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많은 형이상학적 진술들은 논리적 실수를 범한 탓에 생긴 것이다.
- 형이상학자들이 만들어내는 문장들은 문자적 의미를 가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 문장들이 문자적 의미를 의미를 가질 기준이란,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 기준이다.
검증 가능성 기준: 한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사실적으로(factually) 의미가 있다 iff 그 사람이 그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를 안다 (= 그 사람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어떤 관찰이 그에게 그 명제를 참으로 인정하게 하는지와 그것을 거짓으로 거부하게 하는지를 안다
- 의문문이 문자적 의미를 가질 기준 역시 이와 같다. 어떤 관찰이 우리에게 그 질문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가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ㅇ 검증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 실천적 검증 가능성 vs. 원리적 검증 가능성
- 실천적 검증 가능성: 우리가 충분한 노력을 들이면 검증 가능하다.
- 원리적 검증 가능성: 실천적으로 가능한지와 별개로, 어떤 관찰을 통해서 검증할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다.
e. g. "달의 다른 쪽 표면에 산이 있다": 실천적으로는 검증 불가능하지만, 원리적으로는 검증 가능하다.
e. g. "절대자는 진화와 진보에 관계하지만, 그 자체는 지노하하거나 진보하지 않는다": 원리적으로도 검증 불가능하다.
- 강한 검증 가능성 vs. 약한 검증 가능성
- 강한 검증 가능성: 경험이 명제의 참을 확실하게 결정 가능하다.
- 약한 검증 가능성: 경험이 명제를 개연적이게(probable) 만든다.
(※ 현대 과학철학에서는 에이어가 말하는 강한 검증을 단순히 '검증'이라고 부르고, 약한 검증은 '입증'(confirmation)이라고 부른다.)
- 의미의 기준으로 강한 검증 가능성을 채택하면, 너무 많은 명제를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
e. g. "비소는 유독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물체는 가열되면 팽창한다"와 같은 일반명제들과, 과거에 대한 명제들은 분명 유의미하지만, 유한한 관찰에 의해 확실하게 참으로 확립될 수 없다.
따라서, 약한 검증 가능성을 유의미성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c. f. 포퍼 등은 확정적 반증 가능성(confutability)을 유의미성의 기준으로 본다. 유한한 관찰로는 어떤 명제가 참임을 보일 수 없지만, 거짓임을 보이는 데에는 단 하나의 관찰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e. g. "모든 까마귀는 검다" - 검은 까마귀를 아무리 많이 관찰해도 확실하게 참임을 보일 수 없지만, 단 한 마리의 하얀 까마귀만 관찰해도 확실하게 거짓임을 보일 수 있음.
- 에이어의 비판: 확정적 검증과 마찬가지로 확정적 반증도 불가능하다. 한 가설은 여러 보조 가설들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관찰이 원 가설을 반증하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원 가설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보조 가설이 거짓일 수 있다. (Duhem-Quine 논제)
ㅇ 검증 가능성 기준을 다음과 같이 엄격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
- 명제 S가 유의미하다 if S가 하나 이상의 다른 전제들 P1, P2, . .과 더불어 이 전제들만으로부터는 도출될 수 없는 경험 명제들(experiential propositions) O1, O2, . .를 최소한 하나 이상 함축한다.
- 경험적 명제: 현실적 관찰이든 가능적 관찰이든, 하나의 관찰을 보고하는 명제
- 사실적 내용을 갖는 명제는 모두 경험적 명제이다.
- 사실적 내용을 갖지 않는 명제라고 해도, 선험적 명제는 유의미하다.
- 사실적 내용을 갖지 않거나 선험적이지 않은 명제는 무의미하다.
- 선험적 명제는 동어반복이기 때문에 확실성을 갖는다.
- 동어반복 + 경험적 가설 = 의미 있는 명제의 전체
- 형이상학적 문장은 진정한 명제를 표현하려고 의도하지만 동어반복도 경험적 가설도 표현하지 않는 문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ㅇ 거짓이라기보다는 무의미한 진술의 사례
- "감각 경험의 세계는 모두 비실재적이다": 어떤 가능한 관찰도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가 비실재적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없다.
- "세계에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한다" vs. "세계에 다수의 실체가 존재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주장이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 실재론 vs. 관념론: 어떤 관찰도 세계가 실제적인지 아니면 관념적인지 판단하게 해줄 수 없다. (단, 에이어는 이 논쟁이 형이상학적으로 해석되었을 때 무의미하지만, 존재 명제의 분석에 대한 논쟁으로 해석되면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ㅇ 표층 문법에 현혹된 형이상학의 사례
- 실체(substnaces): 모든 이름에 단 하나의 실재적 존재자가 대응한다는 근본 가정에 영향을 받아 제안된 개념이다. ‘S는 P이다’ 형태의 문장에서 S는 사물 자체를, P는 사물의 감각될 수 있는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속성과 구분되는 “사물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하지만 어떤 단어가 문장의 문법적 주어가 된다는 점에서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추론할 수 없다.
- 존재: 존재에 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과 속성에 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은 우리 언어에서 동일한 문법적 구조를 갖는다. e. g. "순교자들이 있다", 순교자들은 고난받는다": S+V 구조. 그래서 존재도 일종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 존재는 속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의 속성이 어떤 사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존재가 속성이라면, "순교자들이 있다"는 "순교자들이 있고, 그 순교자들은 있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동어반복 문장이 된다. 또한 "순교자들이 없다"는 "순교자들이 있고, 그 순교자들은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자기모순 문장이 된다.
- "유니콘은 가상적이다", "무"(nothing)도 마찬가지.
- 이런 비존재적 대상이 실재한다는 가정은 한 문장의 문법적 주어가 될 수 있는 모든 단어나 어구에 대응하는 실재적 대상이 있다는 가정에서 생긴다. 경험 세계에는 그런 "대상들"을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대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비경험적 세계를 가정하게 되는 것이다.
▶ 형이상학자들은 일종의 시인이라는 입장: 형이상학적 진술은 문자적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참과 거짓에 대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윤리적 기준이나 미학적 기준의 적용 대상이다.
▷ 에이어의 비판: 시인들이 만드는 문장은 대부분 거짓일지 몰라도 유의미하다. 반면 형이상학적 문장은 유의미를 의도했지만 무의미한 문장이다.
2판 서문 일부
검증 원리: 어떤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
어떤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 iff 그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 비판: 어떤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애초에 명제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이고, 어떤 문장이 참이나 거짓을 표현하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지는 검증 원리를 적용하기 전에 이미 대답된 것이다.
▷ 에이어: 검증 원리는 "진술"(statement)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모든 직설법 문장은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든 그렇지 않든 진술을 표현한다. 그리고 명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 문장이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검증 원리는 명제에 속하는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을 구별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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