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글 목록

2020년 2월 9일 일요일

[요약정리] Wray, K. B. (2019), "Kuhn, the History of Chemistry,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HOPOS

쿤의 사상 발달 과정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주로 외적 요인들, 즉 문화적 환경이나 쿤의 개인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이런 외적 요인뿐만 아니라 쿤이 1950년대와 1950년대에 읽은 과학사 관련 저작들이 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보인다. 통념과는 달리, 저자는 화학사가 쿤의 생각에 큰 영향을 줬으며, 이런 영향은 제임스 코넌트와 레오나드 내쉬(Leonard Nash)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Chemistry i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과학혁명의 구조』의 모든 장들은 화학자나 화학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화학사가 길게 논의되는 세 부분에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

ㅇ 6장 변칙현상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쿤은 산소의 발견의 예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적 발견의 구조를 논의한다. 쿤은 과학적 발견에는 관찰과 개념화(conceptualization)의 양 측면이 얽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현상에 대한 발견은 "무엇인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 두 가지 모두를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 산소의 발견과 관련된 많은 화학자들은 그것을 산소로서 보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밝혔으나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밝히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ㅇ 7장 위기와 과학 이론들의 출현
쿤은 화학혁명의 사례를 통해 과학혁명에서 위기의 역할을 설명한다. 쿤은 18세기 플로지스톤 이론의 위기가 찾아온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 기체화학의 출현: 1700년대 중반까지 화학자들은 공기가 유일한 종류의 기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Joseph Black은 고정된 공기(= 이산화탄소)가 보통 공기에서 분리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캐번디쉬, 프리스틀리, 쉴레 등은 기체 한 샘플을 다른 샘플과 구분하는 실험 기술들을 발달시켰다. 쿤에 따르면 플로지스톤 이론은 이러한 새로운 실험적 발견들을 설명할 수 없었고, 플로지스톤 이론의 다양한 변형들이 등장하게 된다. 쿤에 따르면 "기체 화학자만큼이나 많은 수의 플로지스톤 이론들이 있었다".
- 연소 반응에서 물체의 질량 증가 현상: 많은 물체들은 연소될 때 질량이 증가한다. 플로지스톤 이론에서는 연소를 플로지스톤이 물체에서 빠져나가는 반응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플로지스톤 이론에 문제가 되었다. 쿤에 따르면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화학자들이 서로 다른 버전들의 플로지스톤 이론을 개발했다. 결과적으로 플로지스톤 이론은 패러다임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ㅇ 10장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쿤은 돌턴의 일정성분비 법칙의 사례를 통해, 이론의 혁명적 변화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의 작업을 어떻게 바꾸는지 논의한다. 또한 쿤은 이미 있었던 실험 작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다른 구체적인 결과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연구할 때 새로운 세계에서 연구한다. 돌턴 이전에는 화학 반응 과정에서 성분비가 일정하다는 점을 과학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돌턴 이후 성분비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것일 뿐만 아니라, 데이터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 부분 잘 이해 못 함]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거에 믿었던 것을 과학자들이 다시 고려해보게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결과로 이끈다.

ㅇ 『과학혁명의 구조』에 등장하는 화학사의 다른 사례들
- 1장: 과학혁명의 본질적(defining) 특징들이 화학혁명에서도 나타난다.
- 2장: 라부아지에의 교과서는 현대의 과학 교과서가 하는 역할과 동일한 역할을 했다.
- 4장: 준-형이상학적 개입들이 과학자들에게 문제가 몇 개인지[??] 말해준다.
- 8장: 라부아지에의 연구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위기가 많이 진행되거나 명시적으로 인식되기 전에도 초기 형태로 나타난다.
- 11장: 역사의 재구성은 혁명 이후의 과학 텍스트들에 의해 완결된다. 과학 교과서에는 원소에 대한 보일의 정의가 과학이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쓰이는데, 사실 보일의 원소 개념은 지금의 원소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 12장: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하던 것들 중 일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소위 "Kuhn loss"라고 불리는 것). 플로지스톤 이론이 설명하던 것 중에 라우아지에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 13장: 과거 이론의 지지자들이 어떻게 새 패러다임을 거부하는지. 화학혁명의 사례 이용.

Conant, Nash, and Havard Case Histories
코넌트가 쿤에게 사례 연구에 기반을 둔 교양 과목을 맡겼는데, 코넌트는 화학자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므로 사례들이 화학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후에 쿤과 함께 강의를 맡게 된 내쉬도 화학자로 훈련받았고, 쿤은 돌턴의 작업에 대한 내쉬의 분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40년대와 50년대에 주로 물리학과 수학에 주목한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화학은 관심 밖이었다. 그들의 논리적 분석에 화학은 잘 맞지 않았다. 또한 주기율에서 만들어지는 예측은 물리법칙에서 도출되는 예측같은 방식으로 연역되지 않는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이 화학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쿤에 대한 저항의 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저자는 추측한다. 또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물리학 중심 환원주의도 화학에 주목하지 않는 것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The History of Chemistry
과학사학자들은 화학을 간과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적 변화의 본성과 물질에 대한 이론(theories of matter)을 연구하기 위해 화학사에 주목했다. 그들은 특히 라부아지에의 업적을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쿤은 이들과도 교류했다.

Why Have We Not Seen the Influence of History of Chemistry on Kuhn Before?
ㅇ 그동안 화학사가 쿤에게 끼친 영향이 간과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첫째, 연구자들이 쿤의 사상의 발전을 외부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쿤이 화학사를 포함한 과학사에 대한 글들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간과하게 만들었다.
- 둘째, 쿤 자신의 활동 및 회상 때문이다. 쿤의 초기 논문들은 화학사에 대한 것이었지만, 단행본 분량의 첫 저작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었다. 그리고 쿤은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이해하게 된 순간을 자주 언급했다. (이때는 쿤의 사고가 코넌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시기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즉, 화학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어느 정도 자신의 사상의 윤곽을 잡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이후 저작들에서 화학사의 사례를 잘 쓰지 않았다. 여기서 쿤이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점과, 다른 과학철학자들이 물리학의 예에 익숙했다는 점이 화학사의 영향을 흐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