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사과정 동안 심적 내용에 대한 나 자신의 자연주의 이론을 개발해 박사논문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그 첫걸음으로 해당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하게 서술해봤다. 물론 내가 기존의 이론들을 잘못 이해한 것도 많을테고, 몇 년이 될지 모르는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 생각도 변할테고, 그동안 다른 학자들의 연구도 많이 쌓일 것이다. 박사과정 중에 논문 주제를 아예 바꿀 수도 있고, 이 주제로 계속 하더라도 몇 년 지나 박사논문을 완성시킬 때 이 글과는 완전히 다른 이론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글을 써보면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 지 전반적인 방향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론에 임시적으로 '인과-정보적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애덤스(Frederick Adams)와 아이자와(Kenneth Aizawa)도 인과적 이론과 정보적 이론을 합친 이론을 개발하는 것 같고, 애덤스의 논문을 읽어보니 기본 골격은 내 생각과 비슷하다. 내 이론이 애덤스의 이론과 차별화되는 점은 자연적 의미 개념을 활용한다는 것, 애덤스의 이론과 목적의미론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은 것에 반해 내 이론은 목적의미론을 포섭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1. 심적 표상에 대한 자연주의 이론이란 무엇인가
심리철학과 언어철학에서 심적 내용과 관련된 연구의 한 가지 목표는 심적 표상 "x"가 x라는 내용을 갖는다는 점을 전제한 상태로, x라는 내용이 갖는 특성들을 찾는 것이다. 반면 심적 내용에 대한 자연주의 이론의 목표는 애초에 왜 심적 표상이 내용을 갖게 되었는지 해명하는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애초에 왜 심적 표상 "x"가 x를 지향하는가? 왜 심적 표상 "x"가 x라는 내용을 갖는가? 심적 표상 "x"가 가지고 있는 x라는 내용의 기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이론이 "자연주의" 이론인 이유는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나 방법론을 이용하고, 자연 과학의 세계관과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심적 내용에 대한 자연주의 이론은 철학에서 다루는 "내용", "의미", "지향성"과 같은 비물리적인 대상들이,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물리적 세계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다루는 이론이다.
2. 목적의미론의 범위 규정
내가 첫번째로 하고자 하는 작업은 심적 내용에 대한 자연주의 이론의 일종인 목적의미론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나는 목적의미론이 일부 심적 내용의 실제(actual) 기원에 대해 옳은 이론일 수는 있어도, 모든 가능한(possible) 기원에 대해 옳은 이론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점을 늪지 인간(swampman) 사고 실험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목적의미론자들은 심적 표상 "x"가 x라는 내용을 갖는 이유는, 심적 표상 "x"가 x와 공변(covary)함으로써 "x"를 가지고 있는 생물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적 표상 "빨강"이 빨강이라는 내용을 갖는 이유는, 심적 표상 "빨강"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적 표상 "빨강"이 엉뚱하게 다른 색깔을 표상한다면, 그런 심적 표상 "빨강"을 가진 사람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와 갈색으로 부패한 사과를 구분하지 못해 생존과 번식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목적의미론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연선택 과정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올바르게 빨강을 표상하는 심적 표상 "빨강"을 가진 사람만 살아남았고, 심적 표상 "빨강"의 내용은 빨강으로 고정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목적의미론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데이빗슨(Donald Davidson)의 늪지 인간 사고실험이 목적의미론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늪지 인간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다. 유기물이 풍부하게 함유된 어느 늪지대에 벼락이 떨어졌다. 우연히도 그 벼락이 매우 복잡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나와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새로운 사람(늪지 인간)이 만들어졌다. 내 심적 표상 "빨강"은 빨강이라는 내용을 가지므로, 직관적으로 볼 때 나와 물리적으로 동일한 늪지 인간도 동일한 심적 표상 "빨강"을 가질 수 있고, 그 심적 표상은 빨강이라는 내용을 가진다. 그런데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 "빨강"은 자연선택의 산물이 아니므로, 목적의미론에 따르면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 "빨강"은 내용을 갖지 않는다. 이는 매우 반직관적인 결론이다.
대표적인 목적의미론자인 밀리컨(Ruth Millikan)은 이 반직관적인 결론을 수용하여,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이 정말로 내용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목적의미론자들이 이런 결론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의미론자인 파피노(David Papineau)는 목적의미론이 가능한 경우에 대한 이론이 아닌 실제 경우에 대한 이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늪지 인간 사고실험을 회피한다. 실제로 늪지 인간 같은 경우가 존재한다면 목적의미론이 틀렸겠지만, 그런 경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터(Brian Porter)는 사색형색각(tetrachromacy)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심적 표상과 관련해 늪지 인간과 같은 경우이므로 목적의미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사색형색각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들보다 풍부한 색깔 경험을 하는데, 그러한 색깔 경험을 통해 야기된 심적 표상은 자연선택을 거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색형색각을 가진 사람은 그러한 색깔 심적 표상과 관련해 늪지 인간과 같은 것이다.
나는 우선 밀리컨과 달리,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이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직관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파피노와 달리, 그리고 포터를 따라 늪지 인간과 같은 경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늪지 인간의 존재가 단지 철학적 공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터의 주장대로 사색형색각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근미래에 개발 가능한, 심적 표상을 가진 매우 정교한 로봇도 늪지 인간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터와 달리 늪지 인간과 같은 경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서 목적의미론이 반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파피노의 입장과 포터의 입장을 절충하여, 목적의미론이 "일부" 심적 내용의 "실제" 기원에 대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늪지 인간의 심적 내용은 목적의미론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늪지 인간의 심적 내용의 기원은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 나는 나 자신의 이론인 인과-정보적 이론이 모든 심적 내용의 가능한 기원에 대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인과-정보적 이론은 목적의미론보다 일반적인 이론이다. 따라서 인과-정보적 이론은 목적의미론을 포섭할 수 있는 것에 더해, 목적의미론이 해명하지 못했던 늪지 인간의 경우까지 해명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 인과-정보적 이론의 윤곽을 그려보고자 한다.
3. 인과-정보적 이론
나는 기능에 대한 인과적 역할 이론(causal role theories of function)을 기반으로 삼아 나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인과적 역할 이론가들은 한 심적 표상의 내용이란 더 넓은 조직화된 체계에서 그 심적 표상이 수행하는 기능(역할)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심적 표상 "빨강"이 인간의 인지 체계에서 빨강과 공변하는 기능을 한다면, "빨강"은 빨강이라는 내용을 가진다. 그런데 인과적 역할 이론은 오표상(misrepresentation)을 해명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 심적 표상은 오표상할 때가 있는데, 인과적 역할 이론을 그대로 따르면 더 넓은 체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 한 모든 표상은 올바른 표상이라는 잘못된 결론이 나온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어떤 것이 올바른 표상이고 어떤 것이 오표상인지 가릴 수 있는 기준을 인과적 역할 이론 내에 포함시켜야 한다. 나는 그 기준이 그라이스(H. P. Grice)의 자연적 의미 개념과, 그라이스 이후 발전한 정보 개념을 통해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표상되는 대상이 그 대상의 내재적 속성에 의거해 심적 표상 "x"를 야기한다면 심적 표상 "x"는 그 대상을 올바르게 표상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이론을 편의상 인과-정보적 이론이라고 하자. 인과-정보적 이론이 오표상을 어떻게 해명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심적 표상 "x"의 내용이 대상의 자연적 의미가 아닐 때 심적 표상 "x"는 오표상한다.
인과-정보적 이론은 목적의미론보다 일반적인 이론이다. 앞에서 나는 목적의미론이 일부 심적 내용의 실제 기원에 대해 옳은 이론일 수는 있지만, 모든 가능한 기원에 대한 이론은 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를 인과-정보적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목적의미론자들은 심적 내용의 기원이 자연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을 인과-정보적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표상되는 대상이 그 대상의 내재적 속성에 의거해 심적 표상 "x"를 야기하는데, 그 내재적 속성이란 자연선택을 일으키는 형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의미론이 모든 가능한 기원에 대한 이론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표상되는 대상의 내재적 속성이 자연선택이 아닌 다른 과정과 연관되어 있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과-정보적 이론을 채택하면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도 내용을 가진다는, 직관에 잘 부합하는 결론을 낼 수 있다.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 "빨강"은 자연선택을 통해 빨강과 이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늪지 인간의 인지 체계는 심적 표상 "빨강"이 빨강과 공변하도록 조직화되어 있다. 즉, 빨강을 감지하는 시각 세포, 시각 세포의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신호를 받아 심적 표상을 만드는 중앙 인지 체계, 그리고 심적 표상 "빨강"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빨강의 내재적 속성(e. g. 전자기파로서 빨강의 파장)을 감지해 심적 표상 "빨강"이 빨강과 공변하도록 조직화되어 있다. 따라서 늪지 인간의 심적 표상 "빨강"은 빨강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공부할 문헌들
A.
내 PhilPeople 페이지에 관련 문헌들을 꽤 많이 북마크해놓았다.
https://philpeople.org/profiles/750010/bookmarks?page=1&filter=unread&order=newest
- PoB: Functions
- PoM: Naturalizing Mental Content
B.
다음은 배경지식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고전적인 문헌들과, 기초를 쌓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입문용 문헌들, 그리고 주요 학자들의 최근 문헌들이다.
당연히 매우 불완전한 리스트로, 계속 수정될 것이다.
1. 기능주의/계산주의
1.1. 기능주의/계산주의 일반
Putnam, "The Nature of Mental States" (= "Psychological Predicates")
Lewis, "Mad Pain and Martian Pain"
Block, "Troubles with Functionalism"
Putnam, Representation and Reality
Milkowski, "Explaining the Computational Mind
Crane, The Mechanical Mind
Sprevak, The Computional Mind: A Philosophical Introduction
Copeland, Philosophy of Artificial Intelligence
1.2. 심적 표상
Fodor, "Fodor's Guide to Mental Representation"
Fodor, "Meaning and the Worlds Order"
Dretske, "Representational Systems"
Field, "Mental Representation"
Cummins, "Interpretational Semantics"
Horgan, "Computation and Mental Representation"
[SEP] Pitt, "Mental Representation"
1.3. 계산가능성 이론
Boolos, 계산가능성과 논리
Nagel, 괴델의 증명
Smith, An Introduction to Godel's Theorems
박정일, 튜링 & 괴델: 추상적 사유의 위대한 힘
Hyun, Godel and Cognitive Science
Copeland et al. (eds.), Computability: Turing, Godel, Church, and Beyond
1.4. 사고언어가설
Fodor, The Language of Thought
Fodor, The Language of Thought 2
Fodor, Psychosemantics
Schneider, The Language of Thought: A New Philosophical Direction
2. 심적 내용의 자연화/지향성의 자연화
2.0. 개괄
도다야마 가즈히사, 과학으로 풀어낸 철학입문
Ryder, "Naturalizing Mental Content"
2.1. 목적의미론
Millikan, (1984), Language, Thought, and Other Biological Categories
Millikan, Biosemantics
Godfrey-Smith, "A Continuum of Semantic Optimism"
Millikan (2017), Beyond Concepts: Unicepts, Language, and Natural Information
Shea, Naturalizing Mental Representations
Shea (2018), Representation in Cognitive Science
Neander, A Mark of the Mental
[SEP] Neander, "Teleological Theories of Mental Content"
Papineau, "Teleosemantics"
2.2. 인과적 역할 의미론(개념적 역할 의미론)
Block, "Advertisment for a Semantics for Psychology"
Block, "Conceptual Role Semantics"
Fodor and Lepore, "Why Meaning (Probably) Isn't Conceptual Role"
Harman, "(Nonsolipsistic) Conceptual Role Semantics"
Cummins, Meaning and Mental Representation
Dretske, Naturalizing the Mind
[SEP] Adams and Aizawa, "Causal Theories of Mental Content"
Rupert, "Causal Theories of Mental Content"
2.3. 정보의미론
Grice, "Meaning"
Dretske, Knowledge and the Flow of Information
Dretske, "Misrepresentation"
Dretske, "Naturalizing the Mind"
Floridi, 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Floridi, Philosophy of Information
Floridi, The Logic of Information
Cohen, "Information and Content"
2.4. 비대칭성 의존 의미론
Fodor, A Theory of Content
Adams and Aizawa, "Fodorian Semantics"
3. 기능
3.1. 목적론적 기능 이론
Wright, "Functions"
Kroes (ed.) Fucntions in Biological and Artificial Words: Comparative Philosophical Perspectives
Lewens, Design in Nature and Elsewhere
Garson, What Biological Functions Are and Why They Matter
Garson, The Biological Mind: A Philosophical Explanation
Garson, A Critical Overview of Biological Functions
Davies, Norms of Nature
3.2. 인과적 역할 기반 기능 이론
Cummins, "Functional Analysis"
Craver, "Role Functions, Mechanisms, and Hierarchy"
기타 주제
대량 모듈성(계산주의 관련), 언어의 진화(심적 표상, 계산주의 관련), 진화생물학 일반(목적의미론, 기능 관련), 언어학 일반(계산주의, 심적 내용 관련), 복수실현 가능성(기능주의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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