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개체는 더욱 근본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기체 이론과 다발 이론이 대립된다.
기체 이론: 개체는 속성과 그 밑바탕에 놓인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기체는 속성과 독립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다. 이 기체가 바로 속성을 예화하는 것이다.
다발 이론: 기체는 존재하지 않고, 개체는 속성들의 다발일 뿐이다.
기체 이론가들에 따르면, 다발 이론가들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참인 주-술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또, 다발 이론가들은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워니라는 거짓 원리를 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체 이론 또한 정합적이지 못하다.
기체 이론과 다발 이론 대신 실체 이론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르면 구체적 개체의 일부는 존재론적으로 기본적인 엔터티이다. 보편자들을 예화하는 것은 바로 구체적 개체이다. 어떤 보편자들은 우연적으로만 그 개체에 의해 예화되지만, 다른 보편자들(그 개체가 속하는 종)은 그 개체의 정체성을 규정해주어서 본질적으로 그 개체에 의해 예화된다.
기체 이론, 다발 이론
개체: 예화될 수 없는 것이며, 많은 속성을 갖거나 그 속성을 예화한다. 시간적 규정성을 가지며, 따라서 우연적 존재자이다(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 또,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화한다. 각 시간에 공간적 위치를 차짛고 있다. 이것들이 물리적으로 단순한 것이 아닐 경우, 공간상 특정 위치를 점하는 물질적 부분들을 가진다.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속성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구체적 개체를 분석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구체적 개체는 존재론적 구조를 갖지 않는, 하나의 전체인 것이다.(구체적 개체를 '물방울'에 비유) 물론 구체적 개체들은 구분된 물리적 부분들을 여럿 가질 수 있으나, 이런 물리적 부분들도 전체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분석을 하기에는 매우 불투명한 것이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나 트롭 이론가들은 구체적 개체에는 구분된 엔터티들(속성이나 트롭들)이 있고, 구체적 개체가 이 엔터티들을 갖거나 예화한다고 말한다. 구체적 개체를 존재론적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이런 구조가 어떤 일반적 형식을 띠고 있는지 설명한다는 것이다. 구성 엔터티가 무엇인지 특징짓고, 이 각 엔터티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물을 존재론적으로 특징짓는 일이다.
기체 이론: 속성이 있다면, 속성의 담지자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 개체가 속성을 가진다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틀렸다. 속성과 그 속성을 소유하는 어떤 것은 다른 것이다. 즉, 속성의 소유자는 속성과 독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에는, 그것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을 전제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구체적 개체가 속성의 담지자가 아닌 이유는, 구체적 개체 전체의 정체성에는 그것이 속성을소유한다는 사실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체는 그것이 소유한 속성이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만약 포함된다면, 그 기체가 갖는 속성의 담지자인 기체'가 필요하고, 그럼 기체''가 필요하고 ... 이런 식으로 무한 퇴행에 빠진다. 무속성 기체bare substratum.
구체적 개체의 구성 요소들을 함께 묶어내는 존재론적 풀glue는 기체와 속성의 관계이다.
실재론적 기체 이론가: 속성들이 통일되어 한 사물로 나타나는 것은 무속성 기체가 속성들을 예화하기 때문이다.
유명론적 기체 이론가: 한 기체가 각 트롭을 가지기 때문에 그 기체와 트롭은 한 사물을 구성하게 된다.
무속성 기체 이론에 대한 비판
특히 존재론에서 경험론적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철학자들이 기체 이론에 많은 비판을 했다. 형이상학 이론의 기본적 엔터티는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거나, 매개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는 대상들에 한정되어야 한다. 지각적이든 자기 반성적이든 경험은 속성을 파악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무속성 기체는 어떤 속성도 포함하지 않으므로 경험의 범위를 넘어선다. 또, 어떤 주장이 의미 있으려면 그 주장은 분명한 경험적 내용물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무속성 기체는 그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다. 따라서 무속성 기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다발 이론: 거짓인지 무의미한지를 떠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드러나는 속성들만 받아들여도 구체적 대상들의 구조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있다.
다발 내의 속성들을 묶는 관계가 있는데, 이것을 공존compresence, 함께 놓임collocation, 조합combination, 동체화consubstantiation 등으로 부른다. 이 관계는 분석 불가능한, 그래서 존재론적으로 기본적인 관계이다. 속성들이 이런 관계에 놓일 때 오직 우연적으로만 그렇게 되고, 이 점은 구체적 대상들의 우연성을 설명해준다.
실재론적 다발 이론가: 보편자, 기체 사이의 구분이 근본적이라는 점에 반대한다. 가장 밑바탕에는 오직 보편자만이 존재한다. 이는 극단적 유명론자의 입장, 즉 구체적 개체만 존재하고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과 정반대이다.
유명론적 다발 이론가(트롭 이론적 다발 이론가): 가장 밑바탕에는 트롭만이 존재한다. 개체(개체적 속성, 트롭)은 파생된 개념이 아니고, 구체적 개체, (실재론자에게는 보편자로 취급되는) 집합이 파생된 개념이다.
다발 이론에 대한 반론: 주-술 문장
다발 이론에 대한 반론1: 대상들이 변화를 겪으면서도 어떻게 여전히 동일한 것으로 남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속성의 차이는 다발의 차이를 낳고, 다른 다발은 다른 대상이기 때문이다.
ㄴ반박: 이 반론이 다발 이론에만 해당되는지 분명치 않다. 이것은 구성요소-전체 관계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기체 이론가들도 기체와 속성의 결합으로 구체적 개체를 설명하는데, 그럼 기체 이론에서도 속성이 변하면 구체적 개체가 변하는 거 아니냐?
ㄴ변화를 뚫고 지속함이라는 문제는 그 자체로 어려운 문제로서, 8장에서 다시 다룬다.
다발 이론에 대한 반론2: 다발 이론은 주-술 문장에 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없다. 주-술 문장에서 우리는 어떤 대상에 어떤 속성을 귀속시킨다. 그러나 다발 이론가들은 속성들 밑에 깔린 주체를 부정한다.
ㄴ반박: 이 주장은 기체 이론을 미리 전제하고 있는 주장이다.
다발 이론에 대한 반론3: 여전히 다발 이론은 주-술 문장에 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없다. 속성이 나타날 때 그 속성이 포함되는 무언가가(기체든 다발이든) 있다. 주-술 문장에서 우리는 그 무엇과 속성 사이의 관계가 성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그 무엇은 어떤 것이고,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다발 이론에 따르면 그 무엇은 속성들의 다발이고, 둘 사이의 관계는 속성이 바로 그 다발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주-술 문장을 동어반복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 (a, b, c, d)의 다발은 a를 가지고 있다.
ㄴ반박: 주-술 문장의 주어가 되는 다발은 완전한 다발이 아니고, 술어에 언급되는 속성이 빠져 있는 다발이다. 따라서 주-술 문장은 동어반복적이 아니고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ㄴㄴ재반박: 그럼 같은 주어가 등장하는 여러 주-술 문장들은 모두 다른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된다. 즉, 한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 동어반복적이 되고, 동어반복이 아니라 정보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면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한 문장이 되어버린다.
ㄴㄴㄴ다발 이론가의 대응1: 그런 문제는 기체 이론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무속성 기체에 대해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기체와 함께 나타나는 속성을 지칭하는 것 뿐인데 그렇다면 다발 이론에 대한 반박이 기체 이론에도 해당된다.
ㄴㄴㄴ다발 이론가의 대응2: 화자가 대상과 관련된 모든 속성을 낱낱이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기체 이론가의 주장은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혼동하는 것이다. 고유명의 지시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지시체와 관련된 속성들 중 일부만 알아도 된다. 또, 우리는 어떤 복합체의 구성 요소를 전혀 모르고서도 그 복합체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다발 이론에 대한 반론4: 다발 이론이 옳다면, 구체적 개체에 대한 참인 주-술 문장 모두는 그 대상에 본질적, 필연적 속성을 부여하게 된다.
기체 이론가들은 어떤 속성 부여도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발 이론에 대한 또 다른 반론: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
이 반론의 경우 실재론적 다발 이론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춘다. 다발 이론은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가 참임을 가정하는데, 이 원리는 거짓이다. 따라서 다발 이론도 거짓이다.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 수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들이 모든 속성을 공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반대로, 질적으로 완전히 구별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왜 다발 이론가들은 이 원리를 가정하는가? 구체적 대상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속성에 의해 구성된다. 그런데 다발 이론가들은 구체적 개체에 대한 이런 분석이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한다. Bundle Theory(BT): 어떤 구체적 엔터티 a에 대해, 그리고 어떤 엔터티 b에 대해, b가 a의 구성 요소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b는 속성이다. 구성요소 동일성 원리(Principle of Constituent Identity, PCI): 각 복합물 a, b에 대해, 그리고 어떤 엔터티 c에 대해, c가 a의 구성 요소라면 b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고, b의 구성 요소라면 a의 구성 요소이기도 할 때, 필연적으로 a와 b는 동일하다. 이 두 원리를 결합하면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가 따라 나온다.
PCI는 '구성 요소'나 '전체'같은 용어를 사용할 때 따라야 할 조건을 말하는 것이므로, 거짓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가 틀렸다면, BT가 틀린 것이다.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가 틀린 이유는, 수적으로 다르지만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구체적 대상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정말?)
트롭 이론가들은 이 반론을 피해갈 수 있다. 수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들이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대상들은 단 하나의 속성조차 공통으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사해서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트롭도 하나 이상의 사물에 속하는 구성요소일 수 없다. 따라서 식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가 거짓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BT가 거짓임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수적으로 서로 다른 구체적 대상들이 정말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즉,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는 틀렸으며 따라서 다발 이론이 반박된다.) 수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 a, b에 대해, a는 'a와 동일함'이라는 속성을 갖고, b는 'b와 동일함'이라는 속성을 갖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속성들은 순수 속성이 아니라, 구체적 개체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 불순 속성이다. 다발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구체적 개체의 구성 요소들은 순수 속성들이다. 순수 속성들과 관련해, 서로 구별되지 않는 것은 수적으로 동일하다.
시, 공간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두 구체적 대상도 시, 공간적 위치를 규정하는 속성 면에서는 일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속성들은 모두 불순 속성들이다. 시, 공간은 관계적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이 속성들은 다발에 포함되지 않는다. > 시, 공간이 정말 관계적 구조를 가지는가?
기체 이론을 지지하는 논의
구별 불가능자 동일성 원리에 대한 반박은 기체 이론에 대한 옹호로도 쓰일 수 있다. 최근의 기체 이론가들은 대부분 속성 일치에 대한 실재론적 입장, 즉 속성 일치란 구성요소가 공유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적으로 다르지만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구체적 대상들의 존재에 대해 기체 이론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불순 속성으로는 설명하면 안 된다. 구체적 개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순수 속성, 불순 속성도 수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이용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질적으로 구별 불가능한 두 대상은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고 간주된다. 따라서 수적 차이를 설명하는 구성요소는 그 자체로는 어떤 속성도 갖지 말아야 한다. 속성이 아닌 그 무엇은 바로 무속성 기체이다.
그렇다면 기체가 수적으로 구별되지만 질적으로 구별 불가능한 두 대상에만 존재한다고 하면서 기체의 존재 범위를 축소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부당하며, 위의 논증이 옳다면 모든 구체적 대상에 기체가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체의 존재 범위를 축소하면, 대상들을 서로 다른 범주적 구조를 가진 것으로 나누어 버리는 것인데, 구체적 대상들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대상을 다룰 때만 기체를 상정하면, 한 대상이 갖는 존재론적 구조를 우연적 사실에 근거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는 옹호될 수 없다. 어떤 구체적 대상의 경우에도 그것과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대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대상 자체에 내재하며, 그 대상의 존재론적 구조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기체가 '소유자'라는 논증은 실재론적 기체 이론가나 유명론적 기체 이론가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증은 실재론적 기체 이론가들만 이용할 수 있다.
기체 이론의 문제점들
기체 이론가들에 따르면, 무속성 기체가 경험적 앎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수적으로 다르지만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대상들을 대만한다는acquainted 것은 그 자체가 벌써eo ipso 무속성 기체와 대면하는 것이다. 무속성 기체는 구체적 대상들의 구성 요소로서, 그 대상들 각각을 수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 개체와 연계된 속성들과 경험적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그 속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도 관계를 맺는다.
ㄴ반론: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증명되어야 할 바로 그 사실을 가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 경험적 지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ㄴㄴ기체 이론가의 대응: 오히려 기체 이론을 옹호하는 더 나은 전략은, 경험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되, 속성의 귀속이나 질적 구별 불가 대상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기체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론2: 기체는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속성을 갖냐?
ㄴ기체 이론가의 대응: 기체가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기체 자체에 아무런 속성이 없다는 것이고, 기체가 갖는 속성들 중 어떤 것도 기체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체는 정체성을 갖지만, 그 정체성은 기체의 모든 속성과 독립적이다. 기체가 소유한 속성들 중 그 어떤 것도 그 기체에 본질적이지 않다.
반론3: 기체도 속성을 갖는다. '어떤 속성도 본질적으로 갖지 않음'이라는 속성? 속성들의 실제 소유자라는 속성?(이것이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연적인 속성이라면, 다른 엔터티가 기체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는 속성? 빨갛거나 빨갛지 않음이라는 속성?(이것은 모든 대상에 본질적인 속성인 듯하다) 숫자 7과 다름이라는 속성?
이렇게 기체가 무속성적이지 않는다면, 기체는 기체 이론가들이 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s안의 s', 그 안의 s'' 하는 식으로 무한퇴행. 그 어떤 것도 무속성적이지 않다고 일단 상정해 놓으면, 기체 이론가들은 속성들의 궁극적 소유자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결코 답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수적 차이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기체를 본질적 속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하면, 기체들이 이제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엔터티로 취급된다. 따라서 또다시 그 기체들이 수적으로 서로 다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다시 무한퇴행을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실체 이론에 따르면, 구체적 개체들, 혹은 최소한 일부 구체적 개체들은 기본적 엔터티이거나 환원될 수 없는 근본적 엔터티이다. 어떤 엔터티가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은 그 엔터티가 기본적 엔터티라는 사실과 양립할 수 있다.
존재론자들은 미리 주어진 재료로부터 구체적 개체의 개념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 개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 기획의 시작점이며, 존재론자들은 이 구체적 개체를 잘 다듬는 일을 해야 할 뿐이다.
실체 이론에 따르면, 기체 이론과 다발 이론의 난점들은 구성 요소와 전체라는 개념 틀이 잘못 사용돼서 생기는 것이다. 구체적 개체들이 구조를 가진다고 해서 그 구조가 꼭 기체 이론이나 다발 이론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특징을 가진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구체적 개체의 존재being, 즉 구체적 개체가 무엇이라는 점은 그 구체적 개체와 연관되어 있는 속성을 기반으로 한다. 실체 이론가들은 속성에 관해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므로, 구체적 개체의 존재being를 그 개체가 예화하는 보편자들에 근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실체 이론의 입장에서, 다발 이론이 잘못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발 이론은 구체적 개체와 연관된 속성 모두가 그 개체가 무엇이라는 것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동등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다발 이론은 개체를 특징짓는 속성들로 오직 속성만 인정한다.
실체 이론은 구체적 개체를 특징짓는 데에 종의 역할을 강조한다. 종은 대상들이 예화하는 보편자로서, 대상들은 그 종에 속함으로써 그것을 예화한다. (집합과의 차이: 집합은 원소에 의해 결정되지만, 종은 구성원들에 선행한다. 즉, 종이 구성원을 결정한다.) 어떤 대상이 어떤 종에 속하면, 그 보편자(종)은 그 대상이 무엇인가(존재, 본질)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따라서 종은 그 구체적 개체에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그 개체가 그 종을 예화하지 않았다면 그 개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구체적 개체가 속하는 종은 그 개체의 존재 조건을 제공해 준다.
종은 속성들로 환원될 수 없다. 물론 어떤 개체가 특정 종에 속함으로써 여러 속성을 소유하게 될 수는 있다. 종에 속함으로써 속성들을 갖는 것이지, 속성들을 가짐으로써 종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종은 구체적 개체들이 갖는 단일한 존재 방식을 보여주며, 그 존재 방식은 더 기본적인 다른 것들로 환원될 수 없다.
속성들은 종에 의해 결정된 개체들을 양태적으로 변화시키고 특징지을 뿐이다. 속성들은 단지 우연적으로만 속한다.
실체 이론가들은 기체 이론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본다. 첫째, 밑바탕이 되는 것(기체)을 개체의 '구성 요소'로 여겼다는 점. 둘째, 밑바탕이 되는 것(기체)을 무속성으로 보았다는 점.
구체적 개체와 연관된 모든 보편자의 주체는 바로 그 구체적 개체이다. 그 구체적 개체가 바로 그 보편자들을 실제로 예화하는 것이다.
구체적 개체들이 속하게 되는 종은 환원될 수 없는 단일한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따라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기본적 엔터티들로 간주될 수 있다. 구체적 개체는 그저 그 개체가 속하는 종의 한 사례일 뿐이다. 어떤 종의 한 사례가 된다는 것은 단지 그 종적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존재 방식이 환원되지 않고 단일하기 때문에, 그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사물들도 환원되지 않고 단일한 엔터티이다. 구체적 개체는 자기 고유의 종을 예화함으로써 한 개체가 된다. 한 정이 여럿을 함께 예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적으로 다른 개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수적으로 다르나 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대상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편자들은 '개체화하는 보편자들'이다.(보편자들은 대상들이 개체화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들이다.) 종들은 대상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원리이며, 대상들을 서로 구별하게 해주는 원리이며, 대상들을 셀 수 있게 해주는 원리이다.
종이 어떻게 개체화(대상들을 서로 구별하게 해줌)의 원리인가? 서로 다른 인간이 같은 종에 속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종은 사물들을 하나로 셀 수 있게 해주는 원리인데, 이것은 속성에는 없고 종에만 있는 특성 때문이다. 종에는 '~것'이 들어 있다. 종에 들어있는 ~것을 갖게 됨으로써 한 개체가 되고, 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고, 인간은 동물이고,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동물이다. 소크라테스는 하얗고 하양은 색깔이고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색깔이다. -> 소크라테스는 하얀 것이고 하얀 것은 색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색이 있는 것이다. '하얀 것', '인간(인 것)'은 종이다. '하얀'은 속성이다.
구체적 개체는 자기 고유의 종을 예화함으로써, 그 개체의 본성에 외재적인 여러 속성이나 성질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 개체는 어떤 구조를 갖는 것이다.
구체적 개체를 실체라고 부를 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 개체를 진정한 존재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개체가 더 하위 층위의 대상으로 구성된다고 하면, 그 구체적 개체를 실체라고 부르는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실체에는 생물학적 종과,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에 관한 이론들 중 가장 탁월한 이론이 가정하는 종 뿐이다. 일상적인 말들은 이 두 종들에 대한 말로 재서술될 수 있다.
한 실체의 완전한 본질을 주는 것은 그 실체가 속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종, 즉 최하위 종이다.
구체적 대상들이 갖는 본질은 일반적인 것이다. 즉, 한 종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이 그 본질을 구성한다.
ㄴ다른 실체 이론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라이프니츠 등. 각 개체는 자기 고유의 본질을 가진다.(개체적 본질) 예: 동일성 속성(a는 'a와 동일함'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이것이 유일한 예인지는 모르겠다.
ㄴㄴ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의 가능한 대응1: 그런 속성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ㄴㄴ가능한 대응2: 그런 속성들은 다른 속성들로부터 구성된 속성들이다.
ㄴㄴ가능한 대응3: 개체적 본질에 대한 문제들은 일반적 본질만 가지고도 해결될 수 있다.
실체는 복잡한 물리적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이 환원주의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그 생명체가 환원되지 않는 단일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부분을 이루는 각 기관의 본질은 살아 있는 그 생명체 전체를 언급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부분들에 선행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물질적 구조를 이루는 엔터티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물리적 단순체들은 유기적 시스템과 독립해서도 존재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 안에서는 하위 등급의 존재론적 위상을 가진다. 이 때 물리적 단순체들은 잠재적이거나virtual 가능한potential 실체들이지, 현실적인actual 실체들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 안에 있다고 해서 그 생명체가 생명체라는 사실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의 부분들은 본질적으로 목적론적이다. 그러나 물리적 단순체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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