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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에서 사후 포섭(accomodation) 대 예측(prediction) 논쟁이란, 어떤 가설이 경험적 자료를 사후 포섭하는 경우와 예측하는 경우 중 어떤 경우에 더 강하게 지지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사후 포섭은 자료가 먼저 얻어지고 그에 맞춰 가설을 구성하는 경우이고, 예측은 가설을 구성한 후에 자료가 얻어지는 경우이다. 저자는 예측주의자이지만, 기존의 세 가지 예측주의 옹호 논증들, 즉 임시방편 논증, 시험 논증, 최선의 설명 논증에는 비판적이다. 대신 저자는 예측주의를 옹호하는 새로운 두 논증, 선택 논증과 날조 논증을 제시한다. 그리고 날조 논증을 통해 임시방편 논증, 시험 논증, 최선의 설명 논증이 설득력을 갖도록 재구성한다. 본 요약문은 원래 논문의 순서를 일부 바꾸어 요약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가설의 예측이 사후 포섭보다 더 강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측의 우월성 논제"를 확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증거가 가설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에는 가설의 내용, 가설과 관찰 사이의 연결을 위해 필요한 진술들의 내용, 배경 믿음들의 내용, 관찰의 내용이 있는데, 이것들은 관찰 자료가 사후 포섭되었는지 예측되었는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후 포섭과 예측은 단지 자료가 얻어진 시점만 다를 뿐인 것처럼 보인다. 이에 예측주의자들은 예측의 우월성 논제를 옹호하기 위해 다양한 논증들을 내놓았다. 그 중 유명한 것 세 가지는 임시방편 논증, 시험 논증, 최선의 설명 논증이다.
예측주의에 대한 기존의 옹호 논증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비판
임시방편 논증: 사후 포섭은 가설이 관찰 자료와 부합하게 만들어지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가설은 임시방편(ad hoc)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후 포섭이 증거가 되지 못한다.
저자의 비판: "임시방편"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사후 포섭의 증거력을 부정하지 못한다.
(1) "특별한 목적[기존 자료의 포섭]을 위해 만들어진": 이렇게 해석하면 "사후 포섭적 가설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은 "사후 포섭적인 가설은 사후 포섭적인 가설에 불과하다"라는 반복적인 문장에 불과하게 된다.
(2) "가설이 잘 뒷받침되지 않는": 이렇게 해석하면 "사후 포섭적인 가설은 임시방편적이다"라는 문장은 "사후 포섭적인 가설은 잘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잘 뒷받침되지 않는다"라는 순환 문장이 된다.
시험 논증: 가설은 예측을 통해서만 진정한 시험을 받을 수 있다. 사후 포섭은 애초에 자료와 가설이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가 가설을 반증할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 예측은 과녁에 화살을 맞추는 것이고, 사후 포섭은 화살이 맞은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저자의 비판: 이 논증은 가설과, 그것을 만드는 과학자를 혼동하고 있다. 과학자는 [제대로 연구한다면] 사후 포섭에서 틀릴 수 없고, 예측에서는 틀릴 수 있다. 하지만 가설과 자료의 관계는 사후 포섭의 경우와 예측의 경우 모두 동일하다. 가설은 만약 포섭된 증거가 달랐다면 반증된다.
최선의 설명 논증: 왜 가설과 자료가 일치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1) 가설이 참이기 때문이다. (2) 가설이 자료와 부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후 포섭의 경우 (1)과 (2)가 모두 가능하지만, (2)가 성립하므로 (1)은 차단된다. 예측의 경우 (1)만 가능하므로 가설이 참이라는 설명이 최선의 설명이다.
저자의 비판: (2)가 성립한다고 해서 (1)이 차단되는지 불분명하다. (1)과 (2)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측주의 옹호 논증들
관찰 자료가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증거와 관련된 요소(증거적 미덕)와 가설과 관련된 요소(이론적 미덕)로 구분할 수 있다.
증거적 미덕: 자료의 수, 자료의 다양성, 자료의 정확성, 자료의 정밀성, 자료가 통제된 실험에 의해 생성됨 등.
이론적 미덕: 가설의 사전 개연성(prior plausibility, 가설의 자연스러움과 이미 수용된 다른 주장들과의 일관성), 가설의 단순성, 가설에서 시험 가능한 귀결을 도출하는 데에 사용되는 보조 진술의 개연성, 경쟁 가설의 부재 등.
저자는 이와 같은 요소들에 의거해 "선택 논증"(argument from choice)과 "날조 논증"(argument from fudging)을 제시한다.
선택 논증: 사후 포섭의 경우 과학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자료들을 어떻게든 포섭하는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반면 예측의 경우 과학자들은 가설을 잘 뒷받침하는 예측들(위의 증거적 미덕들을 만족시키는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예측들)을 선택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 그런 예측들이 입증될 경우 가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단, 선택 논증은 예측의 우월성 논제를 강하게 지지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자들이 항상 무슨 예측을 검사할지에 대해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한 특정 관찰 자료가 사후 포섭되었을 경우보다 예측되었을 경우에 더 강한 증거가 됨을 보이지 못한다.
날조 논증: 이미 존재해야 하는 자료를 포섭해야 할 때, 과학자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자료에 맞춰 날조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증거적 미덕은 일부 이론적 미덕과 긴장 관계에 있다. 즉, 증거적 미덕을 잘 갖춘 가설을 만들기 위해 이론적 미덕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e. g. 관찰 자료를 포섭하기 위해 주전원을 가설에 넣었던 프톨레마이오스주의 천문학자들은 관찰 자료의 다양성이라는 증거적 미덕은 갖췄지만 이론의 단순성이라는 이론적 미덕은 희생해야 했다). 반면 예측의 경우 과학자들은 정답을 미리 알지 못하고 따라서 주전원 같은 변칙을 넣어야 할 때도 어떤 것을 넣어야 할지 모른다. 따라서 예측의 경우 과학자들은 최선의 가설을 사용할 것이며, 만약 예측이 성공적이라면 그것은 경험적 미덕과 이론적 미덕을 모두 보여줄 것이다. [이 부분 정확히 이해 안 됨.]
예측주의에 대한 기존의 옹호 논증들에 대한 재고
저자는 기존의 논증들이 설득력을 가지도록 날조 논증을 통해 기존 논증들을 재구성한다.
임시방편 논증: 사후 포섭을 위해 만들어진 가설은 임시방편적이므로 포섭한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다.
저자의 비판: '임시방편적'이라는 말은 '가설이 잘 뒷받침되지 않는다'라는 말이므로 위의 논증은 순환적이다.
재구성된 임시방편 논증: 사후 포섭을 위해 만들어진 가설은 날조를 통해 만들어져서 이론적 덕목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포섭한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다.
시험 논증: 사후 포섭은 가설을 시험하지 못하고 오직 예측만 가설을 시험한다. 사후 포섭은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비판: 시험 논증은 과학자에게 적용되지만, 가설 그 자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후 포섭도 가설을 시험할 수 있다. 만약 사후 포섭된 증거가 달랐다면 그 가설은 반입증되었을 것이다.
재구성된 시험 논증: 시험 논증은 과학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과학자는 정답을 미리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과학자가 날조한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e. g. 이중 맹검 실험.
최선의 설명 논증: 자료와 가설의 일치에 대해, 사후 포섭의 경우 (1) 가설이 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2) 가설이 그 자료와 일치하도록 구성되었다는 설명이 모두 가능하다. (2)가 옳으므로 (1)은 차단된다.
저자의 비판: (2)가 옳다고 (1)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재구성된 최선의 설명 논증: 자료와 가설의 일치가 날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시될 수 있고, 그런 경우 (1)이 차단된다.
쌍둥이 과학자 사고 실험
쌍둥이 과학자가 동일한 가설을 독립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 명은 자료를 사후 포섭한 반면, 다른 한 명은 가설을 먼저 만들고 그 가설에서 같은 자료를 예측했다. 만약 예측이 더 강한 증거가 된다면, 두 쌍둥이는 같은 가설, 같은 자료를 갖고 있음에도 예측을 했던 사람이 가설에 대해 더 강한 신뢰도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면 가설에 대해 동일한 신뢰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둘 중 한 명은 가설에 대한 신뢰도를 수정해야 하는데, 누가 수정해야 하는가?
날조 논변에 따르면 포섭가의 신뢰도를 예측가의 높은 신뢰도에 맞춰야 한다. 왜냐하면 둘 사이의 일치는 포섭가가 자신의 가설을 날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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