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는 가능 세계 개념이 환원주의적 유명론을 위해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루이스는 가능 세계 개념을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이용해 속성, 명제, 명제 양상, 사물 양상 등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모든 가능 세계를 똑같이 실제적이며 완전히 구체적인 엔터티로 간주하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플랜팅가의 견해에 따르면, 가능 세계 개념은 속성, 명제, 명제 양상, 사물 양상 등과 같은 여러 개념들의 그물망 내의 한 요소이다. 우리는 이런 개념들을 그물망 밖에 있는 개념들로 환원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개념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 이 개념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가능 세게는 최대로 가능한 사태들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는 현실적으로 구현된 최대로 가능한 사태이다. 플랜팅가는 오직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실제적이라는 현실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가능 세계라는 개념 틀 전체를 받아들인다.
양상과 관련한 문제들
필연, 가능, 불가능, 우연 등이 개념을 양상 개념이라고 한다. 어떤 명제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그 명제가 거짓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속성이 어떤 대상에 본질적이라는 것은 그 속성 없이는 그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한 양상 개념(필연, 본질)을 다른 양상 개념(불가능)으로 설명한 것이다.
양상 개념에 대한 비판에 따르면, 양상 개념들은 세계와의 경험적 접촉으로 화누언되지 않는다. 경험은 필연, 가능 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양상에 대한 말이 어던 것을 보증한다면, 그것은 언어적 보증 정도이다. 예: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 이건 필연적이지만, 단지 단어의 의미 때문이다. 언어적 필연.
또 다른 비판은, 양상 개념이 외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문장이 외연적이라는 것은, 그 요소 단어를 공지시적 단어로 대체했을 때 진리치가 바뀌지 않음을 뜻한다. 한편 두 문장은 둘이 같은 진리치를 가질 때 공지시적이다.(문장의 지시체는 진리치) 철학적 문장의 언어가 외연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문장들 사이의 추론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상 개념을 포함한 문장들은 외연적이지 않다. 예: 필연적으로 빌 클린턴은 대통령이다. 와 필연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은 대통령이다 는 다름.
양상 문장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정식화하는 논리 체계가 있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며, 그것이 바로 양상 논리학이다. 문제는 양상 논리 체계가 너무 많았다. 즉, '주어진 양상 문장들의 집합으로부터 어떤 양상 문장들이 도출되는가?'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여러 양상 논리학들이 있었다.
가능 세계 개념을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필연, 가능 등의 개념들은 가능 세계들에 대한 양화(모든, 어떤)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양상 논리학이 여럿이었던 이유는, 가능 세계에 대한 양화에 여러 가지 다른 형식적 제약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론자의 비판이 옳지 않은 것은, 그들이 현실적인 지각에만 주목해서 양상적 담론의 주재료인 가능 세계들 전체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능 세계
가능 세계라는 개념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우리 직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다고 믿으며, 그러한 세상의 여러 존재 방식이 우리 일상적 양상 믿음에 대한 진리 결정자라고 생각한다. 가능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 믿음을 조직화한 것 뿐이다.
명제 양상: 한 명제에 적용되는 가능, 필연.
사물 양상: 한 대상에 본질적인 것, 우연적인 것. 어떤 속성을 예화할 때 드러나는 양상적 지위를 규정하는 것.
사물 양상을 할당하는 일과 명제 양상을 할당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예: '스티븐 호킹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짝수이다'와 '필연적으로, 스티븐 호킹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짝수이다'는 다른 문장이다.
명제가 가능 세계 안에서 참이나 거짓인 것처럼 대상도 가능 세계 안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 x가 속성 P를 필연적(본질적)으로 가진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x가 '존재하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x는 P를 가진다. 이와 같이, 명제 양상의 경우 가능 세계에 대한 양화는 어떤 조건도 전제하지 않지만 사물 양상의 경우 그 사물이 존재하는 가능 세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가능 세계 유명론
환원론적 가능 세계 형이상학자는 극단적 유명론의 환원론적 기획을 가능 세계 개념으로 완수하고자 한다. 가능 세계 개념은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 속성이나 명제와 같은 개념들에 진정으로 유명론적 설명을 해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유명론자들에 따르면, 각 가능 세계는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오직 구체적 개체들만을 포함한다. 다양한 가능 세계들과 그 안의 구체적 개체들을 이용해 속성이나 명제 같은 것을 환원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유명론적 기획을 완성할 수 있다.
집합론을 가능 세계 전체와 그 내용물들에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존재론을 구성하는 여러 엔터티에 대해 극단적 유명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존의 극단적 유명론은, 두 집합의 구성 원소가 똑같으면 서로 다른 두 속성을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가능 세계 유명론자들에 따르면, 집합은 모든 가능 세계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 경우 기존 유명론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속성은 가능 세계들로부터 대상의 집합으로의 함수이다. 속성은 각 가능 세계, 그리고 각 가능세계에서 그러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을 연결한다.
명제는 가능세계의 집합이다. 한 명제는 그 명제가 거기서 참인 가능 세계들의 집합이다. 이것은 순환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명제 p에 대해 p-적인 세계라는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순환이 해결된다. 예: 명제 '모든 백조가 하얗다': '모든 백조가 하얀 가능세계'의 집합.
만약 가능 세계 유명론자들이 옳다면, 명제나 속성 같은 것들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들이 옹호하는 종류의 환원 불가능한 기본적 엔터티가 아니라, 가능 세계와 가능 세계 내 대상들의 집합일 뿐이다.
어떤 명제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그 명제가 모든 가능 세계의 집합을 뜻한다는 것이다.
사물 양상에 대해, 대상 x가 어떤 속성을 현실적으로 예화한다는 것은, 그 속성(집합)이 현실 세계에 대상들의 집합을 할당하는데, x는 그 집합의 원소라는 것이다.
언어의 의미에 관하새도 완벽한 집합론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의미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개입하게 되는 것은 오직 가능 세계와 가능 세계에 있는 대상들인 구체적 개체들뿐임을 보여준다. 반사실적 조건문도 현실 세계 말고도 다른 가능 세계와 관련된 주장이라고 하면 부드럽게 설명된다.
가능 세계 유명론의 형이상학: 데이비드 루이스
가능 세계 유명론이 속성, 명제, 명제 양상, 사물 양상, 의미, 반사실적 조건문 등을 설명하는 환원주의적 기획 속에서 착수되었다면 가능 세계 개념이 어떠한 것인가는 그것이 설명하는 것과는 독립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루이스에 따르면 가능 세계란 그저 현실 세계와 종류가 같은 것이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현실 세계는 '나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다. 다른 가능 세계들도 또 다른 커다란 구체적 대상일 뿐이며, 시공간적 관계를 맞는 작은 구체적 대상들이 그것들의 부분이다. 루이스에 따르면 이 모든 구체적 대상들은 완전히 실제적이며 완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가능 세계는 시공간적으로 닫혀 있어서 어느 한 세계의 대상과 다른 세계의 대상을 묶어내는 인과관계는 없다.
우리 세계를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세계에 존재론적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현실 세계라는 말은 지표사일 뿐이다. 그런데 가능 세계가 모두 존재한다면, 어떻게 한 구체적 대상이 통세계적 개체transworld individual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통세계적 개체가 각 가능 세계에 존재한다면 동일자 구별 불가능성 원리를 깨기 때문이다. 동일자 구별 불가능성 원리는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와 달리 모든 철학자가 동의하는 원리이다. 세계 꼬리표 속성world indexed property를 이용하면 다른 가능 세계에서 통세계적 개체가 존재함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런 설명에 반대한다. 세계 꼬리표 속성을 갖든 갖지 않든 사물들은 우리가 그것들에게 귀속시키는 속성들을 분명히 가진다. 예: '나는 인간임' 따라서 루이스는세계 꼬리표 속성에 반대하며, 각 개체는 자기 세계에 묶인 개체들world-bound individuals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오직 한 가능 세계에만 존재하는데, 그럼 양상 개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루이스에 따르면 통세계적 개체 없이도 사물 양상적 구분을 해낼 수 있다. 한 세계 내의 개체와 다른 세계 내의 개체 사이에는 수적 동일성 관계보다는 약한 어떤 관계가 있어서, 이 관계는 양상에 관한 직관을 충분히 보장해준다. 이 관계는 상대역 관계로서, 유사성 혹은 닮음 관계이다. 상대역은 '그들 세계 각각의 다른 모든 이들 중 가장 나와 닮았다'.
상대역을 이용해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 사이의 구분에 대한 가능 세계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만약 한 개체와 그 개체의 상대역들 모두가 어떤 속성을 예화한다면, 그 속성은 개체 본질적이다. 한 개체가 어떤 속성을 예화하지만 그 개체의 상대역 중 어떤 것들이 그 속성을 예화하지 않는다면 그 속성은 그 개체에 우연적이다.
351~352쪽에 요약 정리 있음.
현실주의와 가능 세계: 앨빈 플랜팅가
루이스의 존재론은 가능주의라는 존재론의 한 형태이다. 루이스에 따르면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가능하기만 한 대상들이 존재한다. 반면 현실주의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현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뿐이다.
루이스 이론의 기술적 문제: 면제를 가능 세계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하면, 필연적인 참인 명제는 오직 하나 뿐이며(모든 가능 세계들의 집합), 필연적으로 거짓인 명제도 오직 하나 뿐이다(공집합).
루이스 이로느이 철학적 문제: 명제는 믿음 혹은 앎 등 명제 태도의 대상이지만, 집합은 명제 태도의 대상이 아니다. 명제는 진리치의 소유자이지만 집합은 참이나 거짓이 아니다. 명제는 세계 내의 대상들을 표상하는 엔터티지만 집합은 그저 대상들의 모임으로써 표상적 힘을 갖지 않는다.
루이스의 비판자들에 따르면, 명제, 속성, 명제 양상, 사물 양상 등의 개념은 일종의 개념적 그물망을 형성하는데, 우리는 이 개념적 그물망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가능 세계 개념도 이 그물망 중 일부를 이루며, 그 그물망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양상 개념들은 그 자체로 잘 정리되어 있는 개념으로, 그 어떠한 환원도 필요치 않다. 그래도 이러한 개념들 사이의 관계들을 드러낸다면 양상 개념들의 그물망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도와주는 도구가 가능 세계 개념이다.
명제에는 명제 양상이 부여된다. 그러나 명제 그 자체가 이해되지 못하면 명제 양상 개념 역시 이해될 수 없다. 반대로 명제가 명제 양상이 부여되는 것으로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명제라는 것 자체가 이해될 수 없다. 어떤 대상이 어떤 속성, 종, 관계를 갖는데, 거기에는 사물 양상이 포함된다. 그러나 사물이 속성, 종, 관계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못한다면 사물 양상 역시 이해될 수 없다. 반대로 사물의 양상적 성격이 이해될 수 없다면 한 사물이 속성, 종, 관계를 가진다는 것도 이해될 수 없다.
루이스 같은 가능주의자들의 주장, 즉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부정합성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는 유일한 존재 개념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플랜팅가는 양상 개념 그물망 내의 어떤 요소를 환원하기 위해 가능 세계를 이용할 수 있음을 부정한다. 따라서 가능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때 이 그물망 내의 여러 요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현실적이지 않은 가능 세계들이 있다는 사실, 현실주의, 이 둘은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보인다.
추상적 엔터티에 대한 플라톤주의에 따르면, 모든 속성은 필연적 존재이다. 그러나 모두가 예화되는 것은 아니다. 즉, 예화되지 않더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분이 사태에도 적용된다. 사태의 존재와 구현(속성에서 예화에 해당)은 구분되어야 한다. 모든 사태는 필연적 존재이며, 따라서 모든 사태는 존재하며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사태들은 구현되지 않는다. 가능 세계는 모두 사태의 일종이다. 모든 사태가 필연적으로 존재하므로 모든 가능 세계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모든 가능 세계는 현실 세계의 내용물들 중 일부이다. 그러나 가능 세계들 중 하나, 즉 현실 세계만 구현된다. 따라서 오직 한 세계만 현실적이라는 주장(현실주의)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주장은 양립 가능하다.
가능 세계는 매우 포괄적인 사태로서, 우리가 최대한 포괄적인 사태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대한 포괄적인 사태란, 다른 모든 사태에 대해 그 사태를 포함할 지 배제할 지 판단을 하는 사태를 말한다. > 가능 세계에 대해 '최대한 포괄적인 사태', '최대한 포괄적인 가능 사태들의 총체' 두 용어를 쓰는데 둘이 달라 보인다.
루이스는 엄격한 비양상적 용어, 극단적 유명론의 용어로 가능 세계 개념 틀을 특징짓지만, 플랜팅가는 사태라는 플라톤적 개념과 가능성, 포함, 배제 등 양상적인 개념을 사용한다.
루이스는 현실성에 대해 지표성 이론을 제공한다. 반면 플랜팅가는 현실성을 사태의 구현으로 이해하며, 구현은 존재롡거으로 특별한 속성이다.
루이스의 가능 세계들은 구체적 개체이다. 플랜팅가의 가능 세계들은 추상적 엔터티이다.
플랜팅가에 따르면 현실 세계가 구현되었기 때문에 물리적 우주(구체적 대상들의 총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명제와 사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둘은 다르다. 명제는 진리치를 가진다. 명제는 그것이 참이 아니면서도 그 가능 세계가 구현됨이 불가능 할 때 그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즉, 명제는 어떤 가능 세계가 현실화되면 그 명제가 참이 되는 경우 그 가능 세계에서 참이다. 여기에서 명제 필연, 명제 가능 등에 대한 주장이 따라나온다(필연적 명제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참이고 등등). 플랜팅가에 따르면 이러한 설명들은 비양상적 개념을 통해 명제 양상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이 설명들은 가능 세계라는 개념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양상 개념들을 전제로 삼는다(현실 세계는 '필연적' 존재). 또한 이 설명들은 어떤 가능 세계에서 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작업 속에서 작동하는 양상 개념들을 전제로 삼는다. 또, 이 설명들은 한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참은 단순 개념이며, 이 개념을 이용해 '어떤 세계에서 참임'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어떤 가능 세계에 존재한다는 말은 그 사물이 (추상적인 엔터티인) 그 세계 안에 물리적으로 담겨 있다는 말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반사실적 주장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 세계가 현실화되었다면, 그 대상은 존재했을 것이다.
어떤 가능 세계 W에서 대상 x가 속성 p를 가진다는 말은, W가 현실화되었다면 x는 p를 가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크립키에 따르면 루이스의 상대역 이론에서 얻게 되는 양상 개념은 본질, 우연에 대한 우리의 직관 속의 양상 개념과 매우 다르다. 따라서 상대역 이론은 본질, 우연 개념을 분석하지 못한다. 예: 내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에 대한 것이다.
플랜팅가는 크립키에게 동의하며, 또한 통세계적 개체가 존재한다면 동일자 구별 불가능성 원리가 깨진다는 루이스의 논변을 거부한다. 세계 꼬리표 속성. 루이스는 세계 꼬리표 속성에 대해, 그런 설명이 옳다면 개체는 일상적 속성들을 가지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플랜팅가에 따르면, 세계 꼬리표 속성을 이용해도 꼬리표가 붙지 않은 속성들을 통해 사물들을 묘사할 수 있다. 대상이 현실적으로 갖는 속성들(현실 세계에서 갖는 속성들)은 꼬리표가 없으며, 꼬리표가 붙은 개념들은 꼬리표가 없는 속성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통세계적 개체에 대해, 단일한 사물이 어떻게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플랜팅가에 따르면 통세계적 개체는 일상적 직관에 등장하는 것이다. 나에게 다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믿을 때, 나는 바로 나에게 다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고 믿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은 내가 통세계적 개체여야 참일 수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여러 존재를 내가 가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포함되어 있는 사태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구현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플랜팅가는 개별적 본질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한 사물에 본질적인 속성들 중 많은 속성은 다른 사물에게도 본질적이다. 예: 자기 자신에게 동잃함, 빨갛거나 빨갛지 않음, 만약 초록색이라면 색깔을 가짐 등. 이런 것은 하찮은 본질적 속성trivially essential property이다. 다른 한편 여러 대상에 본질적이지만 다른 대상에는 본질적이지 않은 속성들도 있다. 예: 인간임. 또, 개별적 본질 혹은 이것임haecceity(이것임thisness)라고 불리는 속성도 있다. 이런 속성은 그 대상이 본질적으로 가지며, 필연적으로 다른 사물들은 갖지 않는다. 예: 대상 a가 있을 때, a와 동일함. 한 대상에 개별적 본질은 여러 개가 있다. 한 대상이 갖는 모든 세계 꼬리표 속성은 그 대상이 본질적으로 갖는 속성이다. 그런데 오직 그 개체만 어떤 속성을 갖는 가능 세계가 있고, 그 꼬리표 속성은 필연적으로 그 개체에게만 고유하다. 예: 오직 대상 a만 가능 세계 W에서 속성 P를 가질 때, W-P라는 꼬리표 속성은 오직 a만 가진다.
개별적 본질은 형이상학으로 의미있는가? 플랜팅가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에 따르면 개별적 본질은 매우 풍부한 개념이어서, 전지한 존재가 한 대상의 개별적 본질을 검토하기만 하면 그 대상이 현실적으로 갖는 모든 속성을 다 읽어낼 수 있다. 한 속성은 다른 속성을 함축하는데, 한 대상이 가지는 어떤 개별적 본질은 그 대상에 본질적인 모든 속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예: 소크라테스와 동일함이라는 속성은 소크라테스에게 본질적인 모든 속성을 함축한다. 따라서 한 대상이 갖는 그 어떤 개별적 본질도 그 대상이 갖는 세계 꼬리표 속성들 각각을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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