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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Chang, Hasok. (2016) "Scientific Realism and Chemistry"

단행본 Essays in the Philosophy of Chemistry. Eric Scerri, Grant Fisher 편집.


1. Unobservable Entities
화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들의 인식론적 그리고 존재론적 상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한 논쟁은 화학의 실천적인 측면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돌턴이 원자론을 제시한 이후로도 '화학적 원자론'과 '물리적 원자론'은 구분되어 있었다. 19세기 화학자들은 화학적 원자론은 받아들였지만, 물리적 원자론, 즉 원자들이 물리적 실체라는 점에 대해서는 실천적으로 딱히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화학적 원자론이 꼭 도구주의, 경험주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에 대한 다른 이론들처럼 화학적 원자론에도 실재론과 반실재론이 나뉘어졌다. 저자는 당시 화학자들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화학자들이 아마 물리적 원자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특히, 원자량과 분자 구조식의 등장은 이런 추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19세기 하반기의 화학적 발전은 물리적 속성들과 원자 구조에 대해 아주 부분적인 지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예를 보면,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에 대해, 실재론은 '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적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론적 존재자의 어떤 측면에는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면서 다른 측면에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은 대상의 한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도 있다. (Peters 2012에서 제시되는 '부분적 실재론'partial realism) 이러한 입장이 너무 모호한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론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그 이론의 성공을 이끌었는지 확실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할 때, 연속성이나 공통점만으로는 성공 여부를 설명하는 데에 부족하다. 두 이론 모두에 존재하는 존재자가 한 이론에서는 그 이론의 성공을 설명하지만 다른 이론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부분적 실재론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해킹의 '실험적 실재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화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조작할 수 있는 관찰 불가능한 속성에 대해 실재론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화학자들은 또한 이른바 '근본 이론'(양자역학을 비롯한 물리학)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주장되는 관찰 불가능한 속성이나 존재자들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예: 오비탈, curly arrows, nucleus-clamping.



2. The Nature of Models
최근의 과학철학은 이론이나 법칙보다 모형에 주목하고 있다. '모형'이라는 말은 반실재론적 함축을 갖는 듯하지만, 모형에 대해 실재론적 접근을 할 수도 있다. 실재론적 입장을 취한다면, 모형은 부분적 혹은 근사적 참으로서 실재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모형은 미리 규정된 한계, 즉 특정 측면에 대해서 믿을만하다. '특정 측면'에 주목하는 이러한 입장은 부분적 실재론에 잘 어울린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형을 사용하는 화학자들이 완전히 실재론자이거나 완전히 반실재론자들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예를 들어 공-막대 모형은 아무도 실제 분자가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용된다. 공-막대 모형은 원자가를 명확히 드러내주며, 현재까지 많은 화학자들과 학생들이 화학적으로 생각할 때 도움을 준다. 케쿨레의 소시지 모형도, 정말 원자들이 소시지처럼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원자가라는 특정 측면을 표상하는 것이다.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기 위해 그에 관련된 완전한 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루이스의 육면체 원자 모형은 폐기되었지만, 전자쌍이라는 아이디어는 보존되었다. 전자쌍 개념은 후에 양자역학의 스핀 개념을 통해 해명되었지만, 루이스의 육면체 원자 모형에서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양자역학이 발전한 이후에도 화학적 모형들은 여전히 사용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오비탈 개념이다. 엄격하게 말해, 오비탈은 단지 수학적 함수일 뿐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오비탈은 일전자 원자의 해밀토니안 에너지 연산자의 고유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많은 교재들에서 이 함수들은 3차원 그래픽 표상으로 나온다. 분자 구조와 화학 반응에 대한 설명은 종종 오비탈의 모양과 분포를 통해 설명된다. 주기율표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으로 전자가 특정 순서로 다른 오비탈들을 점유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런 설명은 틀렸기 때문에 무엇이 오비탈에 기반한 화학적 추론이 성공을 거두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오비탈이 실재를 그대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설명을 위한 특정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러한 성공을 이해할 수 있다.



3. Interventions and Practical Success
화학에서 실재성의 확보는 대상에 대한 개입과 큰 관련성이 있다. 화학은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한 '순수하지 않은 과학'이었고, 화학자들은 물질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과거 화학자들이 어떤 물질이 존재한다고 믿는 기준은, 그 물질을 이미 알고 있는 요소들로 분해할 수 있고, 다시 그 요소들에서 합성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학의 이러한 특성은 Bensaude-Vincent의 조작적 실재론operational realism, 해킹의 실험적 실재론과 연결된다. 

물론 실험적 실재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는 난점이 있다. 라우든의 비관적 메타 귀납에 따르면 과거의 성공적인 이론들은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됐다. 플로지스톤은 과거 화학 이론에 의거해 조작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 플로지스톤은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화학에서 조작 가능한 이론적 존재자가 실재한다고 믿더라도, 미래의 화학 이론에 의해 그 실재성이 부정될 수 있다. 이론 못지않게 실천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화학의 독특한 성격을 고려하면, 화학은 비관적 메타 귀납에 매우 취약한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해킹의 실험 실재론을 화학에서 그대로 밀고 나가, 플로지스톤이 실재함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4. Preservative Realism versus Conservationist Pluralism
저자는 여기서 과학 이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면 실재의 요소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인식론적 다원주의'epistemic pluralism이다. 역사적으로 특정 영역에서 조작적, 그리고 다른 경험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과학 이론들이 많았고, 화학에서 특히 그랬다. 따라서 성공적인 이론의 대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참은 조작적이고 검증가능하다. 
한편 저자는 이것을 '능동적 실재주의'active realism라고도 표현한다. (* 저자는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서 'active realism'을 이론을 뜻하는 '-론'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특정 태도를 담고 있는 '-주의'라고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이 논문은 영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다양한 이론들을 허용하면서, 그 이론들을 통해 실재에 대한 여러 측면을 배우는 태도를 뜻한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면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이론들의 공존을 허용하면서 각 이론들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론이 경험적으로 뒷받침된다는 것은 그 이론을 계속 쓸 수 있다는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보전적 다원주의'conservationist pluralism로 연결된다. 이는 기존 이론을 그 영역에서 유지하면서 새 이론을 다른 영역에서 실재의 다른 측면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과학사를 실재의 서로 다른 영역, 측면에 대한 쓸 만한 이론들을 추가해 가는 누적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5. Reduction and Levels of Analysis
화학은 물리학, 보다 구체적으로는 양자역학으로 존재론적으로 환원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왔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핵과 전자를 개별적으로 다루지만, 화학에서는 핵과 전자를 하나로 응집된 존재자로 다룬다. 핵과 전자를 하나의 응집된 영역으로 다루는 물리학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이론의 존재론적 층위는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양자역학보다는 화학의 실천적 체계가 성공적으로 적용된다. 화학의 목적이 궁극적 요소를 통해 화학적 현상을 올바르게 기술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능한 층위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술을 찾는 것인가? 후자가 화학의 실천에 부합하며, 따라서 화학의 영역은 양자역학과 독립된 층위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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