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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4일 화요일

[발췌/요약정리] Nozick, Robert. (1974). "Experience Machine" in Anarchy, State, and Utopia


남경희 역,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pp. 68-71


ㅇ 경험 기계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내부에서 어떻게 느끼는가의 문제 이외에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가?

(...)

첫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한다. 단지 그것을 하는 경험을 가질 뿐 아니라, 어떤 행동들에 대한 경험의 경우엔, 우리가 그 행동들의 경험을 원하는 이유는 오직 우리가 먼저 그 행위들을 행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이유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길, 즉 어떤 종류의 인긴이길 원한다. 경험 기계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무규정의 형체 없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 기계에 연결되는 것은 일종의 자살 행위이다. (...) 왜 우리는 우리의 생애가 어떻게 채워지는가에만 관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인가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가?

셋째로,  경험 기계에의 연결은 우리를 인조의 현실, 인간이 구축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심오하지도 중요하도 않은 세계에 제한한다. 이 기계는 보다 심오한 현실에 대한 경험은 흉내낼 수 있겠으나, 그와의 실제적인 접촉을 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접촉을 갖고 보다 심오한 의미에의 투시를 할 수 있길 원한다."


ㅇ 변형된 경험 기계 (※ 번역본 71~72쪽에 해당하는데, 번역이 엉망이므로 반드시 원문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되고 싶은 종류의 사람으로 우리를 변형시켜 주는 변형된 경험 기계가 있어도 우리는 이 기계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우리의 경험>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외에 무언가 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계에 변화를 준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대로 세계에 변화를 주는 "결과 기계"를  상상해보자. 그런 것이 있어도 여전히 우리는 그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텐데, 왜냐하면 그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그 기계가 우리 삶을 대신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현실과 접촉하며 능동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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