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Perry, John R. A Dialogue on Personal Identity and Immortality(1978)
번역: 존 페리. 김태량 역.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관한 대화』. 필로소픽. 2017.
예비적 논의
※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부 교양과목 "서양철학의 이해"(2017년 2학기, 강진호 교수님) 핸드아웃 5의 내용이다.
'identity'의 두 가지 번역
- 개인 정체성의 문제: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 개인 동일성의 문제: 한 개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겪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동일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개인 동일성 문제의 중요성
- 종교적 중요성: 한 개인이 죽은 뒤에도 사후세계에서 동일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여부는 특히 기독교 및 불교의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 도덕적, 법적 중요성: 한 개인이 어떤 조건 하에서 자신의 정체성 혹은 동일성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도덕적 또는 법적 권리 및 의무의 귀속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 동일성 문제에 대한 네 가지 이론
개인 동일성 문제에 대한 네 가지 이론
- 영혼 동일성 이론: 개인의 동일성은 그의 영혼의 동일성에 근거한다.
- 신체 동일성 이론: 개인의 동일성은 그의 신체의 동일성에 근거한다.
- 심리적 연속성 이론: 개인의 동일성은 그가 갖고 있는 심리 상태들의 어떤 연속적 관계에 근거한다.
- 회의주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체성 혹은 동일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개인과 같은 것은 없다.
책의 등장 인물
- 웨이롭: 신체 동일성 이론 옹호
- 밀러: 영혼 동일성 이론 옹호 → 심리적 연속성 이론 옹호
- 코헨: 심리적 연속성 이론 옹호
책 내용 요약
첫째 날
웨이롭: 몸이 죽은 뒤에도 자신이 사는 일이 '상상가능'한가? 즉, 몸이 죽은 뒤에도 경험하고 감각하고 사고하며 기억하는 미래의 누군가가 존재하며, 바로 그 사람이 나일 가능성이 있는가? 만약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의 내가 그 누군가의 미래의 경험들을 기대하고 바랄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나는 미래의 그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밀러: '나'는 비물질적인 영혼이다. 몸이 죽더라도 영혼이 남는다면, 그것은 나다.
웨이롭: 내가 원래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저번에 만난 그 사람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영혼 때문이 아니다. 영혼은 비물질적이므로 감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동일성은 영혼의 동일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밀러: 신체와 영혼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이전에 만났을 때와 신체가 같으므로 영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이롭: 신체는 죽으면 없어진다. 따라서 신체-영혼 상관관계로는 내세에서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다.
밀러: 현세의 신체-영혼 상관관계가 내세에도 적용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웨이롭: 그렇다면 신체-영혼 상관관계에 대한 지식은 선험적 지식이 아니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영혼은 비물질적이므로 영혼을 감각하여 동일성을 확인할 수는 없다. 신체-영혼 상관관계가 성립하려면 영혼의 동일성을 판별할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
밀러: 영혼의 동일성은 태도, 믿음, 기억, 편견 등 그 사람의 심리적 특성들로 알 수 있다.
웨이롭: 심리적 특성이 같다면 영혼도 같다는 것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예를 들어 물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강물처럼, 영혼이 계속 대체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동일성이 비물질적 영혼의 동일성에 있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밀러: 나 자신이 항상 동일한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확실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웨이롭: 하나의 사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밀러: 내가 특별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웨이롭: 자신의 경우에도 정말 확실한가? 지금의 나의 영혼이 과거의 나의 영혼과 같다는 것이 확실한가?
밀러: 자신의 동일성은 명석판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웨이롭: 자신의 동일성이 명석판명하다는 것이 자신의 동일성이 영혼에 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영혼은 관찰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같은 영혼이 쭉 이어져 왔는지, 여러 영혼이 계속 대체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으므로, 설령 영혼이 존재하더라도 동일성 원칙을 제공할 수 없다.
> 상상 가능성과 논리적 가능성이 같은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둘째 날
밀러: 내가 신체의 죽음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지와 상관 없이, 개인의 동일성은 신체의 동일성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기 전(자신의 몸에 대한 판단을 하기 전)에도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즉, 신체에 대한 판단 없이 개인의 동일성 판단을 할 수 있다.
웨이롭: 일단 넘어가자.
밀러: 깨어났는데 자신이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가능'하다. 그런 경우에도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동일하다고 판단할 것이며, 결국 같다고 인식하는 것은 자신 '그 자체'이다. 강물이 계속 흘러가도 우리가 그 강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강의 부분들끼리 일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인의 동일성은 그 개인의 한 부분(시간적 의미도 포함해서)이 다른 부분과 일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된다. 동일성이 영혼의 동일성인지 신체의 동일성인지 묻는 것은 헛된 시도이다. 사람은 의식의 어떤 단일한 전체 흐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내세에서도 어떤 의식하는 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가 지금의 자신과 적절히 연결되어 있다면 그 존재가 지금의 자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웨이롭: 의식의 부분들은 어떻게 적절한 방식으로 연결되는가?
밀러: 나중의 '나'가 그 이전의 '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웨이롭: 그러나 기억에는 가짜 기억도 존재한다. 기억이 동일성의 기준이라면, 진짜 기억을 가진 사람과 가짜 기억을 가진 사람 중 누가 나인지 어떻게 아는가?
밀러: 기억하고 있는 그 일을 실제로 행한 사람이 '나'이다.
웨이롭: 이것은 순환 논증이다.
코언: 실제 기억과 가짜 기억은 구분 가능하다. 해당 사건과 적절한 방식으로 야기된 기억, 즉 사건과 인과적으로 연결된 기억이 진짜 기억이다.
웨이롭: 죽어서 뇌가 없어지면, 지금의 나와 미래의 천상의 나의 기억이 어떻게 인과적으로 적절하게 연결될 수 있는가?
밀러: 신이 내가 죽을 때 가지고 있었던 두뇌를 복제한 두뇌를 갖는 사람을 만든다면, 그것이 나다.
웨이롭: 신이 그런 사람을 여러 명 창조한다면 지금의 나와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코언: 맞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신이 한 명만 창조하면 동일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웨이롭: 그렇다면 동일성의 조건에는 기억뿐만 아니라 내세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조건이 추가되야 한다. 즉, 나의 동일성이 나의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에 의존하게 된다. 신이 여러 명을 창조하면 동일성이 없어지므로, 한 명일 때도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여러 명일 때 동일성이 없고 한 명일 때만 동일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은 아니지만 합리적이지 못하다.)
셋째 날
웨이롭: 동일성의 기준은 의식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살아 있는 신체이다.
코언: 어떤 사람 A와 B가 있는데, B의 신체에 A의 뇌를 이식했다면 그 사람은 A이다.
웨이롭: 그 사람은 B인데 A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코언: 일반적으로 개인의 동일성은 신체적 동일성과 심리적 연속성 모두와 관련이 있고 대개 둘은 일치한다. 그런데 이 사례는 두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두 기준 중 선택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적 연속성을 택한다.
웨이롭: 개인의 동일성은 협약의 문제가 아니다.
밀러: 심리적 연속성이 내세에서의 동일성까지는 보장하지 못하지만(둘째 날 대화), 여전히 개인의 동일성에 대해 유효하다. 따라서 심리적 연속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웨이롭: 개인의 동일성이 신체의 동일성이라는 것을 보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심리적 연속성에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코언: 개인의 속성 중 중요한 것은 심리적 속성이다. 따라서 신체의 동일성보다는 심리적 연속성이 중요하다.
웨이롭: 둘째 날에 이야기했듯이 가짜 기억이 있을 수 있다.
코언: 실제 사건과 기억 사이의 적절한 인과, 즉 두뇌에 남은 흔적이 있으면 된다.
웨이롭: 똑같은 복제 두뇌가 있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원래의 두뇌를 가진 사람과 똑같은 복제 두뇌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둘 중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다.
> '복제 신체'가 있는 경우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웨이롭에게 문제가 된다. 웨이롭은 심리적 연속성이 동일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신체의 동일성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인 것도 아니다.
참고 자료
첫째 날
존 로크. 『인간 오성론』 II권 27장 「동일성과 다양성에 관하여」 - 개인의 동일성이 비물질적인 영혼의 동일성에 있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논변들
둘째 날
존 로크 - 개인의 동일성이 신체적 동일성에 있다는 견해에 반대하는 논변들, 기억 이론
조지프 버틀러, 『종교의 유비』 부록 「개인의 동일성에 관하여」 - 기억 이론이 순환론이라는 비판 제시
H. P. 그리스, A. M. 퀸튼 - 기억 이론 발전
슈메이커. 「개인들과 그들의 과거들」, 데이비드 위긴스. 『동일성과 공간적 시간적 연속성』 - 기억 이론이 순환론이라는 비판에 대해 인과적론으로 대응
앤서니 콜린스 - 로크의 개인의 동일성 이론과 같은 어떤 것이 옳다고 가정하였고 불멸성 원칙에 대한 문제점들을 제기하기 위해 복제 논변 사용
셋째 날
바버라 해리스. 『누가 줄리아인가?』 - 뇌 이식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
존 로크 - 구두 수선공의 신체로 옮겨진 왕자의 '의식’의 가능성 고려
시드니 슈메이커. 『자기- 지식과 자기-동일성』 -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지를 제시하기 위하 여 두뇌를 제거한다는 생각
버나드 월리엄스. 『자아의 문제들』 - 두뇌 제거는 신체 이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견해 및 기억 이론에 대해 반대, 복제 논변이 지구상에서의 개인의 동일성 문제에 있어 서도 적절한 것임을 강조
존 페리. 「자아는 나뉠 수 있는가?」, 『자아의 문제들』에 대한 논평 - 윌리엄스의 논변들과 관련된 주제들
릭 파핏. 「개인의 동일성」 - 대화의 끝부분에서 떠오른 주제들
존 페리 편집. 『개인의 동일성』. - 로크, 흄, 슈메이커, 윌리엄스 등의 글과 논문들, 파핏의 「개인의 동일성」 포함
존 페리. 「동일함의 중요성」
아멜리에 로티 편집. 『사람들의 동일성들』 - 개인의 동일성에 관한 많은 새로운 논문들. 페리의 「동일함의 중요성」 포함
책 내용이 보고 싶어서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정리가 너무 잘되어있네요. 발제문만 읽어도 책의 내용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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