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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0일 토요일

[요약정리] Bowler, Peter and Morus, Iwan Rhys. 현대과학의 풍경 3장: 화학혁명

과학사에서 화학사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
- 현대에 화학이라고 통칭되는 실행과 개념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다양한 맥락과 장소에서 생겨나서, 화학사에 대해 통일된 관점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 연금술, 약학, 의학, 염색업, 금속 세공 등
- 화학이 이론보다는 실용과학에 가까우며, 물리학과 생명과학에 비해 철학적, 사상적 중요성이 덜하다고 여겨졌다.
 
화학사에 대한 기존 관점
- 화학은 16~17세기 과학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 화학에서의 혁명은 18세기 말에서야 일어났다.
- 라부아지에 이전의 화학은 모호하고 질적인 접근을 고수하고 있었다.
 
새로운 관점
- 16~17세기에 과학혁명이라는 [단일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 과학혁명의 결과로 유일무일한 과학적 방법론이 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 라부아지에만이 새로운 화학의 발전에 결정적 공헌을 하지는 않았다.
- 라부아지에 이전 화학자들도 많은 중요한 기여를 했다.
- 라부아지에의 화학 이론은 그 이전의 화학 이론들만큼이나 현대 이론과 이질적이다.
 
개혁되지 않은 화학?
16~17세기에, 현재 우리가 '화학적'이라고 부를 만한 활동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스스로가 새로운 과학의 선두에 있다고 생각했다.
- 여러 화학자들은 새로운 자연철학자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 17세기에는 고대의 지식체계를 연구하는 일과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일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여겨졌다.
 
기체화학
18세기 이전에는 공기가 단일한 물질이라고 여겨졌으나, 18세기 이후 공기를 이루는 여러 기체가 발견되었다.
- 기체화학은 새로운 기술의 원천이었다.
- 기체화학은 18세기 말 화학용어를 개혁하는 데 핵심적인 공헌을 했다.
- 18세기 화학은 강력한 이론과 실용적 기술을 통해 과학 발전의 선두에 서 있었고, 과학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주었다.
 
프리스틀리
- 공기에는 초석의 공기(아산화질소)와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산소)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 공기의 다양한 화학적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 이론에 의지했다.
- 공기의 화학적 성질은 플로지스톤이 얼마나 함유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 연소, 호흡, 부패는 플로지스톤을 대기로 방출하는 과정, 식물의 생장과 물의 흐름은 대기에서 플로지스톤을 없애는 과정.
 
플로지스톤 이론
- 베도스, 데이비는 기체화학을 의학에 이용하고자 했다. , 플로지스톤 이론은 실용적인 화학기술의 기초이기도 했다.
- 플로지스톤은 음의 질량을 가진다는 주장은 별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 대다수의 사람들은 플로지스톤이 비물질적인 원질이므로 어떤 식으로도 물질의 무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플로지스톤 대 산소
산소의 발견자는 누구인가?
- 산소의 발견자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 있다.
- 셸레: 산소를 분리했지만, 연구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 프리스틀리: 산소를 분리하고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라고 불렀다.
-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의 실험을 반복해 산소를 분리하고, '산소'라고 부르며 새로운 화학체계의 토대로 삼았다.
- 쿤은 이 사례를 통해 발견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 발견에 이르는 과정은 단순하지도 직접적이지도 않다. 산소가 실제로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산소의 발견은 하나의 이론적 체계의 맥락 안에서만 가능했다.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가 발견되었는지, '산소'가 발견되었는지는 어떤 화학체계를 수용했는가에 달려 있었다.
 
플로지스톤 이론과 기체화학, 연소 과정, 금속 제련
- 금속 = 광석 + 플로지스톤
- 연소 과정에서 불에서 나온 플로지스톤이 광석과 결합하여 금속을 생성
- 공기 = 공기 중 물질(aerial matter) + 플로지스톤
- 금속 + 공기 중 물질 금속재 + 플로지스톤(열의 형태로 방출)
-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 없는 공기[= 공기 중 물질?]를 산소라고 명명했다.
 
산소 이론
-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도입하면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버리고 산소를 기초로 포괄적인 새 이론을 정립했다.
- 라부아지에는 산소기체가 산성의 원질인 산소와 열인 칼로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산소기체 = 산소 + 칼로릭)
- 산소 이론의 문제는 금속과 산의 반응에서 가연성 공기가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이는 플로지스톤 이론에서는 금속재와 결합한 산이 염을 생성하면서 '가연성 공기'인 플로지스톤을 방출한다고 쉽게 설명될 수 있었다.
- 물이 산소와 가연성 공기(수소)의 화합물임을 알게 된 다음에야 라부아지에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라부아지에의 화학 개혁
-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화학용어를 만들었다.
-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물질들을 모두 원소로 간주하고 명명체계의 토대로 삼았다.
-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급진적이며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곧 여러 지역에서 받아들여졌다.
- 프랑스에서는 빨리 받아들여졌는데, 당시 프랑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중요시한 정량화와 정확한 측정이 화학 반응 시의 무게 변화 측정을 강조한 라부아지에의 입장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 과거의 화학사학자들은 라부아지에의 화학 개혁이 화학 혁명의 결정적인 순간(화학이 근대과학의 면모를 갖춘 순간)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런 관점은 정확하지 않다.
- 열의 비물질적 원질이 칼로릭으로 남아있었다.
- 산소를 산성의 원질로 취급했다.
- 라부아지에가 거부한 플로지스톤 이론도 강력하고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개혁된 화학?
라부아지에의 개혁 이후
- 라부아지에의 이론을 완전히 수용한 화학자가 드물었기 때문에 개혁 직후를 정상과학 시기라고 보기 어렵다.
- 산소가 산의 원질이라는 개념이 부정되었다.
- 칼로릭의 존재도 부정되었다.
- 원소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 라부아지에의 실용적 원소 개념과 달리, 돌턴은 원소에 물리적 실재성(원자)을 부여했다.
- 돌턴은 모든 원소가 동일한 원자를 갖는다는 그 이전 입자론과 달리 각 원소가 그에 해당하는 원자를 갖는다고 가정했다.
- 험프리 데이비는 화학적 친화력에 전기적 성질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했다.
 
화학 개혁에 대한 평가
- 라부아지에의 업적 중 19세기 초 이후까지 원래의 형태대로 살아남은 것은 거의 없다.
- 19세기 초의 화학자들은 화학이 결정적으로 개혁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결론
과학혁명과 화학혁명
- 18세기 자연철학자들은 화학이 시대에 뒤쳐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라부아지에의 화학 개혁은 중요한 영향을 끼쳤지만, 근대 화학의 도래를 알리는 결정적 사건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 18세기 후반이라는 시점의 라부아지에의 업적을 하나의 독보적인 화학 혁명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 과학에서 일어난 혁명들은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일관적이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으며, 화학 혁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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