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도와 미래 의도의 구분
- 의도적 행위란 무엇인가?
- 미래 의도란 무엇인가?
우리가 의도에 따라 행위한다고 말할 때, 마치 거기에 우리가 행위하기 이전에 경험하는 어떤 내적 상태나 작용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의도라는 것은 그러한 심적 작용을 가리키는 것인가? 의도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행위와 의도의 관계는 무엇인가?
데이빗슨의 의도 이론은 의지 작용의 존재와 그것의 인과적 역할을 부정한다.
II. 행위의 이유와 의도
- 이유와 원인
Actions, Reasons and Causes
한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이유가 행위를 설명할 경우, 이유는 행위의 원인이며 또한 그러한 설명(합리화)은 일종의 인과적 설명이라고 말한다.
이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일차적 이유(primary reason)에 관한 다음 두 가지 명제를 옹호한다.
- 어떤 종류의 한 이유가 어떻게 한 행위를 합리화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어떻게 그것이 일차적 이유를 구성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 행위의 일차적 이유는 그 행위의 원인이다.
일차적 이유는 긍정적 태도proattitude와 믿음의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행위를 한 경우, 그 사람은 어떤 종류의 행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행위가 그런 긍정적인 행위 종류에 속한다는 믿음이나 지각, 인식, 기억 등을 갖는다는 것으로서 그 행위를 기술할 수 있다.
긍정적 태도란 어떤 종류의 행우를 지향하는 행위자의 태도이다.
믿음이란, 행위자의 어떤 구체적 개별token 행위가 그가 긍정적 태도로 지향하는 행위 유형type에 속한다는 믿음이다.
그리하여 데이빗슨은 일차적 이유의 필요조건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일차적 이유의 필요조건: 이유 R이 어떤 속성을 갖는 행위에 대한 행위자의 긍정적 태도와 기술 d하의 행위 A가 바로 그 속성을 갖는다는 행위자의 믿으믕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에만, R은 행위자가 기술 d하의 행위 Aㄹ르 수행했던 일차적 이유이다.
- 행위와 기술description
행위와 이유와 의도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위론의 존재론적 기반이 되는 사건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데이빗슨에 있어서, 사건은 물리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구체적 개별자이다. 사건은 존재 차원에 속하고 사건의 기술은 언어적 차원이므로 하나의 사건이 인식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기술들을 가질 수 있다.
행위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으로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가질 수 있다.
ㅇ이유들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기술되었을 때는 그 행위를 합리화하지만, 어떤 다른 기술 하에서는 그 행위를 합리화하지 않는다. e.g. 불을 켜는 행위, 도둑에게 나도 모르게 경고.
- 의도적 행위
의도적 행위, 비의도적 행위, 단순한 신체 동작bodily movement.
데이빗슨에 의하면 동일한 행위가 어떻게 기술되는가에 따라 의도적일 수도 비의도적일 수도 있다. 데이빗슨, agency
예
가. 나는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했다.
나. 나는 컵 안에 든 것을 쏟았다.
다. 나는 커피를 쏟았다.
라. 다른 사람이 내 손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것을 엎지르게 되었다.
행위의 필요충분조건은 그것이 적어도 한 방식에서 의도적 기술을 가질 수 있는 경우이다. - "psychology as philosophy'
행위와 행위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은 의도 개념에 의해 이루어진다. 데이빗슨은 그러한 의도나 의도적 행위를 인과성 개념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행위자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그 행위를 합리적으로 만드는 행위자의 태도와 믿음에 의해 야기cause되었다는 점이다. philosophy of action
결국 의도적 행위나 행위의 의도는 일차적 이유와 인과 개념에 의해 모두 설명되므로 따로 의도라는 개념을 상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III. 행위의 의도
- 전통적 의지 인과론volitional theory의 논박
전통적 행위 인과론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A를 하는 행위는 반드시 A에 대한 의지와 같은 의지 작용에 의해 일정하게 야기된다. 브랜드는 '의도와 행위'에서 직접적으로 바로 행위를 야기하는 심적 사건을 '최근접 원인'이라고 부르고 행위른의 근본 문제는 바로 행위의 최근접 원인proximate cause 또는 직접적 지향성 immediate intentionality의 본질을 춘분히 해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데이빗슨은 이 문제를 간과했다.
셀라스는 '긍정적 태도'라는 데이빗슨이 사용한 모호한 표현 때문에 행위의 심적 전건(원인)이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고 본다. 셀라스는 행위는 어떤 종류의 심적 전건에 의해 야기되는데, 데이빗슨을 그것의 본질을 해명하는데 실패하고 그냥 뭉뚱그려서 긍정적 태도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나아가 왜 이유가 원인인가를 설명하는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데이빗슨은 행위를 야기하는 특정 종류의 심적 사건이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A를 행하기 위해서는 A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져야 하지만, A를 행하는 모든 경우에 Aㄹ를 행하려는 의도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심적 태도란 없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행위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예: 어떤 사람이 의도적으로 팔을 올리는 경우.
ㄴ 의지 인과론의 반박: 심적 원인에는 많은 종류의 사건들이 있을지라도 최근접 원인이 되는 한 형태의 사건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의지will, intention, volition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데이빗슨이 말한 긍정적 태도란 행위의 최근접 원인에 선행하는 심리적 배경일 뿐이다. 셀라스에 의하면 행위의 최근접 원인은 '여기, 지금 무엇을 행하려는 의도'이다. 심리적 배경을 이루는 태도와 욕구는 일종의 추론을 낳고, 이 추론practical reasoning은 한 의도를 야기한다. 행위 A를 수행하려는 의도는 자신에 대해 '나는 A를 하고자 한다'는 생각이다.
- 의도의 존재론적 지위
데이밋슨은 행위의 최근접 원인으로서 의도immediate intention이라든지 셀라스의 의지volition같은 것을 진정한 속성이나 실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의도적 행위에는 항상 일차적 이유(욕구와 믿음)가 있어야 하지만, 모든 행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원인으로서의 의도란 없다는 것이다.
> 한 행위에 대한 모든 사람의 공통되는 의도는 없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의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행위할 때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행위한다. 그러나 그 경우 의도라는 것은 어떤 실체도 가정하지 않는 가범주적인 것이다. 의도적 행위 개념을 해명하기 위해 나의 일차적 이유(욕구, 믿음)과 나의 행위 사이를 매개하는 의도와 같은 또 다른 사건에 호소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그 후 데이빗슨은 '순수 의도'pure intending의 존재를 인정한다. 논문 "Intending". 행위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도를 가지는 경우 일차적 이유에의 환원이 불가능함.그러한 의도는 의도된 행위나 그 행위를 추구하는 이유들과 구분되는 상태나 사건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의도적 행위와 현재 의도
순수 의도의 존재를 인정하면, 그 의도된 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도 동일한 의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재 의도-의도적 행위오 미래 의도를 나눈다면, 전자는 행위가 수반도는 경우이며 후자는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식은 실천적 추론practical reasoning에 대한 구조와 설명을 도입하는 것이다.
(P1) 욕구(긍정적 태도)
(P2) 믿음
(I) 의도: 비조건부 결단 판단(all-out judgement)
(A) 의도적 행위
현재의 의도적 행위의 경우 (I)와 (A)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없다. 미래 의도의 경우, 어떤 행위를 수행하려고 의도하는 것은 그가 믿는 것들에 비추어 어떤 종류의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 데이빗슨에 의하면 의도는 행위자의 믿음과 이유들에 근거하여 최종적으로 도달된 판단으로서, 의도적 행위에서처럼 미래 의도라는 것도 비교와 숙고를 통한 최종적 결론이다.
이처럼 의도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나의 믿음과 이유들에 비추어 이루어진 행위에 대한 판단으로 간주할 때, 의도는 분명히 단순한 욕구와 구분된다. 우리는 서로 상충하는 욕구들을 도잇에 가질 수도 있고, 다른 믿음들에 의하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원하거나 또는 우리가 의도하는 바와 정반대의 것을 초견적prima facie으로 바랄 수도 있다. 따라서 욕구는 초견적 판단들에 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에 반해 의도는 초견적-조건부 판단이 아니라, 최종적 결단을 나타내는 비조건부 판단이다. 그러나 데이빗슨은 우리의 믿음과 일관되지 않은 것에 대한 욕구라든지, 어떤 일차적 이유에만 기초함으로써 전체적 숙고를 통한 최종 결단(의도)에 어긋나는 욕구들을 제외한다면 의도와 욕구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즉 우리가 어떤 것을 의도할 때, 초견적인 일시적 욕구들을 넘어서는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바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록 ㅡ이도는 욕구의 한 형태나 한 종류가 아니지만, 의도와 욕구 둘 다 가치 판단에 의해 표현되는 긍정적 태도라는 동일한 류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도는 욕구와 마찬가지로 긍정적 태도의 한 조유이며, 둘 간의 차이가 있다면 욕구는 초견적 조건부 판단에 의해 표현되지만 의도는 비조건부 판단의 형태를 갖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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