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의 이점: 바른 교육의 보전 (652a)
아테네인은 연회를 바르게 이용하면 그 참석자들의 성향이 어떤지를 살필 수 있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바른 교육을 보전하는 이점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른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상기해보자고 한다. 그에 따르면 유아기에 처음 있는 지각은 쾌감(즐거움)과 고통(괴로움)이고, 그 안에서 처음으로 혼에 있어서 훌륭한 상태(덕)와 나쁜 상태(악덕)가 생긴다. 따라서 바른 교육은 어려서부터 마땅히 즐거워해야 할 것들에 대해 즐거워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들에 대해 괴로워하게끔 인도하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시기에도(그 이유 혹은 논거를 알 수 없는 시기에도) 즐거워할 것을 즐거워하고 괴로워할 것을 괴로워하도록 훈육된 상태가 교육의 성과이다. (그리고 추후 아이들이 그 이유 혹은 논거를 알게 되었을 때, 괴로움과 즐거움이 적절한 습관들에 의해 옳게 버릇들게 되었다는 것에 이성과 찬동하게 될 경우, 이 찬동이 전체적인 훌륭함이다.)
합창가무단이 생긴 이유 (653d)
옳게 길러진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육의 성과인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이 상태는 느슨해지고 여러 면에서 쇠약해진다. 그런데 신들이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신들을 위한 제전(축제)를 개최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무사 여신들, 아폴론, 디오니소스를 축제의 동반자로 주어 신들의 도움으로 축제에서 훈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어리면 조용한 상태로 있기가 불가능하고, 언제나 움직이고 소리지르려 든다. 그런데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질서에 대한 감각과 무질서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들이 리듬과 선법이다. (*박종현 역본 각주 16: 노래는 노랫말, 선법,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노랫말에 일정한 선법과 리듬이 부여됨으로써 하나의 시가가 작곡된다. ) 그리고 가무의 동반자들인 앞의 세 신들이 우리에게 리듬과 선법에 대한 즐거움이 동반된 감각을 주었다. 바로 이 감각들에 의해 이 신들은 노래와 춤으로 우리가 어우러지게 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최초의 교육이 무사 여신들과 아폴론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합창가무와 교육 (654a)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가무 수련을 하지 못한 자이고, 교육을 받은 사람은 충분히 가무 수련을 한 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박종현 역본 각주 20: 가무가 곧 시가에 수반되는 것이고, 시가는 철학이라는 학문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교양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창가무는 춤과 노래가 합쳐진 것이다. 따라서 훌륭하게 교육을 받은 자는 훌륭한 노래들을 훌륭하게 노래하고, 훌륭한 춤들을 훌륭하게 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테네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 중 어느 쪽이 합창가무와 시가에 있어서 더 잘 교육받은 사람인지 질문을 던진다.
-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된 것을 몸과 소리로 충분히 뒷받침해 줄 수 있지만, 아름다운 것/아닌 것에 대해 기뻐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 사람
- 몸으로 제대로 표현해내거나 생각할 수는 없어도 아름다운 것들은 반기지만 아름답지 못한 것들은 못마땅해 하는 사람
클레이니아스는 후자가 더 잘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우리가 노래와 춤과 관련한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면, 교육을 옳게 받은 사람과 옳게 받지 못한 사람도 알아볼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자세와 노랫가락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혼 및 몸의 훌륭함에 속하는 일체의 자세(춤사위)와 노랫가락은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하되, 나쁨에 속하는 일체의 것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아테네인은 시가의 옳음(*박종현 역본 각주 31: 어떤 시가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정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이 되는 옳음)은 혼들에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힘이라는 견해를 검토한다. 우선, 우리가 모든 합창 가무에 대해서 모두가 마찬가지로 기뻐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에 대해 묻는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 사이에 이러한 의견 불일치가 있는지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 같은 것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것이지는 않다.
- 같은 것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답지만, 같은 것들인 걸로 생각되지 않을 뿐이다.
아테네인은 후자가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쁨을 보여주는 합창가무 공연들이 훌륭함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는 사악함을 보여주는 자세에 대해 기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과 반대되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합창가무를 즐겁게 여기는지 (655d)
합창가무들의 공연은 여러 가지 기질(성격)의 모방적 표현이다. 이를 연기자들은 저마다 제 성격과 모방을 통해서 표현하기에, 말/노래/춤이 이들의 성격(그것이 본성으로 인한 성격이든, 습관으로 인한 성격이든)에게 맞을 경우에는 기뻐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성향, 기질(성격), 또는 습성에 어긋난 것일 경우에는 기뻐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추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몹쓸 자세(춤사위)들과 노랫가락들에 대해서 기뻐하는 자에게는 그게 무엇이든 해를 입지만, 반대되는 것들에서 즐거움을 얻는 자들에게는 반대로 어떤 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에 대해 기뻐하든 간에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사람은 그것을 닮게 된다.
시가의 옳음에 대한 법을 제정해야 함 (656c)
시가와 관련된 교육과 놀이에 있어서 훌륭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는 곳은 아름다운 자세들과 아름다운 노랫가락들이 법과 지시사항으로 공표되어 있는 곳이다(e.g., 이집트). 시인이 시를 지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리듬, 노랫가락, 노랫말을 새로 도입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시가와 합창가무를 동반하는 놀이의 바른 이용은 다음과 같은 식의 것이다. 잘 지낸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는 기뻐하고, 또 우리가 기뻐하고 있을 때 다시 우리는 잘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뻐할 때 우리는 조용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스스로 가무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연장자들은 그들의 놀이와 제천(축제)를 관람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젊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자들에게 경연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제천 행사에서 우리를 최대한 신나고 즐겁게 만다는 사람을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리고 우승을 한 것으로 판정해야만 한다.
시가의 즐거움을 누가 판정할 것인가 (658a)
누구든 오직 관객을 가장 즐겁게 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합을 한다고 해보자. 누가 우승할 것인가? 아주 어린아이들은 인형 공연을 하는 사람을 뽑을 것이고, 더 큰 아이들은 희극 공연을 하는 사람을, 다수는 비극 공연을 하는 사람을, 노인은 서사시를 낭송하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그럼 이중에서 누가 우승자로 결정되어야 하는가? 바로 노인들이 선택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노인들에 판정을 존중하는 관습이 최선의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가는 즐거움에 의해 판정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무나 판정을 해서는 안 되고 가장 훌륭하고 충분히 교육 받은 사람이 판정해야 한다.
판정하는 이들은 사려 분별과 용기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 사려 분별: 관람객들한테 배워서 / 다중의 소동에 의해 / 자신의 교육 부족 상태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 용기: 알고 있으면서 용기 부족과 비겁함으로 인해 거짓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대한 정리 (659d)
교육은 법에 의해 규정된 바른 원칙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연장자인 사람들한테서 경험을 통해 정말로 바른 것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혼이 법 그리고 법에 승복하는 자들과 반대로 즐거워하고 괴로워하지 않고, 노인이 그러는 것과 똑같이 따라하도록 버릇들이기 위해 노래들이 생긴 것이다. 입법자는 절제 있고 용감하며 훌륭한 사람들의 자세와 노랫가락들을 리듬과 선법으로 옳게 만들어서 시인들이 시를 짓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입법자는 처음에는 설득을 하고,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은 즐겁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지에 대한 논의 (660e)
아테네인에 따르면, 크레테와 스파르타는 훌륭한 사람은 절제 있고 올발라서(정의로워서), 신체적 조건과 재산과 상관없이 행복하며 축복받는다고 시인들이 말하도록 강요한다. 반면 부유할지라도 올바르지(정의롭지) 못하다면 비참하고 괴롭게 살 것이라고 말하도록 한다. 또한 아테네인은 건강, 준수함(아름다움), 부, 권력, 힘과 용기, 불사 등 수많은 것들이 올바르며(정의로우며)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유물들이지만, 올바르지(정의롭지) 않고 히브리스(hybris, *박종현 역본 각주 81: 남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해서나 난폭함이나 지나침)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도록 설득하고 강요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것들에 따르는 리듬들과 선법들을 부여해서 젊은이들을 교육하도록 해야 한다.
클레이니아스는 다른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올바르지 못함(부정의)와 히브리스(hybris)만 가진 자는 행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 것이라는 점에 납득하지 못한다. 이에 아테네인은 우선 올바르지(정의롭지) 못하고 히브리스를 저지르는 자라면, 필연적으로 욕되게(부끄럽게) 살 걸로 생각한다는 점에는 클레이니아스도 의견을 같이함을 확인한다. 그들의 의견 차이는 이들이 잘못 살 것인가(공역: 나쁘게 살 것인가), 즐겁지 않고 자신에게 이롭지 않게 살 것인가를 두고 발생한다. 클레이니아스는 이들이 잘못 살지도 않고, 즐겁지 않거나 자신에게 이롭지 않게 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아테네인은 입법가라면 어떤 못된 사람이 즐겁게 살고 있다거나, 이득이 되는 것들과 더 올바른(정의로운) 것들은 별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중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아테네인은 가장 올바른(정의로운) 삶이 가장 즐거운 삶인지, 아니면 둘은 다른지 묻는다.
1. 둘이 다르다면 다음과 같이 다시 물을 수 있다. 가장 올바른(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과 가장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 중 어느 쪽이 행복한 사람인가?
- 가장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일관적이지 않은 답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며, 또한 가능한 한 올바르게(정의롭게) 살라고 한다.
2. 가장 올바른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대답한다면, 다음과 같이 다시 물을 수 있다. 올바른 삶에서 즐거움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 올바른 이에게 즐거움과 다른 좋은 것은 무엇이 생기는가?
즐거운 것, 올바른 것, 아름다운 것은 떼어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명성과 칭찬, 누군가를 해치지도 누군가에게 해침을 당하지도 않는 것은, 좋고 아름답지만 즐겁지는 않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즐거운 것, 올바른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떼어 놓지 않는 주장은 적어도 누군가가 경건하고 올바른 삶을 살고 싶어 하도록 하는 것과 관련해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입법가는 이 셋을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삶에 괴로움보다 기쁨이 적다면, 올바르게 살도록 설득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지 못한 자는 자신의 올바르지 못함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것이 즐거운 것으로 보이고, 올바른 것은 즐겁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올바른 자의 관점에서는 반대로 보인다. 그런데 올바른 자의 판정이 더 권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르지 못한 삶은 올바르고 경건한 삶보다 더 즐겁지 않다.
세 가지 합창가무단의 구성 (664a)
입법자는 젊은이들의 혼들에 무언가 납득시키려고 할 때, 설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무엇을 설득하여 나라에 가장 좋은 것을 해줄 수 있겠는지 생각하고 방도를 생각해 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생활공동체 전체가 어떤 방식으로 노래, 이야기, 논의에 있어 언제나 최대한으로 같은 한 가지로 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아테네인은 세 가지 합창가무단 모두가 아이들의 혼이 아직 어리고 여린 시기에 주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합창가무단은 가장 즐거운 삶과 가장 좋은 삶은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설득해야만 할 사람들을 더 잘 설득하는 것이다.
세 가지 합창가무단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무사 여신들의, 어린이 합창가무단이 등장해 시민들 앞에서 노래한다.
- 아폴론의, 30세까지의 합창가무단이 등장한다.
- 디오니소스의 합창가무단 30세에서 60세까지의 합창가무단이 노래를 한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노래를 하기가 어려우므로, 같은 성격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성스러운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에 대한 설명 (664d)
클레이니아스가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이 무엇인지 묻자, 아테네인은 앞선 논의를 상기시킨다. 어린아이들은 무질서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놀지만, 리듬(움직임의 질서에 대한 감각)과 선법(음성의 질서에 대한 감각)을 갖추고 있고, 둘을 합한 것이 가무이다. 그리고 신들이 가무의 동반자이자 선도자로 무사 여신들, 아폴론, 디오니소스를 지정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폴론 합창가무단, 무사 여신들의 합창가무단에 이어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클레이니아스는 30~60세의 사람들이 디오니소스를 기려서 가무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린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아테네인은 그것이 어떻게 해서 합리적일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온 나라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앞서 말한 이야기들을 주문 삼아 노래해 줘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합의를 했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나이와 사리 분별에 있어 최선인 부류(30~60세의 사람들)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하지 않고 방치해두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노래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래에 열의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술을 허용해야 한다. 음주 허용 정도를 나이대 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 18세까지: 술을 전혀 맛보지 못하는 것으로 할 것이다. 술을 마시게 하면 몸과 혼의 불에 불을 더 쏟아 놓는 꼴이 된다.
- 30세까지: 과음하여 술에 취하지는 않는 정도로 적당히 음주를 허용한다.
- 40줄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공동 식사에서 융숭하게 대접받으며, 디오니소스를 노인들의 입교 의식과 함께 놀이에 불러 모시게 한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노령의 엄격함(딱딱함)에 치료 수단이 되어 줌으로써, 사람들을 다시 젊어지게 하고, 의기 소침한 상태를 잊음으로써 혼이 더 유연한 상태로 되게 한다. 그러면 적절한 수의 친근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열의도 갖고 덜 수줍어하며 앞에서 말한 것들을 주문 삼아 노래하고 싶어질 것이다.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이 어떤 노래를 할 것인가 (666d)
우선, 아테네인은 크레테와 스파르타의 노래는 아니라고 말한다. 크레테와 스파르타는 군영의 나라 체제를 가졌지, 도시 거주민의 나라 체제를 가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크레테와 스파르타는 아이가 훌륭한 군인일 뿐만 아니라 나라와 도시의 지역 공동체들을 경영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되기 위한 교육을 하지 않았다. 바람직한 교육은, [다소 비유적으로 언급되지만] 아주 사나워지고 성이 나 있는 제 아이를 동료들한테서 떼어서 붙잡아 두고, 개인적으로 지도자("마부")를 딸리게 해주며, 쓰다듬어 주고 달래어 주면서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더 전사다울 것이고, 용기를 훌륭함 중 첫째가 아니라 넷째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가가 가장 훌륭한 시가인가? 모상 제작술의 경우, 양과 질에 있어서의 같음이 옳음의 판단 기준이지, 일을 완수했을 때 생기는 즐거움이 아니다. (즐거움에 의해 판정되는 것은 진지한 논의거리가 될 만한 해를 끼치지도 이로움을 주지도 않는 놀이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모방을 판정할 때는 그것이 참된 것인지의 여부가 가장 적합한 기준이다. 그리고 모든 시가는 모방적인 것이므로, 시가는 즐거움에 의해 판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의 모방물과의 유사성을 가진 시가를 추구해야만 한다. 노래도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시가는 모방물이기 때문에, 시가와 관련해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게[시가의 모방 대상이?] 대체 무엇인지, 그 본질(본성: ousia)를 알지 못하고서는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도하는지, 그것이 무엇의 모상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그 의도의 옳음이나 과오를 판별하지 못한다. 옳은 상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애초에 모방된 대상에 대해 모르고서는, 모방이 적절한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면 모상과 관련해, 사려 깊은 판정자가 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 모방의 대상이 무엇인지
- 모상이 얼마나 옳게 표현되었는지
- 모상이 얼마나 잘, 노랫말들로나 노랫가락들로 그리고 리듬들로 표현되었는지.
시가와 관련해 누군가 잘못을 하면 나쁜 성격들에 대해 호감을 가짐으로써 스스로 해를 입는다. 그러한 잘못은 노랫가락, 리듬, 자세, 노랫말 등이 서로 어울리지 않게 하는 것, 각각을 서로 떼어놓는 것(e.g., 노랫가락과 리듬을 노랫말 없이 연주하는 것) 등이 있다. 이렇게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기나 한지도 알아보기 어렵다. 즉, 이 각각만 이용하는 것은 전적인 무교양(시가를 모르는 상태)이다.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의 교육 (670a)
30~60세의 사람들이 리듬과 선법에 대해 민감하고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랫가락의 옳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60세의 합창가무단은 그 사람들이 노래하기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율동(리듬)의 스텝과 노랫가락의 음들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까지 교육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로써 그들 자신이 해롭지 않은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훌륭한 인격들을 반기도록 하는 안내자도 된다.
이 정도 교육은 받은 것은 대중이나 시인들보다 더 엄밀한 의미의 교육 수련을 한 것이다. 시인은 선법 및 리듬에 대해 알아야 하지만, 모방물이 아름다운 것인지 아닌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훌륭한) 것의 선택을 위해서는 그 세 가지를 모두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연회의 이점 (671a)
디오니소스 합창가무단 모임은 술 마심이 진행되어 가면서 모두 들뜨고 즐거워져서 거리낌없이 말하고 옆 사람 말을 안 들으면서도, 각자가 자신은 물론 남들도 통솔할 수 있도록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경우, 혼들이 달아오른 상태가 되어 유연하고 젊어져서, 훌륭한 입법가가 교육하고 형성할 수 있고 또 그럴 줄 아는 사람에게는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입법자는 이처럼 자신만만하고 대담하며 적절한 정도 이상으로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이와 반대로 행하고 싶어 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법률은 술 취하지 않은 사람을 술 취한 사람의 지도자이게 하여야 한다. 연회가 이렇게 진행된다면 함께 술 마시는 사람들은 이롭게 되고, 서로 적이 아니라 친구들로 될 것이다. 이러한 이점이 있으니 연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술 취한 사람이 거리낌없이 말하고 옆 사람 말을 듣지 않게 된다는 점과, 혼이 유연해져 입법가가 영향을 잘 끼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충돌하는 것 아닌지?]
뒷권의 논의 예고 (672d)
합창가무는 교육 전체. 그리고 그 일부는 음성과 관련되는 부분(시가)이고, 다른 부분은 몸의 움직임과 관련된 부분(체육). 시가에 대해 다뤘으므로 체육에 대해 다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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