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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요약정리] 천현득. (2013). "토마스 쿤의 개념 이론"

발표: 학술지 철학



핵심 내용: 쿤은 철학적 논의에 심리학과 과학사를 적극 이용하는 자연주의적 면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과학혁명의 구조이후에는 심리학과 과학사보다는 언어철학적 논의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이를 두고 몇몇 학자들은 쿤의 철학에 단절이 존재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쿤이 언제나 자연주의적 자세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패러다임 개념과 공약불가능성 개념의 발전 과정이 쿤의 개념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점이다. 쿤은 가족유사성 이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개념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를 통해 패러다임 개념과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해명하고자 했다.
 
 
 
1. 쿤 해석의 다양성
쿤 철학의 발전 과정이 연속적이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이견이 존재한다.
- 쿤이 후기에 "언어적 전회"를 했다는 점은 쿤 연구가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
- 과학혁명의 구조(이하 구조)를 출판한 당시에 쿤은 과학사와 형태심리학의 사례들을 인용하여 철학적 논변을 논박하는 자연주의적 접근을 취했다.
- 이후 공약불가능성 논제를 두고 언어철학자들과 논쟁을 하면서 쿤 스스로 언어철학적 자원들을 활용하게 되었고, 결국 쿤의 논의는 좀 더 사변적이고 선험적으로 변했다.
- 쿤의 언어적 전회는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 사이에 단절이 있음을 시사하지만, 저자는 언어적 전회에도 불구하고 쿤의 사상적 발전 과정이 중요한 의미에서 연속적이었음을 주장한다.
- 저자는 패러다임 개념과 공약불가능성 개념이 명료화되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추적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개념 이론을 중심축으로 하는 자연주의가 쿤의 전기와 후기를 관통하는 흐름이었음을 보인다.
 
 
2. 패러다임의 발견, 1959-1974
이 절에서 보이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패러다임 개념의 발견은 구조의 초판(1962)이 아니라 논문 "The Second Thought on Paradigm"(1974)에서 완료되었다.
- 패러다임 개념의 발달 과정은 쿤의 개념 이론의 발달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패러다임 개념은 논문 "The Essential Tension"(1959)에서 처음 등장했다.
- 이 논문에서 쿤은 과학 교육은 자유롭고 발상적인 사고보다는 수렴적인 사고를 엄격하게 훈련시키는데, 이는 과학의 본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 혁명적인 연구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의 과학 활동은 합의에 기초한 수렴적인 활동인 정상 연구이다.
- "교과서는 그 전문 집단이 패러다임으로 인정하게 되는 구체적인 문제 풀이들을 보여주며, 그리고 학생들에게 방법과 내용 면에서 그것들과 매우 흡사한 문제들을 스스로 풀도록 한다."
- 학생들은 추상적인 규칙이나 정의가 아니라 예제들과 구체적인 문제풀이를 통해 과학적 개념과 이론을 습득하고, 이전에 풀었던 예제들과의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예제를 해결한다.
- 예제를 통한 학습이라는 과학 교육에 대한 쿤의 통찰은 정의가 아니라 사례들 가느이 유사성을 통해 개념을 획득한다는 그의 개념 이론과 분리될 수 없다.
 
ㅇ 『구조를 집필하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되었다.
- 패러다임의 여러 의미는 다음과 같다.
- 구체적인 과학적 성취: 성숙한 과학 공동체가 수용하는 방법, 문제 영역, 해결책의 표준.
- 과학 활동에 대한 과학공동체의 공약: 정상과학적 연구의 개념적, 이론적, 도구적 방법론적 공약들의 네트워크.
- 과학 이론: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과 그것들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
- 쿤은 패러다임 개념의 모호함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 이는 구조출판 당시 패러다임 개념의 발견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패러다임 개념의 명료화 시도: "Logic of Discovery or Psychology of Research?", "Reflections on My Critics", "Postscript - 1969", "The Second Thought on Paradigm"
- 쿤은 패러다임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 넓은 의미: 기호적 일반화, 모형, 가치, 범례 등을 포함하는 전문분야 행렬.
- 좁은 의미: 범례. 널리 수용된 해결책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풀이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 쿤이 범례로서의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로 드는, 백조의 개념을 배우는 어린아이의 사례는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개념 이론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어린아이가 백조의 개념을 배우는 일은 명시적 정의나 일반화 없이, 백조의 사례들에서 유사성을 지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쿤에게 개념이란 가족유사성을 바탕으로 대상들을 묶어내는 것이고, 과학에서 기본적인 개념 구조는 대상을 유사성 관계에 따라서 나누는 분류 체계이다.
- 한 사회의 구성원은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를 표상하는 개념 구조를 습득함으로써 기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화되고, 이것이 정상과학적 합의의 근간이 된다.
- 쿤에 따르면 과학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적 개념, 법칙, 기호적 일반화를 추상적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 문제 상황들에 적용함을 배움으로써 익힌다. 학생은 다양한 범례들에 노출되어 문제 상황들 사이의 유사성 관계를 인지함으로써 개념 구조를 얻게 된다.
- 결론적으로, 범례로서의 패러다임은 개념에 대한 가족유사성 이론을 확장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가족유사성 이론에 대해,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므로 대상들을 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나누는 것은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 한 가지 가능한 대응은 "어떤 면에서 유사한지"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쿤은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그가 거부하는 추상적 규칙이나 원리로 회귀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물음 자체를 물을 수 없다고 말한다.
- 쿤은 즉각적으로 유사성 집합을 얻어내는 "유사성에 대한 지각"에 호소한다.
- 유사성에 대한 지각은 한 집단 내 유사성뿐만 아니라 대조집합과의 차이점을 인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쿤은 대조집합에 속한 개념들이 함께 학습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 g. 백조, 거위, 오리는 함께 학습되어야 한다.
- 쿤은 가족유사성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족유사성 집합들 사이에 "텅 빈 지각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어정쩡한 사례들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패러다임 개념의 "발견"은 일회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The Essential Tension"(1959)"에서 시작되어 "The Second Thought on Paradigm"(1974)에서 완료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The Second Thought on Paradigm"(1974)에서 "발견"이 완료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 첫째, 패러다임이라는 용어의 지시대상이 분명해져 모호하지 않게 적용될 수 있고, 그 이후로 패러다임 개념은 큰 변화 없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사용되었다.
- 둘째, 패러다임과 관련된 다른 논문들은 "The Second Thought on Paradigm"(1974)의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3. 공약불가능성
패러다임 개념에 대한 논쟁은 비교적 일찍 수그러졌지만, 공약불가능성은 상대주의의 원천으로 지목되어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쿤이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제시하는 방식은 초기(구조당시), 중기(1970년대), 후기(1980년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초기의 공약불가능성 개념(구조당시)
- 공약불가능성은 이항관계적 개념으로, 구조에서는 패러다임들 간의 관계로 나타난다.
- 공약불가능성은 다차원적으로, 방법론적 차원·개념적 차원·지각적 차원 등을 포괄한다.
- 방법론적 차원: 과학혁명 이후 한 분야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과 해결책들의 표준들이 변화한다. 해킹은 "주제 공약불가능성"이라고 부른다.
- 개념적 차원(의미론적 차원):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변화한다.
- "세계 변화 논제":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그와 함께 세계 자체도 변화한다".
- 공약불가능성 논제는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 각각의 차원에서 공약불가능성이 실제로 성립하는가
- 실제로 성립한다면 비합리주의 또는 상대주의를 지지하는 것 아닌가
- 세 가지 이질적인 차원들을 '공약불가능성'이라는 말로 뭉뚱그린 것 아닌가
- 실제로 구조는 공약불가능성의 여러 차원들에 대해 통합적 분석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의 논쟁들은 주로 의미론적 측면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쿤이 다른 차원들을 포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 저자는 쿤이 개념적-언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다른 측면들과 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공약불가능성의 개념을 제시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쿤은 최종적으로, 개념적 공약불가능성은 세계 변화 논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방법론적 차원은 개념적 차원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공약불가능성 개념의 변화 과정에서 개념 이론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기의 공약불가능성 개념(1970년대)
- 초기와 비교할 때 크게 두 가지 점이 달라졌다.
- 공약불가능성은 패러다임들 사이가 아니라 이론들 사이 혹은 언어들 사이의 관계로 국한되어 사용된다.
- 콰인의 번역불가능성 개념을 통해 공약불가능성을 해명하려고 한다.
- 쿤은 이론의 공약불가능성은 두 이론을 완전히 표현하고 그래서 그 이론들을 조목조목(point-to-point) 비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말한다.
- 조목조목 비교하려면 두 이론의 경험적 귀결들이 손실이나 변화 없이 번역될 수 있는 어떤 언어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론을 비교하는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번역의 문제이다.
- 그런데 쿤에 따르면 과학혁명을 전후하여 그런 중립적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이론에서 다른 이론으로의 전이 과정에서 단어는 그 의미 혹은 적용 조건이 미묘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 과학혁명 전후에 이론들(의 언어들)을 서로 번역할 수 없는 이유는 혁명 전후의 이론들이 다른 존재론적 범주의 체계를 가지고 그 언어들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 유사성 관계와, 동일한 용어가 세계와 관련맺는 방식이 변화한다.
- 결론적으로, 중기의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번역불가능성이며, 번역불가능성의 원인은 분류 범주 및 유사성 관계의 변화이다.
- 그러나 이때의 공약불가능성 개념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갖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것이다.
- 번역 과정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이 없다.
- 유사성 관계의 변화, 의미 변화, 번역 실패가 갖는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후기의 공약불가능성 개념(1980년대)
- 중기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 중립적 관찰언어로의 번역이 아니라 두 언어 간 상호 번역이 쟁점이 된다.
- 번역불가능성이 국소화된다. 번역이 실패하는 용어들은 상호규정된 일부 용어들에 국한된다. 따라서 공약불가능성이 합리적 이론 비교의 불가능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 번역의 두 가지 의미가 구분된다. 번역은 좁은 의미에서는 기계적 번역을 뜻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해석적 작업을 뜻한다. 공약불가능성은 전자와만 관련되며, 공약불가능한 경우에도 해석을 통한 이해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 어휘집(lexicon)과 분류 체계(taxonomy)를 통해 번역 불가능성을 설명한다.
- 과학혁명이란 분류 범주들의 변화로, 이러한 변화는 전체론적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분류체계의 변화가 번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번역은 어휘집의 구조적 동형성이 성립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모든 분류학적 변화가 번역의 실패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종 용어(kind terms)에 대한 중첩 금지 원리가 등장한다.
- 종 용어에 대한 중첩 금지 원리: 동일한 대조 집합에 속하는 어떤 두 종 용어도 중첩되는 지시대상을 가질 수 없다. e. g. 어떤 물새가 오리이면서 동시에 거위일 수 없다.
- 종 용어는 개별적으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용어들과 함께 학습해야 한다. 따라서 중첩 금지 원리를 위배하지 않고 기존 분류체계를 확장할 수 없는 경우 분류체계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 경우 번역이 불가능해진다.
 
공약불가능성과 개념 이론의 관련성
- 다양한 차원의 공약불가능성 논의가 개념적 공약불가능성으로 축소된 것은 다른 철학자들이 개념적 차원에 주목해서이기도 하지만, 쿤 본인의 관점에서도 개념적 차원이 다른 차원들을 정합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기초였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 과학혁명의 가장 핵심적이고 원초적 형태는 개념적 변형이다. e. g. 쿤은 구조9장에서 상대성 이론 혁명의 핵심이 "이미 확립되고 친숙한 개념들의 의미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라고 말한다.
- 방법론적 차원은 개념적 차원에서 따라 나온다. 새로운 이론이 세계를 다르게 분류하면 기존 문제 중 일부는 의미를 잃을 수도 있고,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어휘집의 변화는 경험과 세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어휘집은 그 공동체의 일원들이 세계를 경험하고 기술하고 흥미로운 일반화들을 끌어내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 결론적으로, 분류체계와 어휘집에 대한 이론을 개념 이론의 확장으로 간주하려면,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쿤의 해명은 개념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자연주의자 쿤
저자는 개념 이론을 중심축으로 하는 자연주의가 쿤의 사상적 발전을 관통했음을 보인다.
- 전기 쿤은 형태심리학과 과학사를 전통적 인식론을 비판하는 데에 있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이다.
- 쿤은 과학의 실제 활동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 쿤은 과학에 대한 철학 이론은 실제 인간 인지와 과학 활동에 대한 올바른 기술에 의해 제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 버드(Alexander Bird)는 쿤의 언어적 전회를 자연주의적 철학이 선험적 철학으로 대체된 과정으로 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해석에 반대한다. 쿤이 자연주의적 논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자연주의적 자세(naturalistic stance)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 경험적 연구를 덜 인용하게 된 것은 개념 학습, 범례에 기반을 둔 과학적 실천을 계산주의 모형에 의거해 설명하기 어려웠고, 분석의 초점을 개인 심리 수준에서 공동체 수준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 저자가 쿤이 자연주의적 자세를 유지했다고 보는 근거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개념적 차원과 언어적 차원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쿤은 개념적 차원이 언어적 차원보다 근본적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 쿤이 철학적 논쟁에서 어휘집에 대해 논의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염두에 둔 것은 선언어적이면서 생물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사회의 영향도 받는 개념적 도식(conceptual scheme)이었다.
- 쿤은 이러한 논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생물들이 다른 대상의 시공간적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그 대상을 재확인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자신의 다음 책에 반영하고자 했다.
-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생물이 개별 대상을 표상하는 방식과, 대상을 어떤 종에 속하는 것으로 표상하는 방식이 상이하다. 후자는 사회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거친 개체들은 서로 다른 어휘집을 갖는다. 이 점은 쿤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해명에 사용된다.
- 결론적으로, "쿤은 역사가 제기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인지과학적 자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자연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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