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 일치 현상(similarity, attribute agreement)
실재론자들의 주장: 대상들이 서로 유사하거나 속성이 일치하는 경우, 그 대상들은 보편자라는 엔터티를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속성, 관계, 종 등이 있다.
보편자 실재론의 근거: 주-술 담론 현상, 추상물 지칭 현상. 주-술 문장이나 추상물 지칭 용어가 포함되어 있는 문장이 참이려면 보편자가 존재해야 한다.
단, 실재론자들은 술어화나 추상물 지칭이 어느 정도의 일반성을 갖느냐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술어화에서, '예화하다'라는 용어를 포함하는 문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실재론자가 있다.
실재론, 유명론
실재론: 플라톤식. 두 대상이 속성 면에서 일치할 경우, 보편자 Q와 관계 R을 맺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유명론: 보편자의 실재 반대. 보편자에 대한 지칭을 제거하는 설명 제시. 또는, 속성 일치가 근원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분석은 필요 없다는 노선도 있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취하고 있는 존재론
개체는 특정 시간에 단일한 공간을 차지한다. 보편자는 반복적 엔터티로서, 한 보편자가 여러 개체를 통해 예화된다.
속성 일치는 단항 보편자(one-place universal, monadic universal)에 의한 것이다.
어떤 실재론자들은 모든 단항 보편자가 속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실재론자들은 속성과 종을 구분한다. 대상은 속성을 소유possessing함으로써 그 속성을 예상한다. 한편 대상은 종에 속함belonging to으로써 그 종을 예화한다.
종은 그 종을 예화하는 개체들을 그 정체성의 수준에서 구성한다. 반면 속성은 이미 정체성이 규정된 개체들을 꾸민다. 종은 '개체화하는 보편자'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인간'이라는 한 개체(한 개인 말고, 인간 전체)를 규정한다.
보편자들은 다양한 수준의 일반성을 갖는다. (종속과목강문계) 두 개체 사이에 공유되는 보편자가 더 특수할 수록 속성 일치는 더 긴밀하다. 보편자들도 자신들보다 상위의 보편자들을 예화할 때 속성 일치를 보일 수 있다.('파랑', '노랑'과 '색깔'. 또, '더 밝음', '더 어두움'이라는 관계.)
관계는 다항 보편자이다. 관계에는 대칭적 관계와 비대칭적 관계가 있다.
실재론과 술어화
주-술 문장.
ㄱ.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
ㄱ이 참인 것은 ㄱ의 언어 구조가 세계의 어떤 측면의 비언어적 구조와 대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ㄱ이 참이려면 '용감한'이라는 것도 어떤 비언어적 대상과 연계되어야 한다. 즉, 주-술 문장 내의 술어는 속성/관계/종을 자신의 지시체로 가진다.
술어는 어떻게 보편자를 지칭하는가? 주어는 대상의 이름이다. 그러나 술어는 이름이 아니다. ('용감한'은 명사가 아니다). 대신 술어는 -임이라는 보편자를 표현express하거나 의미connote한다. 'a는 F이다'라는 문장은 'a는 F임을 예화한다'라는 문장으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술어들이 보편자들의 이름이 되지 않지만, 보편자를 담론 안에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며, 그것은 표현 관계 혹은 의미 관계이고, 이것을 통해 보편자를 지칭한다.
참인 문장에서 개별자인 주어의 지시체는 보편자인 술어의 지시체를 예화한다.
실재론과 추상물 지칭
실재론은 추상물 지칭 현상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추상 단칭 용어는 보편자의 이름으로서 지칭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하는 문장은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할 때 참이 된다.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속성, 종, 관계와 같은 것들에 대한 치칭을 포함하는 문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실재론에 부과되는 제약들: 예화
실재론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불일치는 실재론의 일반성에 관한 것이다.
보편자는 일부 용어들에만 대응한다. 그 어떤 형태의 형이상학적 실재론도 플라톤적 도식을 완전히 무제약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또, 어떤 형이상학적 실재론도 모든 술어가 서로 떨어져 구분된 각각의 보편자와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실재론의 문제1
예: '자기 자신을 예화하지 않는다'라는 술어는 '자기 자신을 예화하지 않음'이라는 속성을 표현하는데, 이 속성은 자기 자신을 예화하지도, 자기 자신을 예화하지 않지도 않는다.
*'~는 -이다' 형식의 문장이 동일성 관계를 나타내는지 예화 관계를 나타내는지는 주어와 술어를 바꾸었을 때 말이 되는가 보면 알 수 있다.
실재론의 문제2
여러 대상들이 한 보편자 F-ness를 예화하면, 그 대상들은 'F-ness를 예화함'이라는 또 다른 보편자를 예화하고, 또 'F-ness를 예화함을 예화함'이라는 또또 다른 보편자를 예화한다. 이런 식으로 무한 퇴행이 일어난다.
이 문제는 주-술 문장이 참임을 설명하는 데에도 나타난다. 'a는 F이다'가 참이려면 a는 F-ness를 예화해야 하고, 이것이 참이려면('a는 F-ness를 예화한다'가 참이려면) a는 F-ness를 예화함을 예화해야 하고....
실재론자의 대응1
예화의 무한 퇴행에 대해서, 모든 종류의 속성 일치에 대응되는 구분되고 분리된 각각의 보편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속성 일치를 근거 짓는 또 다른 보편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참 설명에 대해서도, 의미론적으로 구분된 일반 용어 모두가 구분된 한 보편자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실재론자의 대응2
무한 퇴행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 뒤로 무한 퇴행이 이루어지더라도, 어쨌든 첫 번째 속성 일치에 대한 설명은 완전한 것이다. 즉, a는 F이다를 a는 F임을 예화한다로 설명하면, a는 F이다의 속성 일치 설명은 끝난 것이다.
참 설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실재론자의 대응3
참 설명의 무한 퇴행에 대해서는 유명론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있다. 유명론에 따르면 'a는 F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은 어떤 조건 C가 만족될 경우 참이다. 그러나 이 경우 'a는 조건 C를 만족시키는 그러한 것이다'라는 새로운 문장이 나타나고, 앞 문장은 이 새로운 문장이 참인 경우에만 참이다. 이런 식으로 무한 퇴행이 일어난다.
실재론자의 대응 4
'F-ness'와 'F-ness를 예화함'은 문법적으로 구분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서로 다른 존재론적 기반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재론의 문제3 - 중요. 브래들리가 제기한 논변을 약간 변형한 것.
예화라는 관계 역시 보편자이다. a는 F-ness를 예화한다. 예화함은 예화함'를 예화한다. 예화함'는 예화함''를 예화한다. 무한퇴행.
다른 문제들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a가 F라는 것 바로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게 한다.
실재론자의 대응5
실재론적 설명은 예화 자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화는 관계가 아니다. 관계는 대상들을 묶는 것인데, 이는 예화의 매개를 통해서이다. 예화는 다른 것의 매개 없이 대상들을 묶을 수 있다. 즉, 예화는 기본적인primitive 범주적 특성이다.
이로써 문제1도 해결된다.
또 다른 제약: 정의되는 술어와 정의되지 않는 술어
어떤 술어들은 다른 술어들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undefined predicate, primitive predicate. 이런 술어들은 보편자와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그 외의 술어들은 이런 기본적 술어들에 의해 정의된다.
예: 총각임 - 남성임, 결혼하지 않음. 결혼하지 않음 - 결혼함의 부정.
이런 구분이 자의적인지 여부가 논란거리이다. 따라서 철학적 정당화가 필요하다.
경험론자의 인식론적 정당화: 기본적인 술어들이란, 인식론적으로 기본적인 특성, 측면을 표현하는 술어들이다.
ㄴ문제점: 과학의 이론적 술어들, 도덕적, 윤리적 술어들 등 여러 술어들은 감각, 지각적 속성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ㄴ문제점2: 가족 유사성. 술어들 사이에서 더 기본적인 술어들이 어떤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보편자에 대한 전체론자들의 대응: 기본적인 술어 구분의 자의성, 가족 유사성을 인정하나, 그것이 실재론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어떤 속성을 다른 더 친숙한 보편자들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다른 대응: 무엇이 기본적 보편자인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다. 이런 실재론자들은 대개 과학적 실재론자이기도 하다.
존재론적으로 의미 있는 술어는 옳은 물리 이론을 형식화하는 데 필수적인 술어들이다.
ㄴ문제점: 물리학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술어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ㄴㄴ대응1: 물리학적 보편자들은 존재론적으로 기본적이거나 근본적이다. 다른 보편자들은 물리학적 보편자들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물리학에 속하는 보편자들에 의해 고정되거나 규정된다. 비물리적 보편자는 물리적 보편자에 수반된다. 따라서 비물리적 속성, 종, 관계가 물리적 보편자로 분석되지는 않을지라도, 물리적 보편자는 비물리적 보편자의 근거가 되는 존재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ㄴㄴ대응2: 제거주의. 완전한 물리 이론이 나온다면, 나머지 술어들은 제거될 수 있다.
예화되지 않는 속성들이 있는가?
예화되지 않은 보편자 - 플라톤주의 실재론
-우연적
-필연적: 예를 들어, 둥글고 사각임.
예화되지 않은 보편자 개념에 반대하여, 보편자는 적어도 한 번 예화되어야 한다는 실재론자들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실재론. 구체적 개체들에 대한 우리 지식에서 보편자들에 대한 지식을 잘라내거나 분리할 수는 없다. 개체들을 파악할 때 우리는 그 개체들이 속하는 종, 속성, 관계들을 파악함으로써 파악한다. 반대로 종, 속성, 관계를 파악하려는 경우 그것들을 예화하는 개체들과의 인식적으로 접촉함으로써 파악해야 한다.
플라톤주의 실재론의 문제
많은 속성, 종, 관계들은 시공간적 세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두 세계의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하기 어렵고(형이상학적 문제), 우리가 그러한 보편자들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도 어렵다(인식론적 문제).
ㄴ플라톤주의자의 대응: 참인 주-술 문장뿐만 아니라, 거짓인 주-술 문장의 술어도 보편자를 지시체로 갖는다. 모든 보편자는 예화 여부에 상관 없이 필연적 존재자들이다. 반면 개체들은 우연적으로 존재한다.
ㄴ플라톤주의자의 대응2: 보편자란 개체들 사이의 속성 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다. 따라서 보편자는 존재론적으로 개체에 선행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존재와 예화 사이의 구별을 하지 못하고, 보편자의 존재를 사물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으로 잘못 본 것이다.
ㄴ플라톤주의자의 대응3: 예화는 보편자와 개체를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예화된 보편자들에 대한 지식은 경험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 예화되지 않은 보편자들은 예화된 보편자들에서 추론할 수 있다. 예화된 보편자들과 관련 없는 예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아무런 지식도 가질 수 없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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