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elny, K. (2016), "Cooperation, Culture, and Conflict",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67, pp. 31-58.
I. 몇 가지 예비 사항
1. 지질시대 구분
2. 협력의 진화와 관련된 용어
- 협력 ≠ 이타주의
- 상리(mutualism): 협력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모두에게 공유되는 경우. e. g. 구성원들이 함께 포식자를 탐지하고 쫒아내기
- 호혜성(reciprocation): 협력의 결과가 나중에 나타나는 경우. e. g. 흡혈박쥐가 섭취한 피를 서로 공유하는 것
- 무임승차(freeriding): 어떤 개체가 집단적인 행위에 협력은 하지 않고 이익만 취하는 일. 어떤 집단에 무임승차가 만연하면 협력이 진화하기 어렵다. 반면 어떤 집단에서 협력이 진화했다면 그 집단은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3. 인간 사회의 변화
영장류 사회(플라이스토세 초~중기)
- 집단이 서로 가까운(intimate) 여러 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 집단 내에 사회적 위계가 존재한다.
- 정해진 활동 영역이 있다.
- 협력은 제한된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 사회적 학습과 의사소통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능동적으로 가르치는 행위는 없다.
- 원시적 도구를 사용한다.
수렵·채집 사회(플라이스토세 중~후기)
- 한 집단이 여러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가족들끼리 꼭 가까운 친족 관계는 아니었다.
- 한 지역에 속한 여러 집단들 간에 서로 생식적, 정보적 협력과 교류가 있었다. 집단들이 동맹, 호혜 관계, 친족 관계 등으로 엮여서 상위집단(metaband)을 형성하기도 했다.
- 큰 동물을 사냥하기도 했으나, 사용하는 무기가 치명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 사회적으로 전달된 정교한 기술과 지역 환경에 대한 상세한 자연사 지식 등이 협력에 이용되었다.
- 집단 구성원들은 평등했다. 대물림되는 부의 차이가 없었고, 정치적 지도자도 없었다.
- 한 지역에 정착하기보다는 계속 이동했다.
- 수렵·채집 성공의 기복을 식량 저장이 아닌 구성원들 간 식량 공유를 통해 해결했다.
정착 사회(1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홀로세 전환기 이후)
- 농경 및 정착 생활을 했다.
- 수렵·채집 집단에 비해 집단 크기가 커졌고 사회가 복잡해졌다.
-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평등했다.
-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점차 늘어났다.
II. 논문의 중심 내용
1. 중심 주장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협력과 관련해 두 번의 중요한 전환이 있었다다. 첫째는 플라이스토세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수백만 년 동안 영장류 사회에서 수렵·채집 사회로의 전환이다. 둘째는 약 1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홀로세 전환기에 있었던,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다. 두 전환기에 협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첫째 전환기에 협력은 처음에는 상리적인(mutualist) 상호작용에 의해, 나중에는 호혜적(reciprocative) 상호작용에 의해 진화했다. 둘째 전환기에 협력은 공동체 사이의 충돌에 의해 추동된 집단 선택으로 인해 진화했다.
2. 플라이스토세: 인간 집단 간 충돌과 집단 선택
요약: Bowles & Gintis는 플라이스토세에 인간 집단 간 충돌이 만연했으며, 따라서 협력이 집단 선택을 통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저자인 Sterelny는 충돌이 Bowles & Gintis가 말하는 것보다 적었으며, 설사 충돌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집단 선택이 일어났다는 근거는 아니라고 말한다.
Bowles & Gintis: 플라이스토세에는 인간 협력의 진화에 집단 선택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기후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고 변화 폭도 커서 인간 집단들이 생존의 위협에 자주 맞닥뜨렸다. 따라서 자원을 놓고 집단 간 충돌이 흔히 벌어졌다. 수렵·채집의 성공은 집단 간 충돌에서의 승리에 달려 있었으며, 구성원들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집단이 승리하여 살아남았을 것이다.
Sterelny:
(1) 플라이스토세에 인간 집단 간 충돌은 Bowles & Gintis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
- 민족지학 연구에 따르면, 기근이 있을 때 수렵·채집인들은 집단의 크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e. g. 여러 가족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이 가족 단위로 쪼개진다.
- 민족지학 연구에 따르면 많은 수렵·채집인들의 문화에서 전사들을 영웅으로 보기보다는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
- 플라이스토세의 동굴 미술에 사냥과 성에 관한 것은 많지만 사람 사이의 폭력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2) 물론 충돌이 있긴 있었겠지만, 집단 간에 폭력적 충돌이 만연했다는 것과 그러한 충돌에 가담하는 것이 성공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즉, 충돌에 가담했던 집단은 오히려 생존에 불리했을 수 있다. 수렵·채집 집단 간의 충돌은 농경 집단 간 충돌과 비교해볼 때 위험 부담(risk)은 크고 이익은 적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수렵·채집인들은 공격 대상으로 너무 어려운 상대이다. 수렵·채집 집단이 머무르는 곳은 다른 집단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농부들은 토지에서 혼자 일할 때가 많지만 수렵·채집인들은 함께 이동하므로 서로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수렵·채집인들은 무기도 지니고 있다.
- 수렵·채집인들을 노릴 만한 유인이 적다. 수렵·채집인들은 물질적인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노예로 잡는다고 해도, 도망을 못 치게 감시하는 데에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 다른 집단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면 수렵·채집 효율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수렵·채집 활동 시에 매복을 걱정해야 한다.
집단 선택을 옹호하는 대안적 주장: 충돌에 의존하지 않는 문화적 집단 선택 모형을 옹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플라이스토세의 기후 변동은 인간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는데 협력적인 집단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들보다 이를 더 잘 극복했을 것이다. 따라서 협력적인 집단에 대한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Sterelny: 그런 식의 집단 선택론은 협력적인 개체가 잘 살아남는다는 개체 수준 선택에 부연 설명을 덧붙인 것일 뿐이다.
3. 플라이스토세: 상리적 상호작용에서 호혜적 상호작용으로의 변화
요약: 플라이스토세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협력은 무임승차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상리적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었다. 그 이후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호혜적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협력이 나타났다. Bowles & Gintis는 플라이스토세 인간 집단이 구성원들끼리 서로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컸기 때문에 호혜적 상호작용이 나타나기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Sterelny는 구성원들끼리 서로 잘 알 정도로 인간 집단 크기가 작았다고 반박한다.
Sterelny: 협력의 진화 초기에는 호혜성이 아닌 상리에 의거한 협력이 나타났다. 상리적 협력은 협력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모두에게 공유되는 경우를 말한다. 상리의 경우도 무임승차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e. g. 위험한 활동에서 행위자들이 몸을 사리려고 할 수 있다), 호혜적 협력보다는 훨씬 적다. 호혜적 상호작용에서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래에 상호작용이 확실히 일어날 것을 보증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개체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상리적 상호작용에서 이런 문제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호혜적 협력이 플라이스토세 말기(약 10만 년 전)에 점차 중요해졌다. 이 시기에 빠른 속도로 투사체를 발사하는 무기가 발명됐고, 좀 더 작고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게 되면서 사냥꾼 무리(party)의 크기가 작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의 분업을 야기했는데, 서로 다른 식량 자원은 서로 다른 장소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전문화된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호혜성에 기반을 둔 협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호혜적 협력은 더 위협적인 무임승차 문제에 직면했지만, 협력적 개체들에 유리한 선택에 의해 안정화될 수 있었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만족될 때 호혜적 협력이 선택될 수 있다.
- 상호작용이 자주 일어난다.
- 상호작용의 결과가 식별되고(identified), 기억되어 부정행위가 노출된다.
- 부정 행위가 적은 비용으로 제재될 수 있다.
Bowles & Gintis: 위의 조건들은 플라이스토세 말기 인간 집단에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모형들은 인간 집단이 투명하다고(= 집단 구성원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 유전적 분석에 따르면 집단(daily association, focal population)은 20-30명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 만약 대부분의 집단이 20-30명 규모일지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보다 훨씬 큰 단위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Sterelny: 플라이스토세 말기 인간 집단의 크기는 20-30명 정도였다. 이들은 수렵·채집 활동을 같이 했고 오랫동안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살았다. 또한 같은 지역에 속한 집단들의 클러스터도 800-1000명 정도로, 개개인이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았다.
유전적 분석은 지역의 혼인 범위(local mate market)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상위집단의 크기에 대해 알려줄 수는 있어도 매일 상호작용하는 집단의 크기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수렵·채집 사회 중에서도 크고 복잡한 구조를 이룬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식량의 밀도가 높고 [시간적, 공간적 분포가] 예측 가능하며 저장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중기, 후기 플라이스토세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볼 만한 고고학적 근거는 없다.
4. 플라이스토세: 책임 회피, 괴롭히기, 처벌
무임승차에는 책임 회피(shirking)와 괴롭힘(bullying)의 두 가지가 있다. 책임회피는 협력의 이익을 받기만 하고 자신의 것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괴롭힘은 힘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빼앗는 것이다. 협력의 진화에 대한 기존 문헌들은 무임승차를 책임 회피로 모형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무임승차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괴롭힘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괴롭힘은 그 근원이 매우 오래되었다. 영장류 사회에는 괴롭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 결과로 영장류 사회는 즉각적 보상(immediate-return)에 기반을 두고 있다[상리적 협력]. 인간 사회가 지연된 보상(delayed-return)에 기반을 둔[호혜적 협력] 사회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괴롭힘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 책임 회피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 민족지학에 따르면 수렵·채집인들은 괴롭힘을 사회의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한다. 괴롭히는 사람이 우월한 지위에 놓이게 되면 자원을 불공평하게 차지하고,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구성원들 간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 괴롭힘 통제는 책임회피 통제보다 어렵다. 괴롭히는 사람들은 보통 신체적으로 강력하고, 주변에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민족지학에 따르면 괴롭히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언어, 계획세우기, 명시적 규범(explicit norms), 친족 시스템(kinship systems), 기술(technology) 등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상당히 늦게 진화한 특징들이다. 그럼에도 이 특성들이 충분히 진화하기 전인 170만 년 전에 이미 지연된 보상 행동이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괴롭힘을 부분적으로라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Sterelny는 그러한 통제가 가능했던 것은 협력적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신뢰와 정서적 유대감 덕분이라고 말한다. 협력을 통해 포식자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소형·중형 포식자를 쫓아내고 사냥감을 빼앗으면서 초기 인류는 협력, 동료 선택, 신호 보내기, 평판 관리하기 등을 위한 인지 능력을 발달시켰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가능해진 협력적 상호작용은 괴롭히는 사람을 제거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었다.
5. 홀로세: 농경으로 인한 복잡한 사회의 출현과 집단 선택
플라이스토세에 나타난, 개인들의 이익에 기반을 둔 협력은 홀로세에 문화적 집단 선택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조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많은 분량의 충실도 높은(high-fidelity) 사회적 학습이 집단 내의 표현형 변이를 줄이는 한편 집단 간 표현형 변이는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협력적 집단에 유리한 집단 선택이 일어난다. 특히 플라이스토세-홀로세 전환기에 농경, 정착 생활, 식량 저장 등이 시작되어 큰 규모의 사회들이 출현하면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잘 알고 있을 때의 협력과는 다른 협력이 나타난다.
홀로세에 농경을 통해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집단 크기가 커지면서 구성원들의 역할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는 덜 밀접하고, 덜 투명해졌으며 반복된 상호작용도 보장되지 않았다. 또한 농업에서의 성공은 물질적 자원, 특히 비옥한 땅에 의존했는데, 땅은 모을 수 있고 대물림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세대를 거듭할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강화되었고, 이는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수렵·채집인들과 다른 형태의 협력을 출현시켰다. 정치 지도자들은 무임승차자가 되어, 협력의 이익이 그 이익을 얻는 데에 기여한 사람들에게서 박탈됐다. 즉, 사회에서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협력의 이익이 많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협력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가?
여기서 집단 선택이 역할을 했다. 수렵·채집인의 의사 결정은 긴박한 경우가 별로 없었으나(e. g.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논의할 수 있었다), 초기 홀로세는 집단 간 충돌이 빈번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응집력 있고 하향식 지휘 및 통제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집단이 선택됐다.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여기에 저항할 수 없었는데, 지도자의 보복의 위협도 있었고 외부의 적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자기 집단에서 가난하게 사는 편이 다른 집단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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