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렘의 시대 이후 음악과 천문학이 겉보기에 움직일 수 없어 보이는 중심이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그 중심은 지구거나, 작곡의 선법이다. 당시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각각의 천구들은
한 선법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법의 변화는 천구들 사이의 이동을 의미했다. 새로운 음악적 선법의 변화를 통해, 움직여지지 않던 음악적 중심이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그 후 몇 십 년간, 지동설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음악적 고려가 Vincenzo Galilei가 지동설을 선호하게 했다. 좀 더 일반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에서 하모니는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15세기 동안, 천체의 정확한 배열에 대한 고대의
권위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천체의 음악에 대한 고대인들의 서로 다른 입장들을 따랐다. 어떤
사람들은 태양을 중간음에 놓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장 높은 음에 놓았다. 그러나 이 두 버전 모두 태양을 Dorian 선법에 연관시켰고, 도표에서 중심에 놓았다. 당시의 음악은 6음계를 사용했지만,
우주론에서는 온전한 8음계로 설명했다.
Glarean은 당시에 주로 사용되던 8개의 선법에 4개를 더했는데, 여기에는 Ionian과 Aeolian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우주론 도표에는 두 대립되는 천체들이 음정 순서로 두 열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태양은 이들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Glarean은 천동설에
기반하고 있었고,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작업들은 겉보기에 움직일 수 없는 듯한 중심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선법을 옮기지 않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마지막 음정은 다시 본래 음정으로 돌아왔다.
Dorian 선법에서
Phrygian 선법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질서 잡힌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Dorian 선법에서 Phyrygian 선법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시도가 있었다. Josquin은
선법와 천문학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Dorian에서
Phrygian으로의 이동은 태양에서 화성으로의 변화에 대응됐다. 그것은 음악적으로나 천문학적으로나
선례가 없었다. Glarean은 Josquin의 성취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그는 Dorian과 Phrygian을 매개체를 이용해서 이었다.
Josquin는 매개적인
cadence들을 이용해서 Dorian에서 Phrygian으로의
이동에 이용했다. 그는 Dorian 선법을 낮은 D로 시작했는데 일반적인 범위보다 아래이고, Ionian 선법을 매개체로
이용했다. Ionian 모드와 Aeolian 선법은 서로
온음과 반음 패턴이 같기 때문에 변환이 쉽다. 그는 Ionian과 Aeolian 선법을 반복했는데, 이는 Dorian과 Phrygian 사이의 매개 역할을 했다. Phrygian의 첫 번째 완전한 cadence는 낮은 E인데, 이는 첫 시작의 낮은 D에서
하나 위의 음이다. 이로써 그는 심오한 시작에 대해 상기시켰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처음 음과 도착 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Josquin과 Glarean은
두 반대되는 상태를 매개를 거쳐 잇는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본질적인 변화의 성격과 가능성에
대한 설명으로 사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적인 예를 제시했었다: 중간
음(mese, 태양과 연관)은 높은 음에 비해서는 낮고 낮은
음에 비해서는 높다. 중간 음을 거친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의 이동은 두 음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선법의 이동은 이보다 급진적인 변화지만, 본질적인 구조는 같다. Josquin의 음악에서, Ionian과 Aeolian 선법은 반대되는 Dorian과 Phrygian 사이의 중재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만, 다른 변화는 ‘강압’에 의해 자연스럽지 않게 일어난다고 이야기했다. Dorian에서 Phrygian으로의 변화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강압적’인 변화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의 함축은 음악적 예를 넘어선다. 오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를 변화에 대한 그의 새로운 수학을
정식화하는 데에 이용한다.
코페르니쿠스는 기존의 이론들에 반하는 지동설이 많은 근거를 요구한다는 점을 알았다. 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는 하모니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코페르니쿠스는 대학에서 음악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오렘의 책을 직접 읽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접했을 것이다.
그는 지동설을 설명하면서, 행성들의 ‘발레’를 설명하겠다고 표현했다. 한편 다른 책에서 ‘별들의 춤’을 뜻하는 인용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지동설을 통해 천구들의 움직임과 크기에 의한 하모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하모니’라는
말을 쓴 것은 이론의 부조화를 줄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그의 하모니에 대한
찬미는 플라톤의 음악적으로 조율된 우주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에게 ‘비례’라는 말은 기하학적 공약가능성을 뜻한다. 그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천문학적 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례’와 ‘조화’라는 말을 연결시키면서, 코페르니쿠스는 대수와 음악을 연결시키는데, 이는 그의 지동설의 주요 특징이다. 피타고라스주의의 지동설과, 우주의 하모니를 음악적 비례로 연결시키는 관점, 이 두 가지가 지동설적
비례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제자인 Rheticus는 그의 스승의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말이 ‘천구들의
질서와 운동’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운동의 하모니를
구성하기 위해, 현들을 세심하게 조율하는 음악가들의 태도를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모든 천체 현상이 태양의 움직임에 순응하고, 전체적인
하모니는 그것에 지배된다고 이야기한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반응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Vincenzo
Galilei의 것인데 그는 고대 그리스 음악의 본성과 그것이 당대의 음악에 갖는 함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Mei라는 학자와 교류했는데,
Mei는 고대 음악 텍스트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한 사람이다. Mei는 그리스 음악이 엄격하게
단선적이라는 점을 가르쳤다. 하나의 멜로디 라인이 갖는 강력한 감성적 효과와, 그러한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용되는 다양한 선법들이 Vincenzo에게
영향을 끼쳤다. Mei에서 Vincenzo로 전해진 것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힘을 그들이 오페라라고 불렀던 형식으로 재현해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Vincenzo는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라는 점을 명시했고 그의 논변은 Glarean의 음악적 스케일에 대한 도표에 기초하고 있었다. 태양의
위치는 양쪽의 모든 음정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태양 중심의 옥타브에서 발견한 음악적 비례를 그의
지동설에 대한 선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코페르니쿠스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동설에 대해서는 간단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스승인 Zarlino 덕분인 듯한데, Zarlino는 음정의 비례와 우주론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은 행성계보다는 원소에 대한 것이긴 했지만, 짧은 글들에서 천문학과 연관 짓기도 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책의
초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Vincenzo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케플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이 지동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갈릴레오가 어렸을 때 아버지인
Vincenzo를 통해서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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