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닝겐-휘네(Paul Hoyningen-Huene)는 2008년 논문 "Thomas Kuhn and the Chemical Revolution"에서 화학혁명의 사례가 쿤의 이론에 잘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반박 논증들을 제시한다.
Crisis
화학혁명에서 위기는 쿤의 주장보다 늦은 1785년에 일어났다. 이는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기 이전이 아니라 이후이다. 라부아지에의 저작은 시기별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774년 저작 Opuscules를 중심으로 하는 단계이며, 여기에는 스탈의 이론과 다른 점이 적다. 둘째는 연소에 대한 1777년 논문이며, 여기에는 만약 플로지스톤을 이용하지 않는 연소 설명이 성공적이라면, 스탈의 이론은 그 기초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셋째는 1785년 논문으로 물의 조성이 1783년 발견되어 라부아지에가 완전한 이론을 만든 직후이며 라부아지에는 훨씬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프랑스 화학자들 사이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한 일반적인 위기감이 생긴 것은 이 이후이다.
하지만 쿤은 위기가 1770년대 중반에 생겼다고 주장한다. 쿤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블랙, 캐번디쉬, 프리스틀리, 쉴레 중 누구도 플로지스톤 이론이 대체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없었다. (2) 하소 시의 질량 증가 문제가 있었다(쿤도 이 문제가 그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는 점은 언급한다). (3) 위기에 대한 인식이 1772년에 시작되었다고 Guerlac의 1961년 책에 나와 있다. (4) 프리스틀리의 저작들이 기체 화학에서의 위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프리스틀리의 저작에는 이론 변화가 필요한 수준의 위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쿤에 따르면 위기 뒤에는 서로 경쟁하는 학파, 공격, 비통상(extraordinary) 과학이 뒤따르며 새로운 이론으로 인도된다. 쿤의 위기 개념에는 당시 사람들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는 경쟁하는 학파를 만들지도, 공격을 낳지도, 비통상과학 과학에 대한 의식적으로 참여하게 하지도 못한다고 본다. 이어지는 절들에서 설명.
Competing Schools
과학혁명기에 학파들 간의 경쟁은 1985년 이후에 일어났지, 그 이전에 일어나지 않았다. de Fourcroy에 따르면 라부아지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5년 이전에 그는 혼자였다. (de Fourcroy는 라부아지에의 조수였다는 점에서 이 증언은 중요하다.)
Attacks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라부아지에의 1777년 논문을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지의 여부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 라부아지에는 "만약" 자신의 이론이 맞다면 플로지스톤 이론에 위협이 된다고 조건부로 이야기했다. 1780년에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고 더 강하게 말했지만, 이것도 공격으로 간주될 필요는 없다. 똑같은 이야기가 라부아지에의 칼로릭 개념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격은 1785년에서야 나왔다.
하지만 첫 공격이 1977년이었더라도 쿤의 주장의 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1785년까지 화학자들 사이에는 위기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없었고, 경쟁 학파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Extraordinary', 'Pre-paradigmatic' and 'Normal' Science
쿤에 따르면 과학은 정상과학, 비통상 과학, 전패러다임(pre-paradigmatic) 과학으로 나뉜다. 비통상 과학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나온다. 정상과학 시기에 과학자들은 이미 규명된 현상에 대한 제한된 범위의 사실들만 모은다. 전과학은 과학이 확립된 절차, 성취, 이론을 결여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플로지스톤 이론이든 라부아지에의 이론이든 쿤의 이런 범주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은 기존의 실험적 전통에 따라 실험과 발견을 했다. 블랙의 "고정된 공기" 발견, 캐번디쉬의 "가연성 공기" 발견, 쉴레와 프리스틀리의 "탈플로지스톤화 공기" 발견, 쉴레의 산 발견(비금속 무기물과 유기물을 탈플로지스톤화함으로써), 프리스틀리의 금속화 연구, 라부아지에가 공기 공급이 없으면 하소가 중단되고, 공기의 일부만 금속에 결합되는 것을 발견한 것 등. 이런 연구들 중 비통상적인 실험은 없었다. 이 실험가들은 자신들이 플로지스톤 전통 내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쿤이 위기라고 지적한 시점 이전과 이후에 큰 차이가 없었다. 호이닝겐-휘네는 라부아지에가 질량 변화를 닫힌 계에서 연구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캐번디쉬가 라부아지에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했었다. 1783년 이전에 플로지스톤 이론가들 사이에 핵심 이론(core theory)에 대한 불만족,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논쟁 같은 것은 없었다.
쿤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은 단일한 이론의 지위를 누렸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에는 핵심 이론(core theory)가 있었다. 여기에는 (a) 겉보기에 다른 현상처럼 보이는 연소, 하소, 호흡이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는 점, (b) 플로지스톤이 가연성의 원리이자 환원력(reducing power)의 원리라는 점, (c) 이 원리는 한 가연성 물질 혹은 환원제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점, (d) 금속들은 금속회와 플로지스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있었다.
그러나 플로지스톤 이론이 패러다임의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보는 것도 합당하다.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 원리가 너무 모호해서 어떤 설명에도 맞아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쿤과 호이닝겐-휘네는 이런 점이 플로지스톤 이론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했지만, Pyle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은 초기부터 그랬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에는 범례적 문제도 없었고그것에 대한 플로지스톤을 통한 해답도 없었다. 또한 정상과학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도 힘들다. 쿤은 고체에서 나오는 기체에 대한 프리스틀리의 연구가 정상과학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쿤이 정상과학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어긋난다. 반면 라부아지에의 실험은 알려진 현상에 대한 좁은 법위의 사실들을 더 정확하게 발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 있었고, 이는 쿤의 기준에서 정상과학에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플로지스톤 이론가들의 연구든 라부아지에의 연구든 쿤의 세 범주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Unexpected Discoveries
호이닝겐-휘네는 산소의 발견이 과학의 혁명적 국면에서 예상치 못한 실험적 발견이 동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명백히 쿤의 주장과 모순된다. 쿤에 따르면 라부아지에가 산소의 발견을 예상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공기의 구성에 대해 이미 내놓은 가설의 빈 부분을 산소가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The Sequence of the Chemical Revolution
쿤: 심각한 변칙현상 위기 → 비통상과학 / 경쟁 학파들 / 예상치 못한 발견 / 공격들 → 새로운 이론의 수용
저자: 한 과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개발함 → 경고 사격(warning shot) → 완전한 새 이론 → 극적인 완전한 공격 → 위기감 → 경쟁하는 학파들 → 추가적인 공격
Kuhn-losses, the Standards Required for Scientific Explanation, and Epistemological Status
쿤 손실(Kuhn-losses)은 후행 이론은 선행 이론이 설명할 수 있었던 영역 중 일부를 설명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뜻한다. 화학혁명의 경우 플로지스톤 이론은 금속들이 금속성을 띠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산소 이론은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금속성에 대한 설명은 전자에 대한 이론이 나온 이후에야 다시 가능해졌다. 따라서 산소 이론에서 금속성을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은 쿤 손실에 해당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플로지스톤은 황, 인, 가연성 물질들의 공통 구성요소로 상정되었으므로, 금속의 독특한 속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플로지스톤이 설명한 어떤 속성이 전자 이론에 의해서 설명되었다면, 전자 이론이 플로지스톤에 의거해 설명되었던 다른 속성들(황, 인, 가연성 물질의 속성들)도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므로 여기서 쿤 로스는 없었다.
쿤은 혁명 전에는 경험적이고 논쟁적인 것으로 간주됐던 진술들이 혁명 후에는 분석적이고 사소한 진술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이닝겐-휘네는 여기에 더해 과과학혁명 전에 순환적으로 보였던 것이 혁명 후에 경험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든 예는 라부아지에가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이 순환적이라 한 것이다. 라부아지에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가연성 물질의 연소는 그 물질이 플로지스톤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으로 설명되는데, 플로지스톤의 존재는 가연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순환적 설명이 발생한다.
[이 다음 부분 논지를 정확히 이해 못하겠음]
Untranslatability and World Changes
번역불가능성은 공약불가능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언어들을 비교해보면 한 언어에는 있지만 다른 언어에는 없는 단어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외연이 같은 단어들이 다른 언어에서 내포가 다를 수 있다. 번역의 실패는 상호 간의 이해 및 합리적 평가와 완전히 양립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다른 이론의 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라부아지에의 새로운 명명법에 대한 반대는 그 명명법이 새로운 이론에 편향적이라는 데에 있었지, 그 명명법이 이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번역이 가능하든 말든 그것은 과학의 이론 변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쿤의 세계 변화 논제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호이닝겐-휘네는 세계 변화 논제가 현상의 변화를 뜻한다는 칸트주의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Bird나 Pyle은 개념이 변한다고 해서 현상적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Kuhn's Success
아마도 쿤의 가장 영향력 있는 관점은 중요한 이론 평가 시기에, 보통 하나가 아니라 최소한 두 이론이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이론은 완전히 개발되기 전까지 진지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왜 위기, 공격, 경쟁하는 학파들이 새로운 이론의 발달 이전에 나타나지 않는지, 왜 새로운 이론이 위기, 공격, 경쟁 학파들의 등장에 선행하는지 설명해준다.
호이닝겐-휘네의 주장, 즉 이론 비교가 알고리듬적이지도 않지만 비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은, 쿤의 주장에 비해 상당히 희석된 것이며 별로 논쟁거리가 아니다.
[다음 부분 잘 이해 못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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