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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9일 수요일

[요약정리] Boudry, M., Vlerick, M. and Edis, T. (2020), "The End of Science? On Human Cognitive Limitations and How to Overcome Them"

Abstract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인지적 한계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개념들을 발전시킨다. 저자들은 표상적 접근(representational access, 실재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표상을 개발하는 능력)과 상상적 이해(imaginative understanding, 표상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관적 이해)를 구분하고, 한편으로는 인지적 한계의 두 양태인 경성(hard) 한계와 연성(soft) 한계를 구분한다. 그 다음 분산된 인지(distributed cognition)과 인지적 비계(cognitive scaffolding)를 통해 우리의 선천적 인지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들을 살펴본다. 저자들은 이렇게 마음을 확장해주는 도구들이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고 더 발달될 여지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1. Introduction
인간의 뇌는 진화의 결과물로서,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해결해야 했던 실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달된 것이지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 발달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탐구의 한계는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실재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인지 한계를 넘어서는 곳에 있는가? Fodor, McGinn, Stich 등의 신-신비주의자(new mysterians)들은 인간 뇌의 한계로 인해 실재의 일부가 영원히 신비로 남을거라고 보았다. 반면 낙관주의자들은 우리 뇌가 자연계에서 진화했고 우리 생존이 세계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었다는 점이, 세계가 우리에게 이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2. The New Mysterians
우리 마음은 진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생물학적 기관이므로 한계를 갖는다.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한계 때문에 우주에는 우리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신-신비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이 진화적 세계관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이라고 본다. Pinker에 따르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최적화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나오는 적응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뿐이다. 또한 진화는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주에 대한 이해가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자연선택되지 않는다.
Fodor는 꼭 진화에만 국한되지 않은 좀 더 일반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모든 유한한 인지 시스템은 내재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구조는 그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표상의 종류를 제한한다. 인간의 뇌도 일종의 인지 시스템이기 때문에, 뇌가 처리할 수 있는 표상에는 한계가 있다.
McGinn'인지적 폐쇄'(cognitive closure)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데, 그 문제들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우리 마음의 구조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McGinn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조합적인 방식으로만 표상을 처리한다. , 인간은 세계를 원초적 구성요소들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여 이해한다. 그런데 McGinn에 따르면 어떤 문제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의식적 상태에 대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McGinn은 자신의 입장을 '초월적 자연주의'라고 부르는데, 그런 문제들이 우리 인지 범위를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초월적'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어쨌든 그 문제들이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이라는 점에서 '자연주의'이다.
 
3. Kinds of Limits
그런데 인지적으로 폐쇄되어 있다거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가?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애매성이 있다. , -신비주의자들은 인지적 한계의 다양한 종류와 양태를 구분하지 못한다. 첫째, -신비주의자들은 인지적 한계를 흑백 논리로 본다. ,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없거나 두 가지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에 대한 탐구로 얻는 이해가 곧바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둘째, -신비주의 논증들은 한 명의, 다른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의 뇌의 한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셋째, -신비론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우리가 세계의 일부에 대한 참인 이론을 절대 갖지 못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론을 가질 수 있는데 이해는 할 수 없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3.1. Representation and Imaginative Limits
인지적 폐쇄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한 가지는 표상적 폐쇄(representational closure)라는 것으로, 세계의 일부에 인지적 장벽이 있어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표상적 접근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상상적 폐쇄(imaginative closure)라는 것으로, 세계의 일부에 대한 표상에 상상적 접근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표상적 접근은 세계와, 세계에 대한 우리 (과학적) 표상 사이의 관계를 말하지만, 상상적 접근은 우리 표상과 우리 마음의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수학자들은 4차원 입방체를 수학적으로 다루는데(표상적 접근을 하는데), 우리는 그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다(상상적 접근은 하지 못한다). -신비주의자들이 인지적 한계에 대해 말할 때 이 둘 중 어떤 것을 말하는지 불분명하다.
 
3.2. Bare Senses and Bare Brains
과학자들은 우리 감각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엑스레이, 가이거 계수기, 전파 위성, 분광기, 중력파 감지기 등등을 개발했다. 이런 도구들은 물리 현상을 인간의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준다. 우리 감각이 특정 현상에 폐쇄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답변은, 이런 감각 확장 도구들을 고려하는지에 달려있다.
감각과 마찬가지로 사고도 확장될 수 있다. 글쓰기는 우리 기억 용량을 확장시켰다. 우주를 이해하는 데에 수학과 통계학은 매우 성공적인 인지적 scaffold이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인간 뇌의 네트워크는 개별 뇌들의 총합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기어리는 이런 현상을 "분산된 인지"라고 부르고, 데닛은 "분산된 이해"(distributed comprehension)이라고 부른다. 문화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렇게 우리 인지 자원을 넓히는 방식은 집합적 문화를 출현시킴으로써 인간 종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집단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개개인이 연구하는 것보다 자연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마음을 "수평적"인 방향(동시대의 학계 동료들)"수직적"인 방향(과거의 과학자들) 모두로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신비주의자들이 한 명의 고립된 사람의 뇌의 인지적 한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되었다. 집단 지성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3.3. Hard Limits and Soft Limits
-신비주의자들은 우리 인지의 한계를 마치 단단한 벽처럼 묘사한다. 우리 이해 능력은 그 벽을 뚫을 수 없고, 그 벽 너머에 있는 것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확장하는 다양한 가능한 기술들을 고려하면, 그런 경성 한계가 있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과학사에서 사람들은 신비로 여겨졌던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하고자 시도해왔다.
정말로 인간 지식에 표상적이든 상상적이든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딱딱한 벽에 막히는 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과학의 발전이 점점 느려지는 식의 점진적인 쇠퇴에 가까울 것이다. 더 이상의 진보가 불가능한 뚜렷한 지점은 없을 것이다.
 
4. Extending Our Cognitive Reach
4.1. A Historical Perspective
많은 측면에서 인간은 이미 선천적 인지 한계를 넘어섰다. 이런 확장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답하기는 어렵다. 첫째로, 미래에 어떤 인지 확장 방법이 개발될지 알 수 없고, 인간의 표상적 접근의 한계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둘째로, 상상적 접근에 있어 우리는 인간 인지가 열려 있고 유연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신비주의자들은 우리가 표상적 접근이 가능해도 상상적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들이 있다고 조금 완화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별다른 의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미 현대 물리학에서는 그런 일에 친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상상적 인지가 경성 한계에 부딪힐지의 여부도 불명이다. 지구가 움직인다거나 미생물이 생물을 죽인다거나 단단한 물체가 사실 [미시적 관점에서 봤을 때] 거의 빈 공간으로 되어있다는 점 등은 양자역학만큼이나 반직관적이고 상식에 어긋났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오래된 이론에 익숙해지면서 그런 충격은 사라졌다. 시공간의 휘어짐이나 비국소성 같은 현상들도 익숙해지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4.2. A Case Study: Quantum Mechanics
4.2.1. The Counterintuitive Nature of Quantum World
양자역학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양자 상태는 일반적으로 복수의 관측 가능한 결과들을 표상한다. 양자역학은 단지 결과의 확률 분포만을 예측할 뿐이다. 이와 같은 확률론적 성격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애초에 확률론적인 사고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 양자 상태 벡터의 성분들은 복소수로, 그것들을 제곱하면 확률이 나온다. , 양자 상태들은 확률이 아니라 확률 진폭(probability amplitudes)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것은 양자 역학에만 나오는 개념이다.

- 양자 영역을 기술할 때 사용되는 수학에 어느 정도 자유도가 있기 때문에, 물리 상태를 표상하는 근본적인 대상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되어있지 않다. 예를 들어 상태 벡터 없이, 따라서 확률 진폭 없이 양자 역학을 형식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직관적인 수준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진전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 상상적 이해를 확장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인 비유에 대해 고려해보자.
 
4.2.2. Mind-stretching Through Metaphors
비유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거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과학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도 일견 이해할 수 없어 보였던 것을 이해하는 데에 비유를 사용한다. Thomson의 원자 모형은 푸딩의 이미지를 이용했고, Rutherford의 원자모형은 태양계 구조를 이용했다. 현대에도 일상적인 경험에서 이끌어 낸 유비는 계속 사용된다. 예를 들어 중첩(superposition)은 개념은 두 물체가 같은 공간을 점유한 것에 비유한, 얽힘(entanglement) 개념은 두 물체가 서로 묶여 있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모든 수준의 물리학 교육은 이런 비유에 의존한다. 어떤 비유들은 단지 scaffolding에 이용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우선 원자 구조에 대한 태양계 모형에 대해 배운 뒤, 그 문제점에 대해 배우면서 원자 구조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어떤 비유들은 물리학자의 작업을 실제로 이끌어 준다. 예를 들어 힐베르트 공간을 통한 양자역학 형식화는 물리학의 다른 분야에 나오는 파동과 벡터에 대한 이해에 의존하는데, 이 비유는 실제로 물리학자가 직관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힐베르트 공간을 통한 형식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형식화(e. g. 위그너 함수를 이용하는 것)도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여러 형식화들은 서로 다른 개념적 자원을 제공하고 다양한 직관적 접근을 할 수 있게 사로 다른 메타포적 scaffolding이 되어주고,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대한 감(feel)을 갖추도록 돕는다.
상상적 이해와 관련해, 비유가 회귀적(recursive)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타포의 대상이 된 것이 다른 비유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추상적인 개념들의 바탕이 되는 비유는 더 기본적인 비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모든 비유는 불완전하며 오히려 과학자들을 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비유들이 상보적으로 작용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이해를 위한 scaffold가 되어줄 수 있다. 전문적인 물리학자들도 양자 현상에 대해 완전한 직관적인 이해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비를 통해 적당히 직관적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러한 이해는 [다양한 유비들을 이용함으로써] 계속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이해의 한계는 단숨에 벽에 부딪히는 형태라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형태가 될 것이다.
 
5. Discussion: Epistemic Modesty?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우주의 신비에 대해 적절하게 겸손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신비주의는 겉보기보다 겸손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의식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인지 한계를 넘어선다고 한 McGinn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그렇게 주장하려면 그는 <의식의 본성>, <인간 마음의 구성 방식>, 그리고 <그러한 구성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마음이 의식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확장시키는 방식들로도 의식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보여야 한다. 이런 근거들도 없이 우리가 의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한 주장이 아니다.
 
Conclusion
첫째, -신비주의자들은 한 고립된 뇌의 인지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인지 능력을 확장시킬 다양한 장치들을 개발했다.
둘째, 상상적 폐쇄가 표상적 폐쇄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셋째, 인간 마음의 유연성을 고려할 때, 마음을 확장시킬 방법이 여러 가지 있으며 세계에 대한 탐구가 갑자기 벽에 부딪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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