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troduction
화학혁명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현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옳기 때문에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승리했다고 보았다. 이제 이런 연구들은 휘그주의적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기존 연구들이 충분히 휘그주의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약 휘그주의가 과거의 과학 이론들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화학혁명에 대해서는 충분히 휘그주의적이지 않았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라부아지에의 이론도 플로지스톤 이론만큼이나 틀렸기 때문이다. 산에 대한 이론, 열에 대한 칼로릭 이론, 연소 이론은 라부아지에 체계의 세 가지 핵심이었는데, 이 세 가지 모두 현대 화학과 분명하게 배치된다. 또한, 여러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라부아지에보다 나은 점들이 있었다. 캐번디쉬는 라부아지에보다 더 정밀하게 질량 측정을 했고, 프리스틀리는 연소와 생리 반응에서 산소의 역할을 밝혀냈다. 화학혁명에 대한 기존의 역사 연구에서 잘못된 것은 휘그주의가 아니라 승리주의(triumphalism)이다.
2. Lavoisier Was Quite Wrong or Useless, Whiggishly Speaking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상당히 잘못됐고,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나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1815년 경에도 라부아지에의 중요한 가정들은 틀렸다고 판명됐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라부아지에의 이론에서 틀린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산에 대한 이론. 라부아지에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산이 산소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당시에도 산소를 포함하지 않는 것같아 보이는 산들이 알려져 있었다. 염산(HCl), 시안화수소산(청산, HCN) 등. 이미 19세기 초에 험프리 데이비는 라부아지에의 산 이론이 완전히 잘못되었고 되살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라부아지에가 '산소'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소가 산을 만든다는 주장은 라부아지에 체계에서 중요했다.
(2) 연소에 대한 이론. 라부아지에는 연소를 산소 기체가 산소 기저(oxygen base)와 칼로릭으로 분해되고, 산소 기저가 가연성 물질과 결합하고 칼로릭은 열의 형태로 방출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이에 따르면 연소 과정에서 만들어진 열은 산소 기체에서 왔다. 게다가 라부아지에는 기체 상태의 산소가 연소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연소 현상이 여러 가지 있다. 질산이 특정 기름에 부어졌을 때 일어나는 급격한 연소에는 산소가 액체 상태로 반응에 관여하고, 밀가루의 폭발에는 밀가루에 있는 질산칼륨의 산소(고체 상태)가 관여한다. 그리고 많은 열과 빛이 나오는 어떤 반응(겉보기에 연소로 보이는)에는 산소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황이 몇몇 금속과 결합하는 반응 등. 한편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따르면 산소 이외의 기체들의 결합에서 열과 빛이 나와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수소와 질소가 결합하는 반응 등.
많은 후기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산소가 가연성 물질과 결합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연소 시 열과 빛의 방출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의 이론 체계에서는 산소와 플로지스톤이 공존했으며, 플로지스톤은 연소 반응에서 현재에는 에너지 관계라고 파악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쓰였다.
(3) 열에 대한 칼로릭 이론. 라부아지에에게 칼로릭은 단지 연소 시의 열의 방출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우주론의 본질적 요소였다. 예를 들어 물질의 세 상태를 설명하는 데에 쓰였다. 라부아지에는 화학 원소 목록의 맨 위에 칼로릭을 놓았으며, 그의 교과서 첫 장 전체는 칼로릭의 본성과 역할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되었다.
위의 세 가지보다 오래 지속된, 라부아지에의 다른 중요한 기여들이 있었지만 많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더 빨랐거나 더 나은 경우가 많았다. Siegfried에 따르면 현대에 라부아지에 이론에서 중심적이고 독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은 사실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나온 것들을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Klein과 Lefevre에 따르면 화학 물질들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분류는 기존의 분류와 별로 어긋나지 않는다.
Perrin은 라부아지에의 기여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든다. 산화 과정, 화학 물질 조성 체계, 반응 전후 물질의 보존과 원소에 대한 조작적 정의, 화학식의 형식화, 열화학, 유기물 분석, 생리학.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산소를 분리하고 산소의 화학적, 생물학적 속성들을 밝혀내는 데에는 쉴레나 프리스틀리 같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의 공이 컸다. 산소가 호흡에 좋은 공기라는 점을 밝힌 것은 프리스틀리(와 그의 실험용 생쥐)였다. 공기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였다.
(2) 연소와 하소가 같은 반응이라는 점을 밝혀낸 것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었다.
(3) 산소의 조성에 대한 연구는 캐번디쉬와 프리스틀리가 먼저 수행했다. 캐번디쉬는 가연성 공기(수소)와 탈플로지스톤화 공기(산소)가 물을 생성한다는 점을 밝혔고, 이 과정에서 질량 변화가 없다는 점도 보였다. 라부아지에는 캐번디쉬의 발견에 대해 새로운 이론적 해석을 한 것 뿐이었다.
(4) 라부아지에가 정밀한 질량 측정을 강조한 것, 화학식에서 질량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도 완전히 새롭거나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라부아지에는 물에서 산소 대 수소 질량비가 85:15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8:1이다.
(5) 라부아지에가 화학 원소에 대해, 분해되지 않는 것이라는 준-조작주의적(quasi-operationalist) 개념을 도입한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많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이었다.
(6) 라부아지에의 유기 화학에 대한 기여는 화학자 공동체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라부아지에의 정말로 새롭고 계속 지속된 기여는 화학 물질 명명법 뿐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것만으로 그에게 '현대 화학의 아버지'와 같은 칭호를 붙이는 것이 합당할까? 어떤 사람들은 라부아지에의 기여가 새로운 발견을 한 것보다는 기존의 모호한 아이디어들에 대한 우월한 체계화라고 본다. 하지만 라부아지에의 체계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의 체계들에 비해 어떤 점에서 우월한지 꼭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3. Phlogiston Was Not So Bad, Whigishly Speaking
플로지스톤 이론에는 여러 강점들이 있었다.
(1) 휘그주의적으로 말해서, 플로지스톤은 화학적 포텐셜 에너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질량을 중시하는 산소 이론에서는 완전히 잃어버린 개념이다. Odling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의 중요한 통찰은 가연성 물질들이 공통된 힘(power) 혹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모든 가연성 물질에서 같으며, 가연성이 아닌 물질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에너지를 산소 기체 안에 칼로릭의 형태로 있다고 잘못 생각했다. 왜 다른 기체들에 포함된 칼로릭은 연소를 일으킬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으면서.
(2) 다른 휘그주의적 접근으로, 플로지스톤과 전자를 연결시킬 수도 있다.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금속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 금속들이 플로지스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는 금속들이 자유 전자의 바다(see of free electrons)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속성을 나타낸다는 현대 화학의 설명과 유사하다. 게다가 전기로 금속회를 금속화할 수 있다는 점도 플로지스톤과 전자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루이스(Gilbert Newton Lewis)는 "만약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연소되고 있는 물질이 플로지스톤을 방출하면서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한다고 말했다면 플로지스톤 이론은 fallen into disrepute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Lewis 1926: 167-168). 라부아지에의 이론으로 넘어가면서 금속성에 대한 설명을 못 하게 되었고, 이는 쿤 손실(Kuhn loss)의 사례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연소 시 발생하는 빛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플로지스톤 이론이 라부아지에의 이론보다 우월했다. 현대에는 불을 양이온과 전자가 혼합된 플라즈마로 본다. 이는 플로지스톤을 전자로 보는 관점과 잘 부합한다.
또한, 물의 전기 분해와 관련된 문제도 플로지스톤과 전자의 연관성을 뒷받침한다. 당시에는 산소 이론대로 전기가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한다면 왜 두 기체가 같은 곳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극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왜 항상 산소는 양극에서 나오고 수소는 음극에서만 나오는지가 골칫거리였다. 리터(Johann Wilhelm Ritter)는 물이 화합물이 아니라 원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양극에서 양의 전하와 물이 결합하면 산소가 나오고, 음극에서 음의 전하와 물이 결합하면 수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음의 전하, 즉 전자가 플로지스톤이라고 한다면, 리터의 설명은 플로지스톤화 물이 가연성 물(수소)과 탈플로지스톤화 물(산소)이 결합하여 물이 생성된다는 캐번디쉬의 주장에 부합한다.
4. The Enemy Is (and Always Was) Triumphalism, Not Whiggism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한 논의. 승리주의와 휘그주의를 비교하는 내용. 생략.]
5. Pluralism Is a Direct Anidote to Triumphalism
[다원주의적 역사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 생략.]
6. There Is Much More to Do on the Chemical Revolution
화학혁명에 대해 흔히 제기된 질문은, "왜 대부분의 화학자들이 플로지스톤 이론을 빠르게 버리고 라부아지에의 이론을 채택했는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승리주의의 입장에서, 라부아지에가 옳았기 때문이라거나, 최소한 어떠어떠한 덕목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변에는 문제가 있고, 게다가 질문 자체도 잘못 제기되었다. 라부아지에의 승리는 빠르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았다(Chang 2010). 라부아지에의 지지자 대 반대자들의 논쟁은 라부아지에의 죽음(1794) 이후로도, 심지어는 프리스틀리의 죽음(1804)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다. 라부아지에의 반대자들은 라부아지에와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이어 나갔는데, 왜냐하면 플로지스톤 이론이 갑자기 못 쓰게 된 것도 아니고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리주의 관점을 버리고 다원주의 관점을 채택하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다.
(1) 라부아지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전에 어떤 전통들이 있었고 그 전통들은 화학혁명 중과 그 이후에 어떻게 지속되었는가? 플로지스톤 이론은 프리스틀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연구되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라부아지에 작업을 플로지스톤 이론의 연속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플로지스톤 이론의 지지자와 반대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친화력 기반(affinity-based) 화학이라는 넓은 전통에 있었다는 점이다. 플로지스톤과 친화력은 기체 화학과 염(salts) 화학에서 복잡하게 상호작용했다. 한편으로 약학 등 좀더 실용적인 전통과, 좀더 "철학적인" 전통의 화학과의 상호작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 왜 몇몇 사람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계속 믿었는가?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과 라부아지에의 이론을 모두 거부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화학을 연구하였는가?
(3) 왜 몇몇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플로지스톤을 포기했는가? 새로운 이론으로의 "개종"은 항상 all-or-nothing이 아니었다. 각 경우들에 라부아지에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4) 왜 많은 사람들은 경험적 증거가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가? 두 가지 주된 요소가 있다. 첫째, 널리 알려진 점으로, 라부아지에와 그의 동료들은 수사력이 뛰어났다. 둘째, 덜 알려진 점으로,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18-19세기 화학의 전반적인 경향성과 더 잘 부합했다. 라부아지에의 "혁명"은 큰 파도 위에 올라탄 것이었는데, 그것은 화학 반응을 안정적인 gravimetric 구성요소들의 분해와 재조합으로 개념화하려는 경향이다. (저자의 책 Is Water H2O? 참고)
(5) 어떤 아이디어들이 현대 과학과 관련되는가?
(6) 왜 화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은 라부아지에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지속되었고 현대 화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했는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