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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Musgrave, Alan. (1985) "Realism versus Constructive Empiricism"

수록: 단행본 Images of Science: Essays on Realism and Empiricism


※ 2018년 1학기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철학통론 2 수업(담당교수: 조인래)에서 발제문으로 사용한 글이다. 

* 구성적 경험론의 요점: 구성적 경험론은 반실재론의 일종으로, 캐나다의 과학철학자인 바스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이 The Scientific Image(1980)에서 정식화한 입장이다. 반 프라센의 정의에 따르면, 구성적 경험론은 ‘과학은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의 제공을 목표로 하며, 어떤 이론의 수용 여부는 오직 그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한지에 달려 있다’는 견해이다. 이론의 경험적 적합성이란 그 이론이 관찰 가능한 대상에 대해 옳다는 것, 즉 현상을 구제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이론의 참은 경험적으로 적합할 뿐만 아니라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서도 옳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참인 이론은 반드시 경험적으로 적합하지만, 경험적으로 적합하다고 해서 반드시 참은 아니다. 구성적 경험론에 따르면 어떤 과학 이론이 참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며,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경험적으로 적합한지 여부뿐이다. 이론이 가지는 다른 가치들, 예를 들면 단순성, 설명 등은 그 이론이 참인지 여부와 관련이 없는 실용적인 덕목에 불과하다. 따라서 두 이론이 경험적으로 동등하다면 둘 사이의 절대적 우위를 가릴 수 없다. 과학이 예측적으로 성공적인 이유는 여러 이론들 중 예측적으로 성공적인 이론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지, 그 이론이 참이어서가 아니다.

Musgrave 논문의 구성: 3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 주제에 대한 구성적 경험론의 입장과 그에 대한 실재론의 반박이 소개되어 있다. 하위 항목은 내가 임의로 구분한 것이다. 



I. 진리, 경험적 적합성, 경험적 동등성 

1. 경험적 적합성 vs 참 
1-1. 구성적 경험론
과학 이론들이 참인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과학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참인지 여부가 아니라, 관찰 가능한 것에 대해 경험적으로 적합한지 여부이다. 즉, 과학 이론의 목표는 ‘현상을 구제’하는 것이다. 어떤 이론을 참이라고 믿는 것은 경험적으로 적합하다고 믿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크다. 우리는 어떤 이론이 참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재론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1-1.실재론
어떤 이론이 참인지 여부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문제가 구성적 경험론에도 존재한다. 어떤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한지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 적합성이 성립한다고 하려면, 그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현상을 구제해야 한다. 참이라고 주장되는 이론이 미래에 참이 아니라고 밝혀질 수 있는 것처럼, 경험적으로 적합하다고 주장되는 이론이 미래에 그렇지 않다고 밝혀질 수도 있다. 

1-2. 구성적 경험론
경험적으로 동등하나 양립 불가능한 이론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증거들은 두 양립 불가능한 이론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결정해줄 수 없다. 실재론자는 여러 이론 사이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결국 비증거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뉴턴의 이론에서 태양계는 절대 공간 안에 정지해 있다. 그러나 태양계가 절대 공간 안에서 등속으로 이동한다는 대안 이론도 뉴턴의 이론과 경험적으로 동등하며, 따라서 증거를 통해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2. 실재론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이 존재하더라도, 이 이론들을 확장시킨다면 경험적 동등성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 프라센의 예는 반박될 수 있다. 태양계가 절대 공간 안에 정지해 있다는 이론과 등속으로 운동한다는 이론은 다른 별들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에만 경험적으로 동등하다. 이론을 확장하여 다른 별들의 위치를 포함시키면 두 이론은 경험적으로 동등하지 않게 된다. 뉴턴의 이론에서는 태양계와 다른 별들의 거리가 일정하지만, 다른 별의 위치를 포함시킨 대안 이론에서는 그 거리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1-3. 구성적 경험론
이론을 확장하여 경험적 동등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해도, 새롭게 확장된 이론에 대해 또다시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서는 절대 속력을 알아낼 수 있으므로, 앞의 예에서 뉴턴의 이론과 결합하면 정지 상태와 등속 운동 상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경험적 동등성이 깨진다. 하지만 이렇게 결합된 이론에 대해서도 다시 경험적으로 동등한 새로운 대안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1-3. 실재론
이론들 사이의 결합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턴 이론을 전자기 이론과 결합하려면 뉴턴 이론의 근본적인 면까지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또한, 실제 과학사를 보면 과학이 발전하면서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 사이의 선택 문제가 해결되었다. 

1-4. 구성적 경험론
확장된 이론에서도 중요한 것은 경험적 적합성이며,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경험적 적합성이지 그것이 참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사적으로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이 제거되었더라도, 논리적으로는 경험적으로 동등한 대안 이론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1-4. 실재론
논리적으로 경험적으로 동등한 대안 이론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대안 이론들은 대개 원래 이론보다 단순성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이론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2. 이론의 단순성이라는 덕목
2. 구성적 경험론
이론의 단순성 단순한 이론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단순성은 단지 실용적 가치일 뿐, 그 이론이 진리인지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 사이의 우열이 단순성을 기준으로 갈릴 것이라는 주장은 과학의 영역에 형이상학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2. 실재론
실재론자들도 단순성의 실용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단순성에 실용성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여길 만한 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최대한 단순한 이론을 구성하고자 노력해왔다. 단순성이 이론 구성의 엄밀한 원리로 정립되고 그 원리가 받아들일 만하다면, 그 가치는 그저 실용적인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경험적 성공과 단순성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면, 자연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일은 아니다. 




II. 이론과 관찰 

1. 이론과 관찰의 이분법 


1-1. 구성적 경험론
이론과 관찰은 구분된다. 과학 이론에서 관찰된 현상에 대한 부분은 참이어야 하고, 나머지 부분은 참인지 알 수 없다. 

*1-1. 실재론
우리의 언어에는 특정한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관찰에 대한 진술도 이론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론에서 순수하게 이론적인 부분과 순수하게 관찰적인 부분을 분리할 수 없다. 

1-2. 구성적 경험론
이론과 관찰의 이분법이 과학 이론을 이루는 언어에서 직접 유도될 수 없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관찰 가능한지 아닌지의 구분은 존재한다. 인간의 눈은 물리적, 생물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눈의 한계가 관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구분해준다. 예를 들어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는 것은 관찰하는 것이고, 안개 상자로 입자를 검출하는 것은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1-2. 실재론
인간의 관찰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의 관찰 능력은 각자가 다 다르다. 또한 인간의 감각 기관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이다. 또한 다른 생물들은 인간이 관찰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이분법은 논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예를 들어 모든 관찰 가능한 것을 가려낼 수 있는 이론이 있고, 그 이론에서 다루는 대상들 중 B는 관찰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이론에서 ‘B는 관찰 불가능하다’는 진술은 ‘모든 관찰 가능한 것은 B가 아니다’라는 진술과 동치이다. 그런데 전자는 관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진술이고 후자는 관찰 가능한 것에 대한 진술이므로 모순이 발생한다. 


2. 관찰의 인식론적 의의 

2-1. 구성적 경험론
물론 인간의 눈에 특별한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식론적 의의는 다르다.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므로, 인간으로서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 이론의 참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가 관찰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 적합한 것만을 추구해야 한다. 

*2-1. 실재론
과학 이론이 경험적 적합성만을 추구한다는 말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이 무엇을 추론해야 하는지(방법론적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추론하는지(경험적 주장)이다. 이 두 주장 모두 합리적이지 못하다. 먼저 방법론적 주장이 잘못된 이유는,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용어에 기반을 둔 증거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electron)와 예티(히말라야 설인)는 둘 다 관찰되지 않았지만, 전자의 경우 다른 방법으로 검출할 수 있다. 경험적 주장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제 과학자들의 입장은 실재론에 더 가깝다. 전자를 검출했다는 표현을 쓰면서 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2-2. 구성적 경험론
과학자가 관찰 불가능한 대상을 믿는다는 것은 그 대상의 실재를 믿는다는 뜻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대상에 대한 이론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자(electron)를 믿는 과학자는 전자의 실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자에 대한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고 믿는 것이다. 

*2-2. 실재론
이런 주장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구성적 경험론자의 주장을 따른다면 과학자들이 관찰 불가능한 대상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모두 믿어야 하는데, 이는 명백히 불합리하다. 과학자들이 전자를 믿는다고 할 때 전자에 대한 모든 이론을 믿지는 않는다. 






III. 실재론과 설명 

1. 과학의 성공

1. 구성적 경험론
과학의 예측적 성공 실재론자들은 과학이 예측적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과학에서 다루는 관찰 불가능한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과학이 예측적 성공을 거두는 진짜 이유는, 수많은 이론들 중에 예측적 성공을 거둔 이론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1. 실재론
어떤 이론이 성공적인 이유와, 그 이론이 살아남은 이유는 다르다. 구성적 경험론자들은 후자는 설명했지만 전자는 설명하지 못했다. 즉, 어떤 이론이 왜 예측적 성공을 거두는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어떤 이론이 성공적인 이유는, 그것이 이미 알려져 있는 현상에 대한 예측 사례에 경험적으로 적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2. 좋은 과학적 설명의 조건 

2-1. 구성적 경험론
설명은 참이 아닌 이론에 의해 이루어졌어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참인지 여부가 아니라 경험적 적합성이기 때문이다. 

*2-1. 실재론
과학에서의 설명은 참인 이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참이 아닌 이론의 설명은, 경험적으로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설명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력의 원인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아닌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2-2. 구성적 경험론
설명에 대한 실재론의 요구는 너무 강하다. 설명이 모두 참이어야 한다는 실재론자의 요구에 맞추려면 어떤 이론이 그 이론의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론이 모든 사실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중력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을 예측할 수 있지만, 뉴턴은 중력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뉴턴은 중력을 단지 기술(description)했을 뿐이다. 

*2-2. 실재론
구성적 경험주의의 비판은 실재론과 본질주의를 혼동한 결과다. 본질주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궁극적 원리에 다다를 때까지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궁극적 원리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 뉴턴은 그가 중력의 원인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중력 이론이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설명과 기술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는 것도 옳지 않은데, 설명이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과학적 설명의 가치 

3-1. 구성적 경험론
과학적 설명은 실용적인 가치를 가질 뿐이다. 설명이 참이라는 독립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적 근거가 없는 설명은 ‘형이상학적 짐’일 뿐이다. 과학의 목표는 설명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규칙성에 대한 새로운 진술들을 제안하는 것이다. 좋은 설명은 현상을 잘 구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3-1. 실재론
구성적 경험론의 주장은 실제 과학자들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참인 설명을 찾고자 한다. 구성적 경험론자들은 과학의 해석(설명)과 그것의 방법론(관찰 가능성에 대한 진술)은 다른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참인 이론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3-2. 구성적 경험론
설명은 맥락 의존적이다. 어떤 P에 대한 설명이란 ‘P가 왜 그러한지’에 대한 대답이다.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면 다양한 맥락, 즉 ‘P’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왜 ‘Q’나 ‘R’이 아니라 하필 ‘P’에 대해 묻는지, 그리고 질문자가 궁금해하는 점과 대답 사이에 적절한 관련이 있는지[1]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의 참된 설명은 제공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는 수소 원자에 속한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관된 설명을 제공할 수 없다. 

*3-2. 실재론
실제 과학 이론들은 경험적 구성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있지는 않더라도, 과학 이론에는 초기 조건, 즉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반 프라센의 예에서 수소 하지만 실제 과학 이론에서는 이들에 대해 일반화된 수치를 제공하며, 이것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이 문제는 제쳐두고서라도, 이 예들은 관찰 가능한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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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실린 단행본인 Images of Science: Essays on Realism and Empiricism(1985)에는 반 프라센의 책 Scientific Image(1980)에 대한 실재론 진영 철학자들의 글 10편과, 그에 대한 반박이 담겨 있는 반 프라센의 글 1편이 실려 있다. (시카고대 출판부 책 정보 링크)

반 프라센의 Scientific Image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2장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논증들'의 비공식 번역이 존재한다. 링크



저자인 머스그레이브는 이 글보다 3년 앞선 1982년에 "Constructive Empiricism versus Scientific Realism"이라는 제목으로 학술지 Philosophical Quarterly에 Scientific Image에 대한 서평을 실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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