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ahamsen, A. and Bechtel, W. (2015), “Diagrams as Tools for Scientific Reasoning”, Review of Philosophy and Psychology.
1. Introduction
생물학자들은 논문이나 발표에 다이어그램을 매우 많이 사용한다. 다이어그램의 기능은 무엇인가? 한 가지 명백한 답변은 다이어그램이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어그램의 기능이 그것뿐이라면, 과학 활동에서 부수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들은 과학자들이 다이어그램을 연구 과정 전반에서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들은 메커니즘적 연구의 세 측면에서 사용되는 다이어그램의 기능들에 초점을 맞춘다.
(1) 설명되어야 할 현상을 상세하게 기술하기(delineating)
(2) 설명적 관계(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유관한 변수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규명하기
(3) 현상에 대한 메커니즘적 설명을 구성하고 수정하기.
사실 '다이어그램'이라는 용어에 명확한 경계는 없다. 사진, 플로우 차트, 실험 기구 그림 등, 과학 논문에서 쓰이는 사실상 모든 그림이 다이어그램에 해당된다. 다만 여기서 저자들은 메커니즘적 설명과 유관한 인식적 기능을 수행하는 다이어그램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그래프나 비교적 추상적인 그림은 포함하지만, 정교한 그림과 사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세 가지 유형의 다이어그램을 구분하는데, 각각 위에서 언급한, 메커니즘적 연구의 세 가지 측면에 대응된다.
(a) 현상 다이어그램(phenomenon diagrams): 관심 대상인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돕는다. 둘 이상의 변수들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그래프 형태를 취할 때가 많다.
(b) 설명적 다이어그램(explanatory relations diagrams): 거의 항상, 둘 이상의 변수들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그래프 형태를 띤다. 그 변수들 중 최소한 하나는 (a)에는 나타나지 않고, (c)에 나타나는 한 part 또는 한 operation과 연결됨으로써 설명에 기여한다.
(c) 메커니즘 다이어그램(mechanism diagrams): (a)의 현상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의 조직화된 parts와 operations에 대한 시각-공간적(visuospatial) 표상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이 논문에서 일주기(circadian rhythm, 24시간 주기의 생물 활동) 사례를 자세히 분석한다.
2. Phenomenon Diagrams
현상 다이어그램은 설명되어야 할 현상을 표현하며, 과학자들이 현저한(salient) 패턴을 탐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서 현상이 설명의 대상이라고 할 때, 현상과 그 현상이 만드는 데이터를 구분해야 한다.
- 현상: 반복 가능한 규칙성
- 데이터: 그 현상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관찰된 사례들
현상 그 자체는 세계에 있는 것인데, 과학자들이 인지적 활동을 통해서 그 현상의 패턴 혹은 규칙성을 포착해야만, 설명되어야 할 현상으로 간주한다. 많은 경우 과학자들의 시각 정보 처리 시스템이 패턴을 포착하는 일을 돕는 그래프 혹은 다른 외부 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인지적 활동이 이루어진다. 일주기 현상과 관련된 세 가지 다이어그램, (1) 선 그래프, (2) 액토그램(actograms), (3) 단계 반응 곡선(phase response curves)를 각각 검토해보자.
(1) 선 그래프
체온은 일주기를 보이는 생리학적 변수들 중 하나이다. 체온 변화를 선 그래프로 나타내면, 수치로 나타낼 때와는 달리, 주기적 변동(oscillatory) 패턴을 즉각 파악하는 데에 시각적 패턴 인지 능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수치로만 나타냈다면 패턴 파악에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림 1>
배경을 회색으로 처리하거나 점선을 이용한 것 등도 패턴 파악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포착된 규칙적인 패턴은 설명되어야 할 현상으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선 그래프는 일주기에서 과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측면들을 시각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e. g. 각 사이클의 정확한 지속 시간에 변화가 있는지, 각 사이클의 개시 시점).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런 측면들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른 다이어그램들을 사용한다.
(2) 액토그램(actograms)
액토그램은 일주기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개발한 다이어그램이다. 액토그램은 특히 하루 동안의 활동 패턴을 보여주거나, 이어지는 날들에 패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변화하지 않는지 보여주는 데 유용하다. 액토그램의 기본 요소는 짧은 수직 표시(marks)인데, 각각은 한 지정된 행위의 1회 발생(occurrence)을 표상한다. (e. g.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쳇바퀴를 한 바퀴 도는 것). 그 표시들은 최소한 하나의 24시간 주기를 표상하는 타임라인에서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날의 타임라인은 위부터 아래로 쌓이는데, 이는 여러 날에 걸친 일간 활동의 안정성, 경향, 추적하기 쉽게, 안정성, 경향, 이상(disorder) 등을 발견하기 쉽게 만들어진다.
<그림 2>
그림 2는 한 주의 50일 이상의 보행(locomotor) 활동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액토그램이다. 처음 며칠 동안 과학자들은 정상적인 일간 빛-어둠 사이클(LD)을 제공했다. (그래프 위에 있는 바에 나와 있는 하얀 부분과 검은 부분이 각각 정상적인 빛-어둠 시간을 나타낸다.)
그 이후로, 한 번의 짧은 빛 펄스(화살표로 LP 표시)를 준 것을 제외하고 쥐는 계속 어둠 속에 놓였다(DD).
가로축 타임라인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어서, 각 날의 데이터가 두 번(위쪽 줄 오른쪽에 한 번, 바로 아래쪽 줄 왼쪽에 한 번) 나타난다. 이것은 24시간 단위로 쪼갰을 때 놓칠 수 있는 활동 패턴을 포착하기 쉽게 만들기 위한 관습이다.
LD일 때와 DD일 때 다른 패턴이 보인다는 점이 시각적으로 명백하다. 정상적인 LD 조건에서, 쥐(야행성 동물)는 어둠이 시작될 때부터 "새벽"의 조금 전까지 활동한다. 그런데 DD 조건에서, 활동이 매일 조금씩 빨리 시작된다. 이런 대조되는 패턴을 통해 쥐의 내생적(endogenous cycle)이 24시간보다 짧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외부 환경에서는 빛에 노출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주기가 24시간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빛 노출의 영향은 일주기 연구의 중심적인 관심사이다. 여기서 쓰인 한 가지 전략은 단일한 빛 펄스를 DD에서 한 번 넣는 것이다. 이러한 간섭의 결과로 빛 펄스를 넣은 첫 날 주기가 상당히 늦춰졌고, 그 뒤로 보통 DD 패턴으로 돌아갔음을 이 액토그램에 알 수 있다.
(3) 단계 반응 곡선
<그림 3>
그림 3의 실험에서, 햄스터들은 LD 조건에서 7일간 있었고 다음 7일간 DD 조건에서 있었다. 15일째에 60분 빛 펄스를 주고, 다음 활동 단계가 언제 시작하는지 기록했다. 시작 시점의 변화는 세로 좌표에 나타냈다. 양의 값은 시작 단계가 앞당겨졌음을 의미하고, 음의 값은 늦춰졌음을 의미한다. (단, 여기서 한 주기는 24시간보다 짧은 내생적 주기를 의미하고, 1시간은 내생적 주기의 1/24이므로 실제 1시간보다 짧다).
이 곡선은 주관적 낮(0~10시)의 빛 펄스가 다음 활동 단계가 시작하는 시점에 거의 영향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주관적 밤의 첫 2시간 동안의 빛 펄스는 활동 단계 시작을 연기시켰다. 마지막으로, 늦은 밤에 준 빛 펄스는 다음 활동 단계 시작을 앞당겼다. (즉, 새벽이 일찍 온 것으로 착각하고, 그만큼 밤이 일찍 올 것으로 간주하고 활동을 일찍 시작한 것).
다이어그램 (1)~(3)은 각각 전반적인 일주기 현상, 특정 일주기 현상(내생적 사이클), 외부 빛에 대한 내생적 사이클 변화를 나타낸다. 각 다이어그램은 이전 버전에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며 완성되었다.
3. Explanatory Relations Diagrams
설명적 관계 다이어그램도 많은 현상 다이어그램과 마찬가지로 그래프 형식이라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구별 불가능하다. 둘 사이의 차이는, 설명적 다이어그램은 하나 이상의 변수가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이어그램으로 설명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이 같은 혹은 연관된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그램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한 관계를 다르게 보거나, 서로 다른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례: 행동 수준 일주기와 분자 수준 일주기 사이의 설명적 관계를 찾은 연구. 행동 – 분자 수준 part 연결. 이 사례는 일주기를 일으키는 분자 메커니즘의 중요한 part인, period 유전자를 규명한 첫 연구이다. (※ 유전자 이름이 period임) Konopka and Benzer는 우화(eclosion, 번데기→성충) 때 비정상적인 일주기를 보이는 세 돌연변이 계통을 발견했다. 우화는 초파리 일생에서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주기는 한 마리의 생체 리듬이 아니라 4일 동안 성충이 되는 초파리 수를 한 시간 간격으로 센 것이다.
<그림 4>
보통 초파리는 아침에 우화한다. 심지어 빛을 안 주어서 계속 어두울 때도 주로 아침에 우화했다. 이는 그림 4 그래프 A의 왼쪽 맨 위에 나타나 있다. 반면 세 가지 돌연변이 계통은 다르게 나타났다. B에서는 리듬이 깨져 있었고, C에서는 주기가 짧아졌고, D에서는 주기가 늘어났다. 여기서 그래프에 나타난 두 변수(flies per hour, days)뿐만 아니라 세 번째 변수인 "돌연변이 상태"도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설명적 관계는 <그래프에 나타난 두 변수>와 <돌연변이 변수> 사이의 관계로, 이 관계는 그래프를 여러 개 써서 나타냈다.
과학자들은 세 가지 돌연변이 계통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난 유전자 좌위를 추적했고, 그 좌위의 유전자를 ‘period’로 명명했다. 여기에 더해, 과학자들은 period가 초파리의 우화 일주기의 원인이 되는 분자 시계의 일부라고 메커니즘적 추론을 했다.
그런데 아직 period가 중심적인 시계의 part인지, 아니면 단지 우화를 결정하는 시계인지가 열린 문제로 남아있었다. 우화가 아닌 다른 활동, 예를 들어 운동 활동(locomotor activity)의 주기도 peorid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른 유전자가 관여하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운동 활동의 주기도 어두운(DD) 조건 하에서 측정해봤는데, 네 그룹(정상 및 세 돌연변이) 모두 우화와 같은 패턴이 나타났다(그림 4의 오른쪽 액토그램). 이는 peorid가 우화에 특화된 시계가 아니라 중심 시계의 part임을 지지한다.
(다른 예는 생략)
4. Mechanism Diagrams
메커니즘 다이어그램은 parts를 표상하기 위해 아이콘을 이용하고, 그 parts가 변환되거나 다른 parts에 영향을 주는 operation을 표상하기 위해 화살표 등을 이용한다. 또한 parts와 operations의 실제 공간적 위치를 표상하기 위해 공간적 관계를 이용하기도 한다(2차원 종이 위에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그런 다이어그램은 과학자들이 비어 있는 parts를 채워넣기 위해 실험을 계획하고, 대안적인 배열(configuration)을 찾아보고, 메커니즘을 통한 활동의 흐름을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메커니즘을 버전들을 배제하거나 메커니즘을 검증하거나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림 6>
그림 6에서 두 가지 사례의 메커니즘이 나타나 있다. 둘 다 초파리 일주기에 대한 메커니즘적 설명을 얻는 과정에서 개발되었다. period 유전자(per)의 발견에 힘입어, per mRNA와 PER 단백질의 농도의 24시간 주기 변동을 처음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주기 변동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PER의 농도가 높을수록 생산이 더 억제되는 음성 피드백 루프를 가정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림 6의 왼쪽의 다이어그램을 제안했다. 여기서 피드백이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세 가지 가설이 있다.
- PER 단백질 그 자체 (X)
- PER의 규명되지 않은 생화학적 산출물 (Y)
- PER에 의존하는 어떤 행동 (Z).
그리고 음성 피드백의 타겟이 무엇인지(무엇의 생산이 억제되는지)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 per 유전자 & per 유전자가 mRNA로 전사되는 과정
mRNA & mRNA가 PER 단백질로 번역되는 과정
여기서 물음표에 주목하자. 물음표는 생물학의 많은 메커니즘 다이어그램에서 쓰이며, 과학자들이 다이어그램의 도움을 받아 메커니즘적 설명을 추론한다는 증거이다.
그림 6의 오른쪽 다이어그램은 왼쪽보다 10년 뒤에 나온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설명적 관계를 상당히 많이 구축했고, 그런 설명적 관계에서 메커니즘적 설명이 추론될 수 있다. 오른쪽 다이어그램에서 추가적으로 포함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여러 가지 추가적인 시계 유전자들과, 그 유전자들에서 발현된 단백질들
(2) 음성 피드백이 왼쪽 다이어그램의 세 가지(X, Y, Z) 중 하나에 정확히 대응되지 않는다. PER 단백질과 새롭게 발견된 TIM 단백질의 이중체가 음성 피드백에 관여한다.
(3) 음성 피드백의 타겟이 예상보다 복잡했다. per 유전자와 tim 유전자는 다른 이중체(CYC:CLK)가 있을 때만 PER 단백질과 TIM 단백질을 발현시킨다. 그리고 PER:TIM 이중체는 CYC와 CLC의 결합을 억제한다. ※ 생물학에서 ‘A ┤ B’는 A가 B를 억제한다는 의미로 쓰임.
(4) 최소한 하나의 추가적인 음성 피드백 루프가 있다.
이제 위의 parts와 operations는 물음표 없이 포함되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두 빈자리를 물음표로 표시했다.
그림 6에 나타난 두 가지 말고도 메커니즘 다이어그램에는 다양한 형식이 있다. 다이어그램은 연구실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에 비추어 메커니즘적 설명을 개발하고 수정하는 인지 활동을 돕는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수의 다이어그램이 만들어지지만, 매우 적은 수만 출판물에 쓰인다.
다이어그램 형식을 다양화하는 한 가지 동기는 정적인 다이어그램을 통해 시간을 표상하는 것이다. 시간을 표상하기 위해 같은 형식의 다이어그램을 시간에 따라 여러 번 나타내거나, 미분방정식 모델과 다이어그램을 연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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