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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1일 일요일

[요약정리] Hempel의 귀납-통계적 설명 모형

※ 2019년 1학기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철학통론 I" 수업(담당교수: 천현득) 발제문
 Hempel, C. G. (1965). 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 pp.381-383 & 394-403.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 귀납-통계적 설명의 형식
본 문헌에서 헴펠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포섭 법칙 모형 중 한 가지인 귀납-통계적 모형(inductive-statistical explanatory model, I-S model)을 제시한다. 귀납-통계적 모형의 기본 형태는 다른 포섭 법칙 모형들과 같다. , 개별 사실에 대한 진술과 포섭 법칙에 대한 진술을 전제로 하고 피설명항을 결론으로 하는 논증 형태를 갖는다. 다른 포섭 법칙 모형들과 다른 점은, 귀납-통계적 모형에 등장하는 포섭 법칙이 통계적 법칙이라는 것이다. 통계적 법칙은 원인에 의해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일어난다는 진술이다. 귀납-통계적 설명을 연역-법칙적 모형(deductive-nomological model, D-N model)과 비교하여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연역-법칙적 모형 
귀납-통계적 모형
설명항
포섭 법칙(
보편 법칙()
통계적 법칙()
개별 사실(
개별 사실들()
개별 사실()
피설명항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
                                                           
헴펠이 연역-법칙적 모형을 이미 제시했음에도 귀납-통계적 모형을 추가적으로 제시한 이유는 과학적 설명이 많은 경우에 통계적 법칙(statistical law)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헴펠이 드는 예는 다음과 같다. 존 존스(John Jones)라는 사람이 매독에 걸렸는데,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서 병이 나았다.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연역-법칙적 모형에 의거해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포섭 법칙) 페니실린을 투여 받으면 매독이 낫는다.
(개별 사실) 존 존스는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
(피설명항) 존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페니실린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낫지는 않는다. 따라서 위의 도식에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으면 병이 매독이 낫는다'라는 보편 법칙을 '페니실린 주사를 맞으면 높은 확률로 병이 낫는다'라는 통계적 법칙으로 고쳐야 한다. 이를 귀납-통계적 모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포섭 법칙) 페니실린을 투여 받으면 높은 확률로 매독이 낫는다.
(개별 사실) 존 존스는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 [높은 확률로]
(피설명항) 존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


여기서 수평선이 두 줄로 되어있는 것은 결론이 전제들에서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고(연역이 아니고), 높은 확률로 따라 나온다는 것(귀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괄호 안에는 그러한 확률이 얼마인지 적혀있다. 이 사례에는 정확한 확률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라고 적었지만, 예컨대 확률이 0.95로 주어졌다면 '[0.95]'와 같이 적을 수 있다. 위의 도식을 기호화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3d) S: 매독에 걸림, P: 페니실린 투여, R: 매독이 나음, j: 존 존스
 
P(R | S·P)1에 가깝다     // 병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했을 때 매독이 나을 확률은 1에 가깝다
Sj & Pj                     // 존스가 매독이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 받았다
=======================================================================================  [1에 가까운 확률로]
Rj                         //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


2. 통계적 설명의 애매성 문제
그런데 귀납-통계적 모형에는 귀납-통계적 설명의 애매성(ambiguity of inductive-statistical explanation) 문제, 간단히 통계적 설명의 애매성 문제가 존재한다. 통계적 설명의 애매성이란, 같은 현상에 대해 통계적 설명 모형을 따르는 서로 다른 과학적 설명이 모순되는 결론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앞에서 제시한 예에서, 알고 보니 존스가 걸린 병이 페니실린 내성이 있는 세균에 의한 것이라고 해보자. 페니실린 내성이 있는 세균에 의해 매독에 걸렸다면 페니실린 투여를 해도 매독이 잘 낫지 않는다. 이런 경우 (3d)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이 설명에 따르면 존스의 매독은 낫지 않을 확률이 높으므로,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3k) S*: 페니실린 내성균에 의해 매독에 걸림, P: 페니실린 투여, R: 매독이 나음, j: 존 존스
 
p(~R | S*·P)1에 가깝다  // 페니실린을 투여 받았을 때 내성균에 의해 걸린 매독이 낫지 않을 확률은 1에 가깝다
S*j &Pj      // 존스가 페니실린 내성이 있는 세균에 의해 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 받았다
======================================================================================= [1에 가까운 확률로]
~Rj                      // 존스의 매독이 낫지 않았다.


 
이와 같이 (3d)(3k)는 모두 귀납-통계적 설명 모형을 따르고, 설명항들도 모두 참이다. 그런데도 결론은 서로 모순된다. 이처럼 귀납-통계적 설명 모형을 따르고 설명항들도 모두 참인 두 설명이 서로 모순되는 결론을 내놓는 것이 통계적 설명의 애매성이다

통계적 설명의 애매성 중 특히 인식적 애매성(epistemic ambiguity)이란, 설명이 제시된 바로 그 시점의 과학 지식의 총체에 상대적으로 성립하는 애매성을 뜻한다. 이를테면 집합 K를 특정 시점에서 과학에서 주장되거나 수용된 모든 진술들의 집합, 즉 그 시점에서 과학 지식의 총체라고 하자.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가정을 한다. 첫째, K는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다. , K 내에 서로 모순되는 두 진술이 포함될 수 없다. 둘째, K는 논리적 도출 하에서 폐쇄(closure)되어 있다. , K의 진술들에 의해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모든 진술들은 다시 K에 포함된다. [일관성과 폐쇄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보충자료 1 참고]
만약 K에 속한 몇몇 진술들을 귀납-통계적 설명의 설명항으로 삼아서 진술 a를 도출해낸다면, 진술 aK에 속한다(K가 논리적 함축 하에서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귀납-통계적 설명에서는 K에 속한 또 다른 진술들을 전제를 삼아 a와 모순되는 진술, ~a를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럼 진술 ~aK에 속한다(K가 논리적 함축 하에서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K는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므로, a~a가 모두 K에 속하는 것은 모순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 지식의 총체에서 귀납-통계적 설명을 구성할 때, 어떤 설명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피설명항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통계적 설명의 인식적 애매성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헴펠은 귀납-통계적 설명을 제시할 때 최대상세화의 요건(Requirement of maximal specificity)을 만족시킴으로써 애매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 절에서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3. 애매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 최대상세화의 요건
앞서 살펴본 애매성 문제는 설명되어야 할 현상이 어떤 준거집합(reference class)에 속하는지를 각 설명마다 다르게 규정했기 때문에 생긴다. 준거집합이란, 현재 알려진 사실들이 만족되는 경우들의 집합을 말한다. 헴펠에 따르면 통계적 설명을 제시할 때 선택되어야 하는 준거집합은 최대상세화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집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올바른 귀납-통계적 설명은 가장 작은 준거집합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예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자. 다음과 같은 두 집합을 생각해보자.
 
(1) S·P: 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한 경우들의 집합
(2) S*·P: 페니실린 내성균에 의해 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한 경우들의 집합
 
앞서 살펴봤듯이 존스의 경우가 (1)에 속한다면, 귀납-통계적 설명에 따라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는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존스의 경우가 (2)에 속한다면 페니실린 투여는 존스의 매독이 나았다는 데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올바른 귀납-통계적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속하는 가장 적절한 준거집합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야 한다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적절한 준거집합일까? 일반적으로 말해, 알려진 사실들이 더 상세하게 제시된 준거집합에 기초한 설명이 더 나은 설명이다
위의 예에서 '내성이 있는 세균에 의해 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한 경우들''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한 경우'보다 상세하다. 그런데 집합을 규정하는 데에 사용된 사실들이 더 상세해질수록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의 수는 줄어든다. 따라서 최대한 상세한 사실을 통해 규정된 집합이 가장 작은 준거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장 작은 준거집합에 기초한 설명이 가장 좋은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대상세화의 요건도 어느 정도 제약될 필요가 있다. 준거 집합 (3)을 살펴보자.

(3) 환자가 페니실린 내성균에 의해 매독에 걸리고 페니실린을 투여하고 환자가 대학원 시절 과학철학통론 1 과목을 수강했고 환자의 사돈의 팔촌이 과학철학자인 경우의 집합
 
(3)(2)보다 훨씬 더 상세하지만 페니실린 투여 시 매독 치료 여부와 무관한 사실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환자가 대학원 시절에 어떤 과목을 수강했는지, 환자의 사돈의 팔촌의 직업이 무엇인지 등은 환자의 매독이 나을 확률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헴펠은 집합을 규정하는 모든 사실들이 설명항과 유관한 한에서 준거집합이 최대상세화의 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전체 사실들이 피설명항의 발생 확률에 유관하다는 전제 하에서 가장 작은 준거집합이 귀납-통계적 설명에 적절한 준거집합이다. 어떤 준거집합이 이러한 요건을 만족시키는지는 다음과 같이 확인해볼 수 있다.

 
(3o)
 
p(G | F) = r // 어떤 것이 F일 때 그것이 G일 확률은 r이다.
Fb // bF이다
======================================================================================= [r]
Gb // bG이다
 
F의 임의의 부분집합 F1에 대해 p(G, F1) = r1이라면 r=r1일 때 F는 전체 사실들이 존스의 매독 회복 확률과 유관한 가장 작은 준거집합이다.

 
최대상세화의 요건이 만족되면 통계적 설명의 인식적 애매성 문제는 해결된다. (3d)(3k)의 결과가 모순되는 이유는 (3d)가 최대상세화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관한 다른 지식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최대상세화 요건을 만족시키는 설명은 (3k)이고 따라서 귀납-통계적 설명은 (3k)와 같이 제시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의 총체에서 최대상세화 요건을 만족시키는 설명을 제시하면 인식적 애매성의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일반적인 애매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4. 귀납-통계적 설명의 인식적 상대성
설명의 애매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설명에 인식적 상대성(epistemic relativity)이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설명의 인식적 상대성이란, 쉽게 말해 그 설명이 적절한지 여부가 그 설명이 제시된 시점의 지식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적절하다고 생각됐던 설명이 나중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됨에 따라 적절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됐던 설명이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됨에 따라 적절한 설명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인식적 상대성은 연역-법칙적 설명에서와 귀납-통계적 설명에서 모두 나타난다
연역-법칙적 설명에서의 상대성은 설명항들이 증거에 의해 얼마나 잘 지지되는지와 관련된다. 어떤 연역-법칙적 설명이 특정 시점에서 적절한 설명이라고 여겨지기 위해서는 그 시점에서 그 설명에 포함된 설명항들이 모두 옳다고 여겨져야 한다. 만약 나중에 그 설명의 설명항에 포함된 관찰 귀결이나 포섭 법칙이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면, 그 설명은 적절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간주될 것이다. 귀납-통계적 설명에서의 상대성도 이와 같은 이유로 발생한다. 귀납-통계적 설명을 이루는 관찰 귀결이나 포섭 법칙이 증거에 의해 얼마나 잘 지지되는지에 따라 그 설명이 적절한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귀납-통계적 설명에서의 상대성은 다른 이유로 발생하기도 한다. 특정 시점 t1에서 과학 지식의 총체 K에 포함된 진술들을 통해 최대상세화 요건을 만족시키는 귀납-통계적 설명을 구성했다고 하자. 그러나 나중 시점 t2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어 그에 대한 진술들이 K에 포함된다면, 시점 t2에서는 최대상세화의 요건이 만족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 문단에서 언급한 상대성은 기존 설명항이 나중에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생기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상대성은 기존 설명항이 틀리지 않더라도 새로 추가될 설명항에 의해 최대상세화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성은 연역-법칙적 설명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연역-법칙적 설명에서는 설명항들에서 피설명항이 연역적으로 도출되므로, 설명항이 틀리다고 밝혀지지 않는 한 다른 새로운 사실들이 아무리 많이 밝혀지더라도 피설명항이 틀리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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