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지식이란 무엇인가?
철학적 분석: 개념의 필요충분조건
정당화된, 참된, 믿음. 각각은 지식의 필요조건이고 합하면 충분조건
정당화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음.
정당화가 지식에 필요한가? - 체스에서 내가 이길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당화는 못 한 사례
믿음이 지식에 필요한가? - 어떤 것에 대해 뭔가 안다고 믿지 않지만 알고 있는 사례
게티어 사례
게티어는 정당화, 참, 믿음이 합쳐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당화: 우리 믿음이 옳다고 생각할 적합한 증거나 훌륭한 이유를 갖는 것
직접 게티어 사례 생각해보기
게티어에 대한 반응들
정당화의 개념 재고려(더 풍부한 정당화 개념)
믿음과 정당화가 지식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며, 그 역이 아니라는 주장(기초 상태로서의 지식)
지식에 대한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음(가족 유사성)
외재주의 - 우리의 믿음에 대해 정당화를 제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의식할 필요가 없음 - 외재주의의 한 갈래에서는,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바로 그 사건에 의해 야기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함
더 풍부한 정당화 개념
- 오류 불가능성: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이유, 즉 그 믿음이 그르다면 소유할 수 없었던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 게티어 사례에서, 근처의 환호는 영국 축구팀의 득점의 결정적 이유가 아님.
ㄴ 문제점: 이에 따르면 지식을 갖기가 너무 어려워짐. - 오류 가능주의: 결정적 이유 없이도 지식을 가질 수 있음. 예를 들면 과학.
오류가 불가능해야 하는 지식도 있음. 그 중 한 영역은 선험적 지식.
- 그른 믿음 없음: 추론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을 때 그른 믿음이 없어야 함.
ㄴ 문제점: 추론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믿음. 예를 들어 보고 즉각적으로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 가짜고 그 뒤에 진짜가 숨겨져 있는 경우.
기초 상태로서의 지식: 전통적 분석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
전통적 분석의 전제: 지식 개념은 더 단순한 요소 개념으로 분석될 수 있다. 지식을 가질 때 혼성 상태, 즉 부분적으로는 정신 상태와 부분적으로는 세계에 의해 형성되는 상태에 있다(믿음과 정당화는 정신 상태, 참은 세계).
T. Williamson은 두 전제를 모두 문제 삼는다. 윌리엄슨은 모든 지식 사례가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집합은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개념은 정의불가능한 개념을 표현한다.'
윌리엄슨은 지식은 혼성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식은 전적으로 정신적 상태이다. 따라서 지식 개념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인지적 외재주의? - 9장 4절
지식이 더 기초적인 인식적 요소들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식은 가장 기초적인 정신 상태이며 지식을 통해 믿음과 정당화 개념을 해명할 수 있다.
윌리엄슨은 지식이 언제나 믿음을 동반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정당화된 믿음은 훌륭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믿음이며, 그 증거적 역할을 하는 것이 지식이다.
윌리엄슨에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음
가족 유사성
인식론자들이 할 일은 가족 특성들의 유형에 대한 지도를 작성하고, 다양한 인식적 속성들이 서로 어떻게 중복되고 교차하는지 기술하는 것.
3장 선험적 지식
선험적 지식의 종류
수학적 진리
정의에 의해 포착되는 진리(분석적 진리)
형이상학적 주장
윤리적 진리
선험적 지식의 획득에서 경험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총각은 미혼 남자다'라는 지식은, 처음에 경험을 했어야 한다. 다만 이 개념이 같은 유형의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믿는 일이 정당화되기 위해 또 다른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경험주의자들은 모든 선험적 진리는 분석적 진리고, 모든 경험적 진리는 종합적 진리라고 주장한다.
선험, 경험의 구분은 인식론적 구분(믿음의 정당화와 관련)이고 분석, 종합의 구분은 의미론적 구분(어떤 진리들이 단지 관련된 개념들의 의미에 의해 성립되는지)
분석적 진리는 술어가 주어의 의미의 부분이어야 한다. '12 = 7+5'는 분석적 진리가 아닌데, 12의 의미에 7+5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험적 종합적 진리
'어떤 것이 붉다면 그것은 녹색일 수 없다': 선험적 진리면서, 분석적 진리는 아님.
선험적 종합적 진리는 직관의 산물이며, 이성주의자들에 따르면 이로부터 추론을 통해 다른 선험적 주장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자명성과 확실성
선험적 지식은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간주되어 왔다.
선험적 지식은 자명하다self-evident: 인식론적으로, 그 지식에 대한 이해만을 통해서 그 주장을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뜻.
ㄴ반론: 어떤 선험적 지식들은 자명하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면 복잡한 수학적 주장. 증명의 모든 단계가 분명하다고 해도, 결론을 자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님.
ㄴㄴ재반론: 그 중간 과정들을 이해하는 일을 통해 정당화된다는 의미에서 자명하다는 것
ㄴㄴㄴ재재반론: 아무도 모르는 선험적 진리. 예를 들면 아직 증명하지 못한 수학적 난제. 주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믿는 일로 정당화되지 않음.
선험적 지식은 확실하다
ㄴ반론: 선험적 추론도 오류 가능하다. 다른 선험적 진술들과 부정합하거나, 어떤 경험적 증거와 모순될 수 있다.
본유적 지식
경험주의자: 본유적 지식은 없다. 모든 지식은 경험에 의한 것이다.
ㄴ반론: 보편적으로 합의되는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지식을 무의식적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 라이프니츠는 이 주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외부로부터의 가르침은 단지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을 소생시킬 뿐이다.'
어떤 이성주의자들은 사고자들이 어떤 유형의 지식을 획득하려는 본유적 '성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ㄴ반론: 경험주의자들도 딱히 이에 반대할 필요가 없다. 이성주의자만의 주장이라고 하기 힘들다.
ㄴ반론2: 이건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경험적 문제다.
촘스키의 보편문법: 사실적 지식에 관한 것이 아님.
능력지(knowledge how), 명제지(knowledge that) 구분. 보편문법은 전자에 관한 것.
본유성 문제는 선험성 문제와 다르다. 본유성은 정당화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본유성 문제는 선험적 정당화를 필요로하지 않는 지식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성주의자: 선험적 지식은 직관과 추론에 의해 획득되는데, 이에 대한 정당화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며, 세계에 관한 실질적인 종합적 진리를 제공할 수 있다.
경험주의자: 선험적 진리는 종합적 진리를 제공할 수 없다.
4장 지각
지각의 대상은 무엇인가?
지각적 경험, 지각적 믿음, 지각적 지식은 정당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직접적 실재론
지각자는 자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직접 지각한다.
소박한 실재론: 지각되는 모든 속성은 그 대상이 지각되지 않고 있을 때도 그 대상에 속한다
과학적 직접적 실재론: 대상의 어떤 속성은 지각자에 의존한다. 일차 속성만이 대상에 속한다.
간접적 실재론
대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지각자의 직접 지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각에는 심상의 매개가 필요하다.
그 매개는 감각자료sense data, 관념idea, 감각되는 것sensibilia, 지각 내용percepts, 현상appearance 등으로 불리는데, 여기서는 감각 자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직접 지각 반박 논증: 착각에 의거한 논증.
착각에 의거한 논증
진짜 지각과 가짜 지각의 공통 요인은 감각자료의 존재. 즉, 대상이 달라도 감각자료가 똑같기 때문에 똑같이 지각하게 됨.
관념론, 현상론: 감각자료의 존재 인정하지만, 감각자료의 지각적 중개자 역할 부정. 지각 경험과 독립된 세계는 없다.
지향론: 공통 요인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고가 소유하는 표상적 속성과 비슷한 지각 경험의 속성이다. - 뭔 소린지 모르겠다.
이원론
감각자료는 이원론적이다. 이원론은 정신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해명하기 어렵다.
실재론 거부하기
간접적 실재론은 회의주의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회의주의는 감각자료를 넘어선 외부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관념론, 현상론
관념론
조지 버클리: '물리적' 대상은 '관념들(또는 감각자료들)'의 집단이다.
지각되지 않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각하지 않는 대상의 실재성은 신의 지각에 의해 유지된다.
관념론의 일부 제안은 현상론으로 계승되었다.
현상론
물리적 세계에 관한 진술은 우리의 가능한 경험들에 관한 진술로 보여야 한다.
'물질적 사물을 언급하는 어떤 진술의 의미는 오로지 감각자료나 사물들의 감각가능한 현상들만을 언급하는 진술들로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물리적' 대상은 계속적인 경험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각되지 않은 채로 실재할 수 있다.
우리의 (가능한) 경험과 독립적인 세계는 없다.
현상론자들은 반사실적인 미래 상황에서 내가 어떤 감각자료들을 맞닥뜨릴 것인지 기술하는 조건진술들은 특정한 감각자료를 지각하는 경험을 말함으로써 독립적 세계에 대한 언급을 피해간다.
조건진술은 원초적이어서, 왜 그런 조건진술이 성립하는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현상론의 문제
현상론에 반대하는 핵심 논증: 지각의 상대성에 의거한 논증. 치좀: 감각자료에 관한 진술들에 의거하여 물리적 대상에 관한 진술의 번역을 제공할 수 없다.
"완전히 성공적으로 현상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지각된 것과 관찰조건을 둘 다 알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어떤 것이 나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함께 작용하는 지각된 것과 관찰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상론자는 지각자의 물리적 상태나 그 주변 환경의 물리적 상태에 대한 언급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그러한 관찰조건을 설명할 수 없다.
지향론적 지각이론
직접적 실재론으로의 회귀: 진짜 지각과 가짜 지각이 공통으로 지각의 대상을 갖는다는 결론을 피하거나, 이 공통 요인에 대한 대안 설명을 제공하거나.
부사화론: 착각에 의거한 논증은 부당가정의 오류를 범한다. 직접적 실재론은 '어떠하게' 지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란 대상을 볼 때 노란 감각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노랗게' 지각하는 것이다.
지향론(표상론): 지각 경험과 믿음 사이의 어떤 관계. 믿음은 세계에 대한 표상이다. 믿음은 지향성을 포함한다. 지향성은 정신의 본질적 특징이며, 어떤 믿음이 지향하는 세계의 측면은 그 믿음의 지향적 내용을 통해 기술될 수 있다. 지각 또한 표상적 상태를 포함한다.
나의 지각은 표상적 내용을 갖는데, 그 표상적 내용은 틀릴 수도 있다. 즉, 진짜 지각과 가짜 지각에서 공통되는 지각의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지각적 대상(감각 자료)가 아니라 지향적 내용이다.
지향론자는표상과 지향성에 대해 '자연주의적' 혹은 과학적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선호한다.
현상학
지향론의 문제: 표상들을 갖는 일과 비슷한 어떤 것이 있다. 내 경험은 현상학적 차원(체험적 성질)을 갖는다. 지향론자들은 이러한 현상학적 특징들도 설명해야 한다. 지향론자들은 이를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만, 과학적 설명으로 의식적인 현상학적 차원의 사고와 지각을 포착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의식과 뇌 과정 사이에는 다리를 놓을 수 없는 틈의 느낌이 있다. (...) 종류의 차이라는 이 관념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한다." - 비트겐슈타인 1953 $412
~라는 것을 봄, ~으로 봄, 있는 그대로 봄. 지각적 경험과 지각적 믿음의 관계
~라는 것을 지각함perceiving that: 사실적. 어떤 개념들, 즉 세계에 관해 표상하고 생각하는 방식 요구
~으로 지각함perceiving as: 이런 방식으로 지각했는데 틀릴 수도 있는 경우
있는 그대로 봄raw seeing: 개념의 소유를 요구하지 않는 형태의 지각. 지각적 정보의 획득. 이 정보는 우리가 성공적으로 대상에 관여할 수 잇게 해 주지만 세계에 대해 개념적으로 구조화된 표상을 가지는 일은 못 됨.
지각적 믿음은 우리 환경의 지각 가능한 특징에 관한 믿음이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 경험에 근거를 둔 믿음이다.
지각 경험이 있다고해서 반드시 그에 대한 지각적 믿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착시 현상의 경우.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지각 경험이 지각적 믿음으로 이어진다.
인식적 지각(~라는 것을 지각함)은 지각적 믿음을 함축한다.
지각적 믿음은 지각적 지식을 형성한다.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지각적 믿음이 옳고 정당화될 때 그러한 지식을 갖는다.
토대론: 지각적 믿음이 지각적 경험에 근거를 둠으로써 정당화된다고 주장
정합론: 믿음이 우리의 다른 모든 지각적 믿음과 비지각적 믿음에 잘 맞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고 주장.
5장 증언(다른 사람을 통해 얻는 지식)
다른 사람의 증언을 승인하는 일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실용적 정당화와 인식적 정당화.
증언에 대한 흄의 설명
화자의 과거 실적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으면 정당화된다. 일종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정보 제공자에 관해 경험적 정보를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증언에 대한 환원적 설명인데, 그러한 증언적 정당화의 원천은 내 다른 인식적 능력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저에도 옳았다는 지각적 증거, 그에 대한 기억, 나의 추리 능력.
따라서 증언에 의한 정당화는 지각, 기억, 추리가 제공하는 정당화로 환원 가능하다.
흄식 설명에 대한 반박: 순환 문제
어떤 경우, 화자의 신뢰성을 알려면 다른 증언에 의지해야 하고 그 증언의 신뢰성은 다른 증언의 의지해야 하고, 이런 일들이 끝없이 벌어짐.
예: 뉴스 앵커. 그 사람을 모르지만 앵커가 대개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 그러나 앵커라는 유형의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지 알려면 또 다른 증언에 의지해야 함.
흄식 설명의 가능한 대응: 우리는 매우 넓은 유형, 즉 그럭저럭 신뢰할 만해 보이는 사람들 일반의 증언을 믿을 수 있음
흄식 설명에 대한 반박: 화성인 논증
의미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전혀 신뢰성 없는 증언(?)만을 사용하는 공동체(화성인 공동체), 즉 증언적 보고가 절대로 올바르지 않는 공동체를 상상해보자. 화성인 아이는 이 공동체에서 언어를 배울 수 없다. 따라서 실제로는 그러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증언이 그른 경우는 없다.
흄식 설명에 의하면 화자를 일단 의심해야 하는데(그 전에 신뢰성 있는 증언을 했는지 아닌지), 어차피 모든 증언이 그른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흄식 설명은 불가능한 상황을 허용한 것이다.
증언에 대한 리드의 설명
토머스 리드(Reid)는 흄과 정반대로, 특정 보고가 그르다는 것을 의심할 좋은 이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그 증언을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언에 의한 정당화는 지각적 믿음이 소유하는 정당화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이 인식적으로 근본적이라는 점은 세 가지 고려 요인이 뒷받침한다. 첫째, 증언이 감각 증거를 누르는 경우가 있다. 둘째, 언어의 획득이 증언에 의존한다. 셋째, 증언이 경험 과학에서 하는 역할이 있다.
6장 토대론
전통적 토대론을 옹호하는 후퇴논증: A라는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B라는 믿음이 필요하고, B는 C, C는 D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토대가 있어야 한다.
기초믿음basic belief: 오류 불가능한 것(그를 수 없는 것), 시비 불가능한 것(논박될 수 없는 것), 의심 불가능한 것(의심될 수 없는 것)
이성주의자들과 경험주의자들은 모두 토대론을 채택한다.
경험주의자들에게 지식의 토대는 경험이다. 내 경험이 환각에 의해 틀릴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내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내 경험이다. 빨간 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빨간 것을 보는 내 경험이다.
셀라스와 주어진 것의 신화
'앎ㅂ이는 것으로서의 어떤 사건이나 삳ㅇ를 특징지을 때, 우린리는 그것을 우리가 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정당화될 수 있게 하는 이유들의 논리적 공간에 위치시키고 있다' - 우리는 지식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명시적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감각 경험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다. 즉, 모든 정당화는 추리적이어야 하므로, 기초믿음을 비추리적로 정당화하는 전통적 토대론자들의 개념은 옹호될 수 없다.
ㄴ반응: 외재주의 -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고자 자신이 알 필요가 없는 것임.
반응2: 토대론자의 노선 고수 - 경험의 이유를 표현할 수 없다고 해도 내가 해당 믿음을 지지하는 이유들이 정당화된다. '사물이 나에게 보이는 방식에 대해 틀릴 수는 없다.'
ㄴㄴ셀라스의 반박: 나에게 ~하게 보인다는 표현은 오히려 확신을 못하고 있다는 뜻. 또, '지식'에 대해 분석해보면 지식이 본질적으로 추리적 정당화를 포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개념적 내용과 비개념적 내용
믿음이 정당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개념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개념적으로 구성된 사고는 논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정당화는 추리적 개념이다.)
지각 경험은 비개념적이지만, 개념적 지각, 사고에 데이터를 제공한다.
비개념적 경험도 외부 세계의 특징을 표상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오히려 개념적 내용보다 더 풍부하게 표상할 수 있다. (산등성이, 협곡, 북쪽 같은 개념 - 개념적. 산의 모습 그 자체를 보는 것 - 비개념적 표상. 산등성이, 협곡, 북쪽 같은 개념에 의해 구성되는 것보다 훨씬 정보량이 많음)
앞에서 셀라스에 따르면, 비개념적 경험은 추리적 정당화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할 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논증
사적 언어 논증: 지각적인 것이 비개념적이라는 것에 반대.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 개념이 부정합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나의 어떤 감각에 사적 명사를 붙일 때, 그것이 재발생했다고 여겨질 때 그것을 독립적으로 검사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용어가 명확한 적용 대상을 갖는다는 의미는 상실된다.
사적 언어 논증에 대한 맥도웰의 해석: 비개념적으로 해석된 경험이 개념적으로 조직되고 생각될 수는 없다. 독립적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각은 어떻게 가능한가? 스트로슨 등: 경험은 그 자체로 개념적 구성을 포함하고 있다. - 전통적 토대론과 비정합적임.
그럼 경험이 개념보다 훨씬 풍부해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 개념은 언어적 용어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사고
토대론자들이 말하는 인지의 두 요소 - 직접적 자료/해석
반박: 지각 경험은 우리의 사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재반박1 - 포더: >ㅡ< <ㅡ> 두 선 길이 같다는 걸 우리가 아는데(사고) 지각 경험에 영향이 없음
재반박2 - 드레츠키: 비인식적인 지각은 개념적으로 구성된 인식적 지각과 독립적이다.
온건한 토대론
로버트 오디, 앨빈 플랜팅가: 지각적 믿음은 오류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옳지 않다는 증거가 없는 한 옳다고 승인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박: 그렇다고 해서 지각적 믿음이 어떻게 나의 경험적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주장들은 세계에 관한 직접적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반박: 지각적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 그 믿음이 완전히 오류불가능한 것일 필요는 없다. 기초믿음은 내 경험에 대해 내가 갖는 의식에 의해 조건부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적당한?) 토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온건한 토대론자에게 지각 경험은 개념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되는데, 내 믿음에 대해 정당화가 요구된다면, 그것을 지각하는 경험에 대해서도 정당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개념적 지각 경험은 정당화 퇴행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온건한 토대론도 유지될 수 없다.
7장 정합론
전체론적 정당화 개념
단선적 정당화 개념(토대론) 대신 비단선적, 전체론적 설명. 순환적 정당화(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단선적임)가 아니라, 믿음체계의 전체적 정합성에 의존한다.
정합성 개념
정합적인 믿음 체계는 모순적이지 않아야 한다.
정합적인 믿음 체계는 특정 믿음의 진리성이 다른 믿음의 진리성 또는 개연성을 낮추는 경우가 적어야 한다.
정합적인 믿음 체계에서는 믿음들 사이의 적극적 연관(추리 등)이 있어야 한다. 예: 관련 없는 지식들의 나열은 무모순적일지라도 특별히 정합적이지도 않다.
정합론의 문제 - 고립 문제
정합론은 세계와의 접촉을 상실한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우리 믿음체계 내부의 관계에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합론의 문제 - 대안의 정합적인 믿음 체계
정합적인 믿음 체계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모순되는 믿음 체계들도 애드 혹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
진리 정합론
정합론의 문제에 대한 반박: 진리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정합론 내에서 지각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거나. 여기서는 진리 정합론은 전자에 해당된다.
진리 정합론에 따르면, 인식적 진보란 최적으로 정합적인 체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진리 정합론의 문제: 여전히 대안적인 정합적 믿음체계에 관한 문제가 남는다. 또, 세계의 본성은 우리의 믿음과 정합적인지와 무관하다.
지각에 대한 정합론자의 설명
정합론자는 세계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하는데, 여기서 지각이 어던 역할을 한다. 정합론자가 우리의 사고가 어떻게 지각 경험에 민감한지 보여 준다면 고립 문제는 피할 수 있다.
반주어: 우리 믿음들 중 몇몇은 인지적으로 자발적(cognitively spontaneous)이다. 나의 자발적 행동으로 지각적 믿음이 획득된다. 믿음들의 자발성은 고립 문제를 거부할 훌륭한 이유를 제공한다. 자발적으로 획득하는 믿음들은 믿음 체계의 다른 믿음들에 대해 높은 정도의 정합성과 무모순성을 보인다.
자신의 믿음체계에 대한 사고자 자신의 파악
정합론의 또 다른 문제: 사고자의 믿음체계의 정합성이 그에게 그런 믿음들을 지닐 훌륭한 이유를 제공한다면, 사고자는 그 자신의 믿음체계가 정합적인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상위 믿음)
어떤 믿음이 정당화되려면 믿음체계에 그 믿음을 포함시키는 일이 그 믿음 체계의 정합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믿어야(상위 믿음) 한다. 이 상위 믿음 또한 정당화가 요구된다.
ㄴ반주어의 대응: '믿음에 대한 가정'(doxastic presumption). 믿음 체계에 대한 상위 믿음들이 올바르고, 누구나 자신들의 믿음 체계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을 승인해야 한다.
8장 내재주의와 외재주의
토대론과 정합론은 인식적 정당화에 대해,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증거가 내 믿음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지 묻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주관적 관점). 하지만 인식적 실제 상황은 객관적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내재주의
어떤 사고자의 믿음의 정당성은 그 사고자가 인지적으로 파악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사고자는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 토대론과 온건한 토대론 둘 다, 사고자가 자신의 기초 믿음에 대해 반성하고, 추리 형태에 대해 반성할 수 있다.
반주어의 정합론도, 정합론적 정당성은 믿는 사람 자신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셀라스도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정당화 이유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재주의
믿음의 정당화, 또는 지식과 옳은 믿음 사이의 구별에, 우리의 반성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외재주의: 기초적인 신빙론적 그림
신빙론에 따르면, 믿음은 신빙성 있는 방법을 사용해 획득하면 정당화되는데, 이 신빙성reliability 여부는 반성만으로는 알 수 없다. (또는, 신빙성에 대해 의식하지 못해도 된다)
신빙성은 옳은 믿음 획득의 개연성을 통해 정의된다. -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있어야 신빙성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재주의도 신빙성 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신빙성 여부에 대해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요구한다.
일반성 문제: 믿음을 획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서 어떤 일반적인 요소가 그 방법들을 신빙성 있게 만드는지. 신빙론자들은 이 점을 설명해야 한다.
지식에 대한 인과적 설명
신빙론자의 가능한 한 가지 입장은, 신빙성을 사고자와 세계가 맺는 인과적 연관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예: 나는 TV에서 영화 킹콩이 방영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화면에서 킹콩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에 대한 추적 설명
노직은 신빙성에 대해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추적'. 내 믿음이 p가 사실일 때와 사실이 아닐 때, 즉 상황에 따라 바뀐다면, 나는 지식을 갖는 것이다. S가 p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 p가 옳다.
- S는 p라는 것을 믿는다.
- 만약 p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S는 p라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 만약 다른 상황에서 p가 여전히 옳다면, S는 여전히 p라는 것을 믿었을 것이다.
외재주의 찬성 논증: 비반성적 지식
때로 우리가 p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없어도 p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아는 것의 많은 부분은 기계적 암기의 결과이다.(예: 역사적 사실). 둘째, 증거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셋째, 정확히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인지할 수 있다.(예: '무언가 달라졌다', 아기의 지식).
외재주의 찬성 논증: 인식론적 만병통치약
게티어 문제에 대한 해결: 인과론자에 따르면, 내 믿음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 믿음의 대상일 때만 지식이다. > 노직의 관점에서도 해결된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음.
게티어 문제가 생긴 것은, 내재주의적 관점에서, 내 관점에서는 옳다고 믿을 이유가 있어도 객관적 관점에서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재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막아준다.
외재주의는 정당화 퇴행을 막아준다. 우리의 기초 믿음이 지식으로 간주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세계와의 올바른 종류의 인과관계나 추적관계 뿐인데, 이 관계는 사고자가 인지적으로 파악 가능한 것일 필요가 없다.내 인지적 메커니즘의 신빙성으로 정당화 퇴행이 멈추게 된다.
외재주의 반대 논증: 지식과 합리적으로 동기화된 행동
신빙성 있는 방법을 사용해 지식을 얻지만, 사고자 자신은 그 지식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죄 드라마에서 항상 범인을 맞추고, 무의식적으로 꽤 좋은 단서를 집어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만, 자신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외재주의 반대 논증: 요행이지만 신빙성 있는 믿음
플랜팅가: 믿음이 신빙성 있는 방식으로 회득될 때 운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례들 제시. 뇌가 손상되어 대부분 그른 많은 믿음을 갖는데, 그 중에 사고자가 자신이 그러한 손상을 지니고 있다고 신빙성 있게 믿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는 경우. > 이 예에서 중요한 것이 그 손상에 대한 믿음인가? 아니면 그냥 다른 옳은 믿음이어도 충분한가?
ㄴ반응1: 플랜팅가의 논증은 외재주의의 결함을 보여주고, 따라서 내재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ㄴ반응2: 플랜팅가는 틀렸다. 그런 믿음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ㄴ반응3: 신빙성만으로는 지식이 되기 충분하지 않으고, 지식과 옳은 믿음을 구별해 주는 것에 관해 좀 더 언급할 필요가 있다. - 플랜팅가 자신의 입장. 지식을 산출하는 메커니즘이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는 메커니즘이어야 한다. '적절성'은 설계를 통해 현실화된다. 설계된 대로 기능하면 그 메커니즘은 적절하게 기능하는 것이다.
ㄴㄴ설계의 두 종류: 자연선택에 의한 설계(은유적 의미), 신의 설계.
두 종류의 지식
내재주의 지식 개념과 외재주의 지식 개념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유형일 뿐이라는 입장이 있다.
내재주의는 주관적 정당화 개념을 포함하는 종류의 지식에 초점을 맞춘다.
외재주의는 지식과 옳은 믿음을 구별해 주는 객관적 근거에 초점을 맞춘다.
반주어는 두 가지 다른 정당화 개념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내재주의적 개념이 외재주의적 개념보다 근본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인식적 관행 중 어떤 것이 신빙성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묻기 전에, 우리 믿음 중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9장 회의주의
국지적 회의주의(특정 영역의 지식에 대한 회의주의)와 전면적 회의주의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퍼트넘의 통 속의 뇌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를 승인하기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반응은 무관심이다. 내가 통 속의 뇌이든 뭐든 어떤 상관인가? 하지만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에 바람직한 반응이 아닐 것이다.
다른 반응으로는 첫째, 경험적 믿음이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믿음 보류하기), 둘째, 회의적 논증을 승인하지만 왜 그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심리적 설명을 제시하기, 셋째, 논증 논박하기가 있다.
믿음 보류하기
흄: 자아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심리적으로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맥락주의
지금까지 논의된 '불변주의적' 인식론, 즉 모든 지식 주장이 만족시켜야 하는 단일 표준 집합이 있다는 인식론을 거부하는 것.
지식으로 분류되기 위한 믿음이 만족시켜야 하는 기준은 맥락에 따라 다르다.
"슈퍼마켓이 사악한 악마의 작품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지적 외재주의(인식론적 외재주의와는 다름)
우리의 사고는 내용을 갖는다. 즉 사고는 세계의 어떤 측면에 대한 것이다. 인지적 내재주의자들은 특정 사고의 내용이 전적으로 사고자 내부에 있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만, 인지적 외재주의자들이 보기에 우리의 정신 상태의 내용을 결정하는 일에서 세계가 본질적 역할을 한다. 쌍둥이 지구 사고 실험. 사고자 내부의 모든 것이 똑같더라도 사고는 다른 내용을 가진다.
인지적 내/외재주의: 사고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인식론적 내/외재주의: 지식과 옳은 믿음을 구분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인지적 외재주의에 따르면,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주장은 자가당착적이다. 통 속의 뇌는 사고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세계와 인과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사고를 갖지 않든지, 그들의 사고가 과학자들의 컴퓨터 안에서 전기 자극에 관한 것이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 단순한 심적 상태가 아니라 사고 '내용'이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만약 통 속의 뇌의 사고가 내용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고의 내용은 '나는 회로 584다'와 같은 것일 것이다. - 통 속의 뇌가 인과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은 회로 584이지 뇌와 통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통 속의 뇌이지, 회로가 아니다. 즉, 나는 내가 통 속의 뇌라는 옳은 사고를 표현할 수 없다.
ㄴ 반박: 평범하게 살다가 납치돼서 통 속의 뇌가 된 경우.
회의주의에 대한 인식론적 외재주의자의 반응
신빙론자들은 지식이 신빙성 있는 메커니즘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내가 신빙성 있는 사고자라면, 나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ㄴ반박: 신빙성이 뒷받침되지 못한다.
10장 귀납의 문제
귀납추리 - 국지적 회의주의
흄의 귀납적 회의주의
귀납논증은 '제일성 원리'(uniformity principle)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예들은 우리가 경험한 예들과 닮아야 하며, 자연의 과정은 언제나 똑같이 유지된다.'
제일성 원리를 전제로 포함시키면 귀납논증은 연역적으로 타당해진다.
그러나 제일성 원리를 옹호하는 독자적 논증은 없다. 일단 선험적이지도 않다. 또, 경험적 증거를 통해 옹호하면 다시 귀납 논리가 동원되어야 한다.
※선험적 진리: 부정하면 모순
귀납적 회의주의에 대한 반응 - 포퍼의 연역적 과학 개념
포퍼는 과학적 방법론이 귀납적이지 않으며, 2단계로 이루어진 가설-연역적 모델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단계는 가설,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이론을 시험하는 것이다.
귀납적 회의주의에 대한 반응 - 개연성
귀납은 옳은 개연성이 높다.
ㄴ반박: 여전히 흄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확인한 표본이 대표적 표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귀납적 회의주의에 대한 반응 - 귀납의 문제에 대한 신빙론자의 반응
귀납추리는 세계에 관한 진리를 획득하는 신빙성 있는 방법이면 충분하다.
귀납적 회의주의에 대한 반응 - 정합론자의 반응
제일성 원리를 믿는 일이 좀 더 정합적인 믿음체계로 이끈다면, 그 믿음은 정당화된다.
귀납에 의한 믿음 중 어떤 것도 보편적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제일성 원리의 추리적 관계, 즉 귀납추리로 얻은 지식이 정합적이므로 믿음체계의 정합성이 증가한다.
귀납의 새로운 수수께끼
굿맨은 귀납적 회의주의를 옹호하는 논증을 도입한다. 관찰된 규칙성을 기술하는 방식이 무제한으로 있으며, 우리가 어떤 기술을 믿는 일은 다른 어떤 기술을 믿는 일이 정당화되지 않는 것처럼 정당화되지 않는다.
grue. 다른 사람에게는 grellow, 또 다른 사람에게는 gred, 또 다른 사람에게는 gruple.
즉, 특정 유형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귀납적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이 논증은 정합론에 치명적인데, 같은 기술이 여러 대안 체게의 정합성을 동시에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귀납의 새로운 수수께끼에 대한 반응 - 단순성
green이 grue보다 단순한 술어이다. 귀납추론에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더 단순한 술어이다.
ㄴ반박: 왜 꼭 그래야 되냐?
ㄴ반박2: green이 grue보다 단순한가? green을 시점 t 이전에 grue이고 t 이후에 bleen인 걸로 정의할 수도 있다.
귀납의 새로운 수수께끼에 대한 반응 - 녹파색은 색깔이 아니다
grue는 시간에 대해 함축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술어가 아니다. 시간에 대해 알 수 없게 한 다음 무슨 색인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다.
ㄴ굿맨의 가능한 반응: 색깔 술어가 아님을 인정하지만, 에메랄드에 대해 시간-색깔 술어의 속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11장 자연화된 인식론
콰인은 전통적 인식론이 군더더기라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어떤 외재주의자들은 전통적 인식론이 올바른 물음을 제기한다고 인정하지만, 과학을 통해 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콰인과 인식론
콰인은 우리가 지닌 믿음에 어덯게 이르게 되는지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려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런 믿음이 정당화되는지를 살펴서는 안 된다. 요구되는 것은 믿음 형성 메커니즘의 인과적 본성에 대한 기술뿐이다.
콰인은 우리가 회의주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회의주의는 과학의 파생물이다. 지각에 대한 의심은 경험적 탐구에서 나온 것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는 오지각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다. 과학적 탐구에서 그러한 오지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철학을 과학의 선천적 근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연속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ㄴ반박: 회의주의의 원천이 과학이라고 해도, 해결은 다른 분야(예를 들어, 과학과 비연속적인 철학)에 있을 수도 있다.
진화론적 논증: 여러 믿음들 중, 옳은 믿음이 잘 살아남는다.
ㄴ반박1: 회의적 논증을 반박할 수 없다면, 애초에 어떤 믿음도 승인될 수 없다.
ㄴ반박2: 옳은 믿음만이 생존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분명치 않다.
콰인과 인식론 - 콰인과 선험적인 것
콰인에 따르면 선험적 진리란 없고 경험적 진리만 있다. 따라서 경험적 관찰의 타당성에 대한 선험적 의심은 야기될 수 없다. 콰인은 믿음 체계의 전체론적 특성에 대한 논의로 이를 뒷받침한다.
콰인은 선험적으로 보이는 믿음들조차도 우리 경험에 극단적인 변화가 있다면 폐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중률이라는 논리법칙에 대한 수정도 양자역학을 단순화하는 수단으로 제안되었다."
철학이라는 분야가 있지만, 이것은 과학과 연속되어 있으며, 우리의 믿음 형성 메커니즘에 관해 일반적인 경험적 물음을 고찰하는 부냥이다.
ㄴ반론: 정합론자와 온건한 토대론자들도 어떤 경험적 주장도 면제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잇으며, 그들은 우리의 믿음 체계가 우리가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오류 불가능한 토대를 갖는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콰인의 비판은 전통적인 토대론에만 적용될 뿐이다.
인식론의 규범적 본성
인식론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 우리가 믿을 권리가 있는 것에 대한 것이다. 후자는 '규범적' 물음이다. 콰인은 후자가 인식론의 탐구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는 오도적이다. 콰인은 인식 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인식론의 문제라고 했기 때문이다.
덜 극단적인 형태의 자연주의
어떤 자연주의자들은 철학적 정당화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려 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펠드맨), '인식론적 자연주의'(김재권)
앞서 나왔던 외재주의가 자연주의이다.
인과관계, 개연성 - 정당화는 과학적으로 존중할 만한 속성들로 환원되거나 그런 속성들에 의해 완전히 설명된다.
제거론: 정당화는 필요 없다. 노직(추적 설명. 앞에서는 신빙론으로 나왔지만, 사실 신빙론은 아님), 암스트롱(법칙적 연관. 세계의 속성과 표상의 속성 사이에는 법칙적 관계가 있다. 온도계와 온도.)
12장 기억
기억, 믿음 지식
방법적 기억(remembering how)과 사실적 기억(remembering that)의 구분. 여기서는 사실적 기억에 대해 다룬다.
일화 기억(episodic memory):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사건들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기억하는 것. 무슨 사건이 있었는데(사실적 기억), 그것은 어떠어떠했다(일화 기억).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시간과 무관한 진리, 현재에 관한 것, 미래에 관한 것(약속 > 근데 이건 '약속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것 아닌가?) 등도 기억한다.
기억은 지식의 기초적 원천이 아니라, 기억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초적 원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기억을 통해 그 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경우.
'내가 그른 지식을 가진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나는 기억인 것처럼 보일 뿐인 어던 믿음들을 가지는데, 그 믿음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단,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기억 심상
기억에 관한 간접적 실재론의 설명: 중간적 매개물로서의 심상은 과거에 관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하다.
ㄴ반론: 연관된 심상을 전혀 갖지 않고도 과거에 대한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 예: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생김새는 떠오르지 않지만 머리가 황갈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ㄴ반론2: 우리 기억 심상이 과거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라고 믿는 기억들이 있다. 즉, 기억 심상이 기억과 다를 수 있다.
대안적 이론: 기억이 지향적 '내용'의 형태로 저장된다. 심상은 그 부수물이다.
ㄴ반론: 어떤 기억은 매우 자세하며, 개념적 용어로 포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ㄴㄴ재반론: 비개념적 내용
기억에 대한 인과론
기억의 산물은 상상의 산물과 어떻게 다른가?
흄의 구분: 기억은 생생하고, 특정 순서와 형태에 구속된다. 상상의 산물은 흐릿하고 특정 순서와 형태에 구속되지 않는다.
ㄴ반론: 아닐 때도 있는 듯.
>다시 보기
회의주의와 과거의 실재성
세계가 5분 전에 창조되었고, 그 이전의 기억은 단지 조작일 뿐이라는 회의주의.
맬컴: 실제로는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나는 p라는 것을 기억한다'와 같은 말을 올바르게 말할 수 있을 때 그 사고자는 그 낱말을 비로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5분 창조의 예에서 그러한 발언은 언제나 그르며, 따라서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억 보고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함이라는 개념에 대한 그 세계 사람들의 사용이 신빙성 있고, 과거에 관한 그들의 보고 중 많은 것이 옳다는 것이 사실이어야 한다.
지각, 증언, 기억 사이의 관계
기억, 증언, 지각 등은 믿음에 대한 정당성을 파기할 수 있다. 물론반대도 될 수 있다.
기억은 선험적 지식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기억이다. 앞선 생각을 기억해야 다음 사고를 할 수 있다.
13장 타인의 정신
일인칭 권위(first person authority): 내성. 오류 불가능.
ㄴ오류 불가능성에 대한 이의 제기: 9변형에 대해 생각해보기. 마음 속에 떠오른 그 도형이 8변형이나 10변형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가?
ㄴ이의 제기2: 자기 기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자신의 정신에 어느 정도 특권적 접근을 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타인의 정신 문제와 유아론
유아론: 나 자신과 별도로 존재하는 다른 정신들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
유비에 의거한 논증
밀, 러셀: 우리는 추리를 통해 타인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
전제1: 나는 내 행동이 내 정신 상태에 의해 야기됨을 안다.
전제2: 나는 타인들에게서 비슷한 행동을 관찰한다.
결론: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정신 상태에 의해 야기된다.
문제점: 귀납 논증. 게다가 딱 하나의 특수 사례에서 도출된다.
문제점2: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내가 그 행동을 한 적이 있을 때만 그 사람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정신 보기
상대의 겉모습(표정 등)을 보는 것은 상대의 정신을 보는 것이다. > 진화론에 바탕을 둔 설명이 가능할 듯. 자연화된 인식론?
그러나 이것이 유아론에 대한 반박이 되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적 언어 논증 재고
어떤 감각이 어떤 행동적 특성을 야기할 때, 비로소 그 감각을 가리키는 언어 표현을 이해한다.
행동주의
사적 언어 논증과 유사하게, 정신 상태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행동이 정신의 증거가 아니고, 행동이 정신을 형성하는 것.
타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타인의 정신을 관찰한다.
행동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 즉, 어떤 정신 상태는 그 정신 상태와 관련된 행동적 성향의 집합이다.
ㄴ반박: 그러나 그 집합이 명확하게 기술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정신 상태가 매우 다양한 행동을 야기할 수 있다.
ㄴ반박2: 어떤 정신 상태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의 경험적 성질을 무시한다.
정신에 대한 이론적 지식
이론적 설명: 직접 관찰이 불가능한 종류의 대상을 포함하는 설명.
심리학 이론이 설명과 예측에서 성공적이라면, 타인의 정신에 관한 우리 믿음에 정당성을 제공한다.귀추, 확장적 추론, ibe 등.
14장 도덕적 지식
도덕에 대한 경험적 연구 방식 - 공리주의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 수행하는 계산에 경험적 증거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다.
어떤 행동이 쾌락/불행을 줄 지 귀납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도덕적 지식은 일종의 경험적 지식이다.
공리주의의 문제점: 한 사람 고문해서 여러 사람 행복해지는 예시들
ㄴ공리주의의 응답: 어떤 도덕 규칙들은 지켜야 한다. '규칙 공리주의'.
ㄴ응답2: 예시들 승인. 과거의 윤리적 직관이 틀리다는 것.
문제점2: 쾌락이 기준이 되는 것이 맞는가? 혹은 쾌락만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권리, 정의, 의무, 책무 등.
도덕에 대한 선험적 연구 방식
칸트의 정언명령: 절대적 도덕 규칙 - 보편가능화 시험universalisability test로 선험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율성 존중: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고, 수단으로 대우하지 않도록 행위해야 한다.
칸트 이론의 문제: 절대적 금지가 올바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문제2: 둘 이상의 도덕 규칙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도덕적 증언
버나드 윌리엄스: 어떤 도덕적 쟁점에 대해 스스로 추론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증언을 정당하게 승인할 수 없다. 도덕에 대한 지식이 선험적이라면, 도출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ㄴ반박: 스스로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너무 강하다. 수학에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도출할 수는 없지만 수학을 쓸 수 있다. 또, 수학의 경우 아무도 증명 못하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도덕 지식이 선험적이더라도,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ㄴ반박2: 실제로 도덕 교육을 받을 때, 지켜야 할 것을 배운 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도덕적 회의주의 - 상대주의
도덕은 객관적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도덕은 주관적 문제다.
실제로도 도덕은 문화마다 다르다.
ㄴ반박: 이것이 객관적 도덕이 없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ㄴㄴ재반박: 옳고 그름이 명확한 다른 객관적 지식과 달리, 어떤 것이 옳은지 합의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ㄴ반박2: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명백히 그릇된 것에 대해서도 그릇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ㄴ반박3: 도덕의 다양성은 겉보기보다 크지 않으며,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들이 많이 존재한다.
도덕적 회의주의 - 정서주의
도덕적 담화는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살인은 그릇된 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저 반대를 표하고 잇을 뿐이다.
15장 신
일신교의 신: 지성적 신. 자연법칙을 중지시킬 수 있고, 인간사에 개입할 수 있는 신. 전지, 전능, 전선, 영원.
신의 실존에 대한 선험적 증명: 존재론적 논증
데카르트: 우리가 신 관념을 갖고 있는 전제에서 시작. 신은 완전하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더 낫다. 따라서 존재해야 한다. "실존은 신의 본질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신이 실존하므로 우리가 사악한 악마에게 속아서 세계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했다.
가우닐로의 반론: 완전한 해변, 완전한 술집, 완전한 섬 같은 관념도 있는데, 그럼 그것들이 다 실존하냐?
칸트의 반론: '실존'은 술어가 아니다. 즉, 실존이라는 말은 어떤 속성을 귀속시키지 않는다. - 이게 올바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칸트의 반론2: '신은 실존한다'는 말은 신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신 개념에 대한 진술이다.
종교적 믿음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 - 설계에 의거한 논증
자연의 질서와 복잡성(페일리 식)
자연 법칙, 우주의 질서 등의 존재: 자연에 대한 원초적 사실인가, 신에 의한 질서인가.
종교적 믿음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 - 기적에 의거한 논증
기적에 관한 증언.
ㄴ흄의 반박: 여러 증언들의 가망성을 따져서 양의 값이 나와야 한다.
신 지각하기
플랜팅가, 올스턴: 신에 대한 믿음이 종교적 경험이나 신비적 경험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추리가 아니라 신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토대론적 의미에서 기초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은 오류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온건한 토대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다.
경신 원리principle of credulity: 감각 경험과 종교적 경험 모두 그것들을 의심할 이유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승인해야 한다.
신 지각에 대한 반론: 자연주의적 심리학적 설명. 종교적 체험에 대한 과학적 설명 제시. 예: 어두운 곳에서 터널을 빠져나가듯 밝은 빛 쪽을 향해 가는 체험: 혈중 산소 농도 부족.
ㄴ재반론: 신에 대한 지각이 왜 다섯 감각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파스칼의 내기
파스칼은 그냥 갑자기 신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신에 가까이 가는 행동(무신론자들의 책을 안 읽고, 예배에 참석하는 등)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 신이 안 좋아 할 듯하다.
문제2: 실용적 의미는 없지만, 인식적 정당화는 되지 않는다. 종교적 믿음이 옳다고 생각할 훌륭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옳다면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 뿐이다. 이걸로 신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회의주의, 무신론, 불가지론
용어 해설 일부
개념: 어떤 개념을 소유한다는 것은 세계의 어떤 측면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당가정의 오류(선결문제요구의 오류): 부당가정이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성향: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 또는 경험에 의해 일정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
술어: 문장의 주어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표현
시비 불가능한(incorrigible): 다른 누구도 어떤 믿음을 교정하거나 바꿀 수 없다면 그 믿음은 시비 불가능하다. 자신의 감각에 관한 믿음은 시비 불가능해 보인다.
의심 불가능한(indubitable): 어떤 믿음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 시비 불가능하고 의심 불가능하다고 필연적으로 오류 불가능한 믿음은 아니다.
조건부(prima facie): '얼핏 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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