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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6일 수요일

[요약정리] Shapin, Steven and Schaffer, Simon. (1985). Leviathan and the Air-Pump 2장 전반부


로버트 보일은 자연철학 지식이 실험을 통해 얻어져야 하며, 그러한 지식은 사실문제가 모여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토머스 홉스가 보기에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철학적 확실성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2장에서는 보일의 실험 절차를 살펴봄으로써 지식의 자명성 문제에 대해 검토한다. 실험에 의한 사실문제의 생산은 사회적, 담론적 관례들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었고, 특정 형태의 사회 조직을 만들고 지키는 활동에 의존했다. 실험 프로그램을 수용하느냐는,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보일이 제안한 삶의 양식(form of life)를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실험 프로그램의 수용이나 사실문제의 인식론적 지위는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보일을 중심으로 한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실험주의자들은 물리적 지식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리적 가설은 잠정적인 것이며, 새로운 지식에 의해 개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과학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보일과 실험주의자들은 사실문제를 합당한 지식의 토대로 제시했다. 사실은 물리적 지식 체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개연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제조 기법: 세 가지 기술
보일은 여러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사실문제를 확립할 것을 제안했다. 지식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특정한 경험을 믿어도 좋다는 점을 서로 보증해 준다. 따라서 해당 경험에 대한 목격자를 늘리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엄격한 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이더라도 목격한 사람 수가 적으면 사실 문제가 되기에 부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사실문제는 인식론적 범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범주이기도 하다.
보일이 실험 프로그램에서 사실문제를 확립하는 데에 이용한 기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물질적 기술로서, 공기펌프의 제작 및 운용과 결부된 것이다. 두 번째는 언어적 기술로서, 공기펌프로 산출된 현상을 이를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적 기술로서, 실험 철학자들이 서로를 대하고 지식 주장들을 검토하는 일에 결부되었던 관례들이 포함된다.
이 세 가지 기술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별개의 범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일이 기체역학적 사실을 구성하기 위해 작업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기술이 각각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또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해야 한다. 공기펌프라는 물질적 기술을 이용하는 실험적 실천은 특정한 형태의 사회 조직을 고착시켰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 형태의 가치는 실험적 발견에 대한 언어적 해설에서 표현됐다. 또한, 공기펌프 실험에 대한 언어적 보고는 물질적 기술을 전파하는 데 꼭 필요한 경험을 퍼뜨렸다.

공기펌프의 물질적 기술
보일의 기계론적 철학에서 기계는 존재론적 유비로서만이 아니라 지식 생산의 수단으로서 사용됐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기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그 기계가 사실 생산에서 담당한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 기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나는 리시버(receiver)이고 다른 하나는 펌프질 장치이다. 리시버 내의 공간에서는 대기가 제거된다. 리시버에서 공기를 배출하고 그 상태가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외부 공기가 펌프나 리시버 내로 재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것은 기술적 차원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기계의 사실문제 산출 능력을 인정받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기계에 의해 산출된 지식이 완전하다고 인식되도록 하려면 그 기계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기계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보일의 주장을 비판할 때 자주 나온 지적이었다. 한편 보일은 자신의 기체역학적 발견과 이에 대한 해석을 정당화 할 때 기계의 완전성과, 약간의 공기가 유입된다는 점을 함께 이용했다.

상징으로서의 공기펌프
보일의 기계는 새롭고 강력한 실천의 상징이었다. 공기펌프는 경이로운 볼거리로서 고관들이 참석하는 과학모임마다 단골로 등장했으며, 왕립 학회 전시의 중심이었다. 공기펌프는 사물의 원인을 밝혀냄으로써 궁극의 원인을 알려주는 기구였다.

펌프와감각의 제국
공기펌프뿐만 아니라 현미경, 망원경 같은 새로운 과학 기구는 지각을 강화하고 새로운 지각 대상을 구성하는 역할을 했다. 경험주의적, 귀납주의적인 실험철학이 의존하고 있는 사실문제의 산출은 지각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따라서 기계를 통해 확장된 감각은 맨 감각으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탐구 영역을 열어주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과학 기구들은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감각 관찰을 규제했다. 공기펌프는 복잡했고 이용하기도 힘들었으므로 접근성의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은 진정한 지식의 산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누군가 공인된 실험 지식, 즉 사실문제를 산출하고자 한다면 기계가 있는 실험실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실험적, 담론적, 사회적 실천을 통제하는 곳이었다. 실험실은 자연을 그저 관찰할 수밖에 없는 실험실 외부의 공간에 비해 더 권위 있는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두 가지 실험
저자들은 보일이 공기펌프로 수행한 두 가지 실험에 대해 설명한다. 이 두 실험이 선택된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두 실험으로 산출된 현상들은 보일의 철학을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에게 전형적인 예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둘째, 보일은 한 실험을 성공으로 여겼으나 다른 하나는 실패로 여겼다는 점에서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보일이 그가 기체역학에서 사용한 중요한 설명적 대상들, 즉 공기의 압력과 탄력성(spring)의 정당성이 특히 이 두 실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실험은 진공 속의 진공(void-in-the-void)’ 실험이다. 이 실험은 토리첼리 장치(수은이 가득 찬 유리관을 수은이 담긴 수조에 세우면 유리관 속 수은 기둥이 ???????)를 펌프 안에 넣은 다음 리시버 내의 공기를 빼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토리첼리 장치에서 만들어지는토리첼리 공간은 당시 자연철학자들에게 그 공간의 성격과 유리관 내에서 수은이 세워져 있는 원인에 대한 질문을 낳았다. 토리첼리 현상은 자연에 진공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오래된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었다. 이 실험은 진공이 존재한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했고, 다양한 견해가 계속 등장했다. 논쟁 참여자들은 올바른 실험이 이 논쟁을 끝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실험과 이에 대한 보일의 해석은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실험의 역할에 보일이 얼마나 깊이 천착했는지 보여 준다. 또한 실험들의 의미를 사전에 규정한 자연철학적 담론으로부터 보일이 얼마나 거리를 두려 했는지도 보여 준다. , 그는 진공론과 공간충만론의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담론을 창출하고자 했다.
보일은 수은 기둥이 유지되는 원인을 공기의 무게와 탄력성이라는 기계론적 개념으로 설명했으나, 진공 문제는 가급적 피했다. 이 실험은 진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진공 문제는 실험을 통해 해결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기펌프는 형이상학적인진공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공기펌프의 약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강점이었다. 실험적 실천은 자연철학의 논쟁을 야기하는 질문들을 기각하고, 사실문제를 산출할 수 있는 질문들로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일이 사용한 진공이라는 용어에는 실험적 의미가 새로 부여됐다. 그는 진공을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한편 펌프에 공기가 일정 정도 재유입되는 현상은 펌프의 결함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오히려 실험적 발견을 설명해주고, 새로 규정한 진공의 의미를 지지해는 것으로 해석됐다.

보일의 다른 실험은 접착(cohesion) 현상을 다루었다. 유리판처럼 표면이 매끈한 두 물체를 서로 맞대어 누르면 달라붙은 상태가 유지된다. 이 현상은 오랫동안 진공론/공간충만론 논쟁의 핵심 쟁점이었다. 보일이 구상한 방안은 토리첼리 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이 현상을 그의 새로운 실험적 공간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보일은 이 현상을 자신의 새로운 기술적, 담론적 실천에 종속시키고 이를 이용해 공기 압력의 효과를 예시하고자 했다. 여기서도 보일은 특정한 결과를 기대한 채로, 아울러 그 결과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설명적 개념을 미리 갖춘 채로 그 실험을 시작했다.
보일은 접착된 대리석을 리시버에 넣고 공기를 배출하면 공기의 압력이 감소하여 대리석이 떨어질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대리석은 분리되지 않았고 실험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보일은 펌프가 새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가설을 폐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보일이 진공의 실험적 의미를 지지할 수 있게 해줬던 공기 재유입은 여기서는 명백한 반대 증거에 직면해서도 공기압 이론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 실험은 실패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전통적 담론과 달리 보일은 접착 현상을 진공/공간충만론 논쟁과 무관한 것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사실과 원인: 공기의 탄력성, 압력, 무게
보일은 명시적이고 체계적인 지식 철학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귀납적 추론의 정당성 문제, 물리적 가설 확립의 기준, 인과적 탐구의 제한 규칙을 명시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잘 작동하는 지식 철학의 예를 구체적인 실질적인 실험 조건 하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실험적 사실문제를 넘어 물리적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 나아갈 때 주의를 기울일 것을 충고했다. 보일 자신이 그 경계를 다룬 방식은 보일이 사용한 설명 개념들을 검토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기체역학에 대한 글에서 공기의 탄력성, 압력, 무게 개념을 사용했는데, 여기에 대해 유념해야 될 점들이 있다. 첫째, 그는 사실문제에서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갈 때 필요한 단계들을 상세하게 열거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탄력성이 어떤 식으로 입증되고 확립되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둘째, 그는 탄력성과 압력 개념을 때로는 사실문제 그 자체로, 때로는 원인으로 분별없이 사용했다. 셋째, 탄력성과 탄력성의 원인은 모두 사실문제를 설명하는 원인이었는데(탄력성도 사실문제의 원인이고, 탄력성의 원인도 사실문제의 원인이었는데), 그 둘을 어떻게 다르게 다르게 취급하는지 그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보일이 사실문제와 원인을 구분하게 하는 것은 관례(conventions)였다. 사실문제의 구축이 그 본성상 관례적이듯이, 인과에 대한 논의도 관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관례의 정당화는 명시적으로 표현된 규칙에 의해서보다는 총체적인 활동 유형, ‘삶의 양식에 의해서였다.
한편 보일은 압력이라는 용어를 일관적이지 않게 사용했다. ‘압력은 무게와 탄력성 모두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접착에 대한 실험에서 무게에 의거한 설명과 탄력성에 의거한 설명을 모두 제시했는데, 둘 다에 대해 압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공기펌프 실험에서 공기의 탄력성과 무게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러한 경우마다 그는 압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용법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 용인될 수 있는 다양한 설명을 포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자연이 진공을 거부한다는 신비화된 관념에 입각한 철학자들의 논증을 반박할 때, 그는 압력의 개념을 대안으로 이용했다. 진공이 자연에서 거부되는 것은 공기의 압력에 의한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이와 같이 보일은 공기펌프 실험에 관한 논쟁에서 압력이라는 용어의 특성과 모호함을 함께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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