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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8일 토요일

[요약정리] 하종호. (2015). "자기 지식의 인식적 정당화"

발표: 학술지 『철학연구111, pp. 175-200


핵심 내용: 나의 믿음(1차 믿음)에 대한 믿음(메타 믿음)은 명증적 확실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메타 의식이 정당화된 상태가 자기 지식이다. 드레츠키는 자기 지식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회의적 논변을 내놓았다. 드레츠키의 논변에 대해 내재주의적 답변과 외재주의적 답변이 제시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설득력이 없다. 내재주의적 답변은 무한 퇴행에 빠지고, 외재주의적 답변은 드레츠키가 제기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새로운 내재주의적 답변으로 의식에 대한 동위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동위적 접근법에서는 1차 믿음과 메타 믿음을 같은 층위에 놓기 때문에 무한 퇴행이 발생하지 않는다.
 
 
도입
나의 1차 믿음(: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나의 믿음)에 대해 메타 믿음(: 내가 고통을 느낀다고 믿는다는 나의 믿음)을 가질 때, 이 메타 믿음이 명증적인 확실성을 갖는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메타 의식이 정당화된 상태는 '자기 지식'(self-knowledge)이라고 불린다.
- 자기 지식에는 접근의 비대칭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한 믿음과 달리, 나의 믿음에 대한 믿음에는 증거나 추론이 필요 없다.
- 자기 지식에 대한 접근의 강도는 강하다. 내가 나의 믿음을 믿을 자격은 다른 사람이 나의 믿음을 믿을 자격보다 더 강하다.
- 다른 종류의 지식에 비해 자기 지식이 갖는 우월한 지위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현대 인식론에서 확산되었다.
- 이 논문에서는 자기 지식과 관련해 직인 이론(내재주의의 일종), 드레츠키의 회의주의, 외재주의, 의식에 대한 동위적 접근법(내재주의의 일종) 등의 입장을 다룬다.
 
 
1. 직인 이론의 관점에서 본 자기 지식의 정당성
직인 이론에 따르면 메타 믿음은 믿음에 대한 직인(aquaintance)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오류 가능성이 없고 따라서 정당화된다.
- 직인이란 다른 무언가의 매개가 없는 직접적인 지각을 뜻한다. e. g. 러셀의 직접지(knowledge by aquaintance) 이론. 우리 의식과 물체 사이에는 감각소여가 있어서 물체에 대한 믿음은 직접적이지 않다. 반면 우리 의식과 감각소여 사이에는 아무런 매개가 없으므로 감각소여에 대한 의식은 직접적인 것이다.
 
1차 믿음을 직인한다고 해서 오류 가능성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 퍼머턴: 직인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판단 사이에 대응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차 믿음과 그것에 대한 인식 주체의 믿음 사이에 대응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메타 믿음은 틀릴 수 없다.
- 본주어: 퍼머턴이 말하는 대응 관계란, 내적 상태가 그것에 대한 기술을 만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믿음이 그것에 관한 기술인 메타 믿음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 메타 믿음이 반드시 언어로 표현된 기술일 필요는 없다. 거틀러에 따르면 메타 믿음은 우리 내적 상태에 대한 "개념화"이기만 하면 충분한데, 여기서 개념화란 특정 심적 상태를 다른 심적 상태와 구별 짓는 작용이다.
- 거틀러: 개념화의 정확성이 나의 판단과 심적 상태 사이에 성립하는 대응관계를 반영한다. e. g. 현재 나의 감각을 고통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개념화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상태가 실제로 고통이면 그것에 대한 내 개념화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 , 인식 주체가 메타 믿음을 가질 때, 다른 믿음과 구별되는 상태로서 1차 믿음을 가리키는 지향 작용이 필요해진다. 인식 주체는 내성적 지시사(introspective demonstrative)를 사용해 자신의 1차 의식 상태를 가리킴으로써 그것을 다른 의식 상태와 구별하는 것이다. 개념화는 바로 이런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 거틀러는 메타 믿음("내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과 그것을 참이게 해주는 것(나의 고통 경험 자체)이 묶여져 있다는 데에서 자기 지식의 확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 그런 묶음은 해당 사실이 내성적 판단의 내용을 직접 공급해 줌으로써 가능하다. , 실재에 대한 우리 인식이 바로 그 실재 자체에 의해 부분적으로 구성된다. e. g. 내가 고통을 느낄 때,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메타 믿음을 가지는데 이 때 나는 고통을 내성적으로 가리킨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고통을 느끼고 있다"라는 메타 믿음의 내용은 나의 고통으로 구성된다.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 그런 판단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메타 믿음은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사실)이 믿음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메타 믿음과 그 고통(사실)이 직접 묶여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메타 믿음은 늘 사실과 일치하게 되고, 우리는 이것을 직인을 통해 알게 된다.
- 거틀러는 직인을 통해 메타 믿음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식적 현상들이 현상적 실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불필요하게 인식되는 현상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그러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경험과 그 경험의 현상적 성격에 관한 모든 관계적 정보를 괄호치고, 그 경험이 바로 그 순간에 인식 주체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느껴지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이 때 내성적 지시사에 의해 그 경험이 가리켜지고, 그것에 대해 내성적인 판단이 내려짐으로써 그 판단을 참이 되게 해주는 경험이 판단의 내용을 구성하게 되어 판단과 실재가 일치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내성적 판단에 근거한 자기 지식의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것이 거틀러의 직인이론이 주장하는 바다.
-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살펴본 내재주의자들은 자기 지식의 정당성과 확실성의 근거를 경험(사실)이 메타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2. 자기 지식에 대한 드레츠키의 회의적 논변
드레츠키는 <X에 대한 의식>(나의 생각에 대한 의식)<"그것이 X"라는 의식>("그것이 나의 생각이다"라는 의식)을 구분한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생각을 의식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드레츠키는 자신의 생각의 내용에 대해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 나의 생각을 직인하는 것이 곧 메타 믿음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내가 나의 믿음의 내용에 대해 특권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특권적으로 접근한다고 볼 수 없다.
- 드레츠키는 자기 지식에 대해 회의적인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생각한다고 생각할 이유나 증거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생각에 대해 접촉하는 우리의 방식이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제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3. 드레츠키에 대한 내재주의적 답변
저자는 내재주의적 직인 이론이 드레츠키의 회의적 논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드레츠키의 핵심 논지는 우리가 1차 믿음을 갖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것에 대한 메타 믿음을 갖지는 않기 때문에, 메타 믿음의 인식적 정당화를 1차 믿음의 내용과 연동시켜 설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 저자: 1차 믿음에 대해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메타 믿음까지 자동적으로 지식이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기는 한가?
- 드레츠키: 우리가 자신의 1차 믿음에 대해 특권적으로 접근해서 메타 믿음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메타 믿음을 믿기 위한 이유나 근거를 별도로 가져야 하는데 그런 이유나 근거를 내 의식 안에서 찾을 수 없으므로 그 메타 믿음은 정당화될 수 없고, 따라서 나는 나의 1차 믿음에 대해 알 수 없다.
- 저자: 어떤 내재주의자도 자신의 1차적 의식 상태를 갖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그것에 대해 특권적으로 접근해서 그것에 대한 메타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그렇지만 내재주의자도, 메타 믿음을 가지는 상황에서 그 메타 믿음이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한다.
- 직인 이론: 1차 믿음에 대해 내성적 지시사를 통해 직인하고 이때 그 1차 믿음과 그에 대한 메타 믿음을 매개하는 것은 없으므로 메타 믿음의 내용은 그 사실과 부합(대응)한다. 따라서 메타 믿음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있다.
- 드레츠키는 직인 이론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메타 믿음의 인식적 정당성을 위협할 수 있다.
- 거틀러에 대해: 인식 주체가 내성적 지시사에 의해 1차 믿음에 대한 메타 믿음을 형상할 때, 1차 믿음을 지시하는 자신의 내성 작용을 의식한다고 봐야 내재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에 부합한다. 애초에 내재주의는 인식적 정당성에 기여하는 요소(justifier)에 대한 의식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성적 지시 작용에 대한 의식을 요구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의식 역시 또 다른 내성적 지시사를 통한 지시 작용을 필요로 하고 이것에 대한 의식이 요청되어 의식의 무한퇴행에 빠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 퍼머턴에 대해: 퍼머턴은 1차 믿음과 그에 대한 메타 믿음 사이에 대응 관계가 성립하고, 그것을 인식 주체가 직인함으로써 그 믿음이 비추론적으로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대응관계에 대한 직인 역시 또 하나의 의식 상태이고, 따라서 이것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한퇴행에 빠진다.
- 본주어에 대해: 무한퇴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 1차 믿음과 메타 믿음의 관계를 기술적 관계로 규정하고 더 이상의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했지만, 이것은 외재주의에 가깝다. 왜냐하면 기술적 관계를 만족시킨다는 점은 의식 외적인 상태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드레츠키에 대한 외재주의적 답변
페르난데즈는 메타 믿음에 대한 신빙론을 제시한다. 신빙론자는 1차 믿음이 메타 믿음의 원인이 되는 신빙성 있는 인과적인 메커니즘이 있다고 본다.
- 우선 페르난데즈는 지각의 신빙성과 믿음의 정당성 간의 관계를 "지각의 신빙성 원리""믿음의 산출 원리"를 통해 해명한다.
- 지각의 신빙성 원리: 우리의 정상적인 지각 기관은 신빙성이 높을 경으므로 우리가 명제 p의 내용을 지각할 경우 p가 참일 가능성이 크다.
- 믿음의 산출 원리: 임의의 명제 p와 임의의 인식 주체 S에 대해, 만약 Sp를 지각한다면, Sp를 믿게 된다.
- 믿음의 산출 원리에 따르면 만약 Sp를 지각하면 Sp를 믿게 되는데, 지각의 신빙성 원리에 따르면 p가 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S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 페르난데즈는 동일한 지각이 공통적으로 1차 믿음과 그에 대한 메타 믿음의 근거가 되고, 1차 믿음이 그 메타 믿음의 원인이 되는 인과적 메커니즘이 성립하게 된다고 본다. 이 점을 "단일한 정당화 원리"로 정식화한다.
- 단일한 정당화 원리: 임의의 인식 주체 S와 명제 p에 대해서, 만약 Sp를 지각한다면, S가 자기가 p를 믿고 있다는 믿음을 지각에 근거해서 갖는 한 그는 바로 그 2차 믿음을 가질 자격이 있다.
- , 정상적으로 1차 믿음의 근거가 되는 상태(증거적 상태)가 메타 믿음의 근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1차 믿음의 증거적 상태가 메타 믿음의 근거가 되더라도 그 증거적 상태는 각기 다른 규칙성에 따라 두 믿음을 정당화한다. 증거적 상태는 동일하더라도 1차 믿음의 정당화는 그 상태와 세계를 연결 짓는 규칙성이 성립할 때 이루어지고, 메타 믿음의 정당화는 그 상태와 1차 믿음을 연결 짓는 규칙성이 성립할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메타 믿음과 관련된 여러 현상에 대해 페르난데즈 모형을 통한 설명이 가능하다.
- 나와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외부 대상을 지각하고 있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질 텐데, 그 사람은 나의 메타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인식 주체의 메타 믿음을 지지해주는 지각 경험[= 증거적 상태]을 타인도 가질 수 있지만, 타인의 지각 경험은 그 인식 주체의 인지 체계와 적합하게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메타 믿음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
- 인식 주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한 타인의 믿음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인식 주체가 자신의 믿음에 대해 메타적으로 믿을 때는 그런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비대칭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믿음의 산출 원리에 따르면 인식 주체는 적합한 지각과 믿음을 가지고 거기에 근거해 메타 믿음을 형성하기만 하면 되고, 어떤 추론도 수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 메타 믿음은 인식 주체의 지각이 오작동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 우리 지각 경험과 세계 사이의 인과적 연결 고리는 그 지각 경험과 그 지각 경험이 발생시킨 믿음 간의 인과적 연결 고리와는 무관한데, 페르난데즈의 모델에서는 후자의 인과적 연결 고리만이 메타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본다.
 
스톨자는 페르난데즈와 다른 방식의 외재주의 모형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지식의 정당화는 증거의 차원이 아니라 설명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 한 명제가 인식 주체의 믿음의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인식 주체가 그 명제를 의식하고 그 명제가 인식 주체의 믿음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스톨자는 설명의 경우 이런 조건이 성립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e. g. p이면 q라고 믿고 p라고 믿을 때, q를 믿을 증거 없이 q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 내가 내 아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a) 내가 내 아들을 보고 있고, (b) 나는 적합한 상태에 놓여 있고, (c) 자기 아들을 보고 있으면서 적합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합리적 요건[설명]이고, (d) 나는 적어도 이런 요건을 따르는 한에서는 합리적이다.
[인식 주체가 메타 지식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a) 1차 믿음을 가지고 있고, (b) 인식 주체가 인식적으로 적합한 상태에 놓여 있고 (c) 1차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식적으로 적합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식 주체가 자신의 1차 믿음을 안다는 것은 옳은 설명이고, (d) 인식 주체는 그러한 설명을 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 메타 믿음의 정당성이 지각과 세계 사이의 상관관계와 지각과 1차 믿음 사이의 상관관계라는 외재적인 요소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내재주의적인 직인 이론과 달리 의식의 무한퇴행에 빠질 위험은 배제된다.
 
우리가 자기가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나 증거는 무엇인가?
- 페르난데즈와 스톨자는 그러한 이유나 증거를 직접적으로 대기보다는 자기 지식의 정당성을 생각하는 틀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페르난데즈는 1차 믿음이 메타 믿음의 원인이 되게 해주는 인과적 메커니즘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지각 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지할 때 참된 [1] 믿음을 규칙적으로 갖듯이 1차 믿음을 정상적으로 갖게 되면 메타 믿음을 규칙적으로 갖게 된다는 것뿐이다. 드레츠키는 왜 그런 규칙성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페르난데즈가 여기에까지 답할 의무가 있는지 의문. 신빙론은 그런거 대답 안 하겠다는 입장 아닌가?]
- 스톨자는 합리적 연관성[설명 관계] 개념을 도입해 자기 지식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런데 드레츠키가 묻는 것은 그것을 합리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보인다.
- 결론적으로, 페르난데즈나 스톨자는 드레츠키의 의문에 대해 직접적인 이유나 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렵고 다른 각도에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건데, 드레츠키의 의문은 내재주의적 관점에 던진 의문이고 외재주의적 답변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5. 새로운 내재주의적 접근
의식에 대한 동위적 접근법: 내재주의적 관점에서는 의식의 무한퇴행 문제가 생겨난다. 내재주의적 관점 내에서 이러한 문제를 피해가는 방안으로 메타 의식을 1차 의식보다 상위에 있는 의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층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접근법을 택할 수 있다.
- 메타 의식은 1차 의식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층위에서 주변부 의식으로 공존한다.
- 1차 의식과 그에 대한 메타 의식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단일한 의식을 구성하는데, 메타 의식에 대한 주의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메타 의식이 주변부 의식에 머물게 된다.
- 동위적 접근법은 거틀러, 페르난데즈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한다.
- 주변부 의식으로 주의를 전환하는 것은 거틀러의 설명에서 인식 주체가 내성적 지시사를 사용해서 1차 의식에 집중하는 메타 의식적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페르난데즈가 말한 1차 믿음과 메타 믿음의 규칙성은 두 믿음의 동위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문과 답변
- 의문: 주변부 의식 영역에 있는 의식 상태가 명제 태도의 형태일 수 있는가? 명제 태도는 현상적 의식에 비해 주의집중이 더 많이 요구되는 의식 상태이다.
- 답변: 인식 주체가 1차 믿음을 갖게 될 때 이 명제 태도와 관련된 자기 표상적 의식이 주변부 의식에서 발생하되, 인식 주체가 이 의식으로 주의를 전환할 때 명제 태도의 형태를 갖추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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