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론자들은 보편자가 존재함을 부정한다. 형이상학은 이론적으로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명력이 같은 이론이 둘 있다면, 가정하는 대상의 종류가 더 적은 이론을 선택해야 한다.
가장 극단적인 유명론은 오직 구체적 개체들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유명론에는 문제가 있고, 따라서 메타 언어적 유명론이 나왔다.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 개체들 뿐이라는 점은 같지만, 보편자에 대한 주장처럼 보이는 주장이 사실 언어적 표현들에 대한 주장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트롭trope 이론: 속성이나 성질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개별적이다. 즉, 이들 각각은 오직 한 대상에서만 발견된다. 트롭: 개별적 속성들.
허구주의: 보편자는 허구적 이야기의 한 요소일 뿐이다.
유명론의 동기
동기1: 어떤 엔터티의 다중 장소 점유화는 불가능하다. 예: '그 빨간색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15미터 떨어져 있다', '그 삼각형이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면서 가까워진다'. 이런 주장들은 필연적으로 거짓이다. 그런데 보편자의 존재를 인정하면, 이 주장들을 인정해야 한다.
ㄴ실재론자의 반론: 보편자는 공간적 위치를 갖지 않는다.
ㄴ실재론자의 다른 반론: 보편자는 공간상의 여러 장소를 점유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담론들은 구체적 개체들에 기반하는데, 그것이 보편자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동기2: 보편자의 동일성 조건을 제시하려면 악순환에 빠진다. 예화하는 대상의 일치(외연적 일치)로 동일성 조건을 제시하면 안 된다. 내용의 일치(내포적 일치)로 보편자들간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그 보편자들을 정의하는 서로 다른 보편자들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새 보편자들이 수적으로 서로 다름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을 때만 이러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확신할 수 있으려면, 보편자들의 동일성 조건에 대한 일반적 설명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 u와 u'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k와 k'를 도입해서, k와 k'의 차이를 통해 u와 u'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애초에 k와 k'를 도입할 필요도 없이 그냥 u와 u'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k와 k'를 설명하기 위해 x와 x'를 도입하고, 이런 식으로 무한 퇴행에 빠질 것이다.
ㄴ실재론자의 반론: 비순환적 동일성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ㄴ실재론자의 반론2: 동일성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의 존재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시공간의 동일성은 오히려 거기에 놓인 대상들의 동일성에 의존한다. - 112쪽
동기3: 구체적 개체인 우리가 어떻게 보편자에 인지적으로 접근하냐?
ㄴ앞 장에서 나옴?
유명론의 가장 중요한 동기: 두 이론 중에서 선택할 때, 다른 모든 것이 똑같을 경우 우리는 이론적 개입theoretical commitment이 더 적은 설명을 선호한다.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엔터티들은 좋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나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실재론에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이론의 형태는 단일한데, 유명론에는 매우 다른 존재론들이 있다. 유명론의 존재론들은 모두 개체만을 전제로 하지만, 개체들을 종류를 매우 다르게 상정한다. 또한 보편자 논쟁에서 핵심 현상을 다루는 방식도 이론마다 크게 다르다.
극단적 유명론
극단적인 유명론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구체적 개체 뿐이다. 그러나 구체적 개체에 어떤 것을 포함시켜야 할 지는 논란이 있다. 상식적 대상을 구체적 개체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극단적인 경우 기본 입자들만 포함시킨다.
속성 일치 현상을 다룰 때 보편자는 필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속성 일치 현상은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분석되지 않는 세계의 근원적인 측면으로 간주해야 한다.
모든 존재론적 설명은 어떤 사실들을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실재론자들은 예화를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속성 일치를 기본적인 사실로 간주한다.
극단적 유명론에 따르면, 'a는 F이다'를 'a는 F-ness를 예화한다'로 바꾸는 것은 단지 언어적인 것일 뿐, 속성 일치 현상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주-술 문장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지.
주-술 문장이 참임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이론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주-술 문장의 언어적 구조와 세계의 비언어적 구조 사이의 대응이 참의 근거임을 보여야 한다. 둘째, 주-술 문장의 요소들과 세계 내 대상들을 연결하는 지칭 관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를 이용해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만,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그저 대상이 주-술 문장이 말하는 바대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 예: 'a는 F이다'라는 문장이 참인 것은 a가 F이기 때문이다.
첫째 조건에서, 문장가 세계가 대응된다. 둘째 조건에서, 주어는 어떤 대상의 이름으로, 이름 부르기naming을 통해 지칭되고, 술어는 주어에 의해 만족satisfaction됨으로써 지칭된다. 술어와 지칭적으로 묶여 있는 대상들은 오직 그 술어에 대해 참이 되는 구체적 개체들뿐이다.
'a는 F이다'는 존재론적 기본 사실이다. 속성 일치에 대한 이러한 견해에서, 술어화에 대한 설명도 도출된다.
보편자에 대한 주장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구체적 대상에 대한 주장일 뿐이다. 'a는 F-ness임을 예화한다'라는 문장은 'a는 F이다'라는 주장에 불과하다. 추상 단칭 명사는 보편자의 이름이 아니며, 추상 단칭 명사를 포함한 문장은 그렇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극단적 유명론에 대한 반론
추상 단칭 명사가 포함된 문장을 그렇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 '용기는 덕이다. -> 용감한 사람은 덕스럽다'. '힐러리는 빨간색을 파란색보다 좋아한다 -> 힐러리는 파란 대상들보다 빨간 대상들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앞 문장과 뒷 문장의 진리 조건이 달라진다.
ㄴ극단적 유명론자의 대응: ceteris paribus.
ㄴㄴ대응에 대한 반박: ceteris paribus를 도입하면 다시 보편자가 튀어나온다. 예: '다른 덕들을 똑같이 가지고 있을 경우, 용감한 사람은 덕스럽다.' - 다른 '덕'.
ㄴㄴㄴ극단적 유명론자의 대응: ceteris paribus에 함축되어 있는 것들도 전부 구체적 개체에 대한 것들이다. 예: 그 사람이 덕1, 덕2, 덕3 ... 덕n을 똑같이 가지고 있을 경우, 용감한 사람은 덕스럽다.
ㄴㄴㄴㄴ반박: ceteris paribus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술어가 실제 언어 내에 다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번역 하기 전과 후의 진리 조건은 다르다.
ㄴㄴㄴㄴㄴ극단적 유명론자의 대응: ceteris paribus는 분석되지 않는다. 이 구절을 사용할 때는, 문장에 정확히 어떤 조건들이 있는 지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상 단칭 명사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에도, 극단적 유명론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예: 저 토마토와 저 소방차는 같은 색깔을 가진다, 그는 자기 사촌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색깔과 성격은 추상 단칭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이런 경우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에서 일치한다'라는 표현으로 번역한다. 저 토마토와 저 소방차는 색에서 일치한다. 그와 그의 사촌은 성격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문장들이 계속 나오고, 극단적 유명론자가 해법을 제시하면 실재론자들은 다른 문장을 또 제시할 것이다.
계속 남는 문제점1: 구체적 개체만을 인정하면, 많은 것을 기본적인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속성들, ceteris paribus, ~에서 일치한다라는 구절 등등
계속 남는 문제점2: 일반적인 번역 지침을 제공하지 못하고 개별 문장에 대해 그때그때 번역을 할 뿐이다. 실재론은 단일한 의미론을 제시하는데, 극단적인 유명론을 그러지 못한다.
실재론의 설명적 단순성 vs 유명론의 존재론적 단순성
일부 극단적 유명론자의 대응: 번역이 안 된다는 것은 극단적 유명론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장들이 표현하는 믿음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메타 언어적 유명론
존재론적, 설명적 양 면에서 모두 단순한 이론으로 제시된 것.
실재론자들과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모두 추상물 지칭 장치를 포함하는 문장들을 대상 언어적 문장들object language sentence(대상에 대한 문장들)로 잘못 취급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메타 언어적 문장들(언어 표현에 대한 문장들)이다.
보편자에 대한 주장은 사실 어떤 언어적 표현에 관한 주장이다. 이 언어적 표현들은 여러 개체에 술어적으로 할당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들nomina(->유명론nominalism)만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보편자는 의미를 갖는 언어적 표현이다. 그리고 유명론은 어떻게 술어적 표현들이 다중 예화 엔터티 없이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유명론에 따르면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술어화라는 언어적 기능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라는 개념을 통해 술어화를 분석한다. 반대로 유명론자들은 술어화를 이용해 보편자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카르납에 따르면 추상 단칭 명사를 포함하는 문장은 사실은 그 추상 명사에 대응하는 일반 용어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다.
예: '용감한'은 덕 술어이다. '세모난'은 모양 술어이다. '용감함'은 속성이 아니라 형용사이다. '아버지임'은 관계가 아니라 다항 술어이다. '인간'은 종이 아니라 보통 명사이다.
카르납의 방식은 세 종류의 보편자, 즉 속성, 관계, 종을 포괄한다.
카르납에 대한 비판1: 카르납의 방식이 모든 보편자에 대한 지칭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단어 또한 유형어type와 개별어token의 구분이 있다.('인간'이라는 개별 발화는 단일한 유형어 '인간'에 대한 개별어이다.) 그런데 유형어와 개별어 사이의 관계는 보편자와 그 보편자를 예화하는 대상들 사이의 관계와 같다. 따라서 카르납은 비언어적 보편자 대신 언어적 보편자를 도입한 것에 불과하다.
카르납에 대한 비판2: 추상 단칭 명사의 사용은 특정 언어에 매여 있기 때문에,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이 불가능해진다. 한국어 '책'을 영어 'book'으로 번역하려면 두 단어가 말하는 바가 동일해야 한다. 즉, 이 둘은 같은 어떤 것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셀라스의 메타 언어적 유명론
비판1에 대한 대응: 추상적 엔터티에 대한 메타 언어적 이론은 유형어의 존재에 개입하지 않는다. 분배 단칭 용어: '용감한', '세모난' 등의 언어적 표현들은 '그 단어 '용감한'', '그 단어 '세모난'' 등을 의미한다.(The K, K는 일반 명사) the K는 보편자 K의 이름이 아니라, 다양한 개별적 K들에 대해 어떤 일반적 주장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예: 사자는 갈색이다 - 보편자 사자가 갈색이라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자들이 갈색이라는 뜻. 미국 시민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 보편자 미국 시민이 아니라, 개별 미국 시민이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는 뜻.
비판2에 대한 대응: 메타 언어적 지칭의 유일한 형태는 언어에 묶여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언어의 표현들은 기능 면에서 등가일 수 있다. 점표. 148쪽 각주 참고. 추상물 지칭 장치를 가진 문장들은 실제로는 점표 안에서 작동하는 국제 언어적이며 기능적인 어떤 것에 대한 메타 언어적 주장이다. 'F-ness'라는 추상 단칭 명사를 포함하는 문장은 언제나 점F점들에 관한 문장이다.
셀라스에 대한 비판
비판1: 셀라스의 메타 언어적 이론 틀로 분석되지 않으면서 보편자에 대한 지칭을 포함하는 문장들이 있다.(개별 반례들)
비판2: 셀라스의 이론은 보편자들의 새로운 집합을 도입하는 것이다. 셀라스는 여러 언어의 개별어 속에 체화될 수 있는 언어적 역할의 보편자에 개입하는 것이다.
ㄴ반박: 언어적 역할이란, 언어에 대한 아주 복잡한 사실들을 줄여 말하는 것이다. 즉 한 언어 표현의 기능에 관한 주장은 언어 사용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언어적 규칙들에 관한 주장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끝까지 분석했을 대, 언어적 규칙들에 대한 주장은 오직 발화하는 개별 인간들에 대한 것일 뿐이다.
쟁점1: 언어적 역할들이 언어적 규칙들로 분석될 수 있는가.
쟁점2: 언어적 규칙이라는 개념이 오로지 구체적 개체 말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지칭 없이도 이해될 수 있는가.
실재론자들은 언어적 규칙들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려면 규범이나 표준에 대한 주장을 해야 하는데, 이는 반드시 실재론에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셀라스의 지지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 154쪽 각주: 예를 들어 여러 개별 선수가 뛰고 있는 축구 경기를 생각해보자. 개체들은 독립적으로 행동하지만, 이들은 공통의 규칙을 체화하고 있다. 이 공통의 규칙은 각 개체가 함께 체화하는 어떤 보편자가 아닌가?
트롭 이론
트롭 이론은 유명론의 한 종류지만 속성의 존재도 인정한다. 그러나 속성들이 다중 예화 엔터티라는 점은 부정한다. 속성도 개체이다. 속성 역시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개체들만큼이나 개별적이다. 어떠한 두 개체도 한 속성을 공유하지 못한다. 속성은 본성상 개별적이며, 오직 한 구체적 개체에 의해서만 소유될 수 있는 것이다. 155쪽 각주: 소크라테스도 하얗고 플라톤도 하얗다. 그러나 두 하양은 수적으로 다르다.
속성들의 유사성은 수적 동일성이 아니다. (> 수적 동일성과 질적 동일성의 구분?)
구체적 개체에 더해 트롭을 도입하는 이유: 우리가 지각적으로 알게 되는 대상들은 색, 냄새, 소리, 모양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의 존재를 부정하면 우리 경험적 지식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설명조차 제공할 수 없다. 우리는 '타지마할'이 아니라 '타지마할의 색'에 주목할 수 있다. 즉, 우리의 주의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실재론자들이 말하는 다중 예화 엔터티들도 결국 트롭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된다. 타지마할의 색에 주목할 때, 분홍 일반이 아니라 타지마할이 갖는 분홍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다중 예화 엔터티는 필요하지 않다. 트롭 이론가들의 실재론에 대한 비판은 다른 유명론자들과 다르지 않다. 실재론은 동일성 조건을 결여한 엔터티를 가정하며, 이 엔터티는 공간적 위치에 대한 우리 직관과 어긋나고, 개별자와 보편자라는 이질적인 엔터티를 묶는 이상한 존재론적 관계를 설정한다. 다중 예화 엔터티는 잉여적이다.
속성 일치란 두 구체적 개체들이 매우 비슷한 트롭들을 가지는 현상이다. 여기서 트롭들이 서로 닮았다는 것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세계의 기본적인 측면이다.
추상 단칭 명사는 유사한 트롭들의 집합의 이름이다. 집합은 보편자가 아니다. 집합은 딱 부러지는 동일성 조건을 가진다. (보편자의 경우, 서로 다른 보편자가 정확하게 같은 대상들에 의해 예화될 수 있다.) 트롭 이론가들이 보기에 보편자와 달리 집합은 인정할 만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집합론)이고 필요한 것이다.
ㄴ그렇다면 극단적 유명론이나 메타 언어적 유명론에서도 집합을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은가? 굳이 트롭을 상정할 이유가 있는가?
ㄴㄴ극단적 유명론에서 집합을 포함시켜서, 'F-ness'를 F인 구체적 개체들의 집합의 이름이라고 하면, 똑같은 구체적 개체들에 의해 예화되는 다른 추상 단칭 명사 'G-ness'와 구분할 수 없게 된다.(집합의 동일성 조건. {a, b, c} = {a, b, c}) 하지만 트롭을 상정하면 그 집합의 원소들은 특정 구체적 개체가 소유하고 있는 트롭들이므로 서로 다른 추상 단칭 명사들간의 구분이 가능하다.({a-F, b-F, c-F} =! {a-G, b-G, c-G})
술어화: 구체적 개체에다가 일반 용어를 붙여 술어화한다는 것은 그 구체적 개체가 특정 집합에 속하는 트롭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주-술 문장의 참: 한 주-술 문장은 그 문장의 주어가 지칭하는 구체적 개체가 그 문장에서 말한 트롭을 실제로 가지는 경우에 참이 된다.
실재론, 극단적 유명론 및 메타 언어적 유명론, 트롭 이론의 진리 조건 정리
실재론: 'a'의 지시체가 'F-ness'의 지시체를 예화할 경우
극단적 유명론 및 메타 언어적 유명론: 'a'의 지시체가 술어 'F'를 만족시키는 대상들 중 하나일 때
트롭 이론: 'a'의 지시체가 'F-ness'라는 이름을 가진 집합의 원소들 중 하나(트롭)를 가질 때
트롭이 어떠어떠하다는 것은 기본적이고 분석 불가능한 사실이다.
트롭 이론에 대한 비판1: 추상 단칭 명사에 대응하는 일반 용어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만족되지 않거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참이 되지 않는 경우, 집합에 대한 동일성 조건이 트롭 이론가들에게 문제가 된다. 트롭 이론에 따르면 그런 경우 공집합인데, 공집합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속성('유니콘임', '그리핀임')이 구별되지 않게 된다.
ㄴ트롭 이론가의 대응: 어떤 일반 용어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참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일반 용어에 대응하는 추상 단칭 명사는 그 어떤 것의 이름도 아닌 것이다. - 예화되지 않은 보편자는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과 유사한 방식의 대응.
트롭 이론에 대한 비판2: 집합은 그 원소들로 인해 특정된다. 그렇다면 그 원소들의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없다. 예: '용감함'이라는 이름의 집합의 원소인 트롭을 가져야 용감한 개체이다. 그런데 용감한 개체가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용감함'이라는 이름의 집합의 원소가 달라지므로 집합이 달라지낟.
ㄴ트롭 이론가의 대응: 모든 가능 세계에서의 트롭들의 집합.
허구주의
허구주의에 따르면, 추성적 엔터티의 존재에 개입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은 모두 거짓이다. 모든 문장이 유명론적으로 번역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장들은 그냥 거짓이다. 따라서 이런 문장들과 관련된 존재론적 개입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추상적 엔터티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은 허구적 담론들을 다루듯이 다루어야 한다.
보편자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지만,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들에 의해 제조된 허구 안에서 이야기하는 중이라면 모순을 일으킬 걱정 없이 그런 문장들을 사용할 수 있다.
예: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였다. 실제로 이런 일은 없었으므로 이 문장은 거짓이다. 그러나 일리아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맥락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이것은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였다'는 방식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번역은 아니지만) 이해될 수 있다.
허구주의의 문제: 보편자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은 매우 강한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증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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