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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마이클 루, 『형이상학 강의』6장: 인과성

전통 형이상학자들은 인과성을 양상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원인이 결과를 필연적으로 낳는다고 주장했다.
흄은 이 주장을 공격한다. 인과성이 필연적 연결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면, 여기서 필연성은 각 인과적 연쇄가 드러내어서 우리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인과성은 단지 사건들의 변함없는 결합 혹은 규칙적인 연쇄일 뿐이다. 
ㄴ반론: 인과성은 선험적 개념이다.
ㄴ다른 반론: 흄의 논변은 인과성이 관찰적 개념observational notion이 아니라는 것만을 보여준다.
ㄴ또 다른 반론: 인과 관계(>'인과성'과 다른 말인가?)는 직접적으로 관찰될 수 있다.
많은 형이상학자들은 흄의 주장을 받아들여, 인과성에 대해 비양상적 설명을 시도한다. 매키의 규칙성 분석, 루이스의 반사실적 분석

인과성에 대한 흄의 설명
인과성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이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한 사건을 원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어떤 특별한 힘이다. 이런 힘으로 인해 원인이 결과를 낳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것이며, 따라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관성은 양상적이다.
흄에 따르면 모든 관념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인과성은 어떤 경험적 내용도 없는 언어이다. 우리가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시간적 연쇄와 공간적 근접성에 대한 인상을 가진다는 것 뿐이다. 인과성이 필연적이라면, 앞의 사건을 관찰한 경험만으로도 뒤의 사건을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심적 상태가 행위를 일으키는 것도, 심적 사건 다음에 물리적 사건이 일어남을 뜻할 뿐이다. 둘 사이의 어떤 연결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인과 관계로 묶여 있지 않아도 시간적 연쇄, 공간적 근접성 관계에 놓이는 사건들이 있고, 이것들은 인과 관계와 뚜렷이 구분되는 듯하다(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흄은 두 사건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관찰 범위를 그 사건들만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사건들의 집합 K1, K2에서 K1에 속하는 사건 다음에는 이 사건과 공간적으로 인접한 K2에 속하는 사건이 뒤따른다는 것이 인과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다. 즉, 인과 관계는 두 사건만 따로 고찰될 때 나타나는 어떤 특징이 아니라, 두 사건이 속한 일반적인 패턴의 한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인과성은 양상적이 아니라, 불변하는 결합 혹은 규칙적 연쇄일 뿐이다. 
전통 형이상학은 인과 계열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특성(비슷한 유형을 많이 관찰했기 때문에, 한 유형의 사건을 보면 다른 유형의 사건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리라고 기대하는 것)을 인과 계열 그 자체가 갖는 객관적 특성으로 오해한 것이다. 정신에서 원인에 대한 관념은 결과에 대한 관념을 낳는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의 특성일 뿐, 현상 그 자체의 특성이 아니다.



흄의 견해에 대한 대응
대응1: 흄의 설명은 너무 광범위하다. 어떤 종류의 사건에서 다른 종류의 사건이 규칙적으로 따라나오지만, 이런 패턴이 인과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 런던의 8시 경적이 울릴 때 맨체스터의 노동자들이 출근한다.
대응2 - 개별적 인과 판단: 개별 사건을 K1와 K2로 확장해서 보는 것은 일반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 같이, 개별 사건을 일반적인 판단으로 확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이 1차 대전의 원인이다. > 이 경우도 비슷한 사건의 계열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주요 인사의 암살이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 - 뒤에 나옴
그밖에도 특수한 연쇄 사례 한 가지만 가지고도 인과 판단을 하기도 한다. 예: 버튼을 누르면 벨 소리가 나고 휘파람 소리가 나고 빛이 나는 특이한 기게는 본 적이 없지만, 그런 기계를 보면 버튼을 누르는게 뒤의 사건들의 원인이다. > 이 경우도, 어떤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봤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 뒤에 나옴
대응3: 인과성은 선험적 개념이다. 칸트는 우리가 혼란스러운 현상에서 통일되고 일관성 잇는 경험을 하려면 규칙적인 어던 방식에 의해 사건들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건들이 강한 양상적 인과 관게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경험도 우리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칸트는 인과성이 경험적 뿌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되, 인과성은 선천적 개념이며 12개의 선험적 범주 중 하나라고 결론내린다. 인과성은 경험적 뿌리가 없는 강한 양상적 관계이다. 이런 대응은 경험이 인간의 모든 관념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주장을 거부함을 의미한다.
대응4: 흄의 논변은 인과성이라는 양상 개념이 관찰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을 뿐, 인과성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흄식으로 고찰하면, 어떤 이론적 개념(전자, 쿼크 등)도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인과성은 이론적 개념인 것이다. 상호 연계된 개념적 비약들moves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추정, 유비, 최상의 설명으로의 추리 등의 이론적 개념을 이용하는데, 인과성 개념도 이런 역할을 한다. 인과성 개념의 정당성은 그것이 수행하는 설명적 기능에 있다. 규칙적 계열은 인과성 그 자체는 아니고, 인과성이라는 강한 양상적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인과성은 관찰되지 않지만, 관찰되는 규칙적 계열이 설명되게 해준다.
대응5: 인과성이라는 강한 양상적 개념은 관찰적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흄은 감각-지각에 대해 너무 빈약한 모형을 세웠다. 우리는 내적 관찰을 통해 인과적 힘을 알 수 있고,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인과적 힘을 지각할 수 있다. 우리는 지각을 통해 구체적 개체만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과정, 사건들, 사건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지각한다.


새로운 흄주의적 접근들
흄주의는 인과성이 양상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다.
새로운 접근1: 규칙성 분석을 보완해야 한다. 규칙성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정식화가 필요하다.
개별적 인과 판단의 경우, 사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사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규칙적이지만 비일관적인 연쇄의 경우, 진정한 인과적 규칙성은 불변해야 할 뿐 아니라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추가적인 조건으로 해결할 수 있다. 
추가적인 다른 조건을 붙일 수도 있다. 진정한 인과 연쇄는 자연 법칙의 지위를 가지거나, 그런 것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인과성 개념 없이 법칙 개념을 설명해 내야 한다. 
매키: 필요조건, 충분조건 개념 이용. 인과적 개념들은 언제나 인과 장(causal field, 일종의 배경 틀)을 전제한다. 인과 장은 원인이 작용하는 맥락을 말한다. 인과적 주장은 인과적 물음에 대한 답인데, 이러한 물음을 완전하게 하려면 인과 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 '이 사람은 왜 암에 걸렸는가?' - '왜 예전이 아니라 지금 암에 걸렸는가'라는 질문일 수도 있고, '왜 하필 이 사람만 암에 걸렸는가'라는 질문일 수도 있다. 
특정 인과 장에 제한된 주장을 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건 발생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다발들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중 한 다발에 사건 발생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 이러한 조건을 아이너스(INUS, Insufficient but Necessary component in a bundle of factors that was Unnecessary but Sufficient for the occurrence) 조건이라고 부르며, 원인은 바로 아이너스 조건이다.
이러한 설명이 규칙성에 대한 분석이 되려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규칙성과 관련된 용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필요조건은 반사실적 조건문으로(x가 아니었다면 y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조건은 사실적 조건문(x가 있어서 y가 일어났다)으로 분석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은 결국 양상 개념들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매키에 따르면 이 조건문들은 단축된 논증으로, 더 분석해 이해하면 비양상적 규칙성 진술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접근2: 규칙성 분석을 버려야 한다. 루이스의 반사실적 분석. 
아이너스 조건에 대한 반례1 - 부수 결과: a가 b와 c의 원인이고, c가 d의 원인. 그러면 b는 d를 일으키는 데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다발(a, b, c,)에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요소인데, 이는 부자연스러움 > 왜 다발이 a, b, c이며, 왜 b가 이 다발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너스 조건에 대한 반례2 - 인과적 선점: a와 b는 c의 원인인데, a와 b가 함께 일어날 경우 a는 b의 인과 작용을 막아서 단독적으로 c의 원인이 된다. 그러면 b는 c를 일으키는 데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다발(a, b)에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요소인데, 이는 부자연스러움 > 여기서도 왜 다발이 a, b이며, 왜 b가 이 다발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루이스는 반사실적 분석이 규칙성 분석과 대립하지만 비양상적 설명틀이며, 진정한 흄적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c가 e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c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e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세계 W에서 발화된 반사실적 조건문은 W와 다르기는 하지만 중요한 점에서 W와 유사한 다른 가능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주장이다. 세계들 사이의 비교 유사성. W1은 W2보다 W3와 비교적 더 닮을 수 있다.
'p가 사실이었다면, q가 사실이었을 것이다'라는 반사실문이 주어졌을 때, 우리 세계와 가장 가까운 세계에서 p가 성립하고 q도 성립하면, p이면 q이다는 참이다.
우리 세계와 가장 가까운 가능 세계가 있다는 가정을 많은 가능 세계 이론가들은 받아들이지만, 루이스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루이스는 위의 반사실문이 참인 경우를 다음과 같이 제한한다. p가 성립하는 W가 있는데, q는 W에서 참이고, q가 거짓인 그 어떤 p가 성립하는 세계보다 W가 우리 세계와 더 닮은 경우. 반대로 'c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e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반사실문의 경우, c, e가 모두 W발생하지 않았는데, W는 c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e는 발생한 다른 어떤 가능 세계보다 우리 세계와 가까울 때 참이다. 이와 같은 명제가 참일 때, e가 c에 인과적으로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인과성은 인과적 의존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인과적 의존 관계는 반사실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사실성은 비교 유사성을 통해 가능 세계의 순서화(우리 세계와의 유사성 정도로 나열)로 이해될 수 있다. 가능 세계는 구체적 개체들로서, 완전히 비양상적인 용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루이스의 인과 설명은 비양상적이다.
루이스에 대한 반박1: 아이너스 조건에 대한 반례가 루이스에 대한 반례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ㄴ루이스의 대응: 그러나 이것은 역행적 반사실문을 이용했기 때문으로, 잘못된 것이다. 첫번째 반례에서, 'b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것의 원인인 a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가 현재나 미래에 의존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옳아보일지 몰라도) 실제 세계에서는 현재나 미래가 과거에 의존하지, 그 반대는 아니다. 
루이스에 대한 반박2: 인과적 과잉.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두 원인이 동시에 작용한 경우, 결과는 두 원인 중 어떤 것에도 반사실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ㄴ루이스의 대응: 인과적 과잉은 우리 직관의 무기력함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에 대해 뭐라 말할지 모를 뿐이지, 인과 이론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에 대한 반박3: 인과적 결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반사실적 조건문이 있으므로, 인과성에 대한 분석으로 반사실성 개념은 너무 넓은 개념이다. 김재권, "Causes and Counterfactuals"(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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