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글 목록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Scerri, Eric & McIntyre, Lee. (1997) "The Case for Philosophy of Chemistry"

Scerri, E. R., & McIntyre, L. (1997). The case for the philosophy of chemistry. Synthese111(3), 213-232.


화학철학은 그 동안 과학철학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화학철학에 철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독립적인 문제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화학철학은 환원, 법칙, 설명, 수반 등과 같은 주제들에 중요한 통찰을 줄 수 있다.

1.     Introduction
그 동안 화학철학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화학이 물리학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이 원소와 물질의 본성을 다룬다고 해도 그것은 물질의 미시구조에 관한 것일 뿐이다. 또한 화학이 물리학으로 환원 가능한지 여부는 단순한 전제가 아니라 화학철학에서 다루어져야 할 하나의 주제이다.

2.     Reductionism
화학은 물리학에 존재론적 의존 관계가 있다. 하지만 인식론적 측면이나 화학적 설명의 자율성 측면에서도 물리학에 환원될지는 좀 더 고찰해 보아야 한다. 환원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일단 ‘정량적 환원’만을 고려한다.
물리학과 화학의 연결고리가 되는 분야는 계산양자화학이다. 계산양자화학은 원자와 분자의 속성을 근본 원리를 통해 계산한다. 이 작업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환원은 성공하기 어렵다. 첫째, 헬륨 원자, 즉 두 번째로 단순한 원자에 적용하려고 해도 바로 다체문제(multy-body problem)에 부딪치게 된다. 다체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법은 존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체문제에 대해서는 근사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슈뢰딩거 방정식은 수소 원자에 대해서만 답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근사적인 적용밖에 안 된다는 점을 제쳐두고서라도, 그 근사의 정확도도 문제가 된다. 계산양자화학에서 근사는 마치 푸리에 해석처럼 급수 전개에 새로운 항을 덧붙임으로써 이루어진다.[1] 더 많은 항을 덧붙일수록 근사가 정확해진다. 문제는 새로운 항을 덧붙이면 경험적 데이터에 대해 어떤 정확성을 갖는 함수라도 찾아낼 수 있고, 이것은 사후설명적이게 된다.
경험적 데이터와 독립적으로 계산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 역시 사용하기 힘들다. 이러한 방법은 대상이 되는 속성, 이를테면 분자 에너지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 근사법의 핵심인 변분법(variation method)으로 상한선은 추정할 수 있지만 하한선은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면 화학에서의 양적 속성, 예를 들면 분자 에너지나 결합각 등에서는 정량적 환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수소 원자에 대해서만 완벽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본질적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더 중요한 점은 정량적 환원과 개념적 환원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합 에너지를 계산하는 것과, 화학 결합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화학에서 개념적 용어는 화학적 조성, 결합, 분자 구조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개념은 화학의 층위에만 속하기 때문에 그 밖에서는 표현될 수 없다. 화학적 시스템에서 물리적인 것은 그것의 구성요소들이지 시스템 자체가 아니다.
분자 구조는 양자역학적 계산에 의해서 발견될 수 없다. 분자 구조는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를 통해 얻어진다.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를 생략하면 더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지만, 분자 구조는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화학이 물리학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한다고 하더라도 인식론적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3.     Explanation
화학적 설명의 본성의 문제는 환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화학의 규칙들이 물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더라도, 화학적 층위에서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화학의 중요한 설명 형태 중 하나는 오비탈(orbital)이다. 화학 결합의 형성, 산성과 염기성, 산화와 환원 반응, 광화학적 특성 등은 전부 여러 종류의 오비탈 사이의 전자 교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오비탈을 이용한 접근법은 화학에서 물리학으로의 인식론적 환원처럼 보이는데, 전자(electron)가 양자역학의 층위에 속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오비탈 개념은 화학적 설명에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양자역학의 층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 오비탈 개념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학에서 오비탈에 의거한 설명은 화학의 독립적인 설명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4.     Laws
화학적 설명이 물리학으로 환원이 되지 않는 것처럼 화학 법칙도 환원이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주기율을 들 수 있다. 주기율은 물리학에서 볼 때 별로 법칙 같아 보이지 않는다. 주기율은 물리법칙만큼 정확하지 않다. 또한 물리학에서와 달리, 주기율은 더 근본적인 이론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주기율은 설명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화학 법칙의 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멘델레예프는 화학적 직관을 사용하여 주기율을 수정해 나갔다. 예를 들면 텔루륨과 요오드는 원자량에 따른 주기율표상의 순서와 실제 화학적 성질이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멘델레예프는 주기율을 적당히 수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후에 주기율이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2]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기율은 근사적 성질을 가지며 이는 물리학의 법칙과 다른 점이다.
주기율은 물리법칙만큼 정확하지는 않고 수학적 관계도 없지만 예외를 허용하지는 않으므로 충분히 법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규칙성은 화학적이지 않는 개념으로 형식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기율은 화학의 층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이다.


5.     Supervenience
물리학과 화학의 관계를 수반 관계로 보는 관점도 있다. 수반은 비대칭적인 의존 관계를 말한다. 두 동일한 미시 체계에서 구성된 두 거시 체계는 반드시 같지만 반대로 같은 두 거시 체계가 반드시 같은 미시 체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화학이 물리학에 수반한다면, 존재론적으로는 강력한 의존관계에 있더라도 인식론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

6.     Does Chemistry Supervene on Physics?
물리학과 화학의 수반 관계를 냄새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같은 종류의 분자는 같은 냄새를 낸다. 그러나 같은 냄새를 낸다고 해서 같은 분자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왜 같은 냄새가 나는 두 분자가 다른 분자일 수가 있는가? 그저 냄새가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냄새는 화학에 속하는 개념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학의 고유한 개념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여기서도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냄새를 정량화할  있다면완전히 같은 냄새를 가진  물질은 반드시 같은 분자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경우 물리학과 화학의 수반 관계는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냄새가 지각되는 실제 메커니즘은 수반 관계의 근거가 된다냄새는 특정 분자 구조가 코의 수용체를 자극하여 만들어진다따라서 전체 구조는 다르지만 수용체에 닿는 부분의 구조만 똑같이 생긴  분자가 똑같은 냄새 감각을 만들어낼  있다냄새는 같아도 실제로는 다른 분자일  있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있는 점은 화학과 물리학의 관계는 단지 철학적 사색만으로 결론 내릴  있는 문제가아니라 경험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7. Lessons for the Special Sciences
사회과학의 철학, 심리철학, 생물학의 철학 등의 분야에서 환원, 설명의 자율성, 수반의 정당성 등의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존재론적 문제와 인식론적 문제가 얽혀 있다. 여기에서 화학철학이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다. 물리학에 대한 화학의 존재론적 의존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화학철학에서는 환원, 설명의 자율성, 수반의 정당성 등의 문제가 순수하게 탐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학술지 Synthese에서 1997년 화학철학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화학철학의 자율성 옹호, 그 동안의 성과 정리, 앞으로의 전망 제시를 위해 쓰여진 논문이다. 화학철학 특집호 링크

화학이 물리학으로 존재론적으로 환원된다는 것이 당연시된다는 점에 대해 셰리는 이후에 입장을 조정한다. Scerri 2007, Hendry, Findlay and Needham 2007 참고.

화학과 물리학의 환원 관계에 대해 다룬 국내 논문이 있다. 고인석, 「화학은 물리학으로 환원되는가」, 『과학철학』 8-1(2005)

저자 중 한 명인 에릭 셰리의 교양과학서 A Tale of Seven Elements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김명남 역, 『일곱 원소 이야기』, 궁리출판. 
20세기에 들어서야 발견된 원소들 중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작은 일곱 원소를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출판사 서평: 저자는 각 원소마다 발견에 앞섰던 연구들, 결정적인 실험들, 관여한 화학자들의 성격, 새로운 원소의 화학적 속성, 과학기술 분야에서 드러난 응용성을 추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만찮은 장애물을 극복했던 연구자들의 개인적 사연까지 상세하게 들려준다. 화학원소들과 주기율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아가 과학의 역사와 문화에 흥미가 있다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틀림없이 재미있게 읽고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