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글 목록

2021년 1월 21일 목요일

[요약] Nozick, (1981) “Knowledge and Scepticism” in Philosophical Explanations.

 1. 지식의 조건

Sp를 안다고 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p는 참이다.

(2) Sp를 믿는다

 

하지만 위의 두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각각은 지식의 필요조건이면서, 합치면 충분조건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 가지 제안은 다음과 같다.

 

인과적 조건: p가 믿음 p를 야기한다

- 문제 1: 통 속의 뇌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전기화학적 신호로 인해 믿음 <p: 나는 통 속에 있는 뇌다>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믿음의 원인은 그가 통 속에 있는 뇌라는 사실 p이지만, 그의 믿음 p가 지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문제 2: 수학적, 윤리학적 지식과 잘 맞지 않는다.

 

대신 저자가 제시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3) 만약 p가 참이 아니라면, Sp를 믿지 않을 것이다.

~p ~(Sp를 믿는다)

 

위의 조건은 가정법적 조건문으로 표현되어 있다.

- 가정법적 조건문은 인과적 조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인과적 조건은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 사례에서도 만족되지만, (3)은 그런 경우 만족되지 않는다.
e. g. (p 믿음 p) & (r 믿음 p)
위의 경우, ~p이더라도 r 때문에 p를 믿을 수 있다. 따라서 p에 대한 믿음은 인과적 조건을 만족하지만 (3)은 만족하지 못한다.

- 가정법적 조건문인 "pq"<pq를 함축한다>는 뜻이 아니라, <p이면 q일 것이다(would)>라는 뜻이다.

- 가능세계 개념을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실제 세계와 근접한 모든 가능세계들에서 <p & q>인 경우 <p q>가 참이다. 더 먼 세계에서는 <p & ~q>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p q>의 진리치와 무관하다.

 

 

 

 

 

(3)은 게티어 사례가 지식이 아니라고 올바르게 분류한다.

e. g. 내 사무실에 A, B 두 사람이 있는데, 나는 A가 포드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았다(정당화). 그래서 나는 믿음 <내 사무실에 있는 A가 포드 차를 갖고 있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참인 믿음 <내 사무실에 있는 누군가가 포드 차를 갖고 있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포드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B이다. 이 경우 지식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내 사무실에 있는 누군가가 포드 차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정당화되고 참인 믿음이기 때문에 지식이다. 하지만 이는 반직관적이다.

> (3)을 적용하면, 이 믿음은 지식이 아니다. 만약 내 사무실에 있는 누군가가 포드 차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믿음을 갖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식 주체가 p와 유관한 대안들을 배제할 수 있는 경우, 인식 주체가 p를 안다는 관점이 있다. 그런데 이 관점에 난점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있다. (3)은 그런 사례들을 잘 처리할 수 있다.

Q: "한 대안을 어떤 맥락에서는 유관하고 다른 맥락에서는 유관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e. g. 헨리(Henry)는 운전하다가 헛간과 같은 모습을 한 물체를 보았다. 이런 경우 헨리의 믿음 <p: 저 물체는 헛간이다>는 지식이다. p 대신 믿을 만한 대안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 이번에는 사실 그 주변에 겉모습만 헛간인 복제물들이 널려 있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헨리에게 자신이 본 바로 그 물체는 복제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믿음 p는 지식이 아니다. 믿음 <q: 저 물체는 헛간의 복제물이다>가 믿음 p의 유관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예전에는 복제물들이 널려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 <q: 저 물체는 헛간의 복제물이다>가 유관한 대안인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 노직 1:복제물들이 널려 있을 때, 만약 [근접 가능세계에서] ~p라면, q는 참일 것이다. 이 경우 헨리는 헛간과 같은 모습을 한 물체를 보고 여전히 p를 믿을 것이기 때문에 (3)이 성립하지 않는다. [~p이면 ~Bp여야되는데, q때문에 p라고 착각함] 따라서 이 경우 헨리의 믿음 p는 지식이 아니다.

전제 1. 들판에 실제 헛간이 있다.

전제 2. 실제 헛간 주변에 가짜 헛간들이 있다.

전제 3. 헨리는 실제 헛간을 보고 믿음 <p: 저 물체는 헛간이다>를 가진다.

전제 4. 그런데 만약 (근접 가능세계에서) 그 물체가 실제 헛간이 아니라면, 그 물체는 가짜 헛간일 것이다.

전제 5. 그런데 전제 4와 같은 경우에도 헨리는 믿음 <p: 저 물체는 헛간이다>를 가질 것이다.

전제 6. 전제 5에서 헨리는 지식의 조건 (3) <만약 p가 참이 아니라면, Sp를 믿지 않을 것이다>를 위배한다.

결론. 헨리의 믿음 p는 지식이 아니다.

- 노직 2: 그런데 복제물들이 해당 지역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널려 있을 경우, 만약 ~p더라도 q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헨리가 헛간과 같은 모습을 한 물체를 보고 p라고 믿으면 그것은 지식일 수 있다.

전제 1. 들판에 실제 헛간이 있다.

전제 2. 실제 헛간 주위에는 가짜 헛간이 없고 멀리 떨어진 곳에만 있다.

전제 3. 헨리는 실제 헛간을 보고 믿음 <p: 저 물체는 헛간이다>를 가진다.

전제 4. 만약 (다른 가능세계에서) 그 물체가 실제 헛간이 아니라면, 그 물체는 실제 헛간일 수도 있고 가짜 헛간일 수도 있다. [가짜 헛간이 실제 헛간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헛간 자리에 가짜 헛간이 있는 가능세계는 근접 가능세계가 아님]

전제 5. 전제 4와 같은 경우에도 헨리는 믿음 <p: 저 물체는 헛간이다>를 가질 것이다.

전제 6. 전제 5에서 헨리는 지식의 조건 (3) <만약 p가 참이 아니라면, Sp를 믿지 않을 것이다>를 위배하지 않는다. [근접 가능세계가 아니기 때문]

결론. 헨리의 믿음 p는 지식일 수 있다.

- 일반적으로 말해,

<~p q>인 상황에서 pq는 모순contrary되며 따라서 두 명제는 유관하다.

<~p ~q>인 상황에서 두 명제는 무관하다.

<~p (q V ~q)>인 상황에서 q는 유관하다.

 

하지만 믿음이 (3)을 만족한다고 해서 지식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e. g. 통 속의 뇌가, 전기화학적 자극에 의해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믿음을 갖게 될 때 (3)은 만족된다. 왜냐하면 그가 통 속의 뇌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전기화학적 자극을 받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 믿음을 갖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지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통 속의 뇌를 운영하는 사람은 통 속의 뇌에게 어떤 믿음도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의 믿음이 참에 민감하지(sensitive) 않기 때문이다.

- 따라서 추가적인 조건이 다음과 같은 가정법적 조건문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

 

(4) p Sp를 믿는다

 

- 의문: (4)는 단지 (1)(2)를 재서술한 것 아닌가?

답변: 아니다. 전건과 후건이 참이라는 점만으로는 가정법적 조건문이 참이 되지 않는다. 가능세계에 의거해 설명해보자. S가 실제로 p를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접 가능세계들에서도 Sp를 믿어야 (4)가 참이 된다.

- 통 속의 뇌가 전기화학적 자극에 의해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믿음을 갖는 경우, (4)가 만족되지 않는다. 근접 가능세계들에서, 통 속의 뇌의 운영자가 통 속의 뇌에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주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p이지만 ~(Sp를 믿는다)>가 된다.

- (4)는 하만(Gilbert Harman)이 제시한 다음과 같은 사례도 다룰 수 있다.

e. g. 한 나라의 독재자가 실제로 살해당했다. 처음에 신문들은 살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얼마 뒤 신문들은 정정 기사를 내서 살해 소식을 부정했고[거짓], 사람들은 정정 기사를 믿었다. 오직 한 사람만 정정 기사를 접하지 못했으므로, 처음 나온 보도를 통해 참인 믿음 <p: 독재자가 살해당했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은 (1)~(3)을 만족시키지만 (4)는 만족시키지 못한다. 만약 정정 기사를 접했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정 보도를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근접 가능세계에서 정정 기사를 접했다면, p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 그의 믿음은 참에 민감하게 맞춰지지(tuned) 않는다.

 

 

(4)는 더 정교화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p~p를 동시에 믿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p Sp를 믿고 ~p를 믿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지식의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1) p는 참이다.

(2) Sp를 믿는다.

(3) p → ~(Sp를 믿는다)

(4) p Sp를 믿고 ~p를 믿지 않는다.

 

- (1)~(4)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있는 경우, 그의 믿음이 p의 참을 '추적한다'(track)라고 하자.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참을 추적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2. 회의주의에 대한 대응

지식에 대한 이론은 회의주의 논증들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 논증들이 왜 강력한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노직의 목표는 회의주의를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주의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도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것이다. e. g. 우리가 통 속의 뇌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의주의자가 거부할 만한 가설들이 도입될 수 있기 때문에, 회의주의자를 설득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직의 목표는 그런 가설들이 설득력 있다는 점을, 회의적 가능성을 수용하면서도 보이는 것이다.

 

 

(3)을 통해 회의주의에 대응하기

-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논리적 함축 하에서의 폐쇄성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논리학 함축 하에서의 폐쇄성 원리: Sp를 알고, pq를 함축한다는 점도 알면, q를 안다.

 

- 회의론자의 논증

p: 나는 서울에 있다.

q: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다. (= 회의적 상황이 아니다)

 

전제 1. 우리는 pq를 함축한다는 점을 안다.

전제 2. 그런데 우리는 q를 알지 못한다. (= 회의적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결론. 따라서 우리는 p를 알지 못한다.

 

 

- 노직의 반론: 폐쇄성 원리는 틀렸다. Sp를 알고, pq를 함축한다는 점도 아는데, q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 Sp를 아는 일은 가능하다.

S가 믿음 <p: 나는 서울에 있다>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p가 참이라고 해보자.

만약 (근접 가능세계에서) p가 참이 아니었다면, Sp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p(3)을 만족시킨다.

 

. Sq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S가 믿음 <q: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다>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q가 참이라고 해보자.

만약 (근접 가능세계에서) q가 참이 아니었더라도, Sq를 믿었을 것이다. [= 만약 (근접 가능세계에서) S가 통 속의 뇌라고 하더라도, S는 자신이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q(3)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q가 참이더라도 믿음 q는 지식이 될 수 없다.

 

. 실제로 pq가 모두 옳다고 가정하자.

에 의해, 믿음 p는 지식이 될 수 있다.

에 의해, 믿음 q는 지식이 될 수 없다.

따라서 Sp를 알고, pq를 함축한다는 점을 알아도, q를 모를 수 있다.

 

요약하면,

회의주의자들의 주장: 회의적 가능성 + 논리적 함축 하에서의 폐쇄성 원리 = 회의주의

노직의 주장: 회의적 가능성 O, 논리적 함축 하에서의 폐쇄성 원리 X

 

 

 

(4)를 통해 회의주의에 대응하기

- 회의주의자들의 주장: p일 때 믿음 p를 가진 S, 다른 사람의 설득에 의해 믿음 ~p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의의 믿음에 대해 (4)가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 노직의 대응: (4)p일 때 S가 믿음 p를 고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믿음 p를 믿음 ~p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전 믿음 p는 애초에 지식이 아니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