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idiere, N., Scott-Phillips, T. C., Sperber, D. (2014), “How Darwinian Is Cultural Evolution?”,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369: 20130362
1. 문화에 적용된 개체군 사고
문화적 진화를 모델링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단순화·이상화가 필요하다. 모델링 목적에 맞춰 어떤 요인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의 모델링이 가능한데, 기존 모델들은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사이의 유비가 잘 성립하는 요인들에 초점을 맞췄다. 이와 같은 유비는 문화적 진화 모델링에 많은 도움이 됐지만, 당연히 둘 사이의 유비는 완벽하지 않다. 문화적 진화에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문화적 진화에서 변이(variation)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진화와 얼마나 유사하느냐에 따라, 문화적 진화를 모델링하는 설명틀(explanatory frames)을 구분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Richerson & Boyd, Godfrey-Smith의 제안을 종합하여 포함 관계에 있는 네 가지 설명틀을 구분한다.
개체군적(populational) 설명틀: 한 시스템(e. g. 문화)을 서로 다른 유형의 비교적 자율적인 요소들이 모인 개체군으로 본다. 시스템을 이루는 각 유형들의 빈도는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진화적(evolutionary) 설명틀: 특정 시간 단계의 서로 다른 요소들의 유형들의 빈도가 그 이전 시간 단계의 그것들의 빈도에 의해 잘 설명된다.
선택적(selective) 설명틀: 개체군의 구성 요소들이 변이, 대물림, 적합도 차이를 나타내고, 개체군이 그 구성 요소들의 재생산을 통해 변화한다.
복제적(replicative) 설명틀: 개체군 내의 대물림이 일종의 복제(replicat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밈학(memetics)에 따르면 복제적 설명틀이 생물학적 진화에 만큼이나 문화 진화에 잘 적용된다. 그러나 선택이 작용하기 위해 복제가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필요는 없으며, 복제적 설명틀보다 넓은 선택적 설명틀이 복잡한 문화 현상·문화의 누적적 성격에 대한 더 풍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문화적 진화 모델링은 대개 선택적 설명틀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저자들은 문화적 진화에는 선택적 설명틀이 아니라 더 넓은 개체군적, 진화적 틀에서 더 잘 설명되고 모델링되는 측면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문화적 끌림(cultural attraction)이라는 과정이다. 문화적 끌림은 문화적 진화를 설명할 때 중요하지만, 선택적 설명틀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개의 경우 문화적 끌림은 더 넓은 개체군적이거나 진화적인 틀로 설명해야 한다. 복제자 기반 선택이 선택의 한 유형인 것처럼, 선택은 끌림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2. 역학적 현상으로서의 문화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문화가 '역학적'(epidemiological)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문화적 요소들(cultural items)의 개체군은 다른 개체군, 즉 그 문화적 요소들을 전파하는 개체군(생물)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마치 병원체와 숙주가 공진화하듯, 문화적 요소와 그 숙주(?)도 공진화한다. 사람의 경우 그러한 공진화가 두드러지는데, 왜냐하면 생물학적 적합도가 문화적 요소에 밀접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역학적 현상에 다양한 유형이 있듯이 문화적 진화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 따라서 문화적 진화를 특정 역학적 현상과 비교하는 경우, 문화적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특정 가정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적 진화를 감염성 질병과 비교하는 경우, 문화적 요소가 마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처럼 그것 자신을 복제하거나 재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으로 흔히 언급되는 것은 모방(imitation)이다.
한편, 문화적 진화를 비감염성 질병(e. g. 병원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염성 있는 정신병)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그 문화적 행동이 부분적으로는 숙주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경우들에서 타인들의 행동은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기폭제(trigger)의 역할을 하거나(e. g. 웃음의 전파), 아니면 모방의 대상과 기폭제로 모두 역할을 한다(e. g. 중독의 전파). 이런 경우들은 일반적으로 복사라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재생산(reproduction)이라기보다는 한 유형의 개별자를 더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재-생산(re-production) 또는 재발(recurrence)의 사례들이다. // 복사·재생산과 재-생산·재발의 뉘앙스 차이를 파악하기가 조금 힘들다. '복사·재생산'에는 한 대상을 주형(template) 삼아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 같고, '재-생산·재발'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
역학과의 비교가 시사하는 점은 문화 전파의 메커니즘과 패턴이 다양할 수 있고 그 중 상당수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비가 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단어를 배울 때 발음은 모방을 통해 익히지만, 그 의미를 익히는 것은 모방으로는 안 되며 추론적인 재구성 과정이 필요하다. 흔히 문화적 진화룰 모델링할 때 문화가 오로지 혹은 대부분 모방에 기반을 둔 복사를 통해 전파된다고 가정하는데, 문화 전파의 방식은 그밖에도 재-생산, 재발 등 다양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문화 전달의 보존적 측면과 구성적 측면
생물에서 똑같은 형질이 다음 세대에 나타나는 것은 대물림에 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개체군의 문화적 요소도 다음 세대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문화적 안정성(cultural stability)을 보인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안정성도 충실한 대물림에 의해 일어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윈이 생물학적 대물림의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몰랐듯이, 우리도 문화적 대물림의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위와 같은 주장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1) 다윈에게 대물림의 분자적 메커니즘은 관찰 불가능했는데, 문화적 전달의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문화 전달 그 자체가 평범한 개인들의 관찰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우기, 가르치기, 태도와 가치를 공유하기 등은 모방과 의사소통 같은 관찰 가능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문화 전파가 하나가 아닌 여러 기본적인 메커니즘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모방이나 복사를 통해 몇몇 문화적 요소가 전파된다고 하더라도, 상당수는 그렇지 않다. 특히, 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학생이 강의 들으면서 노트 필기를 할 때, 강의자의 철자 오류를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적는다.
이처럼, 문화적 전파는 부분적으로는 보존적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재)구성적이기도 하다. 보존과 (재)구성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문화 전달 사례마다 다르다. 따라서 거의 전적으로 보존적인 생물학적 대물림과의 직접적인 유비는 잘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모든 문화 전달이 그저 보존적이기만 하다면, 때때로 나타나는 복제 오류(생물학에서 돌연변이에 해당하며, 앞서 말한 강의자의 철자 오류 등이 한 사례이다)도 복제에 의해 보존될 것이다. 그런 오류가 빈번하다면, 선택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에는 대물림 가능성이 너무 낮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문화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두 가지 존재한다.
(1) 전달 요인(transmission factor): 사람들은 여러 모델들을 복사하고 평균화하여 변이를 제거할 수 있다, 또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모델을 복사할수도 있다. 이 두 절차 중 하나가 일어나면 복사 에러의 누적적인 효과를 중화시킬 수 있다.
(2) 구성적 과정: 서로 다른 투입값(input)을 유사한 방식으로 변환하여, 산출물(output)이 특정 유형들로 수렴하는 경향을 가지도록 만든다. 이런 경향을 ’문화적 끌림‘이라고 부르며, 수렴된 특정 유형을 ’끌개’(attractor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빨강'이라는 용어는 엄격한 경계를 갖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형적인 빨강으로 여기는 색(끌개)은 존재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색 지각 시스템이 보편적이라 ‘빨강’처럼 기본적인 색을 가리키는 용어의 의미는 대체로 특정 색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적인 색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 '진홍색', '남색' 같은 경우 가리키는 대상에 다양한 변이가 나타난다.
이런 구성적 편향·수렴·끌림의 원인은 색 지각의 경우처럼 심리의 물리적 기반(psycho-physical) 때문일 수도 있고, 심리적일 수도 있고, 특정 역사적 혹은 환경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미시적 수준에서 문화 전달이 낮은 충실도를 보이더라도, 전달 요인과 구성적 과정 때문에 거시적 수준에서 문화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다. 물론 문화적 요인마다 전달 요인과 구성적 과정 중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한지는 다르며, 경험적으로 조사해봐야 하는 문제이다. 전달 요인은 선택적 설명틀을 이용해 모델링될 수 있지만, 구성적 과정은 다른 유형의 개체군적 설명틀을 이용해 모델링해야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