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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3일 일요일

[요약정리] 최성호 (2016), "고유명이란 무엇인가?: 왜 선박은 이름이 있지만 비행기는 이름이 없을까?"

최성호 (2016), 『철학적 분석』 36, pp.53-89.


I. 도입
이름 짓기 관행
ㅇ 이름(고유명)은 분석철학사에서 굉장히 많은 논의가 있어온 주제지만, 이름과 관련하여 별로 논의되지 않은 몇 가지 현상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언어공동체에서 이름을 아예 갖지 않는 개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어떤 개체에는 이름을 붙이고 어떤 개체에는 붙이지 않는 언어 현상을 '이름 짓기 관행'이라고 부르자. 이름 짓기 관행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이름을 부여하는 개체: 사람, 애완동물, 도시, 국가, 산, 강, 행성, 별, 선박, 상점, 학교, 예술작품 등
-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개체: 컴퓨터, 컵, 쇼파, 냉장고, 옷, 책상, 대부분의 동물, 곤충, 식물 등

ㅇ 이름 짓기 관행은 다음과 같은 점들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흥미로운 언어 현상이다.
- 개체의 본성
- 개체에 대한 인간의 사고
- 언어공동체에서 개체에 대한 담화가 이루어지는 방식

ㅇ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설명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왜 이름을 갖지 않는 개체들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왜 이름을 갖는 개체들이 존재하느냐이다.
- 우리 주위의 대부분의 개체들은 이름을 갖지 않고 오직 선별된 개체들만이 이름을 갖는다.
- 이름은 개체 각각에 고유한 언어적 표현을 귀속하고, 그 언어적 표현을 다른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언어적 표현을 일일이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지적 비용이 많이 든다('인지적 가성비'가 낮다). 이름의 사용이 다른 언어적 표현들의 사용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은 인지심리학의 연구로 뒷받침된다.

ㅇ 이런 맥락에서, 선박과 비행기 모두 운송수단임에도 왜 선박은 이름을 갖는데 비행기는 이름을 갖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선박: '타이타닉호', '시프린스호', '세월호', '동진호', '천안함'
- 비행기: 특수한 경우(대통령 전용기 등)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갖지 않고, 지시적인 목적으로는 항공사명이나 비행기의 기종명 혹은 항공편명이 주로 사용된다.

ㅇ 이름 짓기 관행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먼저 이름이 언어에서 갖는 의미론적 기능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그 기능의 측면에서 선박과 비행기가 갖는 차이를 검토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이름 짓기 관행을 설명하는 것은 규범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단순한 유희를 위해 옷, 신발, 책상 등에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

II. 이름 짓기 관행에 대한 스트로슨의 견해와 그에 대한 비판
스트로슨의 세 조건
ㅇ 스트로슨에 따르면 어떤 개체에 대한 이름이 유용성을 가지려면 다음 세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만족되어야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을 지어봤자 유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1) 어떤 언어공동체가 있어서 그 공동체에서 개체 X를 특정하여 지시할 필요성이 자주 발생한다. [이름은 어떤 특정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 변별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
(2) 그 공동체에서 개체 X에 대한 지시가 이루어지는 사이사이에 X가 통시적 동일성을 유지하는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있다.
(3) X가 언어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맺는 관계에 의하여 언어공동체에서 X를 특정하는 방식으로 가리킬 필요가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짧고 유용한 기술구나 타이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1)에 대한 비판
ㅇ 비판점: 변별은 이름의 기능 중 일부일 뿐이다.
- 우리는 변별이 필요한 많은 개체들에 이름을 짓지 않는다. 예) 옷
- 변별을 위한 언어적 표현이 도입되더라도 그게 꼭 이름인 것은 아니다. 예) 항공기 등록부호, 운동선수의 등번호, 자동차 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이런 것들은 개체 x가 이런 언어 표현 'y'로 표현될 수 있는 어떤 유일한[그 개체만 가지고 있는] 속성을 갖고 따라서 'y를 갖는 개체'라는 기술구가 x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할 뿐이다. 예) '931001-1******'의 주민등록번호를 갖는 사람'이라는 기술구로 강규태를 가리킬 수 있다고 해서  '931001-1******''이 강규태의 이름은 아니다.
ㅇ 선박과 비행기의 이름 짓기 관행 차이를 선박은 맞춤형으로 생산되고, 비행기는 기종별로 대량생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스트로슨의 입장을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 이전의 옷은 다 맞춤형이었는데도 이름을 짓지 않았다. 따라서 그런 식의 방어는 실패한다.

(2)가 설득력 있게 적용되는 사례들
ㅇ (2)는 여러 경우에 대해 설득력을 갖는 듯하다.
- 당구공 vs. 축구 선수: 당구공에 이름을 짓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특정 당구공의 통시적 동일성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당구공이 예전의 그 당구공이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구공의 색깔뿐이다. 반면 축구팬들은 축구 선수들의 통시적 동일성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선수들의 이름에 대한 필요성이 존재한다.
- 비행기 vs. 선박: 비행기와 선박은 운송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지만, 사람들이 개별 비행기나 개별 선박의 통시적 동일성에 관심을 갖는지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 선상 여행: 장기간에 걸친 여행이 많고 거기에서 다채로운 기억이 남는다. 비릿한 바다 냄새, 시원한 바다 바람, 파란 하늘의 하얀 갈매기 떼, 요란한 파도소리, 뱃고동 소리 등등...
- 항공 여행: 별다른 감흥도 추억도 남기지 않는다. 이착륙할 때 빼고는 영화 보다가 잠이나 잔다.
선상 여행의 성격은 선박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줌으로써 우리가 선박의 통시적 동일성에 관심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선상 여행 이후, 나중에 다시 그 배를 접할 기회가 생기면 선상 여행의 여러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반면 항공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될 경험을 만들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행기의 통시적 동일성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2)에 대한 비판1: 통시적 동일성 개념
ㅇ 스트로슨 본인은 통시적 동일성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이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 듯하며, 따라서 (2)에 포함된 통시적 동일성 개념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물의 이름만이 아니라 다른 이름, 특히 사건에 대한 이름으로 논의를 확장할 때 통시적 동일성 개념은 상식적 수준 이상의 이해를 요구한다.
- 사물의 통시적 동일성: 동일한 사물은 시간 속에서 온전히 현존함(present)으로써 인속(endure)하는 지속체(continuant)이다.
- 사건의 통시적 동일성: 동일한 사건은 그것이 존재하는 시점에 시공간적 부분을 가짐으로써 편속(perdure)하는 발생체(occurrent)이다.
스트로슨은 (2)에 대한 논의에서 사물과 사건의 통시적 동일성의 차이가 (2)에서의 차이를 낳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ㅇ 사물의 통시적 동일성과 사건의 통시적 동일성은 큰 차이가 없거나, 있어도 정도차에 불과하다면 스트로슨의 견해를 방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존재론적 입장을 상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름에 대한 언어철학적 논의를 하는 맥락에서는 특정한 존재론적 입장을 상정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2)에 대한 비판2: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개체의 통시적 동일성
ㅇ 논의를 사물에 한정하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2)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개체에 대한 이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개체들의 통시적 동일성 여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과거에 존재했으나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체의 경우.
예) 이순신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한국어 사용자들은 이순신의 통시적 동일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이순신을 가리킬 때 유용하다.
- 스트로슨의 가능한 대응: (1), (2), (3)은 명명 행위의 유용성에 대한 조건들이다. 즉,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시점에서 명명 대상의 지속적 동일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어사용자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이 조건들이 정당화되기는 충분하다.
- 반례: 루시(Lucy)의 사례. '루시'는 유골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골의 주인, 즉 4백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어떤 원시인류 여성을 지시하기 위해 독립된 이름이다. 인류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 '루시가 직립보행을 했는가', '루시가 불을 사용했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그 원시인류 여성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루시'라는 이름이 명명되었을 때, 루시의 통시적 동일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언어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미래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체의 경우.
예) 제 2 롯데월드는 완공 전에 명명되었다. 88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에도 88 올림픽은 명명되었다.
(기술적 이름에 대한 논의 - 전체적인 논의 맥락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생략)

(3)에 대한 비판
ㅇ 특정 대상을 가리킬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짧은 기술구나 타이틀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 애완견의 경우. '우리 집 강아지', '우리 강아지' 등으로 쉽게 사용될 수 있는 기술구가 존재하는데도 이름을 붙인다. (반면 '우리 자동차', '우리 집'과 같은 경우 이름을 붙이지 않으며, 이 경우는 (3)과 일관된다.)
-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구조해준 토착 원주민에게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설의 내용이지만 이런 행위는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로빈슨 크루소의 대화 상대자는 프라이데이 한 명 뿐이므로 '당신' 혹은 '너'라고 칭하면 되고, 독백으로는 '그'라고 칭하면 된다. 굳이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불필요하다.

(2), (3) 각각은 필요조건이 못 되지만, (1), (2), (3)을 합치면 충분조건이 될까?
ㅇ 반례가 있다. 고고학 탐사에서 평범하게 생긴 토기들을 여러 개 발견했다고 하자. 우리는 그 토기들 각각을 구분할 필요가 있으므로, (1)이 만족된다. 또한 이 토기들이 과거 선사시대에 사용된 것과 같은 토기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므로 (2)도 만족된다. [의문: 그럼 이순신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이 토기들은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에, 특정 토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구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3)도 만족된다. 그런데 이름 짓기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 토기들 각각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을 것 같다.

III. 이름 짓기 관행에 관한 저자의 입장

이름의 기능I: 맥락 독립적이고 안정적 지시
ㅇ 특정 개체를 지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시적 표현에는 이름, 기술구, 지표어 등이 있다.
- 기술구 또는 지표어와 지시체의 관계는 쉽게 바뀔 수 있다. 예) ‘나는 철학자이다’라는 문장을 발화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박근혜인지 강진호인지에 따라) ‘나’라는 지표어의 지시체가 바뀐다.
- 이름은 달리 상당히 맥락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지시 관계를 갖는다. 물론 이름의 지시 관계가 변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기술구나 지표어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

이름의 기능II: 단칭 사고 전달
ㅇ 이름의 또 다른 특성은 대물 사고(de re thought) 혹은 단칭 사고(singular thought)를 타인에게 전달할 때 중요하다는 것이다.
- 일반 사고: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결정하는 속성이 믿음 내용에 포함되는 믿음. 예)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에게 '오스트랄루'라는 이름을 붙여보자. 그리고 오스트랄루는 아프리카에 살았다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믿음은 엄밀하게 말해서 그 특정 개체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이라는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내용은 그러한 속성이 아프리카에서 예화되었다는 것이다.
- 단칭 사고: 대상 자체만이 믿음 내용에 포함되는 믿음. 예) 내 책상이 더럽다는 믿음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기술구로 표현될 수 있는 속성의 매개로 책상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지각을 통해 표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 책상이 더럽다는 믿음은 내 책상 그 자체에 대한 것이지 그것이 갖는 어떤 속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또, 지각적 경험 관계에 의해 책상에 대한 믿음을 갖지만, 그러한 지각적 경험을 갖는다는 사실은 책상에 대한 믿음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 단칭 사고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예를 들어 프레게에 대한 기술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프레게는 단칭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단칭 사고가 가능하며, 그것을 담화를 통해 화자가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상정한다.

ㅇ 이름이 언어에서 수행하는 가장 핵심적 역할은 담화를 통해 단칭 사고의 전달을 매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할에 비추어 이름 짓기 관행을 설명해야 한다. 저자의 제안은 어떤 개체에 대한 단칭 사고를 담화를 통해 전달할 필요성이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될 때 그 개체에 대한 이름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ㅇ 저자는 단칭 사고의 본성에 대한 특정 이론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편의상 르카나티, 제션 등에 의해 발전된 심적 파일(mental file) 이론을 이용해 설명한다.
- 심적 파일은 심적 이름에 의해 구분되는 정보 파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그것은 화자가 어떤 특정 개체에 관한 정보로 간주하는 것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저장하는 심적 단위이다. 이러한 심적 파일은 언어사용자가 어떤 개체 x에 대하여 x가 그 언어사용자에게 현시되는 양태에 관한 언어적 기술을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즉, 프레게적 sense과 다른 방식으로] x에 관한 정보를 저장하고 그리고 추후에 그것을 검색하고 회수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 언어사용자가 어떤 개체 x에 대한 심적 파일을 통해 사고할 때 그는 x에 대한 단칭 사고를 갖는다. 이에 반해 언어사용자가 심적 파일과 무관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데, 그 경우 언어사용자는 단칭 사고가 아니라 일반 사고를 갖게 된다.
- 화자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청자가 심적 파일을 생성할 것을 유도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이름의 사용은 화자에서 청자로 단칭 사고가 전달되는 과정을 매개한다. 예) 나는 지금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단칭 사고를 갖는데, 그것은 필자가 ‘이순신’이라는 이름 사용의 연쇄의 한 쪽 끝에 서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순신’이라는 이름 사용의 연쇄를 통하여 나는 이순신이 나에게 현시되는 특정한 방식에 독립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심적 파일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순신에 대한 단칭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물론 단칭 사고에 대한 심적 파일 이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름이 담화를 통한 단칭 사고의 전달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논점이 이론적으로 뒷받침될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이름 짓기 관행에 대한 설명
ㅇ 앞서서 이름의 주요 기능 두 가지를 살펴보았다. 이름은 안정적인 지시를 위해, 그리고 단칭 사고 전달을 위해 쓰일 수 있다. 이름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도입된다.
- 우리가 개체 x에 대한 이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iff 발화자나 맥락에 독립적인, 안정적인 방식
으로 담화를 통해 어떤 개체 x에 대한 단칭 사고를 전달할 필요성이 있거나 혹은 그러한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합리적 근거가 있다.

ㅇ 비행기와 선박의 차이에 대한 해명: 항공 여행과 해상 여행의 차이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행기에 대한 단칭 사고를 처음부터 갖지 않거나 혹은 그런 단칭 사고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담화를 통하여 전달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선박에 대해서는 단칭 사고를 갖고 그러한 단칭 사고를 타인에게 담화를 통해 전달할 필요성을 느낀다.

ㅇ 자동차에 대한 해명: 자동차의 주인이 자신의 자동차에 대하여 단칭 사고를 갖고 그 단칭 사고를 타인에게 전달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그러한 필요성이 주로 자동차 주인에게만 발생한다는 점에서 ‘발화자 독립적인 방식으로’단칭 사고를 전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동차에 대한 단칭 사고를 전달할 필요성은 대개 그 자동차 주인에게만 있다.] 그 경우 지표어나 기술구(‘내 자동차’, ‘우리 자동차’와 같은 표현)만으로 충분하지 굳이 인지적 가성비가 낮은 이름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옷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해명할 수 있을 것 같다.]

ㅇ 로빈슨 크루소 사례에 대한 해명: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 첫째, 로빈슨 크루소가 프라이데이에 대한 단칭 사고를 담화를 통해 전달할 필요성이 앞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믿음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언젠가는 무인도에서 구조될 수 있고 그때 다른 화자들과 프라이데이에 대하여 담화를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이름 짓기 관행에 관한 저자의 견해는 로빈슨 크루소의 명명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 둘째, 로빈슨 크루소가 감성적, 정서적 이유에서, 혹은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던 단순한 습관에 의해서 프라이데이에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로빈슨 크루소의 명명 행위는 저자의 견해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명명 행위의 가능성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ㅇ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해명: 강규태가 주민등록번호 931001-1*******’을 갖는다는 속성은 오직 강규태만이 갖고, 그런 점에서 강규태를 다른 개체들로부터 구분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강규태를 특정하여 가리키기 위한 지시적 표현으로 931001-1*******’을 사용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할 때, 우리는 강규태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여 강규태에 대한 단칭 사고를 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강규태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여 강규태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931001-1*******의 주민등록번호를 갖는 사람’과 같은 기술구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 기술구는 강규태에 대한 사고의 내용을 구성하고, 따라서 해당 사고는 단칭 사고가 아니라 일반 사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ㅇ 저자의 입장이 갖는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 어떤 개체가 사물인지 혹은 사건인지 그리고 현존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의존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개체에 대한 단칭 사고가 담화를 통하여 전달될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이고, 그 점에 있어서 사물과 사건을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어떤 개체가 현존하는지 혹은 과거엔 존재했지만 현재 존재하지 않는지 그도 아니면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에 대한 이름의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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