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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Kuhn, Thomas S. (1982) "Commensurability, Comparability, Communicability"

Kuhn, T. S. (1982, January). Commensurability, comparability, communicability. In PSA: Proceedings of the biennial meeting of the 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 (Vol. 1982, No. 2, pp. 669-688). 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
재수록: The Road Since Structure
번역: 조인래 역. 「공약 불가능성, 비교 가능성, 의사 소통 가능성」.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



쿤은 자신이 제시한 공약 불가능성 개념에 대한 비판들이 공약 불가능성 개념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가정은, 만약 두 이론이 공약 불가능하다면 그 이론들은 서로 번역 불가능한 언어로 진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에 의거해 공약 불가능성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비판이 제기되었다. 

첫째두 이론이 서로 번역 불가능한 언어로 진술되었다면 그것들은 서로 비교될 수 없고 따라서 두 이론 사이에서 선택할 때 증거에 기반을 둔 어떤 논변도 무관하다비교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유하는 토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쿤 등 공약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옛 이론들은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다음바로 그 불가능한 일을 한다. 이것은 모순적이다.

쿤은 '국소적 공약 불가능성'의 개념, '번역'과 '해석'의 구분, '언어 그물'('사전적 망상 조직')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비판들에 답한다.


국소적 공약 불가능성
공약 불가능성이라는 용어가 두 이론 사이에 공통된 언어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면두 이론이 서로 공약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두 이론(진술들의 집합)이 모두 잔여나 손실 없이 번역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공약 불가능하다고 해서 비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두 이론에 공통되는 용어들 대부분은 두 이론 내에서 거의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번역 불가능한 것은 적은 수의 용어들과 그 용어들을 포함하는 문장들에 대해서만이다공약 불가능성 주장은 비판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온건한 주장이다. 두 이론은 국소적으로만 공약 불가능하다. 따라서, 두 이론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용어들은 이론들 간 비교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또한 그 용어들은 공약 불가능한 용어들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기초까지도 제공한다그러나 어떤 이론 내의 한 용어가, 그 이론 내의 다른 용어의 의미가 변하는데도 혼자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그러나 국소적 공약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둘째 비판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번역 대 해석
선행 이론의 용어들 중 하나라도 후행 이론의 용어로 번역될 수 없다면실제로 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즉, 과학사에서 옛 과학 이론에 대해 현대적인 이론의 용어로 서술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쿤은 번역과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번역은 두 언어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 수행되며, 다른 언어로 거의 동등한 텍스트를 얻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번역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번역의 도착어는 번역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둘째변역이란 원본의 단어와 구절을 새로운 단어와 구절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반드시 일대일 관계는 아니다.)

해석은 번역과는 달리 한 언어만 구사하는 경우에도 행해질 수 있다. 콰인이 말하는 '원초적 번역자'radical translator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해석자이다. 해석자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용어를 습득한다. 그렇게 습득한 새로운 용어는 해석자가 이미 알고 있던 언어에 대응될 수 있고 이 경우 번역이 가능하지만, 새로운 용어가 이미 알고 있던 언어에 대응되지 않을 수 있다. 뒤의 경우가 바로 쿤이 '공약 불가능성'이라는 용어를 적용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지시 대상 결정 대 번역
키처에 따르면 '플로지스톤'을 현대 화학의 다른 용어들로 대체할 수 있다. (지시 대상 결정)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 공기'를 맥락에 따라 '산소'로 번역할 수도 있고, '산소가 풍부한 공기'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렇게 지시 대상 결정을 통해 역사학자들은 문제가 되는 표현의 의미를 배울 수 있고현대적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과거 이론들의 성공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키처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플로지스톤'이 현대 화학의 용어로 번역될 때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경우, 원래 이론의 전체론적 성격을 훼손할 수 있다. 옛 이론에서 같은 범주에 속하던 용어들이 현재 이론에서 의미가 달라지면서 다른 범주에 속하게 되거나, 특정 용어는 아예 의미를 상실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렇게 현대적 용어로 번역을 하면 옛 이론이 비정합적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옛 이론은 당시 맥락에서 정합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번역 실패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이론의 용어들은 그들이 지시 대상을 갖는지와 무관하게번역으로 의도된 어떤 텍스트에서도 제거될 수 없다.  


해석자 그리고 언어 교사로서의 역사학자
'플로지스톤'이라는 말을 현대의 용어로 번역할 수 있는 듯해도, '플로지스톤'이라는 용어의 지시 대상을 결정하는 구절들은 '원리' '원소등 지금과는 의미가 다른 번역 불가능한 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플로지스톤', '원리', '원소' 등은 상호 연관되거나 상호 정의되는 '언어 그물'(web of language)를 구성하기 때문에 전체로서 함께 습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서 제기된 문제로 돌아가서, 선행 이론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가선행 이론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 번역 불가능한 용어들을 새로 학습해야 한다. 과학사학자들은 이 용어들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의미를 발견하거나 고안해 내야 한다해석이란 이러한 용어들의 사용법이 발견되는 과정이다
(램지 문장 관련 내용이해 못 함.)


콰인 식의 번역 교본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번역은 순수하게 지시적인 용어들로 이해될 수 없다의미나 내포개념 등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콰인의 번역 교본은 다의성의 문제를 맥락 지정자(context specifier)로 해결한다. 즉, 한 언어의 용어가 다른 언어의 여러 용어에 대응될 경우, 어떤 맥락에서 어떤 용어에 대응시켜야 하는지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 '눈'은 영어로 'eye'나 'snow'로 번역될 수 있다.  맥락 지정자는 둘 중 어떤 것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개념적 불일치의 경우 이렇게 해서도 번역될 수 없다. 한국어 '비둘기'는 영어의 'pigeon' 'dove'를 함께 의미한다만약 비둘기를 'pigeon'으로 번역하면 비둘기의'dove'의 의미가 포기된다이러한 예를 보면 키처의 문제점은 분명해진다외연적 의미론에 기반해 진리치 보존이나 진리치의 동등성을 번역의 적절함으로 삼으면 일부 내포가 생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번역이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것인 지시만이 아니다번역은 지시뿐만 아니라 의미 혹은 내포를 보존해야 한다


번역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용어들을 지시 대상에 대응시킬 때우리는 우리가 그 지시 대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거나 믿는 것을 이용할 수 있다따라서 두 사람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그 용어의 지시 대상을 지시하는 데에 서로 다른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비둘기'라는 의 지시 대상을 생각하면서 한 사람은 '사람들을 잘 따르는 새'라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공원에서 과자를 받아먹는 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용어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동일한 지시 대상을 지시할 수 있는가? 한 가지 가능한 대답은, 언어가 세계에 맞춰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화자가 그가 사용하는 기준이 적절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낳는다한 집합의 원소들을 정확히 식별하려면 대조 집합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예를 들어 거위를 식별할 수 있으려면 오리나 백조와 같은 동물들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거위들이 공유하는 특징들뿐만 아니라다른 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도 알아야 한다세계나 다른 것들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습득하게 되는 지시 용어나 표현들은 거의 없다만약 서로 다른 기준을 사용하는 화자들이 동일한 용어의 동일한 지시 대상을 지시하는 데 성공한다면그들 각자가 개별 용어와 연계되는 기준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조 집합들이 어떤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즉, 앞서 이야기한, 용어들의 전체론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은 서로 다른 언어가 세계에 상이한 구조를 부여한다는 주장에 기초를 제공해준다한 언어에서 용어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언어 그물은 세계 구조의 어떤 측면들을 반영한다번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한 언어에서 지시하는 용어가 같은 지시 대상을 공유하는 다른 언어의 용어와 짝지어질 수 있으면서, 이 언어 그물의 구조가 동형이어야 한다. (플로지스톤 이론을 현대 화학의 체계에 끼워 맞추려는 키처의 시도는, 두 이론의 언어 그물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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