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 무분별한 것과 미친 것의 관계 / 분별 있는 사람과 무분별한 사람의 차이
소크라테스는 신께 빌러 가고 있는 알키비아데스를 만나 대화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우리가 비는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신들이 들어주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이 비는 것은 들어주고 어떤 사람이 비는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빌기 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는 사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빌지만, 사실 자신도 모르게 나쁜 것을 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렇게 자신에게 나쁜 것을 비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뿐이라고 반박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무분별한 사람이 반드시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재반박한다. 이 부분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제 1) 분별 있는 사람도 있고 무분별한 사람도 있다.
(전제 2) 분별과 무분별 사이의 중간 상태는 없다.
(전제 3) 알키비아데스에 따르면 미친 상태는 분별과 반대되므로, 무분별과 미친 상태는 동일한 상태이다.
(전제 4) 그렇다면 무분별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전제 5) 그런데 한 나라에서 분별 있는 사람은 소수고 무분별한 사람은 다수다.
(결론) 그렇다면 나라에 많은 미친 사람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무사히 나라를 꾸려가고 있다.
위의 결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문제는 (전제 2)에 있다. 무분별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가장 무분별한 사람이 미친 사람이다. 그보다 덜 무분별한 사람들은 바보스럽고 얼빠진 자들이다. 이들은 다 무분별하지만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분별 있는 사람과 무분별한 사람이란 도대체 누군가를 살펴보자고 말한다. 분별 있는 사람은 무엇을 행하고 말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다. 무분별한 사람들은 그것 둘 다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사람은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자기도 모르게 말하고 행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 자신을 위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알키비아데스는 이에 대해 동의하며, 우리가 무지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나쁜 것들을 행하고 그것들이 생기게 해 달라고 비는 경우, 무지가 인간에게 나쁜 것을 생기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의 필요성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비난할 만한 무지는 특정한 것에 대한 / 특정한 상황의 / 특정한 사람의 무지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지가 어떤 의미에서 좋다는 것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다른 앎으로는 이득을 보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의 경우 오히려 앎의 소유가 손해를 끼치는 듯하다고 말한다. 뭔가를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하려는 것을 우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알아야 한다.
그런 어떤 기술에 대해 뭔가를 아는 사람이라도 당연히 분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많이 부족하다. 이런 기술자들과, 전쟁하는 것만 아는 사람, 정치적 과장으로 허풍 치는 연설가 등이 섞여 있는 정치체제, 즉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것들 하나하나를 언제, 무엇과 연관 지어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정치체제는 하잘것 없는 정치체제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성 없이 판단을 신뢰하는 사람이라서 나라와 그 사람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대개의 경우 놓친다. 이와 같은 나라는 무질서와 무법으로 가득 찬 나라다. 뭔가를 아는 사람이면서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이로운 것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
앞서 무언가를 작정하고 말하거나 행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우선 안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알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롭게 행하면 나라와 그 사람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그런데 알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하면 손해를 입는 경우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 결국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다른 앎의 소유만으로는 이익을 보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나라든 혼이든 장차 옳게 살고자 하면 이 앎에 매달려야 한다.
신께 빌기 전에 해야 할 것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생각해볼 때, 알키비아데스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쁜 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빌 수도 있다. 누군가 비는 것들을 주는 것도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을 주는 것도 신들에게 달렸다. 그리고 신들은 호화로운 제의보다는 우리 혼에 훨씬 더 많이 주목한다. 따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충분한 경계와 검토가 필요하다. 정의와 분별은 신들에게도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히 존중받는다. 분별 있고 정의로운 사람은 신들과 인간들을 상대로 무엇을 행하고 말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나쁜 것을 자신도 모르게 빌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니 지금 신께 빌러 가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조심성 없이 하는 말을 듣고서 신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엉뚱한 것을 덤으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니 신들에 대해서나 인간들에 대해서나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배우기 전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알키비아데스가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식별할 수 없고, “혼에 끼어 있는 안개를 제거하고 나서”[미주 43: 논박을 통해 잘못된 의견을 제거하고 나서]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