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유토피아를 본 현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유토피아를 다룬 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유토피아"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논의가 거의 없지만, "새로운 아틀란티스"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올바른 사회 체제가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면,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과학기술을 통해 얻은 풍족함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책이 저술된 시기의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유토피아"가 쓰인당시의 영국은 종교적 분쟁, 정치적 분쟁, 인클로저 현상 등으로 인해 농민 계급이 몰락하여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반면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쓰인 시기에는 여러 사회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한편, 과학 분야에서는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베이컨은 학문의 진보를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연구하였다. 그는 여러 실험적, 경험적 지식들을 수집하여 참된 귀납의 방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그는 개인이 책만 보며 연구하는 것보다는,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지식을 수집하고, 지식을 공개하여 토론하고, 공공선을 위해 협동하며 참된 귀납의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베이컨이 구상하던 이상적인 과학 단체의 모습은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솔로몬 학술원으로 묘사된다. 베이컨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편견들('우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협동 연구를 함으로써 개인이 가진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이컨 사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과학 연구 단체들이 생겨났다. 영국의 왕립학회나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가 그 예이다. 그러나 과학 아카데미는 프랑스 파리를 18세기 유럽 과학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지만, 영국의 왕립학회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왕립학회는 공식적인 과학 단체였지만, 국가의 지원은 빈약했다. 왜냐하면 회원들 상당수가 공화파 인물이었는데, 1660년 왕정복고를 통해 찰스 2세가 집권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왕립학회에서는 수준이 낮은 연구들이 많이 나왔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회 풍자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에도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에 대한 이야기로 왕립학회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과도하게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연구들과 산만하고 피상적인 실험 연구들을 비판한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광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과학계에 영향을 끼쳤다. "프린키피아"가 기하학적 방법의 중요성을 입증해주었다면, 광학은 실험적인 방법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전기나 자기, 화학, 열 등에 관한 연구는 근대 이전에는 경험적인 분야로 간주되어 장인이나 기술자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그러나 뉴턴 이후 이런 분야들이 18세기 동안 '뉴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이 대중에게 전달될 때 어려운 기하학적 방법보다는 흥미로운 실험적 방법을 선호되었다. 이러한 실험 과학의 인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무분별한 실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왕립학회 회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들을 보면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와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라퓨타는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두 작품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크게 다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과학기술이 풍자된다. 애니메이션의 라퓨타 섬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해 있지만, 그것을 조종하는 한 사람에 의해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은 유기적인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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