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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7일 수요일

[요약] DeRose, K. (1995), “Solving the Skeptical Problem”

 DeRose, K. (1995), “Solving the Skeptical Problem”, The Philosophical Review

 

회의적 논증 - 무지로부터의 논증(Argument from Ignorance, AI)

 

O: 일상적으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외부 세계에 대한 명제 - Ordinary

H: 회의적 가설 skeptical Hypothesis

 

1. 나는 ~H를 모른다.

2. 만약 내가 ~H를 모른다면, 나는 O를 모른다.

3. 따라서 나는 O를 모른다.

 

e. g. 

1. 나는 <~H: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다>를 모른다.

2. 만약 내가 <~H: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다>를 모른다면, 나는 <O: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를 모른다.

3. 따라서 나는 <O: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를 모른다.

 

위의 논증은 타당하지만, 결론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인다이 문제를 해결할 때, 단순히 이 논증이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왜 이런 회의주의적 함정에 빠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 전제들이 옳아 보이는데 왜 이런 놀라운 결론이 나오는지, 왜 이 논증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이는지 설명해야 한다.

 

 

맥락주의

지식 귀속(attribution)에 대한 맥락주의

- 화자·귀속자 A(attributor)가 주체 S의 참인 믿음 P에 대해, "SP를 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A의 주장이 참이기 위해서, P와 관련해 S의 인식적 지위가 얼마나 강해야 하는지는 A의 대화 맥락의 특징들에 따라 변한다. [간단히 말해, SP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는 A의 상황에 따라 변한다.]

- , 주체가 만족시켜야 하는 인식적 지위의 기준은 화자의 대화 맥락에 영향을 받는다.

- 회의주의 논증에 대한 맥락주의적 답변의 골격

- 회의주의자는 회의적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지식에 대한 의미론적 기준을 대화 맥락 속에서 극단적으로 높였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인 지식조차 모른다는 주장이 참이 되어버린다. 이런 점은 왜 회의주의 논증이 강한 설득력을 갖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 맥락에서 "나는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와 같은 발화는 거짓이기 때문에, 우리는 회의주의 논증의 결론에 거부감을 가진다.

맥락주의적 답변에서 핵심적인 두 가지 개념: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 인식적 지위의 강도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Subjunctive Conditional Account):

- S의 믿음 P는 민감하지 않다(insensitive) if 만약 ~P이더라도 SP라고 믿을 것이다(would).

- S의 믿음 P가 민감하지 않으면 SP를 모른다. e. g. 만약 S가 통 속의 뇌였더라도, S는 자신이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H: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다>는 지식이 아니다. - 회의적 가설의 전제 1의 설득력을 설명해준다.

-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은 왜 사람들이 비철학적인 회의적 가설도 모른다고 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e. g. 동물원에서 얼룩말처럼 생긴 동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저 동물이 교묘하게 색칠된 당나귀가 아니다"와 같은 회의적 가설을 모른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것이 교묘하게 색칠된 당나귀였어도, 사람들은 얼룩말이라고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H인데도 이 아이들은 ~H라고 믿고 있다따라서 이 아이들의 믿음은 민감하지 않다.]

- 노직은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을 통해 회의주의 논증에 대응한다. 회의적 가설에서 전제 2를 거부하는 것이다.

- 노직에 따르면, 내가 ~H는 모르면서 O는 아는 것이 가능하다. (, 회의적 가설이 거짓이라는 점은 모르면서 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 

- 드로즈: 이런 결론은 끔찍하다(abominable).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면서도 맥락주의적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은 전제 2를 받아들이면서도 회의주의에 대응할 수 있다.


 

 

 

인식적 지위의 (상대적) 강도

- 주체의 어떤 인식적 지위가 다른 인식적 지위보다 강한지는 비교 조건문(comparative conditionals)을 통해 직관적으로 시험해볼 수 있다.

- 다른 상황에서 같은 명제에 대한 인식적 지위 시험

S가 믿음 P를 가지고 있고, SA 상황이나 B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자만약 조건문 <상황 A에서 SP를 안다면, 상황 B에서 SP를 안다>가 직관적으로 옳다면, S P에 대한 인식적 지위는 B에서 최소한 A에서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명제에 대한 인식적 지위 시험

<만약 SP를 안다면, SQ를 안다.>

- 회의적 가설의 전제 2를 다시 생각해보자.

2. 만약 내가 ~H를 모른다면, 나는 O를 모른다.

2. 만약 내가 <~H: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다>를 모른다면, 나는 <O: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를 모른다.

- 비교 조건문 시험을 해보면 나의 ~H에 대한 인식적 지위는 최소한 O에 대한 인식적 지위만큼 강하다. (~H 지위 O 지위)

 

 

 

맥락주의적 해결책

회의주의 논증의 설득력

지식에 대한 가정법적 조건문 설명(민감성)은 우리 일상적인 지식의 기준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회의주의자들이 민감성을 지식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맥락이 존재한다. 통 속의 뇌를 비롯한 회의적 가능성이 그런 맥락이다.

이런 기준이 놓이면, 나는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내 믿음은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의적 논증의 전제 2는 모든 맥락에서 참이기 때문에, 나는 회의적 맥락에서 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는 결과가 따라나온다.

회의주의의 설득력은 이런 맥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맥락주의자의 답변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절대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식 귀속의 일상적 맥락에서 회의적 가설의 전제 1(<나는 ~H를 모른다>)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일상적 맥락에서는 회의적 기준이 내세워지지 않았고, 지식의 기준이 비교적 낮다. , 일상적 맥락에서 우리 믿음이 지식이기 위해 민감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적 맥락에서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안다고 참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전제 2는 모든 맥락에서 참이기 때문에, 나는 일상적 맥락에서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맥락주의는 전제 1(나는 ~H를 모른다)을 거부하고 일상적 지식을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

 

 

정교화

회의적 맥락과 일상적 맥락의 지식 기준 차이

- 비교 조건문 시험을 해보면 나의 ~H에 대한 인식적 지위는 최소한 O에 대한 인식적 지위만큼 강하다. (~H 지위 O 지위)

위의 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민감성 규칙(Rule of Sensitivity): 주체 SP를 안다고(혹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할 때, P에 대한 S의 믿음이 민감해지는 수준까지 지식의 기준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민감성 규칙은 일종의 대화 규칙(conversational rule)이다.

한편, 회의적 가설 H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 특징 1: 우리가 ~H를 믿을 때의 인식적 지위는 최소한 O를 믿을 때만큼 강하다.

- 특징 2: ~H와 같은 내용을 갖는 어떤 믿음도 민감하지 않은 믿음이다.

 

특징 2가 주어지면, 우리가 ~H를 모른다고 회의주의자가 주장할 때 민감성 규칙에 의해 지식의 기준이 올라간다. 그리고 이렇게 올라간 기준에서, 특징 1에 의해 우리는 O도 알지 못한다.

 

 

 

정리

- 지식의 기준을 올리는 것은 회의주의자의 주장이다. 회의주의자가 자신이 통 속의 뇌라는 점을 모른다고 주장할 때, 민감성 규칙이 적용되며 지식의 기준이 높아진다(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민감해야 하는 수준까지).

- 그리고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나의 믿음은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회의적 맥락에서 내가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 따라서, (전제 2)가 참이라는 점이 주어지면, 나는 내가 손을 가지고 있다고 회의적 맥락에서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아무도 회의적 가설을 말하지 않을 때, 민감성 규칙은 적용되지 않고, 지식의 기준은 믿음들이 민감하지 않아도 지식으로 간주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 이것은 일상적 맥락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안다고 간주하는 것을 여전히 알 인식적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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