 부분은 다음 세 가지 진술의 비일관성에서 나온다. [연결 논제도 전제해야 함]
- 내성 논제: 그 신들은 내성적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 전지 논제: 그 신들은 명제적으로 전지하다.
- 무지 논제: 그 신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지표적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
▷ 세 논제의 비일관성을 보여주는 논증
- 내성 논제와 전지 논제가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Castor는 행위자인 심적 주체이기 때문에 많은 마음 상태들을 예화한다.
내성 논제에 의해, Castor는 자기 마음 상태에 대한 지식을 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연결 논제에 의해, Castor가 얻은 지식은 지표적 지식이다.
∴ 무지 논제는 거짓이다. 즉, 세 논제는 비일관적이다.
- 원래의 사고실험에서는 전지 논제와 무지 논제가 참이라고 상정했으므로, 내성 논제가 거짓이다.
(주의점: 지표적으로 무지하다고 해서 모두 내성적 능력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지표적 무지는 내성적 능력을 결여하거나 또는 명제적으로 전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3절 맨 마지막에서 이어짐]
▷ 저자: 주관적 정보 가설이 아니라 능력 가설을 받아들일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주관적 정보 가설은 두 신의 인식적 상황의 독특함을 설명하지 못한다. [두 신이 완전한 행위자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말하는 듯]
- 두 신이 내성적 능력을 결여했다는 능력 가설은 그 점을 잘 설명한다. 우리 행위와 사고를 오직 우리가 우리 마음과 신체의 상태들을 특별한 방식들로 알 때만 우리 행위와 사고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몇몇 철학자들은 그런 내성적 능력들을 갖는 것이 합리적 행위자, 심지어는 심적 주체가 되는 데에 필수적이라고 본다(특히 시드니의 제화공). 따라서 두 신이 내성적 능력을 결여했다고 하면, 왜 두 신의 인식적 상황이 독특해 보이는지 잘 설명된다.
5. The Gods Duplicated
▶ 복제 시나리오: 4절의 저자의 입장은 겉보기에 한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Castor와 Pollux가 서로의 완전한 복제인데다가, 둘의 마음과 신체가 동기화되어 있어서 항상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들 자신도 이를 알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Castor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성을 통해 알지만, 그것으로는 Castor와 Pollux를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경우 세 논제 모두가 참인 것 같다.
▷ 복제 시나리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신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대물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 각 신이 모든 대언적 명제들(질적인 기술들)을 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경우에도 각 신은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Castor가 Castor를 가리키면서 “이 신이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인가?”를 여전히 궁금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제 시나리오에서 신들은 가정상 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특정 신을 대언적 지식만으로 유일하게 골라낼 수 없다.
- 하지만 대물적 지식이 그 자체로 지표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두 신들이 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대상-의존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전지적이라고 해보자(= 대물적 지식도 모두 안다고 해보자). 따라서 Castor가 Castor를 가리키면서 "이 신은 가장 높은 산에 산다"고 대물적으로 말한다고 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지표성의 문제)는 남는다. "나는 이 신이 가장 높은 산에 있다는 점을 안다. 그러나 내가 이 신인가?".
▷ 저자: 복제 시나리오는 두 신이 질적으로 구분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성적 능력들로도 각 신이 누가 자신인지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추론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내성을 통해 얻은 믿음은 질적인 믿음뿐이라는 것이다. 이 전제는 잘못됐다. 내성을 통해 얻는 지식은 특정 대상에 대한 지식(대물적 지식)이 될 수 있다.
e.g., 당신이 당신의 손을 본다고 하자. 당신은 "나는 이 손을 보고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나는 이 토큰 경험을 하고 있다", 또는 그 토큰 경험에 이름을 부여해서 "나는 경험 E"를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믿음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 특정 대상[토큰 경험]에 대한 대물적 믿음이다.
- 내성적 믿음이다. 그것들은 당신이 겪고 있는 상태에 대해 내성을 통해 얻은 것이다.
- 위 사례의 믿음은 내성적 대물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 게다가, 연결 논제(내성적 지식이면 지표적 지식이다)가 추가되면 내성적 대물적 믿음들이 항상 지표적이라는 점을 함축한다.
[지표적 믿음들은 대물적이다. 반면 대물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표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내성적 믿음의 경우 대물적이면서 지표적이다.]
앞에서처럼, 내성 논제와 전지 논자가 복제물 시나리오에서 참이라고 해보자.
(여기서는 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대상-의존적인 것에 대해서도 전지적이라고 하자)
Castor가 내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나는 나와 똑같은 유형의 경험을 하는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이 토큰 경험을 하고 있는 신이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할 위치에 있다.
게다가, 그는 전지적이기 때문에, 그는 어떤 토큰 경험이 어떤 신에게 있는지를 알 위치에 있을 것이다.
- 정리하면, Castor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했을 것이다.
P1. 나는 토큰 경험 E를 하고 있다. - (내성 논제에 의해)
P2. 토큰 경험 E를 하는 신은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이다. - (전지 논제에 의해)
C. 따라서, 나는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이다. [따라서, 무지 논제는 거짓이다.]
(대물적 지식 그 자체에는 지표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P2를 아는 것이 자동으로 그가 결론 C를 얻게 하지는 않는다. P1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절에서 한 이야기)
6. Are the Abilities All That They Lack?
지금까지 신들이 내성적 능력들을 결여하고 있다고 논증했지만, 그렇다고 신들의 무지가 내성적 능력들의 결여에 있다고까지 보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내성적 능력들이 신들이 결여한 모든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일이 남아있다.
여기서는 입증의 부담을 주관적 정보 가설의 옹호자들에게 돌리자. 신들이 내성적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면, 주관적 정보 또한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은 무엇인가?
▶ 가능한 답변 1: 전지적 신들은 ’나‘라는 표현의 사용에 대한 의미론적 규칙(<'나'는 발화자를 가리킨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명제적 지식이다. 따라서 Castor는 "내가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인가, 아니면 가장 추운 산에 있는 신인가?"와 같이 묻고, 내성을 이용하지 않은 채로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Castor의 난감한 상황은 내성적 능력과 상관없이 해결될 것이다.
▷ 저자: 이 답변은 의미론적 규칙을 안다고 해서 '나'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나'의 의미론적 규칙을 적용하고 그 자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내성적 능력들을 결여한다면, 그런 지식을 가질 수 없다.
▶ 가능한 답변 2: Castor가 나중에 내성적 능력들을 가지게 됐다고 해보자. 그래서 그는 이전과는 달리 "나는 만나를 던지는 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해보자. 그럼 이 말을 할 때 Castor는 새로 습득한 정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 가설의 옹호자들은 그가 내성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답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이상하다.
▷ 저자: 능력 가설은 Castor가 그런 표현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그가 아무런 정보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을 함축하지 않는다. 단지 그 정보가 새롭고 특별한 종류의 정보(주관적 정보)라는 점을 부정할 뿐이다. Castor는 평범한 객관적인 정보를 표현할 뿐이다. 전지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 정보는 그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점은 그가 그것을 다른 방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 즉, 내성적 능력들을 발휘함으로써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능력 가설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논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연결 논제, 즉 내성적 지식이 지표적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능력 가설이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을 준다. 내성적 능력들을 발휘함으로써 획득되는 지식은 지표적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것을 지표적 지식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 사이에 구성적 관계(constitutive relation)가 있다.
[설명이 충분히 된 것 같지 않다. 더 자세한 설명은 같은 저자의 논문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의 교훈"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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