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식론 5장: 내재론과 외재론
인식론에서 내재성과 외재성을 구분하는 기준: 인식 체계
x가 S에게 내재적이라 함은 x가 S의 인식 체계 내에서 발생한 것임을 의미한다.
위의 규정의 문제
- 너무 모호하다: 한 인식 체계 내에 있는 것들의 범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e. g. 두뇌 내에서 발생하는 것만? 감각 기관에서 발생하는 것도?
- 너무 포괄적이다: 한 인식 체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외부세계의 모습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e. g. 뉴런의 발화 등의 신경생리학적 사건은 인지 과정에 속하지만, 그것들 자체로는 세계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없다. 신경생리학적 성질들은 반성에 의해 포착될 수 없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세계에 대한 이해에 기여할 수 없다.
수정된 규정
(I) x가 S에게 내재적이라는 것은 x가 S에 의해 내성 가능함을 의미한다.
(E) x가 S에게 외재적이라는 것은 x가 S에 의해 내성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인식정당성은 상호 독립적인 여러 요소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지므로, 인식정당성에 대한 이론들은 각 요소에 대해 내재론이 될 수도 있고 외재론이 될 수도 있다.
내재론-외재론 구분의 세 차원
인식정당성: S의 믿음 P가 (2) 적절한 (1) 근거에 (3) 의존할 때에만 믿음 P가 S에게 인식적으로 정당하다.
(1) 근거: 어떤 종류의 것들이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위한 근거를 이루는가?
(2) 근거의 적절성: 특정한 근거가 주어진 믿음을 정당하게 만들기 위하여 만족시켜야 할 적절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3) 토대 관계: 문제의 믿음과 적절한 근거 사이에 성립하여야 하는 의존 관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식정당성에 대한 어떤 이론이 위의 질문들 중 한 질문에 내재론적 혹은 외재론적으로 답한다고 해서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답할 필요는 없다.
(1) 근거
인식정당성에 대한 이론들은 어떤 종류의 것들이 인식정당성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한다.
근거 내재론
- 증거주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험적 상태와 해당 믿음 사이의 증거 관계가 그 믿음의 정당성을 위해 핵심적이다.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험적 상태는 내성 가능한 것이므로, 증거주의는 근거 내재론에 속한다.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험적 상태가 명제적 상태여야 하는지, 감각 자료 등 비명제적 상태여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과정주의: 믿음의 정당성에 중요한 것은 근거와의 증거 관계가 아니라, 어떤 인지 과정이 그 믿음을 산출하였는가이다. (e. g. 과정 신빙론) 인지 과정은 심리 상태들의 인과적 연쇄들로 이루어지며, 심리 상태들은 내성 가능하므로 과정주의는 근거 내재론에 속한다.
근거 외재론
-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들: 한 믿음이 그 믿음을 참이게 만드는 사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즉, 지식의 근거를 이루는 것은 외적 사실로, 내성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들은 근거 외재론에 속한다.
(2) 근거의 적절성
어떤 "유형"의 것들이 정당성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일반적 지식만으로는 "특정한" 믿음이 특정한 사람에게 정당한가를 결정할 수 있다. 근거는 그러한 유형에 속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근거가 그 믿음을 정당하게 만들기에 적절해야 한다. 따라서 인식정당성에 대한 이론은 주어진 근거가 해당 믿음과 고나련하여 적절한가를 결정하는 기준도 제시해야 한다.
적절성 외재론
어떤 근거가 믿음 P를 위한 적절한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비추어 볼 때 믿음 P가 참이 될 "객관적" 확률이 높아야 한다. 객관적 확률은 내성적으로 파악될 수 없으므로 객관적 확률을 적절성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이론들은 적절성 외재론이다.
e. g. 과정 신빙론: 참일 객관적 확률이 높은 믿음을 산출하는 인지 과정에 의해 생성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e. g. 레러와 봉쥬르의 정합론: 한 믿음이 참일 객관적 확률이 높을 때에만 그 믿음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 믿음이 정합적이어야 정당한데, 정합성은 내성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
e. g.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 한 믿음이 지식이 되는가는 그 믿음이 그것을 참이게 하는 사실과 인과적·합법칙적·가정법적 관계에 있는가에 의존한다.
e. g. 증거주의(⊂ 근거 내재론) 중에서 증거가 주어졌을 때 믿음이 실제로 참일 확률이 높아야 그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다는 이론.
적절성 내재론
어떤 근거가 믿음 P를 위한 적절한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비추어 볼 때 믿음 P가 참이 될 "주관적" 확률이 높아야 한다. 주관적 확률은 근거와 믿음 사이의 객관적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인식 주체가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경우 적절성의 기준은 내성 가능한 심리 상태이므로 적절성 내재론이다.
e. g. 폴리: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한가는 여러 근거들에 대한 주관적인 반성의 결과 그 믿음이 참일 주관적 확률이 높게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
근거 내재론이라고 해서 적절성 내재론일 필요는 없음:
근거 외재론이면 적절성 외재론이다: 근거 외재론에 따르면, 한 믿음을 지식이게 또는 인식적으로 정당하게 만드는 근거는 외적인 사실이다. 그렇다면, 근거 외재론에서 적절성의 기준은 외적인 사실과 믿음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정의되든 간에 그 관계는 내성의 밖에 존재하는 사실을 한 부분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 대우
적절성 내재론이면 근거 내재론이다: 적절성 내재론에 따르면, 근거와 믿음 사이의 적절성 관계는 내성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근거와 믿음 모두가 내성에 의하여 포착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적절성 내재론은 필연적으로 근거 내재론이 된다.
근거 내재론이 반드시 적절성 내재론일 필요는 없다: 근거가 적절하기 위해서 객관적 확률이 높아야 하는지 주관적 확률이 높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적절성 외재론이 반드시 근거 외재론일 필요는 없다: 근거와 믿음 사이의 적절성의 관계를 객관적 확률을 통하여 정의하는 적절성 외재론은 그러한 객관적 확률이 인식 외적인 사실과의 관계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으로도 또는 인식 내적인 심리 상태 또는 심리 과정과의 관계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으로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토대 관계
한 믿음을 위한 적절한 근거를 갖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그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정당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믿음은 적절한 근거에 적절히 토대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폴록이 제시한 예를 통하여 이 요소를 살펴보자.
한 남자가 그의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을 적절한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증거를 체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관한 한 그 남자의 어머니는 전적으로 신빙성이 없으며 자신의 부인에 대하여 편견을 갖고 있고, 그 남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이 아들은 어머니의 증언에 토대하여 자신의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는다.
이 남자는 비록 자신의 믿음을 정당하게 만들기 위한 적절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그 믿음이 아직 그에게 정당하지 못하다. 그 믿음이 적절한 근거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토대 관계
- 토대 외재론: 위의 예에서 믿음의 결함은 믿음과 증거 사이의 인과적 관계(내성 불가)가 결여된 데에 있다고 본다. 위 남자가 어머니의 증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증거 때문에 자신의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었더라면, 그 믿음은 적절한 증거에 토대를 둔 믿음으로 정당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 토대 내재론: 위의 남편의 믿음이 갖는 결함은 올바른 인과 관계가 결여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이 증거와 믿음 사이의 적절한 정당화 관계를 부인하고 인식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남편이 자신의 증거가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갖는 효력을 인식하였더라면, 그 믿음이 그 증거에 토대를 두게 되었을 것이고 정당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문제의 믿음과 적절한 증거 사이의 지지 관계에 대한 (상위의) 믿음이 인식정당성을 위한 토대 관계를 이룬다.
내재론/외재론 구분과 전통적 견해/발생적 견해의 구분
인식정당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의 두 가지 중요한 경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인식 주체의 평가에 따른 상위 믿음의 요구
2. 인식정당성을 심리 상태의 함수로 봄에 따른 반인과론
(2는 모든 전통적 견해가 공유하는 특성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전통적 견해임을 주장하는 이론들 내에서 자주 나타나는 성향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위의 1과 2의 경향을 철저히 옹호하는 전통적 이론은 철저히 내재론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인과에 대한 고려가 인식정당성의 결정에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주어진 근거와 하위 믿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상위 믿음을 하위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간주하는 이론은 근거와 하위 믿음 사이의 토대 관계를 그 상위 믿음을 통하여 분석하는 선택지밖에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그 이론은 토대 내재론이 된다.
그리고 한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철저히 인식 주체에 대한 평가와 연관시킬 때, 그 이론은 적절성 내재론이 된다. 인식정당성의 평가를 인식 주관의 평가를 통하여 정의하는 관점에서는, 주어진 근거에 대한 반성적 고찰의 결과로 문제의 믿음이 참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면, 그 근거는 믿음에 대한 적절한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근거를 통하여 문제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나무랄 데가 없으므로 그 근거는 주어진 믿음을 정당하게 하기에 적절하다고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발생적 견해는 인식 주관보다는 인식 상태 내지 인식 성향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은 결과주의적 평가와 긴밀히 연결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선 발생적 견해가 적절성 외재론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발생적 견해는 믿음의 정당성을 그 믿음의 발생 과정의 함수로 본다. 그렇다면, 발생적 견해는 이 장에서 살펴 본 과정주의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발생적 견해는 토대 외재론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전통적 견해와 발생적 견해의 구분은 적절성과 토대의 차원에서의 내재론과 외재론의 구분과 평행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았다. 한편, 근거의 차원에서 내재론/외재론의 구분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앞서 근거 내재론과 근거 외재론을 거론하는 부분에서 설명하였듯이 인식정당성에 대한 이론은 본성상 근거 내재론의 형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정당성의 문제에 논의를 제한할 때 내재론과 외재론의 구분은 적절성과 토대의 차원에서만 흥미롭게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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