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ay, K. B. (forthcoming), "Kuhn and Contemporary Realism/Anti-realism Debate", HOPOS.
쿤과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
1980년대 무렵 바스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의 『과학적 상(The Scientific Image)』와 래리 라우든(Larry
Laudan)의 「수렴적 실재론에 대한 반론(A
Confutation of Convergent Realism)」 발표를 계기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현대의 과학적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토머스 쿤은 주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쿤이 이 논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나는 철학자들이 이론 용어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론 변화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주의를 돌리는 데에 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초점은 이론 용어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지,
이론 변화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현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모습은 어느 정도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의 출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이런 초기 논쟁을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연구 프로그램에까지 추적한다. 그 다음 나는 (i) 초기 논쟁에서 주된 반실재론 관점이었던 도구주의와, (ii) 이 초기 논쟁의 주요 참여자였던 포퍼 양쪽 모두의 운명을 추적한다. 그 다음 나는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이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 반응하여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나는 (i) 쿤의 후기 저서들에 나타나는 실재론 및 반실재론에 대한 언급들과 (ii) 다른 학자들이 현대 논쟁에서 쿤을 어떻게 위치시켰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쿤 이전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
1960년대 중반까지 과학철학에서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참여했던 많은 학자들은 과학의 이론적 언어의 의미, 특히 전자(electrons)
등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entities)을 지시하는 용어들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는 J. J. C 스마트(J. J. C. Smart), 그로버 맥스웰(Grover
Maxwell), 칼 포퍼(Karl
Popper) 등이 기여했다. 이 논쟁에 참여한 실재론자들은 매우 구체적인 상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도구주의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철학자들보다는 물리학자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도구주의는 물리학자들, 구체적으로는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과 관련된 닐스 보어 등의 물리학자들이 지지하는 관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스마트는 자신이 물리학자들의 이론적 존재자들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상대로 규정한 것은, 물리학 이론의 아원자 존재자들이 세계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거시적인 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에 유용한 개념적 장치들이라고 보는 사람들이었다. 스마트는 이것이 에른스트 마흐에 의해 유명해졌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채택한 과학철학적 관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스마트는 물리학 이론의 아원자 입자가 실제로 세계의 구성 요소라고 주장했다. 전자와 양성자는 물리학 이론이 그것들에 대해 기술하는 대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맥스웰도 「이론적 존재자들의 존재론적 지위(The
Ontological Status of Theoretical Entities)」 에서 같은 상대를 염두에 두었다. 그는 다음 관점들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i) 과학 이론이 지시하는 존재자들은 편리한 허구(convienient fictions)일 뿐이라는 관점, (ii) 그런 존재자에 대한 이야기는 감각 내용 혹은 일상적인 물리적 대상에 대한 이야기로 남김 없이 번역될 수 있다는 관점, (iii) 그런 이야기는 단지 계산을 위한 도구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인지적 내용(cognitive
content)이 없다는 관점. 맥스웰은 관찰 가능한 존재자와 이론적 존재자가 구분되는 범주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연속선상에 놓인다고 논증했는데, 이 논증은 어떤 대상이 관찰 가능하거나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에 존재론적 의의가 없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맥스웰은 도구주의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맥스웰과 마찬가지로 포퍼의 표적도 보어의 도구주의였다.
지금까지의 논점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일종의 도구주의와 대조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이런 관점[도구주의]을 취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니스트 네이글은 『과학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ce)』에서 과학에 대한 도구주의 관점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스티븐 툴민 한 사람만 제외하고, 네이글이 논의하는 사람은 당시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거나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자, 특히 도구주의자였다. 따라서 이러한 초기 논쟁은 주로 물리학에 대한 것이었다. 실재론자들의 관심사가 다른 과학 분야에 영향을 주었는지나 관련이 있는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도구주의를 공격한 철학자들이 보어의 관점을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코펜하겐 해석을 도구주의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보어는 그가 "인과성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과 결합된,
고전 역학이 전제하는 실재에 대한 이해(conception)가 양자역학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였다. 그는 물리학 이론에서 상정하는 존재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의 논쟁과 관련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은 이론 용어에 대한 도구적 해석이 옹호될 수 있는지, 아니면 실재론자들이 주장하듯 그런 용어가 글자 그대로(literally)
해석되어야 하는지 였다. 이 논쟁은 과학의 이론적 주장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1950년대와 1960년대 철학에서 언어철학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논쟁을 이런 틀로 보았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 논쟁의 기원을 간단하게 추적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 이 논쟁들, 그리고 특히 이론 용어의 의미에 관련된 것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연구 프로그램에 그 기원이 있다. 빈 학파의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적 주장들의 지위와 그런 주장들이 과학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염려했다. 그들의 검증 원리는 의미있는 담화와 의미없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는 담화를 구분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빈 학파의 반형이상학적 태도를 고려하면, 그들이 반실재론으로 기울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 빈 학파의 계승자들과 비판자들(맥스웰, 스마트,
포퍼)은 실재론자였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언어에 대한 빈 학파의 관심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도구주의와 포퍼의 운명
최근까지, 도구주의는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끼친 『과학혁명의 구조』의 영향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나는 실재론과 도구주의 사이의 오래된 논쟁의 운명에 대해 간단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나는
(i) 도구주의의 운명과,
(ii) 1950년대와 1960년대 논쟁에서 주요 비판자였던 포퍼의 운명에 대해 간단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논쟁에서 반실재론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도구주의자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반 프라센은 이론들이 글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에 속성을 귀속시키는 진술은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런 주장들이 관찰 가능한 존재자들에 대한 주장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논의됐던,
이론에 대한 고전적인 도구주의와 관련된 반실재론과 매우 다른 종류의 반실재론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도구주의자들은 이론들이 그것의 유용성에 의거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도구주의자들은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에 대한 주장이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적절하게 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재의 논쟁의 논쟁에 관여하는 반실재론자들은 도구주의자가 아니다. 과거 논쟁에서조차 도구주의가 과학철학자들 사이에서 그다지 널리 퍼진 관점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도구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포퍼의 작업은 어떤 운명에 처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포퍼는 초기 논쟁에서 실재론 진영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도구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포퍼에 따르면 "도구주의적 철학은 이론을 위협하는 특정 모순점들에서 이론을 구하기 위해 임시방편적 가설(ad hoc)을 이용했다.” 포퍼의 관점에서, 양자 이론을 만들기 위한 보어의 전략은 반증 가능성이 덜했다. 포퍼는 그런 전략이 과학의 인식적 목표와 완전히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퍼는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도구주의에 대한 포퍼의 비판은 현재의 논쟁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과 무관해졌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실재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도구주의는 더이상 적절한 혹은 주된 상대가 아니었다. 둘째, 포퍼 특유의 실재론은 현대의 논쟁에 위치시키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포퍼는 과학자들이 가설이나 이론이 참이라고 증명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론이나 가설에 대한] 시험이 어떤 가설이나 이론이 거짓이어서 폐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론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이론들이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참이라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다는 현재의 실재론자들의 주장과 양립 불가능하다.
둘째, 포퍼 특유의 실재론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는 도구주의자들은 단지 도구적으로 성공적일 뿐인 이론에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퍼에 따르면 그 정도의 [낮은] 문턱은 과학의 진정한 진보에 해로운 것이다. 포퍼는 실재론적 입장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강하게 시험하도록 만들어 과학자들이 참인 이론을 추구하는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 이론들이 실제로 참인지는 절대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실재론을 이런 동기로 지지하게 되는 것 또한 현재의 논쟁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포퍼가 현재의 논쟁에서 주요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놀랄 일이 아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쿤 이후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은 다른 쟁점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고 해서 포퍼가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진리근접성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근사적 참"의 개념에 대한 현재의 분석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과학혁명의 구조』와 과학혁명의 문제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간하며 이론 변화(theory
change)를 철학적 문제로 만들었다. 그는 이론 변화가 과학 지식의 성장과 과학적 진보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밝혀내기 위해 이론 변화의 역할을 자세하게 연구했다. 그는 한 분야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이론들이 점점 더 참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이론 변화가 과학적 진보를 누적적으로 보는 관점과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분야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이론들이 공약 불가능하다는 쿤의 주장은 이론 변화의 문제적 본성을 더 심화시켰다. 그는 이론 변화 후에 손실이 있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에 대해 평가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서로 경쟁하는 이론의 지지자들이 서로 충분히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에 기인한다. 쿤의 몇몇 비판자들은 쿤이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전혀 비교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받아들였다.
과학혁명에 대한 쿤의 분석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과학철학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는데, 여기에는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실재론/반실재론에 끼친 영향은 다소 간접적이었으며, 꼭 『과학혁명의 구조』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쿤 특유의 용어로 표현될 필요도 없었다.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다양한 형태의 비관적 귀납은 쿤의 이론 변화 문제에 대한 반응이었다.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은 가장 명시적으로 쿤의 과학철학을 (그의 용어대로 쓰면) 비관적 메타귀납과 연결시켰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비관적 귀납은, 우리가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 이론들은,
그 이론들이 대체해버린 과거 이론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의 현재 최선의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이론들도 성공적으로 예측과 설명을 했다. 이런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의 현재 이론들은 대체된 이론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들은 대체된 이론들과 구분되는 적절한 특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미래에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없다.
비관적 귀납은 반실재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자, 실재론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이 문제는 이론 변화의 본성에 대한 숙고를 통해 나온 것이다.
이론의 급격한 변화가 모든 과학 분야의 정상적인 발전 사이클의 일부라는 쿤의 주장이 이 문제가 주목받게 만들었다. 메리 헤시(Mary
Hesse)는 명시적으로 이 문제를 쿤의 작업과 연결시켰다. 존 워럴(John Worrall)도 마찬가지로 비관적 귀납을 "과학혁명으로부터의 논증"이라는 이름 하에 논의했다.
내가 주장하는 대로 비관적 귀납에 대한 주목의 원인이 쿤과 "이론 변화의 문제"라는 점은, 왜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의 글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지 설명해준다.1900년대 초에 푸앵카레가 "폐허들 위에 쌓인 폐허들"(ruins piled upon ruins)과 "과학의 파탄"(the bankruptcy of science)을 언급하며 일종의 비관적 귀납을 제시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졌다.
초기 빈 학파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푸앵카레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푸앵카레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논쟁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거의 무시되었다. 그리고 그의 비관적 귀납은 그 맥락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푸앵카레의 비관적 귀납의 재발견은 이론 변화 문제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쿤은 그가 촉발시킨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주요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비관적 귀납에 대한 평가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대신, 쿤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다른 논쟁들에 휩쓸렸다. 초기의 많은 비판자들이 이론 변화에 대한 쿤의 분석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해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공약불가능성,
특히 나중에 "의미 공약불가능성"이라고 불리게 되는 개념은 이러한 전개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한 몇몇 무자비한 독자들은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같은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쿤이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 간의 비교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쟁하는 이론들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쿤은 이런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과학의 합리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쿤이 1980년대에 이야기한대로,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이끌고 나에게 동기를 부여한 질문은 ... 과학 분야들에서 집단적 실행의 특수한 본성이, 과학자들이 선택한 문제들을 푸는 데에 왜 그렇게 놀랍도록 성공적이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쿤은 과학의 성공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쿤은 결국 그의 경력의 많은 부분을,
그의 관점이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 초기 비판들에 대해 고심하는 데에 사용하게 되었다.
『과학혁명의 구조』 이후, 실재론에 대한 쿤의 언급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여러 논문을 통해 쿤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과 관련 있는, 혹은 최소한 일견 관련 있어 보이는 언급을 했다. 그러한 후기 논문들에서 쿤은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과 별로 관련이 없는 쟁점을 다루었다. 그리고 그가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과 관련 있는 언급을 할 때도,
다른 문제와 관련해 다루었다.
첫째, 쿤은 이론적 가치들(theroetical values)과 관련된 논쟁에 영향을 끼쳤다. 자주 인용되는 논문 「객관성,
가치 판단, 이론 선택(Objectivity,
Value Judgment and Theory Choice)」에서 그는 이론적 가치, 단순성,
적용 범위, 일관성, 정확성,
다산성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다. 쿤은 그러한 가치들을 "이론 선택을 위한 공유된 기반"이라고 서술했다. 그리고 그는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과학의 여러 분야들에서도 과학자들이 그런 가치들에 의거해 이론 선택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들의 목록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을 논의할 때 쿤의 목적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쿤은 이러한 가치들이 여러 과학 분야들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의 논쟁을 명확히 해결할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지적하듯이, (i) 각 가치들은 그 자체로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으며, (ii) 집합적으로, 그 가치들은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를 낳게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예를 들어 두 이론이 각기 다른 측면에서 더 단순할 수 있기 때문에,
두 과학자가 모두 단순성에 의거해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각자 다른 이론을 더 단순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두 과학자가 두 경쟁 이론들 중 어느 것이 더 단순하고, 적용 범위가 더 넓고, 더 정확한지 등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치들의 가중치를 각자 다르게 매기기 때문에 여전히 어떤 이론이 더 나은지 합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쿤의 궁극적인 논점은 이론적 가치들의 유연성이 과학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그것이 오히려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 가치들의 유연성이 과학의 발전에 장애가 되기보다는,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점은 실재론이나 반실재론 중 하나에 유리하지 않다. 그러나 실재론자들은 전통적으로 이론적 가치들이 참을 추적한다고 가정해왔다. 결과적으로,
쿤의 분석은 반실재론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쿤 본인이 반실재론 관점에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쿤의 논점은 만약 그 가치들이 참을 추적한다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가정과 달리 이론적 가치들은 논쟁을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논문 「과학에서의 메타포」(Metaphor
in Science)에서 쿤은 그 자신과 리처드 보이드(Richard Boyd)가 둘 다 "변심할 여지가 없는 실재론자"라고 주장하며 둘을 비교했다. 보이드가 실재론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쿤은 자신과 보이드 사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쿤이
"과학 이론들은 자연을 그 마디에 맞게 나눈다[혹은 나눌 수 있다]"는 보이드의 메타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쿤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연이어 나타나는 이론들이 점점 더 참에 가까운 근사치를 제공한다는 고전적인 경험론자들의 입장을 바꾸어 말한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쿤이 처음부터 반대하던 것이다. 그는 과학 지식의 성장이 누적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에서 쿤의 발언은 실재론/반실재론과 분명 관련이 있지만, 왜 그가 자신이 보이드와 마찬가지로 실재론자라고 주장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메타포에 대한 쿤의 논문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과학적 발전이 어휘집(lexicon)의 변화에 의해 주기적으로 방해받는다는 사실은 실재론을 약화시킨다. 그는 그런 어휘집 변화를 통한 발전이
"실제의" 세계로 수렴을 구성한다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쿤은 역사가들이 이 점을 보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가들을 과거의 과학적 실행을 이해하고자 할 때,
대안적인 과학적 어휘집이 사용될 때, 어휘집들 사이의 불연속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쿤은 실재론이 무엇을 함축한다고 보는지에 대해 가장 명료한 진술을 한다. 그는
"실재론의 표준적인 형태는 한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시간, 언어,
문화와 상관 없이 단지 그것이 실제 세계와 대응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쿤은 "한 진술의 진리치에 대한 평가는 어휘집이 이미 있을 때만 수행되는 활동이며, 그것의 결과는 그 어휘집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단,
쿤은 이 논쟁을
"다른 논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남겨둔다.
마지막으로, 쿤은 논문 「구조 이후의 길」에서 그의 실재론에 대한 생각과 관련성이 있는 언급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실재론과 구성주의를 대비시킨다. 과학혁명에 대해 어휘집 변화에 의거한 새로운 설명을 내놓은 다음, 쿤은 "l어휘집(담화 공동체의 공유된 분류법)과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세계의 관계를 개략적으로 서술하면서 논문을 끝맺는다.
그러나 쿤이 자신의 관점이 무엇을 함축하는지 분명하게 말하려고 할 때,
상황은 규정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세계는 발명되거나 구성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가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는 "세계는 확고하다. 만들어진 가설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에 그는 "세계의 구조가 경험될 수 있는 한,
그것은 거기에 사는 공동체의 어휘집 구조에 의해 제약된다"라고 지적한다.
쿤은 자신이 발전시킨 관점이 강건한 형태의 실재론과 일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시간에 따라, 공동체에 따라 변하는 세계가, 일반적으로
"실제 세계"라고 지칭되는 것에 대응될 수 있는가?"라고 수사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그는 그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모든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삶을 위한 환경을,
무대를 제공한다. 그런 삶에 그것은 실제 세계에 대해 합리적으로 무엇이 더 질문될 수 있는지 견고한 제한을 만든다". 쿤은 그의 관점을 "일종의 포스트-다윈적 칸트주의"로 묘사하면서 이 논의를 끝맺는다.
이런 묘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쿤은
"칸트의 범주들과 마찬가지로, 어휘집은 가능한 경험에 대한 예비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칸트의 범주들과 다르게, 어휘집의 범주들은 바뀔 수 있고 실제로 바뀐다."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파생 및 변화 과정의 기저에 영구적이고, 고정되어 있으며 안정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칸트의 물자체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고, 묘사될 수 없고,
논의될 수 없다"라고 언급한다.
『과학혁명의 구조』 출간 이후 쿤이 실재론에 대해 이야기한 것 중 많은 것은,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나누는 사항들과는 관련이 없다. 아마도 쿤이 현재의 논쟁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지 않았거나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실재론에 대한 그의 주장이 분명히 서술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쿤이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 점이 그의 관점과 그 논쟁의 관련성을 논의하거나, 그를 현재의 논쟁에 위치짓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선택적이긴 하지만, 내 분석은 쿤이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을 형성하는 문제들을 정의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내 논증을 추가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1990년대 초에, 맥멀린(Ernan
McMullin)은 쿤이 과학의 합리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널리 오해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신,
맥멀린은 쿤의 주장이 실제로는 "이론이 참임을 보여주는 특성"(truth character of theories)이라고 주장된 것을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맥멀린이 설명하듯이, "쿤은 한 이론의 설명적 성공이 그 이론에 상정된 존재자들이 실재한다고, 즉 그 이론이 최소한 근사적 참이라고 믿을 이유를 제공한다는 기존의 실재론적 관점을 매우 단호하게 거부한다". 따라서 맥멀린은 쿤을 반실재론자로 분류한다.
Theodore Arabatzis 또한 쿤이 이 논쟁에서 분명히 반실재론 진영에 있다고 주장한다. Arabatizs는 한 분야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이론들 간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쿤의 초점이 반실재론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쿤이 후기 저서에서
"공약 불가능성은 실재론적 입장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Arabatzis는 "과학의 역사적 발전의 측면들은 특정 실재론적 논증을 약화시키고, 반실재론적 관점을 지지한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Arabatzis는 내가 이론 변화의 문제라고 부른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제럴드 도펠트(Gerald Doppelt)도 쿤을 반실재론자로 간주한다. 그는 쿤의 관점을, "과학의 성공이 실재론적 추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패러다임 설명'이라고 서술했다. 도펠트는 또한 "이론 변화에 대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특징들은 쿤의 작업을 통해 무대의 중심으로 올려졌다"라고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실재론자에게 중대한 문제는 과학사의 많은 이론들[예: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 열에 대한 칼로릭 이론, 빛에 대한 에테르 이론 등]이, 관찰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그 이론들의 존재자들과 주장들이 그 분야에서 그 후에 등장한 이론에 의해 기각되었거나
'반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이론들이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불연속적이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논증과 입장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i)
라우든의 반실재론 논증(비관적 메타귀납) (ii) 프실로스(Psillos)의 수정적이지만 여전히 '존재론적 실재론' (iii) 워럴,
래디먼(James Ladyman), 캐리어(Martin Carrier) 등의 구조적 실재론. 최종적으로, 도펠트는 쿤의 패러다임 설명을 자신의 "최선의 현재 이론 실재론"(Best Current Theory Realism)의 상대로 설정한다. 이와 같이, 때때로 쿤은 마치 1960년대와 1960년대의 논쟁에서 도구주의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논쟁 참가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용한 상대로 등장한다.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맥락에서 쿤에 대해 논의하는 모든 철학자들이 쿤을 반실재론자로 간주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로널드 기어리(Ronald Giere)는 쿤이 최소한 『구조 이후의 길』(The Road Since Structure)에서 발표된 저작들에서는 실재론자라고, 구체적으로는 관점적(perspectival)
실재론자라고 주장한다.
기어리의 쿤 해석에 대해 논란이 없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Michela
Massimi는 쿤의 세계 변화 논제를 실재론과 조화시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호워드 생키(Howard Sankey)는 쿤과 실재론의 관련성에 대해 가장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생키는 쿤의 관점은 반실재론적 관점과 더 잘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키는 쿤과 관련해 실재론과 양립 불가능하다고 자주 받아들여지는 많은 주장들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실재론과 관련된 것도 찾아낸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i) 과학 이론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기준을 통해 이루어진다, (ii) 과학적 진보는 진화적인 그리고 문제-해결과 관련돠 용어로 생각될 수 있다.
(iii) 과학사에서 상당한 개념적 변화가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과학사학자인 피터 고든(Peter
Gordon)은 쿤이 특히 후기 저작에서 반실재론과 거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고든은 "쿤은 과장된 형태의 반실재론이나 급진적 구성주의를 의도하지 않았고, 나중에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고든은 세계 변화와 관련된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쿤의 도발적인 언급이 반실재론적 함축을 줄이는 방식으로 항상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내 목적은 쿤을 실재론자나 반실재론으로 분류하는 일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런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쿤의 이론 변화 문제가 현재의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의 용어 설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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