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셰리. 김명남 역. 일곱 원소 이야기. 궁리. 2018.
원소의 발견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원소의 경우에는 다른 과학적 발견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몇몇 독특한 쟁점이 있다. 예를 들어 발견자는 자신이 분리한 물질이 새로운 원소라는 사실을 꼭 인식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저 뭔가 새로운 물질을 분리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새로운 원소로 밝혀지는 경우라도 괜찮은가?
나아가 그가 그 원소를 반드시 분리해내야 하는가, 아니면 특정 광물에 그 원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누군가 새 원소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그것이 원소라는 사실을 똑똑히 인지한 경우라도, 그렇다면 그 양이 중요할까? 발견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은 원소를 모아야 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대부분의 초우라늄 원소들은 즉각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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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는 원소로 추정되는 물질의 발견을 다른 과학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물론 다른 연구자들이 그 실험을 재현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발표 형태를 지지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발표자가 세부 사항을 누락한 탓에 다른 사람들이 실험을 반복할 수 없었던 경우라면 그를 공식 발견자로 인정하지 말아야 할까? 어쩌면 학술지 지면을 아끼는 데 혈안이 된 편집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마도 더 중요한 문제는 잡지나 신문, 혹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한 발표는 기각하고 과학 문헌에 실은 발표만 고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발표자가 공식적으로 아무 데서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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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앨런 그로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발표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고,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지적 동지들과 후계자들에게도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변호할 의무를 지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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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연구의 순도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때 우리가 해당 연구를 진정한 발견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쿤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교적 간결하게 제기했다.
발견 시점을 짚어내려는 시도는 늘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현상의 발견이란 그 현상의 존재와 속성을 둘 다 인식해야 하는 복잡한 사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 원소를 분리하긴 했지만 정체는 밝히지 못한 상태에 머물렀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분리해서 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정체가 밝혀지기도 한다. 그럴 땐 누구를 진정한 발견자로 간주해야 할까? - 32~34쪽
발견에 대한 토머스 쿤의 견해
쿤이 제시한 논제 가운데 하나는 과학적 발견에는 본질적으로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첫째는 이론에서 예측될 수 없었던 뜻밖의 발견이다. 쿤은 산소, 엑스선, 전자의 발견을 이런 범주로 분류했다.
두 번째는 기존 이론에서 예측되었던 발견이다. 쿤은 중성미자, 전파, 주기율표의 빈칸에 해당하는 원소가 이런 사례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렇다보니 두 번째 종류의 발견을 둘러싼 우선권 분쟁은 거의 없었다. 역사학자가 그런 발견이 이뤄진 시점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짚지 못핮는 것은 오로지 데이터가 부족할 때뿐이다.
이 명제에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칼텍의 전설적인 물리학자에 관한 유명한 책의 제목을 빌리는 것뿐이다. 쿤 씨, 농담도 잘 하시네!
앞으로 소개하겠지만, 미발견 일곱 원소의 이야기는 우선권 분쟁의 일화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역사학자가 이런 원소들이 정확히 언제 발견되었는지를 짚지 못하는 것은 데이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 38~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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