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퍼는 귀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귀납을 완전히 거부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새먼은 포퍼의 관점을 따르게 되면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본질적으로 귀납적 측면을 포함하거나, 예측적 내용(predictive content)를 결여한다.
포퍼: 우리가 한 가설(=일반=이론=추측)에 대한 반례를 찾아내면 그 가설은 연역적으로 반증(=논박)된다. 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사례가 나온다고 해서, 그 가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새먼: 포퍼의 입장을 따르게 되면 합리적 예측(rational prediction)을 위한 기반이 없다. 관찰 보고들은 과거 사건들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에는 예측적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 관찰 보고들은 미래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포퍼: 예측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전제) 가설
(전제) 과거 혹은 현재 사건들에 대한 관찰 진술
(결론) 예측적 내용을 가진 결론
이때, 가설은 반증되지 않았어야 한다.
새먼: 반증되지 않은 전제만 이용하라는 지침은 충분하지 않다. 이용 가능한 관찰적 증거와 양립 가능한(= 논박되지 않은) 무한히 많은 가설이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논박되지 않은 모든 대안들 중 아무거나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면, 아무거나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논박되지 않은 전제들 중에서 선택하는 데에 합리적 기반(rational basis)이 있어야 한다.
포퍼: 한 가설을 다른 가설보다 선호할 합리적 기반이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시험을 견뎌내어 더 많이 용인된(corroborated) 가설을 선택해야 한다.
새먼: 우리가 예측을 할 때 한 가설을 다른 가설보다 선호한다면, 그러한 선호는 가설의 예측 능력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측에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둘째, 가설을 시험하기 위한 것.
셋째, 실천적 목적을 위한 것.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유형의 예측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설의 선호가 어떤 유형의 예측과 관련되어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더 많이 용인된 가설을 선호하는 것은 해당 가설의 과거 performance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적절할지 몰라도 실천적 목적을 위해서는 적절하지 않다. 얼마나 많이 용인되었는가는 예측적 능력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포퍼: 다른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 따라서 용인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새먼: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이다. 다른 모든 선택 방식이 비합리적이더라도, 포퍼의 견해가 합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새먼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주장이 옳든 아니든,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포퍼가 합리적 예측에 대한 괜찮은 설명을 제공할 수 없다면 그의 주장이 귀납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퍼: 가설들은 예측적 중요성(import)를 가지고 있다. 반면 가설의 용인을 평가하는 진술들은, 특정 가설의 선호를 정당화하지만, 예측적 중요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새먼: 예측적 중요성과 예측적 내용을 구분할 수 있다. 규칙, 명령문, 지시문(?? - directives) 등은 예측적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아무런 진술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측적 중요성은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명령문은 미래 일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포퍼에 따르면 이론의 용인을 평가하는 진술들은 예측적 내용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시문(실천적 예측을 위해 더 용인된 이론을 선택해라)은 상당한 예측적 중요성을 갖는다. 포퍼는 이 지시문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포퍼가 용인만으로 합리적 예측을할 수 있다고 있다고 본 것은 그의 실재론 때문인 것 같다. [여기서 실재론이라는건 과학적 실재론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실재론 말하는 듯.] 그 실재론은 일종의 자연의 통일성 원리(principle of uniformity of nature)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그의 견해는 전통적 귀납주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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