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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조수남, 『욕망과 상상의 과학사』, 1장 인간과 기계: 인간을 닮은 기계, 자동인형

책의 1장 내용 외에도, 조수남 선생님의 수업(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18년 1학기 대학원 개설과목 "과학사통론1") 및 수업에서 다룬 논문(Marr, Alexander. "Gentille curiosité: Wonder-working and the culture of automata in the late Renaissance")의 내용을 일부 추가했다.

자동인형과 기계적 철학 
15~16세기 유럽은 새롭게 소개된 문헌과 사상을 통한 전통적 지식의 부정, 기존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부정과 종교 개혁,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경제적 어려움과 대규모 전염병 등으로 사회가 매우 불안정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확실하고 체계적인 지식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 근본이 되는 것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물질과 그것의 운동만으로 설명하는 기계적 철학이었다. 데카르트 이전에도 기계적 철학은 있었지만, 데카르트는 생명 현상까지도 기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인간의 신체만큼은 기계적 운동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가 생명 현상까지도 기계적 질서를 따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는 인체 역학의 발전과 자동인형 기술의 발전이 큰 영향을 끼쳤다. 먼저 인체 역학의 발전에 대해서 살펴보자. 당시 유럽은 각종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해 많은 환자들과 부상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는 의학 분과는 외과였다. 전통적으로 외과는 내과에 비해 경시되었는데, 내과는 인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중심으로 하는 '고상한' 분야였던 반면 외과는 현장에서 몸을 써서 직접 환자들을 대하며 치료를 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해 실질적인 치료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면서 외과가 발전하고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외과 시술을 위해서는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부학이 발전했고, 이로 인해 인체 내부의 장기, 뼈, 힘줄 등의 역학적인 움직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또한 외과와 해부학의 발전은 생리학의 발전도 촉발시켰다. 특히 윌리엄 하비에 의해 피의 순환이 밝혀지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소화와 호흡의 기능도 더 깊이 이해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인체의 생리학적인 현상들을 기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의수 및 의족 기술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 특히 당시에 발전된 포 기술에 의해 팔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의수와 의족 기술이 발전했다. 점점 정교화된 의수와 의족은 인체의 작동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인체를 역학적으로 이해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마치 살아있는 인간처럼 움직이는 자동인형들이 만들어진 것도 신체의 움직임이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당시에는 고대 그리스의 기계학 서적들이 번역되고,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기계들이 제작되고, 시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계 제작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장식이나 여흥을 위한 기계들도 만들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자동인형이다. 자동인형은 수압을 이용해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인형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인형들을 보면서 인체 또한 복잡한 기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후로도 자동인형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자동인형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캠(cam)이라는 얇은 금속 조각들을 이용해 현대의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방법으로 자동인형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도 나타났다. 이러한 정교한 자동인형들을 보며 기계와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18세기 자동인형 제작자인 보캉송이나 의사인 라메트리 같은 사람들이 그 예이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신체를 기계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영혼은 기계적 설명에서 제외했던 것과 달리 라메트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혼 개념을 통해 영혼까지 기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자동인형에 대한 인식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동인형을 예로 들며, 사물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학문 탐구에 대한 동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16-17세기 유럽에서도 이에 따라 자동인형으로 인해 촉발되는 궁금증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인형을 속임수로 취급하거나, 자동인형의 악용 및 남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종교인들도 자동인형을 많이 주문하였다. 자동인형 자체가 종교적 내용을 다루는 것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자동인형도 많았다. 종교인들이 이런 일반적인 자동인형을 주문한 이유는 자동인형에게는 '일탈'이 없고 질서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자동인형은 여성형의 경우 악기를 연주하고 남성형은 글쓰기를 했는데, 종교인들이 보기에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자세를 담고 있었다.  

18세기에 제작된, 인간을 닮은 인형은 대개 아동이나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 아동은 성인과 비교했을 때 정신적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여겨졌는데, 이러한 점은 인간의 행동은 흉내낼 수 있지만 정신적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자동인형과 잘 어울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성의 모습을 한 자동인형은 남성의 시각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을, 다른 말로 하면 여성에 대한 억압을 보여주었다. 집 안에서 우아하게 차려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일종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낸 자동인형들은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근대 유럽 사회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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