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심지어 추상적인 분야에서도, 시각화는 과학적 이해를 성취하기 위한 유용한 안내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이 장에서는 고전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전환되던 시기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시각화 가능성과 가해성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 원자 구조에 대한 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시각화 가능성이라는 쟁점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슈뢰딩거는 자연에 대한 이해를 얻는 유일한 길은 시공간에서 시각화 가능한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공간 틀을 통해 사고하며, 그 방식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뢰딩거는 시공간적 시각화 가능성을 과학적 이해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논증을 파동역학을 옹호하기 위해 이용했다. 시각화 가능성은 수사적인 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자 수준 현상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편, 하이젠베르크는 가해성 개념을 재해석하여, 시각화는 이해를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이론을 사용해 그 귀결을 예측할 수 있을 때 그 이론이 우리에게 가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가지성의 기준 CIT1에 영감을 준 아이디어이다)
7.1. Visualizability and Intelligibility in Classical Physics
양자역학과 대조적으로 고전역한은 인과적이고, 결정론적이고, 연속적이고, 국소적이고, 시각화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고전 역학에서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삼차원 유클리드 공간에서 일차원 객관적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기술된다. 이 아이디어는 뉴턴 역학의 철학적 기초를 수립하려는 칸트의 프로젝트와 궤를 같이한다. 칸트주의 인식론에 따르면 우리 감각 인상(sensory impressions)은 시공간에 대한 직관의 형식(forms of intuition)에 의해 구조화된다. 따라서 현상에 대한 우리 지식은 필연적으로 시공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고전적 이론들이 직접적으로 시각화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열역학은 시공간에서 물리적 시스템을 기술하지만, 이 시스템의 열역학적 속성들(압력, 온도, 엔트로피 등)의 변화와 그것들 간의 관계를 시각화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 이론들이 시각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원리적으로 보여주는 논증은 없다. 그럼에도 실천적으로 몇몇 경우에서 불가능하다. 19세기 물리학은 고전 역학의 고전 역학의 범례적인 시각화 가능한 이론에서 벗어나 더 추상적이게 됐다. 이는 이론이 현상을 시공간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 시각화 가능성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님을 보여준다.
19세기 물리학계에서 있었던 논쟁은 가해성과 시각화 가능성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양자역학의 등장 이전에도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각화 가능한 기계론적 설명은 19세기 말에 심각한 문제점들을 맞닥뜨렸고, phenomenalism, energetics, electromagnetic worldview 등 경쟁 접근이 나타났다. 볼츠만은 기계론적 모형을 옹호하면서, 기계론적 그림이 우리에게 가장 가해적이라는 점이 우연적 사실일지라도, 그리고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지적 역량을 쉽게 바꿀 수 없으므로 우리는 기계론적 그림을 계속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7.2. Quantum Theory and the Waning of Anschaulichkeit
19세기에 시각화 가능성과 관련해 논쟁이 있었지만, 원리적으로 시각화 가능해보이지 않은 이론인 양자역학은 20세기 들어 등장했다. 단, 양자역학이 시각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으며, 점진적인 과정을 거쳤다.
보어의 유명한 원자 모형(1913)은 준기계론적(semi-mechanical)이었다. 우선,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도는 것처럼 원자 구조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시각화 가능한 고전적-기계론적 모형이었다. 반면 전자들이 이산적인 정상 상태에 있고, 불연속적이고 즉각적인 '도약'을 통해 다른 상태로 이동한다는 점은 시각화 불가능했다.
보어는 1922년 무렵 양자역학이 시각화 가능하지 않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시각화 가능성의 필요조건은 시공간적 기술인데, 시공간적 기술을 하려면 고전적 개념인 "위치", "운동량" 등이 양자역학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이런 개념들과 양자역학의 관련성에 대한 보어의 관점은 대응 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 즉 양자수가 클 때 양자역학의 예측과 고전적 이론의 예측이 같아진다는 원리로 표현되었다. 대응 원리에 대한 보어의 해석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 1913-1916: 수치적 대응. 수치적으로만 대응되며, 개념적으로는 비연속적이다. 보어의 모형에서 양자 도약에 대한 부분이 시각화 불가능하다는 점에 기반을 두었다.
- 1916-1923: 개념적 대응. 대응 원리의 적용이 성공적이자, 보어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 사이의 불일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양자 이론은 고전 이론의 합리적 일반화이다. 이 관점은 복사 메커니즘에 대한 준-고전적 설명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준-고전적 접근들은 헬륨 스펙트럼, 제만 효과 등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 1923-1925: 준-고전적 접근들이 실패하자 보어는 개념적 대응을 기각했고, 수치적이고 형식적 대응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보어는 정상 상태 간 전이에 대한 모든 시각화 가능한, 기계론적 이해를 포기했다.
특히 빛과 관련된 입자-파동 이중성은 시각화 가능성에 대한 보어의 우려의 주된 요인이었다. 보어는 광양자를 실재에 대한 기술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광양자를 상정하는 일은 필수적이어 보였다. 보어는 광양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관찰된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BKS(Bohr-Kramers-Slater) 이론을 내세웠는데, 이는 정상 상태의 원자를 가상의 조화진동자(virtual harmonic oscillators)로 간주하고, 원자들은 이 조화진동자에 의해 생성되는 가상 방사장(virtual radiation field)으로 보는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입자-파동 중 파동만 상정함으로써 시공간적 기술과 시각화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였다. BKS 이론은 양자 영역에서 현상에 대한 이해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보여준다. 가해성을 성취하는 두 가지 방식인 인과-기제적 기술과 시각화는 양자 영역에서 조화가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1925년 BKS 이론은 실험적으로 반박되었고, 보어는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였다. 다만, 수학적 기술에 이중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것에 물리적 해석을 부여하는 일은 꺼렸다. 보어는 여전히 양자 물리학을 가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전적 개념들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겼다.
7.3. The New Quantum Mechanics: A Struggle for Intelligibility
1920년대 초에 파울리와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준-기계론적 원자 모형을 발전시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파울리는 운동량과 궤도 등 기계론적 개념들을 완전히 포기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양자수가 고전적 속성들에 더 이상 대응되지 않으며, 필요한 만큼 양자수를 상정해야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파울리는 제만 효과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양자수를 전자에 할당했다. 기계론적 모형에 대한 파울리의 공격은 시각화 가능성의 거부와 관련이 있다. 파울리는 새로운 개념 체계가 자리잡으면 그것도 가해적이 될 것이라고 보고, 시각화 가능성이 가해성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거부했다.
파울리의 아이디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은 원자 구조에 대한 어떤 시각화도 배제하고, 관찰 가능한 양들의 관계, 예를 들어 스펙트럼 선의 진동수와 같은 것을 기술하는 데에 제한됐다. 행렬역학은 코펜하겐 서클 내에서는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 밖에서는 거의 무시되었다. 한 가지 이유는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생소한 행렬로 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행렬역학은 추상적이고 시각화가 불가능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경우들만 다룰 수 있었고, 일반적인 해법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시각화 가능성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개념적 혁신이 있었지만, 그 대가로 가해성을 잃었고 이는 양자 이론의 문제 풀이 능력을 감소시켰다.
한편, 경쟁 이론으로 등장한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원자적 과정을 파동 현상으로 봄으로써 시각화가 가능했다. 파동역학에서 양자 도약 개념은 필요하지 않았고, 시공간 기술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상태 전이 시 일어나는 복사(radiation)는 일종의 진동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시공간적으로 연속적인 기술을 할 수 있었다. 슈뢰딩거에게 이 점이 파동역학을 구성한 주요 동기였다. 슈뢰딩거는 시각화 가능성이 이론의 가해성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았다.
원자 구조를 파동으로 시각화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n개의 입자 시스템은 3n차원 공간에서의 파동 함수로 표상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각화가 보기보다 쉽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자유전자를 wave packet으로 기술하는 일은 분산(dispersion) 현상과 관련해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들과, 자신이 반동적으로 고전 역학으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순수하게 수학적인 방식으로 유도하고 논문의 마지막 절에만 가능한 해석을 논의했다.
그는 자신의 해석이 전자의 "위치", "경로" 같은 개념들을 없애는 것을 허용하면서도 원자 구조에 대한, 시공간적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렬역학에 비해 파동역학이 물리적 안내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며, 직관적 이해를 가져다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하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확장은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생산성이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시각화 가능한 이론들이 발견법적으로 더 강력하기 때문에 선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파동역학은 행렬역학에 비해 물리학자들이 가진 솜씨와 잘 맞았고, 행렬역학으로 풀 수 없었던 구체적인 문제들에도 적용 가능했다.
반면 파울리는 가해성이 시각화 가능성과 동일시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개념 체계가 양자 이론이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며, 가해성에 대한 전통적 생각(시각화 가능성)을 바꿔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새로운 개념 체계가 정착되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가해적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파울리의 관점은 가해성의 기준이 맥락에 따라 변하며, 일부분 새로운 개념적 도구에 친숙해지는 문제라는 아이디어와 부합한다(4장 4.1절). 하이젠베르크는 가해성에 대한 파울리의 관점을 이어받아, 우리가 이론의 실험적 귀결을 정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해당 물리 이론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운동량과 위치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가 원자 영역에서 시공간적 기술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간단한 실험의 귀결을 정성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런 점에서 가해적이라고 보았다.
7.4. Electron Spin: The Power of Visualization
행렬역학의 등장 이후에도 제만 효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파울리는 그것이 전자의 고전적으로는 기술 불가능한 속성(two-valuedness/Zweideutigkeit)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 속성에 대한 설명은 기계론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Goudsmit과 Uhlenbeck은 기계론적인 전자 스핀 가설을 제안했다. 전자가 회전한다는 아이디어는 초기 양자역학과 잘 어울렸는데, 왜냐하면 시각화 가능한 오비탈 모형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스핀 가설에 따르면 전자는 회전하는 입자로, 각운동량과 자기 쌍극자 모멘트를 갖는다.
전자 스핀 가설은 파울리의 반기계론 프로그램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수소의 doublet splitting에 대해 경험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핀 가설에 따르면 전자 표면의 회전 속도가 광속을 훨씬 넘게 된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Goudsmit과 Uhlenbeck은 시각화를 위한 시도로서 스핀 가설을 발표했다. 한편 보어는 BKS 이론의 실패 이후 행렬역학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시각화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행렬역학이 가해성의 관점에서 만족스럽지 않다고 보았고, 수소의 doublet splitting 현상을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스핀 가설을 받아들였다. 시각화 가능성에 대해 무심했던 하이젠베르크도 보어의 영향을 받아 스핀 가설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반면 파울리는 한동안 스핀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스핀 개념을 양자역학의 수식 체계에 맞추고, 시각화 가능한 해석을 배제한 이후에야 스핀 가설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스핀을 회전으로 생각하는 일은 스핀에 대한 물리적 이해에 유용하다. 예를 들어 소위 ‘페닝 트랩’(penning trap)이라고 불리는, 자기장을 이용해 전하를 띤 입자를 포획하는 장치에 대한 설명에서 유용하다. “자기장의 효과는 전자나 뮤온을 퍼텐셜 우물에 가둔다. 자기장 때문에 그 입자는 수평면에서 원형 cyclotron 궤도를 돌고, 입자의 스핀은 자기장의 방향에 대해 세차 운동을 일으킨다.” 자기장 스핀의 사례는 시각화가 새로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 가치 있는 도움이 되고, 따라서 새로운 발견을 만드는 데 그리고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7.5. Visualization in Postwar Quantum Physics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입자와 전자기장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현상에 적용하고자 했고, 양자전기역학이 등장했다. 이것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것이며, 수학적으로 표준적인 양자역학보다 더 추상적이었다. Schwinger와 Tomonaga는 장-이론적 체계를 통해 양자전기역학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형식화했다. 1년 뒤 파인만은 다이어그램을 이용한 접근을 제안했는데, 이는 상호작용 과정에 대한 시각화를 제공했다. 파인만은 그의 접근이 수학적 증명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그것이 Schwinger의 것과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시각적인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양자장 이론을 물리학자들에게 더 가해적으로 만드는 개념적 도구로 기능했다.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물리적 과정에 대한 실재론적 표상이라기보다는, 문제 해결과 계산에 이용되는 도구였다. 특히 세 가지 측면이 주목할 만하다(Kaiser 2005).
- 다이어그램을 생산성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솜씨가 필요하다. 이 솜씨는 교과서나 논문에 의존해서 획득하기는 매우 힘들고, 전문가의 지도 하의 연습이 필요했다.
-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이용됐고, 처음에 의도된 것 외에도 다양한 영역과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이 다이어그램이 실재론적 표상으로 의도되지 않았다고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 덕분에 물리학자들은 발견볍적 힘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 시각화는 이 방법의 성공의 핵심 요소였다.
파인만에 따르면 시각화는 그의 사고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파인만은 자신이 현상에 대해 그림을 통해 이해하고, 최종적으로 수학을 통해 설명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이해[가해성]는 시각화에 의해 주어지고, 설명은 수학적 도출에 의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우선 가해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시각화를 통해 주어지고, 그 다음 설명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각화는 설명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가해성에 기여할 수 있다.
Schwinger와 파인만의 차이는 이해를 성취하기 위해 채택하는 개념적 도구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각화는 가해성을 성취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7.6. Visualization As a Tool for Scientific Understanding
슈뢰딩거는 시각화가 과학적 이해의 필요조건이라는 관점을 강하게 지지했는데, 이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칸트주의 철학 전통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학적 발전에 따라 어떤 이론은 시공간적 기술 및 시각화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음이 발견되었다. 양자역학의 시각화 가능한 해석에 대한 슈뢰딩거의 희망은 달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양자역학이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각화는 과학적 이해를 성취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다. 파동역학의 압도적인 인기는 그것이 시각화 가능했기 때문에 행렬 역학보다 다루기 쉬웠다는 점에 기인한다. 즉, 파동역학의 인식적 성공은 가해성 덕분이었고, 가해성은 시각화 가능성 덕분이었다.
게다가 양자역학에 대한 이 사례 연구는 가해성이 통시적으로뿐만 아니라 공시적으로도 다양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솜씨와 도구들에 따라, 한 집단의 과학자들에게 불가해한 것으로 간주되는 이론이 다른 과학자들에게는 가해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추상적인 것보다 시각화 가능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뿌리는 인간 본성에 있다. 우리가 가해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계통발생적 그리고 개체발생적 발달의 결과이다. 우리 감각 경험은 가해성에 중요한 기저를 제공하는데, 인간에게는 시각이 세계에 대해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를 위한 도구로 시각화를 선호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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