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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9일 수요일

[요약정리] Chang, H. (2012), "Incommensurability: Revisiting the Chemical Revolution"

1. 도입

호이닝겐-휘네(Paul Hoyningen-Huene)는 화학혁명이 쿤의 도식에 잘 들어맞는 사례라고 했지만(Hoyningen-Huene 2008), 화학혁명에서 공약불가능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화학혁명에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공약불가능성이 생겼는가?

호이닝겐-휘네와 생키(Howard Sankey)는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과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을 구분했다.

-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 이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의 의미가 이론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 과학 이론을 평가하는 이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방법론적 기준이 없다.

저자는 화학혁명에서 상당한 정도의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은 존재했지만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은 매우 약했다고 주장한다.

 

 

2.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했는가?

저자는 이론적 층위에서는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했지만, 조작적 층위와 현상적 층위에서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1. 직접적으로 번역 가능한가?

두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서로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래서 두 패러다임이 의미론적으로 공약가능하다는 사람들은 두 패러다임이 직접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연소, 하소: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과정” = “산소가 결합하는 과정

 

하지만 저자는 번역이 항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위의 예를 다른 경우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어색한 결과가 나온다.

-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 = “산소가 풍부한 공기

- “산이 금속에서 플로지스톤을 빼낸다” = “산이 산소의 부재(absence)를 빼낸다

금속 특유의 성질은 금속이 플로지스톤을 함유하고 있어서 나타난다” = “금속 특유의 성질은 금속이 산소가 함유하고 있어서 나타난다

따라서 두 패러다임은 직접적으로 번역 불가능하다.

 

2.2. 두 패러다임의 표현들이 공지시적인가?

키처(Philip Kitcher)는 두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들이 공통적인 지시체를 가진다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완전한 번역은 불가능하더라도, 두 패러다임의 표현들이 공지시적이면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쿤과 키처는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는데, 후기 쿤은 키처의 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서 공약불가능성을 두 패러다임의 분류 체계(혹은 어휘 구조)의 변화로 해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약 불가능성은 두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용어들의 의미가 동일한지의 문제라기보다는, 두 패러다임이 대상들을 동일하게 분류하는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Klein and Lefèvre (2007)에 따르면, 화학혁명 전후로 물질을 분류하는 심층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플로지스톤화되었다거나, 플로지스톤이 풍부하다고 하는 물질들은 라부아지에의 체계에서도 하나의 범주로 준류된다. 키처에 따르면 라부아지에의 용어로 이 물질들은 산소에 대한 강한 친화성(affinity)을 가지고 있는 물질들이다. 물질의 분류 구조와 마찬가지로 과정의 분류 구조와 조작(operations)의 분류 구조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플로지스톤을 넣는 조작은 산소를 제거하는 과정에 대응한다. '플로지스톤화'라는 용어와 '산소의 제거'라는 용어의 의미는 매우 다르지만, 이 용어들은 같은 과정들을 지시한다.

따라서 존재론적 층위와 조작적 층위에서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 별로 성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 상황이 복잡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a) 거친 모서리: 공약가능성에는 여러 예외가 있었다. 공약가능성은 각 이론의 여러 분류 층위에서 다양한 정도로 나타난다.

(b) 복수 공약가능성: 공약가능성은 이행적이지 않다. 한 패러다임은 다른 복수의 패러다임들과 공약 가능하지만 그 패러다임들간에는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할 수도 있다. 사실 플로지스톤 이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것들 각각은 라부아지에의 이론과 상당한 정도의 의미론적으로 공약가능성했다. 예를 들어 캐번디쉬의 초기 이론에서 <플로지스톤의 제거>가 산화와 대응됐는데, 후기 이론에서는 <플로지스톤의 제거 + 물의 첨가>가 산화와 대응됐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과 현대 화학(라부아지에 이후의 화학) 사이의 공약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 플로지스톤은 현대 화학의 포텐셜 에너지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연소는 산소가 있든 없든 포텐셜 에너지의 방출에 해당한다. 이는 라부아지에의 이론과는 공약불가능하다. 또한 산화/환원 반응에서 플로지스톤이 전자에 대응된다고 할 수도 있다.

(c) 뜻 대 지시체: 둘 패러다임 사이의 공약가능성은 뜻이 아닌 지시체의 대응이다. 그런 점에서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d) 해석: 위의 (b)(c)가 시사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의 공약가능성의 성립에는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공약가능성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런 해석은 외연적 관계로 인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연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 서술의 층위: 뜻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두 패러다임은 한 층위에서는 공약가능하지만 다른 층위에서는 공약불가능할 수 있다. 최소 세 개의 서술 층위, 즉 조작적 층위(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절차들에 대한 서술), 현상적 층위(관찰 가능한 속성에 기반을 둔, 연구 대상에 대한 서술), 이론적 층위(이론 용어와 관련된 과정과 대상에 대한 서술. 혹은 관찰 불가능한 과정과 대상에 대한 서술)가 있다. 저자는 화학혁명에서 조작적 층위와 현상적 층위는 공약가능했고 이론적 층위에서는 공약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 이론에서는 라부아지에의 염화수소 라디칼(muriatic radical)에 대응되는 이론적 서술을 찾을 수 없다. 반대로, 플로지스톤 이론의 '원소', '원리'에 대응하는 이론적 범주도 라부아지에의 이론에서 찾기 힘들다.

(f) 공약불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공약가능성: 공약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패러다임 A가 대상들을 패러다임 B와 같은 방식으로 분류하는가?"이면, 우리가 그런 대상들을 어떻게 식별하는가(identify)에 대한 합의가 있을 때만 답변할 수 있(고 그래야만 애초에 질문도 할 수 있다). , 한 층위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더 낮은 층위의 서술의 공약가능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3. 방법론적 공약 불가능성이 성립했는가?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은 패러다임 평가의 기준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했다고 주장한다.

 

3.1. 문제 영역

양쪽 모두에서 중요하게 생각된 문제들

- 연소, 하소(환원), 호흡에 대한 이해

- 산에 대한 이론

- 다양한 물질들의 구성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에게만 중요하게 생각된 문제들

- 화합물의 속성들을 그 화합물의 재료들에 의거해 설명하기

- 금속의 본성과 공통 속성들

- 광물학, 지질학

- 기상학

- 영양소, 생태학

 

산소 이론가들에게만 (매우) 중요하게 생각된 문제들

- 열과 상태 변화에 대한 이론

- 염화학(chemistry of salts)

 

각 진영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에 대한 좋은 설명을 내놓았지만,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양 진영이 각자 자신들의 설명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다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가지 경우는 번역해보면 양 진영이 같은 설명을 내놓은 것이었고, 다른 경우는 양 진영이 다른 설명을 내놓았는데, 설명에 대한 평가 기준 자체에 의견 불일치가 있는 것이었다.

 

3.2. 인식적 가치들

라부아지에는 이론의 단순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플로지스톤 이론가들, 특히 프리스틀리는 이론의 완전성(문제가 되는 영역의 모든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수은의 빨간 금속회에 대한 설명이다. 라부아지에의 지지자들은 이 사례에 대한 자신들의 설명을 계속 인용했는데, 프리스틀리는 그들이 매우 예외적인 현상 하나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체적인 그림을 왜곡한다고 보았다. 반면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이론을 자꾸 수정함으로써 이론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연소에 관한 예외적인 현상도 단순성과 완전성이 대립하는 사례였다. 라부아지에는 이 현상을 포섭하기 위해 이론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그냥 무시해버렸다.

다른 한편으로 "인식적 보수주의"도 양 진영에서 의견이 갈린 인식적 가치이다.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과거의 설명과 새로운 설명이 둘 다 잘 작동하면 과거의 설명을 택했지만, 라부아지에는 새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과학적 변화에 단순히 반대했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또한, 쿤이 말했듯 같은 인식적 가치라도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방식으로 예화되기도 했다. 양 진영은 모두 통합(unity)을 중요시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통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다. 라부아지에의 칼로릭 이론은 연소 현상과 상태 변화 현상을 통합시켰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금속의 속성에 대한 설명과 금속의 하소 및 환원에 대한 설명, 금속과 산의 반응에 대한 설명을 통합시켰다. 한편으로 다른 인식적 가치인 체계성(ystematicity)은 양 진영이 서로를 공격하는 데에 사용했다.

 

3.3. 실행-기반 형이상학: 원리주의 대 조합주의

많은 사람들이 라부아지에의 최대 기여가 질량에 대한 강조라고 주장한다. 라부아지에는 질량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화학 반응에서 질량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라부아지에가 질량을 강조한 것이 저자 자신이 "조합주의"(compositionism)이라고 부르는 실험적-이론적 화학 실행의 한 유형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조합주의는 두 가지 핵심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안정적인 화학 물질들의 존재, (2) 모든 기본적인 화학 물질들의 동등한 존재론적 지위.

조합주의의 중심 아이디어는 화학 반응이란 물질들을 떼어놓고 부분들을 재배열하여 다른 물질들을 만들거나 그것들을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원래의 물질을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조합주의자들에게 화학 물질의 구성(constitution)은 조합(composition)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화학 원소들은 서로의 본성을 바꾸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조합주의는 많은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이 옹호했던 원리주의”(principlism)과 대비된다. 원리주의는 다른 물질들에, 특징적인 속성들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물질(substance)인 원리를 상정했다. 원리주의자들은 화학 실험을 원리를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옮겨서 물질을 변환(transformations)시키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 의존하고 있었다.

- (a) 질량은 화학 물질의 양에 대한 적절한 척도이다.

- (b) 질량은 보존된다.

위의 두 가정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질량이 없는 물질[원리]를 상정했기 때문에 (a)를 거부했다. 게다가 라부아지에 본인도 그의 기본 물질 목록의 맨 위에 있는 두 가지 물질, 즉 빛과 칼로릭이 질량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b) 역시 까다로운 가정인데, 질량이 왜 보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고려한다면 질량은 보존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a)(b)가 증거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지되었다기보다는 단지 가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조합주의 전체적으로는 증거에 의해 충분히 지지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답할 수가 없다. 원리주의와 조합주의는 각자에 대응되는 실험적 실행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중 많은 것들은 플로지스톤 대 산소 패러다임의 논쟁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으며 이 논쟁의 범위를 훨씬 넘는 것이었다.

 

4. 결론 및 함축

화학혁명에서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양 진영에 속한 과학자들은 서로를 잘 이해했기 때문에(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과거 패러다임 하에서 교육받았다),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은 당시의 역사적 행위자들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론 선택을 미결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문제 영역·인식적 가치들·실행-기반 형이상학에 대한 의견 불일치) 때문이었다. , 공유된 판단 기준이 없어서 패러다임들의 장점을 어떻게 비교할 지에 대해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과학적 실행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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